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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48화 (48/430)

제48화

운청휘의 손이 운범의 복부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의 손바닥에서부터 영력 한 줄기가 뻗어져 나와 운범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순간, 운범의 모든 혈맥과 오장육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가 운현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아는 이들은 절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할지, 잘 알기 때문이지. 내가 하늘을 뒤집어서라도 복수한다는 것을! ……하지만 너는 어리석게도, 내가 가장 아끼는 이를 다치게 했구나. 네 세가도, 육체와 영혼도 모조리 죽이겠다. 그 의미를 곧 알게 해주마!”

운청휘의 목소리는 나직했고, 표정은 어두웠다.

가늘어진 두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겉으로 보기에도 그가 분노에 잠식되어 이성을 잃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콰득!

운범의 목이 꺾였다.

운범에게는 차라리 죽음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적어도, 목이 잡히는 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영혼마저 운청휘에게 붙들린 순간, 운범은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

모든 생명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방금 숨이 끊어진 운범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는 인계를 떠나지 못하고 운청휘의 손에 붙들려 있지만.

이 자리에서 운청휘와 여인만이 운범의 영혼을 볼 수 있었다.

둘 중 누구도 운범을 구할 생각이 없다는 게, 그의 불운이었다.

운청휘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주문이 흘러나왔다.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운범의 영혼이 기이한 비명을 터트렸다.

육체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혼이 깎여나가는 고통이었다.

“후회하나? 너무 늦었다. 너를 쉽게 죽이지 않을 생각이다. 가둬 두고 멸혼(滅魂)의 주문으로 조금씩, 조금씩 네 영혼을 깎아내어 죽게 만들어 주마!”

멸혼. 이것이 광분한 운청휘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운범의 육체를 파괴하고, 이제는 영혼을 붙들어 오랜 시간 두고두고 깎아나갈 생각이었다.

운현의 고통을 백 배, 천 배로 갚아주겠다는 그의 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여인은 운청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낯선 이를 보는 듯한 생경함과 짙은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감정이라고는 일절 드러내지 않았던 여인이 동요하고 있었다.

여인의 머릿속에는 깊은 두려움과 함께, 정말 최후의 방법이 아니라면, 절대로 운청휘를 건드리지 않겠다라는 결심이 새겨졌다.

정상이 아니다. 이성을 잃으면 하늘을 뒤집을, 진정한 광인이었다.

“시간 됐어!”

여인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미 시간이 꽤 흘렀다.

“그래. 고맙군.”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이곤 운려를 향해 몸을 돌렸다.

윙윙윙…….

붉은 기류가 검집에서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그대로 검집을 휘둘렀다.

그 순간, 운려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피할 수 없다.

콰르릉!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적색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운려의 직감은 적중했다.

먼지가 가라앉은 자리에는 커다란 구덩이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운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운청휘의 안색이 희게 질렸다. 방금의 공격으로 영력의 소모가 막심했다.

하지만 아직 멈출 수 없었다. 운청휘의 시선이 상관세가와 천원학관의 무인들을 향했다.

“상관세가와 천원학관. 너희가 먼저 시작했으니, 나도 참지 않겠다!”

말을 마친 운청휘는 미련 없이 검집을 휘둘렀다.

윙윙윙……!

소름 끼치는 진동과 함께, 붉은 기류가 여섯 무인의 몸을 휘감았다. 그들이 다급하게 비명을 내질렀지만, 피할 길이 없었다.

비명이 그친 자리엔, 먼지만 흩날리다 곧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후…….”

운청휘의 무릎이 저절로 휘청이며 숙어졌다. 영력의 소모가 막심했다. 그는 검집을 땅에 박아 넣어 기댄 채 겨우 몸을 지탱했다.

이겼다.

결국, 운청휘는 승리했다. 홀로 임위와 운범, 그들이 데려온 이들 모두를 죽였다. 복수를 마쳤고, 살아남았다.

“청휘야……!”

“이 녀석아……!”

“소가주님……!”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멀리서 운씨세가의 사람들이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태상장로가 운청휘를 살폈다.

“청휘야. 괜찮으냐?”

태상장로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예, 영력의 소모가 컸을 뿐입니다.”

운청휘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백부님.”

이윽고 운한이 다가오자, 운청휘가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 지었다. 방금 전투를 마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한 웃음이었지만, 보는 이들은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청휘야, 네가…… 네가 욕봤구나!”

운한은 함께 웃을 수 없었다. 그의 눈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함께 눈물이 흘러넘쳤다.

“아직 그 말씀을 하시기엔 이릅니다. 당장 태상장로님과 함께 수하들을 이끌어 임씨세가와 철랑방을 정리하셔야 합니다. ……오늘 천우성을 피로 씻어, 오직 운씨세가만이 존재하게 할 겁니다!”

