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운청휘는 공격을 막는 대신 뒤로 몇 장을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눈앞의 흑괴보다는, 그의 검을 삼킨 검집이 더 중요했다.
운청휘는 검집의 상태를 살폈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자, 검집에 꽂혀 있던 장검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우웅-
다시 한 번, 검집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운청휘만이 들을 수 있는 진동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황급 법보를 탐식하면 검의 행방을 알 수 있느냐? 알겠다, 되도록 빨리 황급 법보를 탐식하게 해주마!”
검집과의 대화를 마친 운청휘가 다시 흑괴를 돌아보았다.
“어딜 도망가는 것이냐! 내 부하를, 내 아들을 죽이고 어딜! 네놈의 운씨세가도 성할 것 같으냐! 이 몸의 부하들이 운씨세가 놈들 천여 명을 죽였다! 분하지도 않느냐? 그러니 어서 덤벼라!”
운청휘가 자신과 정면으로 붙기를 꺼린다고 여긴 흑괴가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그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 수 없지만, 효과는 있었다.
운청휘에게서 더욱더 짙어진 살기가 흘러나왔다.
“너는 네 아들보다 더 비참하게 죽여주마!”
살기를 폭발시키며, 운청휘의 중권이 허공을 갈랐다.
지극히 평범한 중권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생각할 터였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 중권이 담고 있는 힘을 알아보았다.
운청휘와 함께 나타난 여인은, 그 안에 담긴 파죽지세의 위력을 알아보고 눈을 감았다.
“하하하. 누가 죽는지 보자꾸나!”
흑괴는 그 일격에 담긴 힘을 알지 못했다. 그는 드디어 운청휘와 맞붙는다는 흥분에 들떠, 정면으로 정권을 받아내었다.
콰르릉!
거대한 바위가 서로 부딪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사방을 뒤흔들었다. 한때는 흑괴였던 살 조각과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주위는 고요해졌다.
방금 죽은 흑괴까지 더하면, 이 전쟁에서 철랑방의 무인 모두가 단 한 명에게 죽었다.
구경꾼들은 물론이고, 운씨세가의 사람들도 놀라움과 경외심이 어린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철랑방. 천우성의 삼대 세력 중 가장 크다고 알려진 세력. 그 세력가가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윙윙윙……!
그때, 운청휘의 등 뒤에서 검집이 다시 진동했다.
운청휘는 알아들었다는 듯 걸음을 옮겨 태상장로 근처에 박혀 있던 검을 뽑아내 검집에 꽂아넣었다.
잠시 후, 왕급상품의 장검 하나가 철가루로 변했다.
“마무리된 것 같으니까, 난 이만 돌아가겠어.”
상황을 지켜보던 여인이 작별을 고했다.
그녀는 운청휘의 도움을 받아 체내의 극독인 한독을 3개월간 억누를 수 있게 되었다.
그 대가로 운청휘를 도운 터였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저었다.
“귀찮은 벌레들의 청소가 남았어. 만약을 대비해, 네가 도와줘야겠다.”
원래 운청휘는 임위와 그의 배후 세력을 노리고 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하게 철랑방이 움직였던 터였다
“미안하다. 내가 늦어 욕보이게 했군.”
운청휘는 고문을 당했던 열 명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사과했다.
“괘념치 마십시오. 소가주님께서 철랑방을 멸문시키셨으니, 저희는 이미 큰 위안을 얻었습니다!”
“맞습니다. 소가주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운씨세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게다가, 복수도 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걱정 말거라. 너희들의 피부도 모두 재생시켜 줄 테니.”
운청휘는 말을 하며 품에서 단약 열 개를 꺼내 그들에게 넘겼다.
“이 단약이 고통을 줄여줄 테니, 복용하고 기다리도록. 남은 쓰레기들을 모두 치우면, 피부를 재생시켜 주도록 하지.”
운청휘는 그들이 단약을 먹는 것을 확인하고 발길을 옮겨 백부와 태상장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백부님, 태상장로님!”
운청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청휘야, 다행히 늦지 않았구나.”
“청휘 이 녀석아. 조금만 늦었다면 이 늙은이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 할 뻔했어!”
백부와 태상장로가 아직 놀란 가슴을 달래며 말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태상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직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해야겠구나.”
이제부터?
운청휘는 생각하지 않아도 태상장로가 가리키는 것이 임위와 그의 뒤에 있는 자들임을 알고 있었다.
“임씨세가는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철랑방의 실력으로는 왕급상품의 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운씨세가에도 왕급상품의 검은 없는 걸로 기억하는데……. 어디서 난 것입니까?”
“그건 내가 천랑방의 소방주 흑낙에게서 뺏은 것이다. 흑괴가 가진 것은…… 임위가 주었다더구나. 그리고 청휘야! 임위는 상관세가의 사위가 되었고, 천원학관의 내원 제자에 이어 부원장의 직속 제자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임위도 마도에 입문한 모양이야.”
태상장로의 표정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흑괴의 마도 검법도 임위가 주었더구나. 본래 흑괴의 무위는 월경 1단계인데, 임위가 뭔가 손을 썼는지 며칠 사이에 2단계가 되어 있었느니라.”
태상장로의 설명에 운청휘는 짧은 대답만을 남겼다.
