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운려, 네놈은 왜 아직도 있느냐!”
“도련님. 지금의 상황은 이 늙은이가 나서기 어렵습니다. 운청휘는 지금 임위와 결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임위?”
청년의 얼굴에서 노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임위라면 네 신분으로 곤란하겠군. 좋다, 천우성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났는데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겠지. 이 기회에 임위의 실력도 봐둬야겠다.”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최근 몇 달간, 황성에서도 임위의 소문이 자자했다.
상관세가의 사위. 천원학관 부원장의 직전 제자.
어느 쪽이든 가지기 힘든 신분이었으나, 임위는 둘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다만 청년의 표정은 태연했다. 임위가 어떤 신분이든, 청년에겐 거리낄 것이 없어 보였다.
***
공중에서 두 사람의 잔상이 번쩍이며 부딪쳤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일 식경째 결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운청휘와 임위의 속도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때때로 빗나간 공격이 성벽을 부수고 굉음을 일으켰다.
토대만 남은 성벽에서 돌가루들이 부스스 흩날렸다.
“운청휘도 만만치 않아. 임위를 상대로 이렇게나 버틸 수 있다니.”
“그건 그렇군. 기껏해야 일 다경도 넘기지 못할 줄 알았는데.”
“흥! 네놈들 주제에 감히 도련님의 결투를 두고 떠드는 것이냐!”
지켜보는 이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주고받을 때, 별안간 월경 고수의 위압감이 그들을 덮쳐 눌렀다.
반경 삼백 장 내의 사람들이 황급히 입을 다물고 시선을 떨궜다.
“운청휘와 도련님이 실력이 비슷해서 전투가 이어지는 줄 아느냐? 도련님은 쥐잡이 놀이를 하고 계신 거다. 쥐가 오래 버틸수록 재미있지 않겠느냐? 흥이 가시면, 도련님의 공격 세 번으로 운청휘도 끝이다!”
“세 번? 상관세가의 무인께서 농담이 지나치군요. 임위가 전력을 다하면 한 번의 공격만으로 운청휘는 죽은 목숨입니다.”
천원학관의 교관 한 명이 끼어들며 아첨했다.
그들의 대화는 고스란히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놀란 이들이 제각기 떠들어 대자 순식간에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뭐? 임위가 마음만 먹으면 세 번의 공격만으로 운청휘를 꺾는다고?”
“그래, 상관세가가 한 말이야. 황성의 상관세가인데 빈말이 아니겠지.”
“그것뿐만이 아니야. 천원학관의 고수가 말하길 임위가 전력을 다하면 세 번도 필요 없이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운청휘를 죽일 수 있다고 했어.”
모두가 임위의 실력에 감탄하며 기대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성루 위에서 임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망이구나, 운청휘! 겨우 3할의 힘으로 충분하니, 이 놀이는 그만둬야겠어! 지금부터 전력을 다하겠다. 앞으로 세 번의 공격을 받아낸다면…… 살려 주지!
임위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세가 뻗어 나오며, 운청휘를 뒤로 날려 버렸다.
그의 발이 미처 땅에 닿기도 전에, 임위는 곧바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하늘을 뒤덮고 땅을 흔들 법한 기세가 휘몰아쳤다.
치지직…….
바위도 단숨에 가루로 만들 듯한 공격이었으나, 운청휘는 맨손으로 공격을 받아냈다. 반동으로 또다시 수십여 장 튕겨 나갔지만…….
땅에 내려선 운청휘의 발은 성벽에 뿌리를 내리듯이 깊이 박혔다.
“응? 받았어?”
다소 놀란 듯 임위는 수십여 장 밖에 있는 운청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임위의 반응에, 사람들은 제각기 의혹을 제기했다.
“임위의 방금 그 공격, 혹시 우리가 모르는 무슨 오묘함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경지였다.
이 순간,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의 무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더 이상 그들에게서 운청휘를 향한 멸시를 찾을 수 없었다.
“태상장로님,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겁니까?”
운한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세한 건 노부도 모르겠구려. 필경 임위의 무위가 노부보다 두 단계나 높으니…….”
태상장로는 고개를 젓다가 다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임위가 놀란 것을 보니, 방금의 일권이 저놈의 전력인 모양이오.”
다시 성루 위.
“그걸 받아낼 줄은 몰랐지만, 아주 좋아. 이제부턴 다를 거다. 각오는 했나?”
놀라긴 했으나, 임위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는 곧바로 다음 공격을 내질렀다.
뻗어나간 주먹이 운청휘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이전의 공격에 비하면 다소 단순한 일권이었으나,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의 무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드디어 진지해지셨군.”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내지른 주먹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터였다.
임위는 이전의 공격에 전력을 다했고, 이번의 공격에는 비장의 수를 추가했다.
“황급 권법. 비장의 기술 중 하나겠구나.”
운청휘는 가만히 서서 임위의 중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중권의 궤도가 똑똑히 보였다.
“쯧쯧, 세 번째는 필요도 없겠어.”
그러나 임위가 보기엔, 운청휘는 그저 놀라고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무리도 아니다. 이번 일권은 황급권법이니,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죽어라!”
임위의 목소리가 신호탄이 된 듯, 중권이 운청휘가 있는 곳에 내리꽂혔다.
