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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46화 (46/430)

제46화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별안간 운청휘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짙고 차가운 살기가 폭발하며 그의 머리카락과 옷이 휘날렸다.

“왜 웃는 것이냐?”

갑작스러운 웃음에 운범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흘러나오는 살기를 알아채고 운범도 살기를 흘려보내며 물었다.

“네놈이 헛소리를 하니 웃을 수밖에 없구나. 감히 나 운청휘를 무시로 삼겠다 하였느냐? 본가의 가주가 말해도 입을 찢다 못해 세가를 지워버릴 터였다. 그런데 본가의 직계 자제 따위가 대수라고 지껄이더냐!”

선제가 되고 이렇게 모욕을 당한 일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무시라니. 하인이나 노예나 다름없는 일이라니!

운청휘의 눈에도 살기가 깃들었다.

“이, 방자한 놈!”

운범의 두 눈이 벌겋게 물들었다. 자신의 신분을 알고도 거절한 데다, 세가에 대한 모욕까지 퍼부었다.

황성 운씨세가의 직계 자제로 살아온 운범은 이런 모욕을 당해 본 적이 없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운범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운청휘 이놈! 누구도 나를 거역하지도, 모욕하지도 못했거늘! 죽여주마!”

운청휘를 거두겠다는 마음은 말끔히 사라지고, 운범의 머릿속에는 그와 세가를 지워버리겠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운범 도련님. 운청휘 저 애송이 놈이 날뛰는 것도 모자라 도련님께도 무례를 범했습니다!”

“저희 천원학관!”

“저희 상관세가!”

“도련님을 대신해 저놈을 죽여 도련님 세가의 기강을 돕겠습니다!”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의 사람들이 재빨리 입을 모았다.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기회나 다름없었다. 운범은 운청휘를 보호하려 했지만 운청휘는 거절했고, 그를 모욕했다. 그런데도 운범이 그를 무시로 삼으려 했을 땐,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청휘가 다시 기회를 만들어 주지 않았는가.

자신들이 나서지 않아도 운범이 운청휘를 죽이겠지만, 적어도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가득했다.

“비켜라! 하찮은 놈들이 감히 본 공자를 대신하려 해?”

운범이 상관세가와 천원세가를 보며 소리 질렀다.

“운려, 너도 저리 비켜라!”

운범이 눈을 부라리며 흑의 노인에게 말했다.

“운청휘 저놈은 본 공자가 직접 죽인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화가 풀릴 것 같으니까!”

운범이 말을 마치고 살기가 흐르는 눈으로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단번에 죽이지 않겠다. 네 형처럼 네놈도 불구로 만들어 주마.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만끽하게 해주겠다. 시체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공격을 준비하던 운청휘가 갑자기 멈춰서며 가늘어진 눈으로 운범을 노려보았다.

“본 공자가 네놈을 죽기 직전까지 고통을…….”

“그 전에!”

운청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운범의 말이 다시 끊겼다. 운청휘가 가로막지 않아도, 그의 살기에 눌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우…….”

운범이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을 들이켰다.

본가의 가주이자 그의 할아버지도 이런 살기를 내보낸 적이 없다.

운범이 살면서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 살기가, 운청휘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고작 방계의 살기 따위에……! 용서할 수 없구나, 절대로! 운청휘! 네놈도 운현처럼 전신의 혈맥과 오장육부를 부숴주마!”

슈슈슉-

영력의 줄기가 그물처럼 뻗어나 하늘을 뒤덮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피하지 않으며 언제 뽑았는지 모를 검집을 손에 쥐었다.

운청휘를 덮쳐오던 영력이 일 장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보이지 않는 힘이 운청휘를 감싸는 벽처럼 영력을 막아내고 있었다.

펑펑펑!

허공에 부딪힌 영력이 폭발하며 굉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검집을 손에 쥔 운청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살기에 잠식된 그의 몸이 금방이라도 이 자리의 모두를 베어 넘길 듯했고, 가늘게 뜬 눈은 선을 이루었다.

“……무수한 세월을 살며, 본제가 아끼는 사람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만 남았지. 그리고 운현이 바로 본제가 가장 아끼는 이들 중 하나다. 네놈은 운현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 본제를 자극했으니, 네놈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군!”

낮은 목소리였지만 자리에 있던 모두의 고막을 파고드는 울림이었다.

그 순간, 운청휘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은 영혼을 강제로 뜯어내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봄날의 미풍처럼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느낌이었기에 그들은 잠시 멍해졌을 뿐, 곧 폭소하기 시작했다.

운범 또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뭐라고 했느냐? 본제? 무수한 세월? ……하하하! 운청휘, 네놈이야말로 헛소리를 하는구나! 그 말대로라면 네놈은 고대부터 살아온 초고수가 아니냐!”

운범은 아예 가슴을 치며 웃고 있었다. 주변이 비웃음으로 가득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자도 있었다.

운청휘가 쥔 검집이 가늘게 진동하며, 귀신이 우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붉은 기류가 검집에서 스멀스멀 일어나, 순식간에 반경 삼십여 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멎었다.

“아아아악……!”