그 담담한 반응으로 숨이 넘어갈 듯한 태상장로였다. 운청휘가 경악을 금치 못해 안색이 어두워질 줄 알았건만, ‘예’라는 대답뿐이라니?
“이 녀석아, 내 말을 듣고도 임위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냐?”
태상장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렵다라…… 그럴지도 모릅니다.”
운청휘가 낮게 읊조렸다.
운청휘가 흑괴를 상대할 때 그는 첫눈에 그가 마공을 수련했음을 알아보았다. 다만 흑괴가 수련한 마공은 운청휘의 눈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흑괴의 무위 또한 편법을 통해 끌어 올린 것을 알아보았다. 심지어 무슨 방법을 썼는지도 알 수 있었다.
“변형된 도심종마대법이군. 진정한 도심종마대법에는 억만분의 일도 못 미치지만……. 천성대륙이 점점 흥미로워지는 건, 인정해야겠군.”
운청휘가 눈을 빛냈다.
선계에서 돌아왔을 당시, 운청휘의 눈에 비친 천성대륙은 농촌이나 다름없었다.
번성한 성도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는 우월감에 잠겨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이 세계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선계에서 3천 년을 지낸 운청휘에게 천성대륙은 어린 시절의 고향에 불과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운청휘의 생각은 달라졌다. 그저 평범해 보였던 이 세계는 신비로운 색채로 반짝이고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속속들이 고개를 내밀곤 했다.
천화가 탄생하고, 서령쥐를 잉태한 세계다. 그리고…….
운청휘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천성대륙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여러 번의 놀라움이 지나간 후였기에, 변형된 도심종마대법을 마주했을 때 운청휘는 놀라지 않았다. 만약 진정한 도심종마대법이었다면 조금은 설렜을 테지만.
“백부님, 몽 아저씨와 형님은 어디 있습니까?”
운몽과 운현이 없음을 깨달은 운청휘가 운한을 돌아보았다.
“운몽은 내상이 심해 상처를 다스리라고 해두었다.”
운한의 얼굴에 슬픔이 피어올랐다.
“철랑방과의 싸움에서 천여 명의 세가 사람들이 죽었어. 운몽도 그때 상처를 입은 것이고.”
운청휘의 눈에 비통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선제인 동시에 운씨세가의 사람이다. 세가 사람들의 죽음이 그에게도 슬픔으로 다가왔다.
“몽 아저씨는 상처 때문이라면, 그럼 형은 어떻게 된 겁니까?”
운한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불길한 예감이 운청휘의 등줄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백부님, 설마 제가 생각하는…… 맞습니까?”
재차 묻는 운청휘의 눈이 한껏 가늘어져 있었다.
운한과 태상장로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만약 운현이 영해로도 모자라 혈맥과 오장육부가 무너져 내린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풍이 몰아칠 터였다.
운한도 태상장로도, 본가와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본가는 이곳 운씨세가와 비교하면 세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컸기에, 충돌한다면 멸문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운청휘의 주의를 돌려야 했다.
운한과 태상장로가 화제를 돌리려 할 때, 멀리서부터 진동이 전해져 왔다.
수백 필의 말이 내달리며 지축을 흔드는 진동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운씨세가의 운청휘, 거기 있느냐!”
3리도 넘는 곳에서 기세가 남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시에 운청휘를 포함한 모든 이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임씨세가!”
“임씨세가도 운씨세가와 싸우려는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곧바로 운청휘를 찾는 걸 보면.”
“크큭, 만약 그렇다면 또 새로운 볼거리가 생기겠군!”
수십 만의 사람들이 의견이 분분할 때, 수백의 혈한마(血鬃馬)를 탄 대오가 운씨세가의 앞에 도착했다.
선두에 선 자는 40세가 넘어 보이는 중년 호위로, 한 달 전 운청휘와 마주한 적이 있었다.
“운청휘. 네놈이 우리 임씨세가 대장로의 아들 임비화를 죽였을 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한 달 뒤면 우리 소가주님이 돌아오신다고. ……소가주님이 돌아오셨다. 이건 그분이 전하는 전서다.”
혈한마에서 내린 중년 호위는 손에 든 금색의 상자를 열어 운청휘에게 내밀었다.
금색 글귀가 모두의 눈앞에 드러났다.
[천우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일전을 기다리지.
-임위]
금색으로 된 글자는 그 자태가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네가 일전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우려하신 소가주님께서, 이 말을 전하라 하셨다.”
중년 호위는 운청휘가 반응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철랑방의 선전포고와 운씨세가의 사람 천여 명을 죽인 일은, 모두 소가주님이 시킨 일이다!”
“그건 이미 알고 있고. 다른 말은 없느냐?”
운청휘는 평온하게 물었다. 새삼 놀라운 것도 없었다. 임위가 흑괴의 무위를 끌어올린 것을 안 순간부터, 운청휘는 흑괴가 통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운현은 정혼자를 건드린 적 없다. 실은 소가주님과 부정을 저지르는 광경을 그놈이 우연히 본 것이라면 어쩔 테냐!”
“목소리가 작다. 다시 한 번, 크게 말해 보거라.”
운청휘가 별안간 귀를 후비며 말했다.
“뭐냐? 우리 소가주님과의 일전이 두려워 들리지 않는 척하느냐?”
중년호위는 경멸하듯 운청휘를 힐끗 쳐다보고는 영력을 일으켜 모두가 들리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