제39화
“청휘야, 철랑방주를 조심하거라. 그자는 월경 2단계의 무인이다. 마도의 음혈검법까지 익혔더구나!”
공격을 시작하려는 운청휘에게, 태상장로의 다급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운청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흑괴의 무위를 파악한 터였다.
그가 익혔다는 음혈검법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신식으로 살펴보자 마공을 익힌 자 특유의 마기가 느껴졌다.
“운청휘! 이 흑낙을 기억하느냐?”
흑낙이 피가 잔뜩 묻은 갈고리를 들고 음흉하게 웃었다.
“철랑방의 소방주, 흑낙. 나만 보면 피해 다니던 버러지가 아닌가.”
운청휘는 흑낙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 애송이 새끼가. 죽고 싶으냐!”
운청휘의 담담한 조롱에 흑낙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네놈도 가죽을 벗겨주마!”
흑낙이 갈고리를 휘두르며 운청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늘, 철랑방은 천우성에서 사라진다. 우선 네놈부터!”
운청휘는 단번에 흑낙의 목을 움켜쥐었다. 벌레를 잡듯 간단한 움직임이었다. 얼떨결에 목을 내준 흑낙이 눈을 부릅떴다.
“윽……!”
흑낙의 입에서는 꺽꺽대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운청휘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목이 단단히 잡혀 숨을 내쉬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는 사이, 운청휘가 흑낙의 손에서 갈고리를 낚아채 그의 등에 박아 넣었다.
찌지직…….
흑낙이 들으며 즐거워했던 소리였다.
운씨세가 사람들에게 했던 일을, 이제는 자신이 당하고 있었다. 흑낙의 발밑으로 선혈이 후두둑 흩뿌려졌다.
“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운청휘는 무표정한 얼굴로 갈고리를 휘둘렀다.
쫘아악!
피가 흩뿌려지며 살덩어리가 뜯겨 나왔다. 보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우웩……!”
“우웩…… 켁……!”
결국 참지 못한 이들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주변이 보이지 않는 듯, 그저 갈고리를 휘두르는 속도를 높였다.
쫘악, 쫙!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갈고리는 흑낙을 살아 있는 고깃덩어리나 다름없는 모양새로 만들어버렸다. 전신에서 흘러내린 피가 흑낙의 발밑에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네가 한 일의 반도 하지 않았건만, 내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구나!”
운청휘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어찌나 짙은지, 주위의 사람들은 피부가 절로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운청휘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열씩, 천 리를 가는 동안 멈추지 않는 복수였다.
“그러니, 네놈을 쉽게 죽이지는 않으마!”
서릿발 같은 말과 함께, 흑낙의 몸에 갈고리를 박아 넣은 운청휘는 그대로 흑낙을 옆으로 던져 버렸다.
펑!
갈고리의 한쪽 끝이 건물 벽에 박히며, 흑낙이 푸줏간의 고기처럼 내걸렸다.
“아아악……!”
대부분은 이쯤에서 고통으로 정신을 잃을 터였다. 그러나 운청휘는 흑낙에게 영력을 불어 넣어 그의 정신을 유지해 두었다. 덕분에 흑낙의 입에서는 멈추지 않는 비명만이 흘러나왔다.
“저놈은 계속 지켜보도록!”
운청휘가 함께 온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철랑방주 흑괴의 감시를 맡긴 운청휘는 곧바로 철랑방의 무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성경 6단계의 무인들이 천여 명에 달했지만, 누구도 운청휘를 당해내지 못했다.
그저 비명만이 난무했다.
고함을 지르고 성을 내는 것만이 분노가 아니었다. 지금의 운청휘처럼, 마음속에서는 용암 같은 분노가 끓어올라도 얼굴은 시리도록 차가울 수 있었다.
선제가 된 후로, 누군가 화를 돋우면 피로써 달랜 운청휘였다.
쾅! 쾅! 쾅!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가죽 공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운청휘가 가는 길을 피와 살점으로 물들였다.
일 다경 후, 백여 명의 철랑방 무인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반경 수백 장에 핏빛 안개가 자욱했다.
운청휘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하나의 주검을 만들어 냈다.
남은 구백여 명의 철랑방 정예들은 대항할 엄두는커녕, 운청휘가 다가올 때마다 덜덜 떨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역시, 운씨세가의 운청휘……!”
“믿을 수가 없어. 온 지 일각도 안 되었는데, 백여 명이 죽다니……!”
“철랑방은 모두 시산혈해(屍山血海)에서 기어 나온 놈들이야. 보통 사람은 그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데……. 혼자서 저놈들을 이만큼이나 죽였어……!”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운청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속도는 빨라지지도, 느려지지도 않고 그저 일정했다.
난무하는 비명과 피가 없었더라면, 그가 가볍게 산보를 하는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조급함 없이, 한 번에 하나의 목숨을 거두고 있었다.
운씨세가의 사람들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떠오른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특히 흑낙에게 당했던 열 명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운청휘는 그들을 위로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들에게 지금의 복수보다 더한 위로는 없었다.
“야옹…….”
모두의 시선이 운청휘를 향했지만, 정작 그의 어깨에 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고양이를 눈치 채지 못했다.
