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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54화 (54/430)

제54화

막상 도착하니, 기재 반은 운청휘의 생각과 달리 건물 하나 없는 황무지였다. 족히 삼만 장은 되어 보이는 황량한 대지를 커다란 호수가 둘러싸고 있었다.

“자네의 재주로 호수를 건널 때 틀림없이 호수의 특이한 것을 발견했을 텐데?”

세 사람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배에서 내린 냉준이 운청휘를 돌아보았다.

“호수에 백 마리가 넘는 월경 흉수가 보이는 군요. 호수 밑바닥에 월경 9단계의 영수가 있는데, 그 영수가 다른 흉수들을 억눌러 몰아낸 듯합니다.”

운청휘가 호수 한 편 고요한 곳에 서서 말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니?”

냉준과 호 교관이 감탄했다.

“그래. 확실히 이 호수 아래엔 월경 9단계의 영수가 있지. 원장과 계약한 영수, 빙백사(冰魄蛇)라네.”

빙백사를 언급하는 냉준과 호 교관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흉수와 마찬가지로, 영수는 같은 계급의 상대에게는 한 단계 높은 전투력을 발휘한다.

호수 아래의 빙백사는 양경 1단계의 무인과 필적할 터. 특히 영수 중에서도 극히 고귀한 혈통의 빙백사라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

이때 성공학관 다른 곳에서 운청휘와 중도에 떨어진 다른 세 명은 18층 높이의 탑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원장님, 저, 저희가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 저희가 선천생령의 잠재력을 능가하는 사성의 기재를 데려왔습니다!”

“선천생령을 뛰어넘어? 왕극주는 기껏해야 선천경의 잠재력을 측정하는데, 이를 뛰어넘었다는 근거가 무엇이냐?”

늙고 공허한 목소리가 무릎을 꿇은 세 사람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왕극주가 그의 잠재력을 측정하다가 폭발했습니다…….”

세 사람은 일각에 걸쳐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들은 목소리의 주인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경외감을 품고 있는 듯, 고개도 들지 못했다.

“……왕극주가 폭발했다? 진정 그자가 선천생령의 잠재력을 뛰어넘은 건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목소리가 대답했다. 다만 그 목소리는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냉준과 호덕승에게 일러두도록. 운청휘에 대해 아무것도 누설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함부로 입을 놀리면 본좌가 직접 처단하겠다. 본좌는 지금 폐관 수련 중이니, 지금은 볼 수 없겠군. 본좌의 수련이 끝날 때까지, 그대들이 그를 은밀히 보호하라!”

명을 내린 목소리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과로하면 다치는 줄만 알지, 안일하면 위태롭다는 걸 모른다……. 정말 그가 말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원장, 저희가 직접 들었습니다.”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리는 지극히 단순하지. 옳거니! ……본좌에게 돌파의 계기가 주어졌구나. 한 달 뒤에, 그자를 본좌 앞에 데려오도록.”

탑의 가장 꼭대기에 있던 백발의 노인이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온몸에서 피어나는 자욱한 안개가 마치 선인이 뿜고 있는 선기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운청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한눈에 알아볼 터였다. 이 홍안의 노인 주변을 감도는 기운은 선기가 아니라, 들끓다 못해 넘치고 있는 영력임을!

***

기재 반의 마당은 언뜻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자체다. 다만 이 황무지에 발을 내디딘 자라면 곧 황무지의 다른 광경을 알아볼 수 있다.

키가 우뚝하게 큰 나무 한 그루가 황무지에 자리 잡았고, 그 나무를 둘러싸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호 교관이 모두 51명이라 설명해 주었다.

나무 근처에는 10개의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흉수 세 발 자색 표범의 털로 만든 천막은 보통의 칼날에는 찢기지 않으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거주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

천막을 지나쳐 바라보면 운화석으로 지은 숙소 다섯 칸이 있었다. 방 앞마다 하인 옷을 입은 사람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운화석으로 건물을 지으면 튼튼하여 도둑이 들 일이 없었다.

장원 부근에는 3개의 호화로운 독채가 우뚝 서 있었다.

운청휘가 독채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중 한 채에서 몸종 차림의 소녀가 걸어 나왔다. 나무를 둘러싸고 수련하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녀에게 쏠렸다.

보지 않아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운청휘는 혀를 찼다.

‘기재 반이라. 역시 전부 인재로 채워져 있군.’

기재 반에 존재하는 수많은 규칙은 대략적으로 들었다.

성공학관 내에서 가장 많은 지원을 받는 동시에, 가장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장소.

이런 경쟁은 의식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큰 나무를 둘러싸고 수련하는 이들은 무위가 18위부터 시작된 총 51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야외에서 숙식해야 했다.

외출은 한 달에 한 번만 허락되고, 한 번에 하루 이상은 금지되었다.

그 외의 시간은 전부 이곳에서 수련에만 몰두해야 했다.

이들이 제공받는 식사는 조리하지 않은 생식이 전부였다.

천막에서 지내는 이들은 모두 10명으로, 한 달에 세 번 외출할 수 있었다.

하루 이상 외출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도, 나무 근처에서 숙식하는 이들과는 일상의 질이 달랐다.

하루 세 끼의 식사가 전부 배달되어 오고, 모두 익힌 음식들이었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아 밋밋하긴 해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나았다.

