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41화 (41/430)

제41화

“반년 전, 운현이 정혼자를 덮치려 했던 사건은 소가주님과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들켜 누명을 씌운 것이다! 운현의 무위와 팔도 소가주님이 한 일이지! 어쩌겠느냐? 운청휘, 이 결투로 형의 복수를 하겠느냐?”

중년 호위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임씨세가의 호위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다니!”

“반년 전의 일이 누명이라고?”

“게다가 임위와 정혼자가 부정을 저지르는 걸 발견했었단 거야?”

“너무하구만! 누명을 씌운 것도 모자라 무위를 폐하고 팔을 자르다니!”

“흥! 임위, 이 파렴치한 놈! 만약 저자가 말하지 않았다면 운현은 평생 낙인을 달고 살았겠어.”

운청휘는 평온한 얼굴로 중년 호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알고 있다. 굳이 말을 반복하게 한 것은, 귀가 들리지 않아서도 아니고 네 소가주가 무서워서도 아니다. 그저 네놈의 입으로 내 형의 결백을 증명하려 함이지.”

운청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의도대로 따라주었으니, 감사를 표하지. 시체는 남겨주마!”

번개 같은 손놀림이 중년 호위의 손에서 전서를 빼앗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운청휘는 곧바로 누구도 알아챌 수 없는 속도로 중년 호위의 가슴에 장법을 내리쳤다.

“임위, 그놈은 변함없이 어리석구나. 찾아오지 않아도 이 몸이 임씨세가에 가지 않겠느냐. 3년이 지났다고 내가 변할 줄 알았느냐? 형의 무위를 폐하고 팔을 자른 것도 모자라 누명을 씌운 것만으로도 그놈은 골백번 죽어 마땅하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이에게, 죽는 것보다 잔인한 누명을 씌우지 않았느냐.”

운청휘가 말을 할 때, 그의 장법에 맞은 중년 호위는 심장이 산산조각이 나 죽은 뒤였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건, 그 후에도 내 세가의 사람들이 임위 때문에 죽었다.”

임위는 전서에 장소만을 적어 두었다.

시간을 적는 걸 잊었거나, 결투가 바로 오늘이라는 뜻이다. 임위의 신분과 성격으로 보아 전자는 불가능한 일이니, 임위는 오늘 운청휘와 일전을 벌일 작정인 듯했다.

한 식경 뒤, 운청휘는 천우성의 성루(城樓)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서기 좋아하는 임위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했으니, 장소는 이곳이 분명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곳에서 운청휘를 이기고 싶어 하는 그의 속내가 고스란히 내보였다.

운청휘가 도착하고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성문 앞은 구경을 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천우성에 사는 이들, 천우성 밖에 사는 이들도 모두 일대의 결전을 보러 온 터였다.

임위와 그의 호위 세력이 모두 도착했을 때는, 천우성 주변은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운청휘, 나의 옛 적수여, 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그 말과 함께, 성루 아래에서 임위가 벽면을 밟고 날아 올라왔다.

옛 적수?

운청휘는 간신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3년 전에는 자신의 일초도 못 받아내던 자가, 이제는 적수 운운하다니…….

그러나 나서기 좋아하는 임위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등장이 놀랍지도 않았다.

“대체 3년 동안 뭘 하고 있었던 거냐? 반달 전에 낭야산에 사람을 보내 108개의 도적 소굴을 모두 뒤졌다. 하지만 네 흔적은 어디에도 없더군.”

임위는 면사가 드리워진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다만 운청휘의 시선은 이미 면사를 뚫고 검은 무늬가 가득한 임위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과연, 주류에서 파생한 ‘도심종마대법’이군. 다만 저놈에게 심긴 것은 겨우 3급 마종이로구나.’

운청휘는 첫눈에 임위의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았으나, 알 턱이 없는 임위였다.

“꿀 먹은 벙어리가 따로 없군. 내가 낭야산까지 손을 뻗은 게 놀라운가? 크큭,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지금의 내 무위나 신분은 예전과 다르다. 네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경지에 있다. 신분? 나는 황성 사대 가문 중 하나인 상관세가의 사위이자, 천원학관의 내원 제자이며 부원장님의 직전 제자다. ……아! 예외가 없다면, 훗날 천원학관의 부원장도 되겠군.”

별안간 임위가 말을 멈추고 성루 아래를 가리켰다. 성문 앞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찬 것과 달리, 그곳에는 40~50명의 사람만이 모여 있었다.

옷차림을 보니 두 곳에서 온 이들인 듯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임위가 자신들을 가리키자 모두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는 점이다.

“저들이 보이느냐?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에서 나온 자들이다. 모두 월경 이상의 무인들이지. 두 세력 다 월경 4단계의 고수를 셋씩 보유했다. 상관세가의 셋은 세가의 무사, 천원학관의 셋은 내원의 사람들로 모두 내 수족이나 다름없다. 내 명이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이들이다. ……알겠느냐? 운씨세가는 내 말 한마디면 일 다경만에 천우성에서 지워질 수 있다. 크큭. 놀라긴 이르지. 더 놀라운 게 아직 남았는데 말이다.”

가벼운 말투였으나, 기이할 정도로 음습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마치 독사가 송곳니를 감추고 얌전히 지켜보는 듯했다.

마지막 말을 할 때의 임위는 정말 독사인 양 혀를 날름거렸다.

“헛소리는 끝났나? 그럼 더 참을 것도 없겠군!”

운청휘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그리 흘렀건만, 임위의 버릇은 여전했다.

사람이라면 때때로 으스댈 수 있었다. 가끔은 운청휘도 그랬고, 적지 않은 선인들도 임위보다 수백 배는 더 으스대었다.

다만, 본연의 실력이 있어야 으스대는 것도 들어줄 만한 일이다.