기령은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꾹 참고 있었다. 자신도 날뛰고 싶었지만, 운청휘의 명령이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평소라면 이렇게 고분고분하게 말을 들을 기령이 아니다.
진즉에 뛰쳐나가 철랑방의 무인들을 물어뜯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운청휘에게서 전해지는 분노가, 기령을 움츠러들게 했다.
세가는 멸문당할 뻔했고, 세가의 사람들은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폭풍 전의 고요가 이러할까.
이미 폭발 직전의 선제가 얼마나 두려운지 겪어 본 기령이다. 녀석은 그저 얌전히 웅크려 앉았다.
기령과 마찬가지로, 얌전히 할 일을 하는 이가 있었다.
운청휘의 요구대로 철랑방주 흑괴를 감시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운청휘의 말이 떨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오직 흑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먹색의 긴 활에 걸린 화살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지만, 기이하게도 흑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구도 흑괴의 등을 축축하게 적신 식은땀을 알지 못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인의 활이 주는 압박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었다. 마치 영혼이 속박당한 듯 호흡마저 버거운 상태였다.
***
이 향연의 주인공은 운청휘뿐이다. 철랑방의 사람들은 조연에 불과했다.
그들에게도 차이가 있다면, 어떤 자는 얼굴을 보이자마자 고기 조각이 되었고 어떤 자는 조금 더 도망쳤다는 점이다.
시체가 늘어날수록 운씨세가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발 디딜 틈 없이 쌓이는 시체와 고이는 피 웅덩이로 인해 거리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죽은 이들, 곧 죽을 이들 사이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이는 철랑방주 흑괴였다.
정예로 키워낸 수하들은 저항 한 번 못해보고 죽어 나가고, 아들은 갈고리에 꿰인 채 건물에 매달려 비명만 지르고 있다.
“운청휘……! 네놈, 네놈만큼은 시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 주마!”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흑괴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활은 여전히 흑괴에게 겨눠진 채, 그의 움직임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었다.
한 식경이 흐르고, 서 있는 철랑방 사람은 흑괴만이 남았다.
철랑방의 무인들은 운청휘의 손을 피하지 못했고, 흑낙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다.
갈고리에 걸린 그의 얼굴이 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단숨에 천여 명을 몰살했지만, 운청휘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는 가볍게 산보나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걸음을 멈추고 드디어 흑괴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제 너만 남았군.”
평온하게 말한 운청휘가 흑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운청휘와 함께 온 여인도 운청휘가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도 평온한 모습에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단숨에 천여 명을 죽였다는 것은, 단순히 무위의 고강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한 수를 죽인다면, 평범한 무인은 이성이 마비되기에 십상이었다.
심성이 강하지 못한 이는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운청휘는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은 듯, 침착함과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놀란 것도 잠시, 여인은 감정을 갈무리하며 활을 거두었다.
죽여야 할 자들은 모두 시체가 되었다. 지금이라면 운청휘는 여유롭게 흑괴를 상대할 수 있었다.
“이놈! 죽여주마!”
여인이 활을 거두자, 동시에 흑괴의 몸을 내리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흑괴는 사납게 울부짖으며 장검을 들고 운청휘에게 달려들었다.
“안정되지 않은 마기로군.”
운청휘의 눈에는 흑괴의 수가 뻔했다. 그는 음혈검법을 펼칠 작정이었다.
그러나 운청휘는 여유롭게 흑괴를 바라보았다. 선제 시절, 대마도들과도 전투를 벌였다. 그들과 비교하면 흑괴는 달빛 앞의 반딧불이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신식이 없어도 흑괴에게서는 무수한 빈틈이 보였으니, 운청휘가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우우웅!
그때, 등 뒤에서 참천신검의 검집이 몸을 떨었다. 흑괴의 손에 들려 있는 왕급상품의 장검을 느낀 모양이다.
검집이 원하는 것은 명백했다. 운청휘는 망설임 없이 흑괴의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하하! 이 자식, 죽어라!”
흑괴의 눈에는 운청휘가 제 발로 묫자리를 찾아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음혈검법의 극치를 펼쳐내었다.
캉캉캉……!
뜨거운 기운이 훅 끼치며, 허공에 불꽃이 튀고 스산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 광경을 마주한 이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흑괴는 처음부터 살초(殺招)를 펼치고 있었다.
“운청휘가 너무 급했어!”
“확실히 운청휘는 강해. 철랑방의 정예 천여 명도 그의 앞에서는 손 한번 못 썼으니까……. 하지만 흑괴는 방주잖아!”
“그러게. 월경 2단계의 고수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저 검은 왕급상품의 보검이야!”
“운청휘가 와서 판이 바뀔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승자는 흑괴가 되겠어!”
이제 사람들은 흑괴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모두 경악하며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칵!
흑괴의 장검이 운청휘의 등에 매달린 검집에 꽂혔다.
카가각…….
단 두 명만이, 검집 안에서 철이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운청휘, 그리고 함께 온 여인이었다.
“……탐식(吞噬) 법보. 역시 평범한 검집이 아니었어.”
여인은 운청휘의 검집이 자신의 활과 같은 절세신병임을 확신했다.
“이놈! 검을 내놓거라!”
졸지에 맨손이 된 흑괴가 운청휘를 향해 덤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