수십 개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울려 퍼졌다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비명을 내질렀던 이들은 어느새 한 줌 먼지가 되어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상관세가의 세 무인과 천원학관의 교관 셋은 기류가 나타난 순간 전력으로 내달려 도망쳤지만, 몸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였다.

누군가가 왈칵 피를 토하는 중에, 상의가 부스러진 운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운려 또한 붉은 기류를 알아차렸지만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월경 6단계의 무인이 두려운 것이 어디 있을까. 운청휘의 실력을 얕보기도 했었다.

덕분에 그는 노쇠하고 마른 몸을 모두의 앞에 드러내고 말았다.

“이 애송이가 감히 노부를 능멸해……!”

운려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고함을 쳤다.

100세가 넘은 자신이 벌거벗은 몸뚱이를 내보이다니. 차라리 죽었더라면 덜 치욕스러웠을 터였다.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사람은 운범뿐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정면으로 기류를 맞아냈지만 그의 모습은 멀끔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운범은 품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깨진 옥패 조각이 딸려 나왔다.

운범이 열여덟이 되던 해, 그의 할아버지는 선물로 황급의 보호 옥패를 주었다.

지니고만 있어도 세 번의 위험을 피해갈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즉 운범에게는 세 개의 목숨이 더해진 셈인데, 그런 옥패가 고작 한 번의 공격으로 산산조각이 난 것이었다.

운범의 어두운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아니. 이 정도로 이성을 잃을 수는 없지! 저 검집. 방금의 공격은 분명 저 검집에서 나왔으니, 신병(神兵)이 분명하구나!”

운범의 눈이 탐욕으로 이글거렸다.

“저 검집만 있으면 옥패 따위는 필요 없다! 상관세가, 천원학관! 너희는 본 공자를 도와라! 나를 돕는다면, 이 운범이 너희의 생존을 보장하지!”

운범의 말에, 황급히 달아나려 했던 여섯 무인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게 정, 정말입니까?”

운범의 신분이라면, 천원학관의 부원장도 그의 말을 들어줄 터였다. 임위는 죽었지만, 그 하나로 황성 운씨세가 직계 자제에게 작은 빚을 지울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그들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

“본 공자의 말이 가볍더냐! 저놈을 잡기만 하면, 내 말을 지키겠다!”

운범이 말했다.

“좋습니다. 우리가 돕지요!”

여섯 개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로질러 운범의 뒤에 내려섰다.

“저놈이 가진 검집은 틀림없는 신병이다. 신병을 쓰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지. 본 공자가 보기에, 저놈의 무위는 월경 4단계에 못 미친다. 방금의 공격으로 모든 힘을 소진했을 터. 만약 힘이 남았더라도, 한 번의 공격이 한계다!”

대세가의 자제답게, 운범의 견식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상당한 추론을 마치고 남은 이들에게 지시하기 시작했다.

“모두 산개해 공격하라! 운려, 네가 정면을 맡도록! 너희 여섯은 측면으로 들어가라! 본 공자는 틈을 노리겠다!”

아공간 행낭에서 옷을 꺼내 입은 운려와 상관세가, 천원학관의 여섯 무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운려는 아예 월경 6단계의 기세를 전부 폭발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캉캉캉!

운청휘는 기류를 일으키는 대신, 검집을 검처럼 휘두르며 운려와 맞섰다.

무위로는 성경 8단계인 운청휘가 운려를 막아낼 수 없겠지만, 본연의 전투력과 검집의 도움으로 전투는 대등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운려가 쏟아 내는 공격을 운청휘가 막으면, 곧바로 틈을 노려 반격했다. 다시 운려가 공격을 막아내면 운청휘가 파고들고……. 나머지 사람들이 기습할 틈도 없이 공방이 오갔다.

운려를 상대하면서도, 운청휘의 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천성대륙에 돌아온 이후로 이렇게까지 살심이 드는 일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운현이 자리 잡고 있었다.

흉수산맥에서 운현의 팔을 재생시킬 단약을 찾아냈다.

운현의 무위를 단번에 높여 줄 단약도 준비했다. 계획대로라면, 운현은 몸과 무위를 되찾고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운현은 또다시 다치고 말았다. 전신의 혈맥과 오장육부가 허물어져, 걷기는커녕 일어날 수도 없는 신세가 되었다.

신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운청휘는 운현이 받을 심리적 고통이 걱정되었다. 그가 과연 현실을 다시 이겨내려 할까. 이미 한 번 무너진 운현이 이번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운청휘의 살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형님, 어떤 상처라도 제가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십시오! 제가 운범, 황성의 운씨세가 모두에게…… 형님이 받았던 고통 이상을 돌려드릴 테니!’

어느덧 운청휘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살기가 폭주하고 있었다. 손에 쥔 검집도 운청휘의 심경을 알아차린 듯 더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이냐, 이놈, 기세가 폭발하고 있어……!”

운청휘와 싸우던 운려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 순간, 운청휘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죽인다!

저절로 운려는 섬뜩함을 느꼈다.

분명 자신보다 무위가 낮은 운청휘건만, 지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월경 고수인 자신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무인의 대결에서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없다면, 승부를 가르는 것은 기세다.

지금, 운려는 운청휘에게 압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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