콰르릉!
대지가 거세게 몸을 떨며 울었다. 구경하던 이들은 모두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아야 했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성루에는 삼 장 넓이의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구만 그래. 주먹 한 방으로 저런 공격을 해내다니!”
“월경 4단계의 고수라더니, 강해도 너무 강해! 저기는 성루잖아!”
“그러게 말일세. 저 성루는 검으로도 부수기 힘들 텐데……!”
“그럼, 운청휘는 죽은 건가?”
“쯧쯧, 시체라도 남으면 다행일세!”
“하긴, 성벽도 부쉈는데 몸뚱이는 말할 것도 없지!”
운씨세가의 사람들은 모두 구덩이가 생겨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소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임위가 쏟아 부은 공격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소가주. 무사하셔야 합니다!”
“청휘야……!”
“청휘야, 운씨세가의 존망은 너한테 달렸어. 제발 살아있어야 한다!”
운씨세가의 모두가 한마음으로 운청휘를 위해 기도했다.
성벽을 집어삼킬 듯이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서서히 가라앉고, 임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임위가 아닌, 그의 주변을 다급히 훑고 있었다. 마치 거기 꼭 있어야 할 뭔가를 찾는 듯이.
“운청휘가 보이지 않아.”
“죽었더라도 시체는 있어야 될 것 아니야?”
“시체마저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아무것도 없다. 수백만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게 임위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의 공격이라면 운청휘는 시체가 되었든, 숨만 붙어 있든 땅에 쓰러져 있어야 하지 않은가.
“……피한 거냐? 운청휘. 저번에는 받아내고, 이번에는 피했다 이거냐?”
임위의 목소리에서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임위가 바라보는 서남 방향에서, 운청휘의 붉은 장포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이따금 운청휘를 바라보며 우는 모습이 꼭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저놈의 마종, 아직도 숨어 있는 건가?”
운청휘는 귀찮음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야옹.”
“아직 완전히 나오지 않았구나. 세 번째 공격을 기다려야겠군.”
운청휘는 기령만이 들을 수 있게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옹야옹……!”
기령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운청휘를 바라보며 연신 울었다.
“그건 일단 마종을 손에 넣은 다음에…….”
운청휘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쯧. 절반씩 나누자꾸나. 괜한 다툼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도록.”
기령은 반박하려 했으나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자신과 운청휘는 앞으로도 함께 움직여야 했다. 무엇을 얻든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다면, 그들 사이에 균열이 생겨날 터였다.
***
마종을 받았을 때부터, 임위에게는 친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겨났다.
오직 자신과 스승만이 아는 마종의 존재.
그만큼 비밀스럽게 지켜왔으니, 지금 운청휘와 기령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면 임위는 피를 토할 만큼 분노했을지도 모른다.
“운청휘. 이번에는 피할 기회도 주지 않겠다. 절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임위가 찢어질 듯한 눈으로 기령과 대화하는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말로는 누군들 태산을 못 움직이겠나? 두 번의 초식을 펼쳤어도, 이 몸은 살아 있다. 옛 생각이 나지 않는가? 내게 맞고 복수를 다짐하곤 했지만 그다음에도 얼굴에 멍이 들어 있던 네 모습 말이다. 그러고 보니, 4~5년 전에도 변함없었군. 내게 전서를 보내고, 천우성의 젊은이들 앞에서 날 이기려 들지 않았느냐? 일초도 받아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군. 이제 말하지만, 그때의 일초는 2할의 힘만 들어간 것이었지.”
운청휘는 모두에게 들리게 큰 소리로 임위를 조롱했다.
과거까지 들먹여 그가 분노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끔. 그리하여 몸속에 있는 마종을 끌어낼 수 있도록.
신체의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마종은 배를 갈라 찾지 않는 한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시체를 가르는 일 따위를 할 운청휘가 아니다.
설령 찾아낸다고 해도 마종처럼 역겨운 것을 삼키려 들지도 않을 터였다.
그러니 임위를 자극해서 전력의 전력을 끌어낸다.
마종이 완전히 드러나면, 그때 기령이 놈의 몸에 있는 마종을 빼내는 게 운청휘의 계획이었다.
마종만 아니어도 임위를 이렇게 오랫동안 살려둘 생각은 없었다. 운씨세가 사람들의 죽음, 운현의 원한은 아직도 운청휘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임위의 몸속에 있는 3급 마종이 아직도 그의 목숨줄을 이어주고 있는 셈이다.
“아아악! 운청휘! 가루로 만들어 주마!”
부릅뜬 임위의 눈이 운청휘의 말에 더욱 커지며 핏줄이 터졌다.
붉게 물든 눈에서는 불꽃이 튀듯 살기가 넘실거렸다.
“황극권(皇極拳), 횡소천군(橫掃千軍)!”
악에 받친 임위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이윽고 그의 몸은 불타는 유성인 양 운청휘를 향해 내리꽂혔다.
쿵! 쿵! 쿵쿵……!
셀 수도 없는 중권이 하늘을 덮은 그물처럼 운청휘에게 펼쳐졌다.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경악하며 운청휘의 죽음을 예감했다. 임위의 실력을 잘 아는 상관세가와 천워학관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