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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49화 (49/430)

제49화

운현의 목소리를 듣자 운청휘의 몸이 살짝 떨렸다.

“운범, 그자가 형님을 왜 이리 대했나 했더니, 형님이 날 대신해 무시가 되겠다고 한 줄은 몰랐다.”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던 운청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런데 이리 모욕을 당하다니……. 형님, 이 동생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선계에서 수많은 인간군상을 봐온 운청휘였다.

그만큼 무뎌졌다 생각했건만, 끝내 운청휘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제가 맹세합니다. 다시는 그 누구도 형님의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운범과 운려를 죽였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형님이 당한 일은 황성 운씨세가 전체의 피로 돌려받겠습니다! 그전에 형님의 팔도 다시 자라나게 해드리겠습니다.”

각오를 다진 운청휘는 품에서 청색 단약 한 알을 꺼냈다. 단약에서 짙은 생명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소청현단’. 황급의 단약이었다.

“진정한 청현단은 죽은 선인의 몸에서도 뼈와 살을 재생할 수 있다. 소청현단은 조금 부족하지만…… 팔 하나를 회복하는 데엔 충분할 터.”

운현에게 단약을 먹인 운청휘는 백부와 태상장로를 불러왔다.

그들은 짙은 피비린내를 풍기며 다가왔다. 방금까지 살생을 하다 온 듯했다.

“청휘야. 임씨세가와 철랑방 전부를 섬멸하고, 그 잔재들의 정리도 마쳤다.”

운청휘를 본 운한이 말했다.

“예…….”

운청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부님. 두 분을 이렇게 모신 것은 두 분에게 각자 부탁할 게 있어서입니다.”

운청휘가 품속에서 수백 가지의 약초가 적힌 신청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형님의 혈맥과 오장육부는 회복되었습니다. 다만 팔을 되살리려면 여기 적힌 약재가 필요합니다. 대부분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몇 가지는 드물게 나는 것이니 세가 전체를 움직여서라도 찾아오셔야 합니다.”

“뭐라고? 현이 녀석의 혈맥과 오장육부가 다 회복됐어? 게다가…… 팔도 되살릴 수 있단 말이냐?”

운한이 흥분해 소리쳤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 백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오마!”

운한이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리를 떠났다.

“태상장로님, 동승주루에 있는 그분…… 정말 제 할아버지가 맞습니까?”

운한이 떠나자 운청휘의 시선이 태상장로에게로 향했다.

“그래.”

태상장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운상, 그러니까 네 할아버지는 30년 전 황성 본가의 한 직계자제의 눈에 들어 무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황성의 본가에 머물고 있었느니라.”

“여기로 모셔 오십시오.”

운청휘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말도 전하십시오. 지금부터 운씨세가는 오직 천우성의 이 운씨세가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세력에도 종속되지 않았고,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종속할 수 없습니다!”

“네 말이 옳다! 그래, 어서 다녀오마!”

태상장로는 나이에 맞지 않게 꽤나 흥분하며 자리를 떠났다.

어제의 결투를 기점으로, 그의 마음에는 운청휘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자리 잡았다. 운청휘가 하는 말이라면, 정말 어떤 세력도 운씨세가를 종속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반 시진이 흐르고, 태상장로가 백발의 노인과 함께 돌아왔다.

“청…… 청휘야!”

운청휘를 보자 노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노인은 바로 운청휘의 할아버지인 운상이었다.

“할아버지!”

운청휘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운상을 보자 이상할 정도로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손자 운청휘가 할아버지를 뵙습니다!”

운청휘가 운상의 앞으로 걸어가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선제가 된 후로 아무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았지만, 눈앞의 노인은 자신의 친할아버지다.

“청휘야. 얼…… 얼른 일어나거라. 이 못난 할아비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무릎을 꿇느냐!”

눈물을 머금은 운상이 황급히 운청휘를 일으켜 세웠다.

운상의 말처럼, 그는 자격이 없는 어른일까?

그는 후대를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30년이라는 세월을 무시로 지냈다. 긴 수모를 버틴 그에게 어떻게 어른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운씨세가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던 며칠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는 나설 수 없는 처지였다.

만약 그가 눈앞의 위기에 덤벼들었다면, 운씨세가는 철랑방이나 임씨세가가 아니라 황성의 운씨세가를 상대해야 할 터였다.

그러니 그의 고충이 오죽했을까.

“할아버지. 이제 운씨세가는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을 겁니다. 이 운청휘가 운씨세가를 받치고 있는 한, 세가를 건드리는 자는 지옥 끝까지 쫓아 수급을 취하고 구족을 멸하겠습니다.”