운청휘의 손에서 허공마저 가르는 조(爪)법이 뻗어나와 삼십여 장 밖에 있는 임위에게 향했다.

“성급하군. 묻지 않고 덤벼들다니. 정 그렇다면 내가 알려주마.”

임위는 여기까지 말하고 조롱하듯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나는 월경 4단계다!”

임위의 목소리가 성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동시에, 임위의 신형이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쾅쾅쾅……!

격렬하게 싸우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래에서 둘을 지켜보던 수백만의 사람들은 교전이 시작되고 나서야 경악하며 웅성거렸다.

“임…… 임위가 월경 4단계의 고수라고?”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임위의 신분으로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잖아!”

“그…… 그럼 운청휘는 죽은 거나 다름없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무리 운청휘가 뛰어나도 월경 4단계를 상대로 어떻게 이겨!”

“재능이 아깝군, 이제 겨우 열여덟에 월경 2단계의 흑괴도 죽였는데…… 성장할 시간만 충분했다면 언젠가는 천원왕조 전체를 뒤흔들 고수가 될 텐데.”

“크큭. 이 세상은 원래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낮은 무위로 임위를 건드렸으니 자업자득이지.”

“운청휘의 뒤에 있는 운씨세가도 겨우 멸문지화를 면하나 했는데…….”

제각기 열변을 토하는 와중에도, 운청휘와 임위는 한데 뒤엉켜 맞붙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불꽃이 튀고, 허공에서 뭔가가 부딪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따금 빗나간 공격이 성벽에 내리꽂혔다.

콰르릉-

부서진 돌덩이들이 성벽을 타고 굴러가 바닥에 떨어졌다.

운씨세가 사람들은 어두운 눈빛으로 성루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태상장로님, 어떻습니까? 청휘가 우세합니까?”

운한이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태상장로에게 물었다.

“노부의 안력으로도 따라가기 힘드구려. 그림자도 정확히 보이지 않으니 누가 우세인지도 모르겠소.”

태상장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운한과는 달리 임위가 데려온 자들 중 몇몇은 정신을 집중하여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운청휘라는 놈, 실력은 확실히 우리의 예상 밖이구나.”

“멍청하게 도련님만 건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상관세가에서 거뒀을지도.”

“쯧쯧, 우리도 저놈 실력이 아까워, 임위보다 못하지만 천원학관의 내원 제자가 될 자격은 충분한데 말이야.”

“흥! 아쉬울 것도 없어! 임위를 건드렸으니 죽음만 남은 거지!”

“진짜 아쉬운 건 임씨세가다. 운청휘 같은 놈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멸문지화는 없었을 텐데.”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의 무인들은 대체로 운청휘를 아쉬워했지만, 몇몇은 잘됐다는 투였다.

그들은 운청휘와 운씨세가를 적대시하고 있었다.

***

면사 너머로 임위가 한껏 비웃음을 지었다.

운청휘의 정확한 무위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싸움을 이어가며 월경 2단계에서 3단계 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임위가 보기에 운청휘의 무위는 월경 2단계의 정점에 있어 3단계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자신을 훌쩍 뛰어넘는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한 운청휘지만, 자신과 달리 기연을 얻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상관세가의 사위가 된 순간부터, 임위와 운청휘가 사는 세상이 달라졌다.

천원학관 부원장의 직전 제자가 된 것 또한 기연 중의 기연이다.

스승을 떠올리면 감격스럽기도 하고 밉기도 한 임위였다.

스승이 자신에게 마종을 심어주어 단기간에 무위가 오르고, 자신의 재능을 두 배나 성장시켜주었으니까.

동시에, 스승이 미워지는 것도 마종의 영향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

동승주루 3층.

흑의 노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공손한 태도로 화려한 복장의 청년 앞에 멈춰 섰다.

“도련님, 운청휘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철랑방을 멸해 버렸습니다.”

“오호?”

화려한 복장의 청년이 흥미가 돋는다는 듯 물었다.

“철랑방의 방주 흑괴는 월경 2단계의 무위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흑의 노인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내 무시가 될 자격이 충분하구나.”

청년의 눈에 흥분이 스쳤다.

“자격은 충분합니다만…… 도련님께서 진정으로 그놈을 무시로 들이고 싶으시다면 아무래도 직접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흑의 노인이 다시 말했다.

“응? 그냥 무시를 하나 거두는 것뿐인데 내가 직접 가야 하는 거냐?”

청년의 안색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빛을 띠었다.

“네가 직접 전달하거라. 고분고분하게 나오지 않으면 천우성의 운씨세가를 지워버리겠다고. 그래도 고집을 부리거든, 그놈도 죽여 버려라!”

“도련님,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곁에 서 있던 다른 노인이 급하게 나서며 말리기 시작했다.

“도련님, 운청휘 쪽은 이 늙은이에게 맡겨 주십시오. 이 늙은이가 책임지고 녀석을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닥쳐라!”

청년이 노인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소리쳤다.

“이놈, 건방지구나! 방계 따위가 뭐라고! 지난번에도 운현인지 뭔지 하는 놈을 본 공자의 처소에 들이지 않았느냐! 본 공자의 위치가 그리도 낮아 보이더냐!”

“제가 대신 용서를 빌겠습니다. 운현, 그 녀석은 이 늙은이가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을 테니, 부디…….”

청년의 발길질에 노인은 더욱더 허리를 굽혔지만, 소매 안에 감춘 두 주먹에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배어났다.

“버릇을 고쳐? 그럴 기회가 있기를 빌어야 할 거다! 만약 운청휘가 본 공자의 호의를 거절한다면 당장에 천우성의 운씨세가는 세상에서 사라질 테니까!”

청년의 눈에 짙은 살기가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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