영력을 소모해 기운이 죄다 빠졌지만, 운청휘의 눈에는 아직 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래, 알겠다!”

태상장로와 운한이 동시에 대답했다.

다만 잠시 머뭇거리던 태상장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죽은 이들은 모두 황성에서 임위가 데려온 이들이구나. 지금의 운씨세가로서는 임씨세가를 멸문시키기 어려우니라.”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생각해둔 것이 있습니다.”

운청휘는 기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제 성경 9단계에 올라섰으니, 보통의 월경 무인쯤은 압살할 수 있을 터였다.

“더 볼일이 남았나?”

운청휘의 시선은 활을 들고 다가온 여인에게 향했다.

“내 한독(寒毒)을 석 달 더 억눌러 줘.”

여인이 운청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사이에 빚은 없을 텐데?”

운청휘가 답했다.

“석 달 동안 상관세가와 천원학관, 그리고 황성의 운씨세가가 찾아오지 못하게 해줄 수 있어.”

여인이 잠깐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 대가라면 어때?”

“……받아들이지.”

반 시진 후, 태상장로와 운한은 사람들을 이끌고 나섰다. 임씨세가와 철랑방의 정리가 시급했다.

운청휘는 세가로 돌아왔다.

머릿속에는 운현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지만, 그를 보러 가지 않았다.

지금의 상태로는 운현을 치료하기는커녕 자신의 몸을 가누기도 벅찼다.

우선 무위를 회복하기로 결정한 운청휘는 세가의 밀실에 틀어박혔다. 아공간 행낭에서 마종을 꺼내 정제하고, 정제된 힘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종에 담긴 힘을 전부 흡수하기까지 두 시진이 걸렸다.

몸과 무위를 회복한 운청휘가 밀실에서 나오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인이 다가왔다.

“이건 연단협회의 사면령이야.”

여인이 금색의 영패(令牌)를 내밀었다. 운청휘가 패를 받아들자, 여인이 건조한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연단협회의 간부를 구해주고 답례로 받은 거야. 그걸 운씨세가 대문에 걸어두면 어떤 세력도 세가를 건드리지 못해. 만일 공격한다면, 그 즉시 연단협회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니까. 다만 유효기간은 석 달이야. 석 달 뒤에 협회에서 영패를 거둬 갈 거야.”

여인의 말처럼 연단협회가 보호한다면, 상관세가나 천원학관, 황성 운씨세가뿐만 아니라 황실에서도 운씨세가를 건드릴 수 없었다.

천성대륙의 진정한 대 세력은 연단협회였으므로.

“충분하다. 석 달 후 그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운청휘의 눈에 섬뜩한 살기가 스치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직접 그들을 멸문시킬 테니까.”

***

여인의 한독을 다스리고 나자 시간은 어느덧 한밤중이 되었다.

여인은 곧바로 떠나려는 듯 몸을 일으켰고, 운청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잠깐, 이름이 뭐지?”

여인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대로 밖을 향했다. 선제가 된 이후로 이런 냉대는 처음이라, 운청휘는 다소 난처하게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감정이 무뎌지는 무공을 익혔겠군. 그러니 이토록 냉담하건가…….”

운청휘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그의 귓가에 여인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염죽!”

여인이…… 이염죽이 떠나자 운청휘는 운현이 혼절해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영력 때문에 혈맥이며 오장육부가 완전히 무너졌군.”

운청휘는 일단 신식을 이용해 운현의 몸을 살폈다.

“다행히 백부님과 태상장로가 크게 손대지 않았군.”

운청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위는 그대로였으나, 운현의 혈맥과 오장육부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정신을 차려도 거동이 불가능할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운현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그때엔 운청휘라도 운현의 정신을 되돌릴 방법은 없으니, 정신을 잃은 게 다행일 수밖에.

“자기칠선과로 정제한 자기단 두 개를 남겨두길 잘했군.”

본래는 운현과 운한의 무위를 높이는 데 쓰려 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운현의 몸을 치료하는 게 더 급했다.

운청휘는 단약 두 개를 운현의 입에 넣어주고 영력을 일으켜 약효의 흡수를 도왔다.

치료는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그동안 운현의 혈맥과 오장육부는 자기단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후!”

운청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비록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운현의 내상이 전부 치유된 모습을 보자 마음이 더없이 가벼웠다.

“청휘야, 미…… 미안하구나. 널 대신해 본가의 무시가 되려 했는데…… 형이 무능해서 미안하구나…….”

아직 혼미한 와중에도 동생을 걱정하는 운현의 마음은 여전했다. 그의 중얼거림에 진심이 묻어나왔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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