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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47화 (47/430)

제47화

운범이 조롱하듯 말했던 고대부터 존재한 고수가 정말 눈앞에 있는 듯했다.

‘……가만, 이놈. 지금까지 월경의 공격 수단을 쓰지 않았구나!’

계속해서 밀려나던 운려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눈을 번뜩였다. 그는 급히 몸을 물리며 수백 개의 영력 줄기를 쏟아 냈다.

운청휘는 검집을 들어 방패처럼 내밀었다.

펑펑펑……!

검집과 일 장의 거리를 두고, 운려가 쏘아낸 영력이 폭발했다. 무형의 기운이 운려의 공격을 차단하고 있었다.

공격을 막아낸 운청휘는 곧바로 운려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운려는 이번에도 수십 장을 물러나며 영력을 쏘아 냈다. 마치 뭔가를 시험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과연! 과연 그렇구나! 하하하하하……!”

별안간 웃음을 터트린 운려가 영력을 날리고 운범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이놈의 무위는 월경이 아닙니다! 겨우 성경 단계입니다! 이놈은 흑괴, 임위, 우리와 싸우는 이 순간에도 영력을 분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줄곧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들의 기를 꺾었던 운청휘. 자연스레 그들은 운청휘를 월경 단계의 무인으로 여겼다. 임위를 죽였을 때는 월경 4단계의 고수라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려의 말대로, 운청휘는 한 번도 영력을 쏘아내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운범과 여섯 무인의 눈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 번쩍였다.

“시험해볼 수 있겠군! 너희는 나와 함께 영력으로 공격해라! 저놈이 영력으로 반격하지 못하면, 운려의 말이 정확하겠구나!”

운범의 명령을 따라, 셀 수도 없는 영력이 하늘을 촘촘하게 뒤덮었다. 거대한 유성군을 연상케 하는 영력의 줄기들이 운청휘에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정면으로 막아낼 길이 없었다. 운청휘는 어쩔 수 없이 검집을 몸 앞에 세웠다.

펑! 펑펑!

폭발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조금씩이지만, 운청휘의 몸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운려, 움직여! 영력 공격이다!”

운범의 눈은 운청휘를 놓치지 않았다. 그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운려가 곧바로 영력을 쏟아부었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운청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경고를 느꼈다.

앞으로 뻗은 운청휘의 손이 빠르게 검집을 돌리기 시작했다.

펑펑펑……!

검집이 고속으로 회전하며 일으킨 회오리바람이 운청휘의 앞뒤를 덮친 영력과 부딪쳤다.

허공을 수놓는 불꽃이 이내 몸집을 키워 바람과 뒤섞였다. 거대한 화염의 회오리가 운청휘를 감싸고 혀를 날름거렸다.

운청휘는 이를 악물었다. 평소보다 영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그로서도 사용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대로 버틴다면, 아무리 그의 영력이 많다고 해도 머지않아 바닥이 날 터였다.

***

그 시각, 성루 위에서 수련에 몰두하던 기령이 눈을 떴다.

영혼의 계약을 맺은 제노(帝奴)이기에, 기령은 어디서든 운청휘의 위기를 알아챌 수 있었다.

기령이 막 몸을 일으키려 할 때, 운청휘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울리는 목소리였다.

“너는 수련에 집중하도록. 그녀에게 부탁할테니.”

기령의 머릿속에 먹빛의 긴 활을 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야옹…….”

그제야 기령은 마음이 놓인다는 듯 다시 눈을 감고 수련을 이어갔다.

***

기령과 대화를 마친 운청휘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내 그의 입이 다시 열리며,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의 귓가에 운청휘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제 나설 때가 되었다.”

나설 때라니, 운청휘를 도울 수 있는 자가 숨어 있다는 뜻일까?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 사이로, 운범과 다른 이들은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으며 주위를 살폈다.

“저, 저길 봐!”

그때, 상관세가의 무인 한 명이 허공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서 백의를 입고 장궁(長弓)을 든 긴 머리칼의 여인이 날아오고 있었다.

여인의 얼굴에는 어떠한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도자기 인형처럼 보였다. 다만, 무미건조한 그 얼굴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다른 이들도 여인을 발견한 듯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운범 또한 여인의 등장에 놀랐다가, 여인의 모습에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다시 의혹이 깃들었다.

수많은 여인들을 만난 운범이다. 그러나 저 여인처럼 기이한 느낌을 주는 이는 없었다.

불처럼 열정적이지도, 빙산과도 같이 차갑지도, 상냥하거나 부드럽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잘라놓은 나무토막이 아픔을 느낄 수 없듯이, 여인에게서는 무미건조한 느낌만이 전해져 왔다.

“응?”

운범의 아미가 대번에 구겨졌다.