장원에 거주하는 이들은 다섯 명. 시중을 받으며, 식사도 입맛에 맞게 제공된다.

그들은 한 달에 다섯 번 이상 외출할 자격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혜택은 독채에 지내는 이들보다 못했다.

독채를 차지한 세 명은 기재 반에서도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각기 세 명의 몸종을 거느렸으며, 몸종들과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끼니마다 월경 흉수의 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었는데, 모두 백 년 이상의 영약을 더한 보양 음식이었다.

그들은 어떤 구속도 받지 않았고, 외출도 자유로웠다.

이런 환경이니 자연히 위로 올라가려는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야외에서 숙식하는 자들은 천막을 노리고, 천막에 사는 이들은 장원을 원한다. 장원에서 기거하는 이들은 독채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자연스레 도전이 이루어지는데, 도전을 받은 이는 거절을 할 수 없었다.

즉, 실력을 쌓으면 야외에 사는 이도 더 나은 환경에 사는 이에게 도전해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다만 이 대결에서는 상대방을 죽여서도, 치명상을 입혀서도 안 된다. 이 규칙을 어긴 자는 영해를 폐하고 추방한다는 엄격한 명령이 있었으므로.

***

냉준과 호 교관은 운청휘를 다양한 이들에게 간단히 소개해 주었다. 이윽고 그들은 시간이 되었다며 몇 가지 당부를 늘어놓았다.

“자네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게. 부디 기억하게나!”

“이 반의 생도들은 자부심이 강하다네. 다만 자네의 잠재력을 모르니, 무위만 보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행동할 걸세. 만약, 손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피하지 말게.”

“그렇지. 기재 반은 실력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곳이니, 괴롭힘을 피하려면 실력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네!”

“알고 있습니다.”

운청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 실력은 존중을 받는다.

이미 냉준과 호 교관이 운청휘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할 때부터, 그들이 자신을 업신여기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열여덟 살, 무위는 성경 9단계. 이 반에서는 최하위권에 들 수밖에 없다.

냉준과 호 교관이 떠나자, 기재 반의 일원들은 일제히 조소하며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열여덟이든 뭐든, 성경 9단계의 폐물이 우리 기재 반에 들어와?”

“쯧, 저런 버러지는 기재 반에 있을 자격이 없어!”

“유유상종이라더니. 냉준과 호덕승이 같은 폐물을 데려왔군. 폐관 수련 중인 이들이 저놈을 보면 뭐라 하겠나. 우리한테 화가 미치기 전에, 먼저 저놈에게 손을 써야지!”

“폐물이 헛꿈을 꾸는구나. 우리가 그놈을 꾸준히 손봐준다면, 알아서 나가떨어질 거다!”

그들은 모두 스무 살 전후로, 월경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무위가 다양했다.

‘실력을 보인다면, 단번에 해치우는 게 낫겠군.’

마음을 다진 운청휘가 그 무리를 해치우려는 순간, 장원 쪽에서 누군가 운청휘에게 손짓했다.

총관 옷을 입은 중년인이 운청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참, 나는 주맹이다. 맹 아저씨라 불러도 좋다.”

스스로 주맹이라고 칭하는 중년인은 다른 한 손에 요강을 들고 있었다.

“이 몸이 지금 바빠서 겨를이 없으니, 이 요강을 비워 오도록.”

“……뭐라고 했나?”

운청휘의 두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가볍게 위협만 하려고 했지만, 순간 그의 몸에서 간헐적으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하하, 주맹 녀석 사람 괴롭히는 법도 대단하군. 처음 만났는데 요강을 따라 달라고 하다니!”

“헤헤, 운청휘가 줏대 없는 놈인지 강직한 놈인지 볼 수 있겠구만. 만약 전자라면…… 우리가 데리고 놀면 되지!”

“주맹이 요강을 따라 달라고 했던 지난번에 왔던 신참이 떠오르는군!”

“그 녀석? 아아, 주맹한테 덤벼들었잖나. 그러다 잔뜩 얻어맞고 요강에 든 소변까지 마셨지. 하하하!”

“주맹도 참 고약하단 말야. 주인집도 차지하고, 신참에 무위가 약한 녀석도 괴롭히니까.”

“뭐, 우리 반에선 당연한 일이잖나. 분하면 실력을 쌓아야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떠들어 대는 이들을 뒤로하고, 운청휘는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방금 뭐라?”

운청휘에게서 살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응? 귀가 먹었냐! 와서 요강을 비우라고 했을 텐데! 다 비우면 냄새가 나지 않게 열 번 이상 씻어 와!”

주맹은 운청휘의 기세가 달라진 것을 모르는지, 여전히 으스대고 있었다.

운청휘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주맹에게 향했다.

‘흐흐. 만만한 신참쯤이야 몇 마디면 간단하지!’

주맹은 운청휘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흐뭇해했다.

‘이런 지저분한 일은 앞으로 저 녀석에게 전부 맡겨야겠어!’

운청휘는 주맹의 삼 장 밖에서 멈춰 섰다. 공기 중에 불쾌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왜, 냄새가 역겨운가? 앞으로 더 많이 익숙해질 거다! 됐고, 멍청히 있지 말고 빨리 요강을 비우란 말이다!”

운청휘가 삼 장 밖에 서 있자 주맹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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