비장한 각오를 말하고 있었지만, 운청휘의 말투는 평소와 다름없었다.

동시에 운청휘에게서 그를 믿을 수밖에 없는 모종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청휘야…….”

그 기운에 감염된 운상은 벅차오르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말을 아꼈다.

“할아버지. 황성에 돌아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세가에 남으십시오. 30년 동안 감내하신 수모와 모욕을, 이 손자가 반드시 되돌려드릴 것입니다. 본가뿐만 아니라 천원학관, 상관세가도 석달 후에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습니다.”

운청휘의 몸에서 월경 5단계인 운상마저 몸서리치게 만드는 지독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청휘야. 물론 이 할아비는 네 실력을 믿는다. 다만 그들의 강함은 너의 예상을 뛰어넘을지도 모른다. 석 달은 너무 짧지 않겠느냐?”

운상은 운청휘의 실력과 재능을 믿었다. 다만 운청휘는 아직 어리다.

석 달은 그가 성장하기엔 짧아도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운상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운청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운상의 말도 일리가 있다.

운상뿐만 아니라 누가 봐도 운청휘가 제시한 기간은 부족하다 여길 터였다.

하지만 운청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천성대륙에 돌아왔을 당시의 무위가 성경 3단계였던 운청휘는,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성경 9단계에 올라 있으니까.

지금의 그는 참천검의 검집이 없더라도, 월경 4단계의 무인을 쓰러트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대로 석 달이 지나면, 월경 3단계까지 무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월경의 무인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검집을 들고 있다면 양경의 고수도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황성의 운씨세가나 상관세가, 천원학관 같은 세력가에는 양경의 고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그 수도 한둘이 아닐 테니, 검집만으로는 부족했다.

운청휘의 계획은 어느 지점에 머물렀다.

성공학관(星空學院)!

그곳에 청연지심화의 본체가 숨겨져 있다. 석 달 안에 본체를 찾기만 한다면…… 무위를 단번에 선천생령의 단계까지 회복할 수 있다.

‘그 단계까지 회복된다면, 검집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제의 수단도 적지 않게 쓸 수 있다…….’

운청휘의 눈이 기대로 빛났다.

무인의 길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는 것이 선천생령이다. 그 단계에서부터 수명이 500년 이상으로 늘어난다.

운청휘는 생각을 정리하고 운상을 바라보았다. 그의 계획을 운상에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운상이 보기엔 터무니없는 일에 불과할 테니.

“3개월이라는 시간은 확실히 짧습니다만,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습니다.”

운청휘는 말을 마치며 품에서 금색으로 된 영패(令牌) 하나를 꺼냈다.

그것을 확인한 운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것은…… 연단협회의 사면령이 아니야!”

“과연 넓으신 식견입니다. 맞습니다. 바로 그 연단협회의 사면령입니다!”

운청휘가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이 사면령은 기한이 3개월뿐입니다. 시간이 되면 연단협회에서 사람을 보내 영패를 거두어 갈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석 달 뿐이라는 말이냐?”

운상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렇습니다. 사면령으로 운씨세가를 지킬 수 있는 시간은 석 달뿐이고 그 기한이 지나면 우리가 저들을 찾지 않더라도 황성의 운씨세가, 상관가, 천원학관이 나설 것입니다.”

운청휘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할아버지께서는 석 달간 백부님과 함께 세가를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장담컨대, 그 후에는 전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천성대륙에 돌아온 지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까지 긴박하기는 처음이었다.

석 달 안에 청연지심화의 본체를 찾으면 운씨세가의 위기는 해결되겠지만, 찾지 못한다면 동귀어진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반나절 후, 운한이 돌아왔다. 그는 은자 100만 냥을 아낌없이 써 운청휘가 요구하는 약재들을 구해왔다. 운청휘는 곧바로 약초들을 배합하고 약탕을 제조한 후, 운현을 안으로 옮겼다.

“옥청쇠체액(玉清淬體液)이 있으면 소청현단의 약효를 전부 흡수할 수 있다. 그러면 형님을 성경의 극치로 올릴 수 있을 테지…….”

운청휘가 낮게 중얼거렸다.

운현에게는 일종의 전화위복인 셈이었다…… 깨어나면 잘린 팔이 다시 자라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질도 몇 배는 높아질 터였다.

“3일은 더 혼절해 있을 겁니다. 그동안 여러 이상 증세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팔이 천천히 자라난다거나…….”

운청휘가 운한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3일 동안은 곁에서 형님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운한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 물었다.

“청휘야, 또 어디에 가려는 것이냐?”

운청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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