발을 땅에 대기도 전에, 여인은 재빠르게 화살을 뽑아 활시위를 당기고 운범 쪽을 향해 겨누었다.

알 수 없는 한기가 그들의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관통하며 올라왔다.

죽는다!

곧바로 강렬한 위기감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서둘러 공격을 멈추고 흩어지며 뒤로 삼십여 장을 물러났다. 그만큼 여인이 주는 두려움이 컸다.

“몇이나 정리할 수 있지?”

드디어 숨을 돌린 운청휘가 여인의 옆으로 날아와 내려섰다.

“전부. 하지만 대가는 더 받아야겠어.”

여인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전부는 됐어. 저놈은 내가 직접 죽이지.”

운청휘의 시선이 운범에게로 향했다.

“저자를 빼고도 월경 6단계가 하나 더 있어. 그래도 더 받아야 돼.”

여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그녀의 표정은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죽이지 않아도 된다. 나 대신 저들을 잠시만 잡아두기만 해도 돼.”

운청휘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

“내가 저놈들도 직접 죽여야겠으니!”

“좋을 대로.”

여인이 몸을 날려 성루 위에 올라서며 활로 운려를 겨냥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아.”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맑고 투명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무미건조한 음성이었지만.

여인의 활이 천천히 운범을 제외한 나머지 무인들을 겨냥했다. 그 순간부터, 그들은 온몸이 굳어 버린 듯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너희들……!”

그 광경에 운범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뭘 멍청히 서 있느냐! 본 공자를 돕지 않고!”

운범의 고함에도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의 무인들은 물론, 운려조차 가늘게 숨만 내쉴 뿐이었다.

“운려, 이놈! 너는 내 아버지의 무시가 아니더냐, 네놈마저 본 공자의 말을 거역하는 것이냐?”

운범이 눈을 부라리며 운려를 노려보았다.

“도, 도련님. 소인이 지금…… 움직이기가 어렵습니다.”

운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조차도 간신히 내뱉은 터였다.

월경 6단계에 올라선 이후로, 운려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죽음은 그의 코앞에 도착해 서늘한 냉기를 뿜고 있었다. 조금만, 털끝만 움직여도 죽는다.

운범의 명령을 따르기는커녕, 자신의 주인인 운범의 부친이 와도 지금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인의 활에 겨눠진 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근원적인 공포였다.

“흥. 저놈들의 도움이 없다고 네놈을 죽이지 못할 것 같으냐?”

운청휘에게 시선을 돌린 운범이 비아냥거렸다.

“지금 당장 죽여주마!”

운청휘도 입을 열었다.

“네놈이 내 형에게 한 모든 짓을 천 배로 되돌려 주마!”

운청휘의 걸음은 곧바로 운범을 향했다.

윙윙윙…….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뻗어 오르는 살기를 느낀 검집이 부르르 떨며 흉흉한 울음을 토해냈다. 본래라면 그 이름마저 찬란하고 드높기 이를 데 없는 신병이기(神兵利器)였지만, 지금은 그저 포악한 기운만을 뿜어내고 있었다.

“보여 봐라! 방계의 천민 따위가 무슨 능력으로 복수를 할지 궁금하구나!”

기세등등하게 말을 내뱉은 운범의 눈도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기에, 운범의 공격이 한발 앞섰다.

그의 두 주먹에 영력이 실리며, 권영(拳影)으로 변해 운청휘에게 쏟아졌다.

펑펑펑……!

공기를 가르는 권영도 운청휘의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운청휘는 검집을 들어 무형의 기운으로 공격을 막아내며 그저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공격을 퍼붓는 운범의 모습에 운현이 겹쳐졌다.

운청휘를 붙들고 있던 이성의 마지막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 팔부터 잘라내 주마!”

참천신검의 검집이 높이 들렸다. 운청휘가 그대로 검집을 내리 그었다.

붉은색의 기류가 뿜어져 나오며, 성루에 한 자 깊이의 흠집을 내고 운범에게 쇄도했다.

“악……!”

운범의 왼팔이 허공을 날았다가, 성루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운범이 두 눈을 부릅떴다.

또다시, 붉은 기류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툭.

불길한 소리에 운범이 저절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오른손이 성루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제 두 발도 잘라주마!”

“아아악!”

잠깐 사이에 운범은 하나 남은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관복은 피에 절어 축 늘어졌고, 부릅뜬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흘렀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서, 고통이 멈추지 않아서 꺽꺽대던 운범이 비명을 터트렸다.

“하나 남았군. 남겨둘지 아니면 자를지. 네가 선택하거라.”

운청휘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콰직!

입을 뻐끔거리던 운범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운청휘의 발이 그의 다리를 짓밟았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운범의 비명이 성루를 뒤흔들었다. 비명과 함께, 무언가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범은 그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통스러운가? 이제 시작일 뿐인데, 고작 이 정도로 비명을 지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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