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58화 (58/430)

제58화

운청휘가 자신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소도도는 갑자기 두 눈을 휙 돌려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하하하! 정말 옳은 말이야! 자네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으니 참 막역한 벗과 다름없군! 진즉 처리했다면, 저 얼간이가 하는 짓으로 내내 불쾌하지도 않았을 텐데! 운 형제, 저 자는 혼쭐이 나야만 정신을 차릴 걸세. 하지만 아무 욕이나 입에 담을 수 있겠는가? 우선은 그의 약점을 짚어야지. 저 왕찬의 약점은 바로 어리석음이야. 그러니 먼저 그 어리석음을 비웃어야…….”

소도도가 열변을 토했다.

그는 정말 운청휘를 막역한 벗처럼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에 운청휘는 소도도를 대하는 다른 이들의 태도가 이해가 되었다. 말재간이며 배포까지, 그는 정말 기인이었다.

“응?”

“어?”

“음?”

별안간 기척을 느낀 이들이 동시에 호수 방면을 바라보았다.

공중에서 청색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월경 9단계.’

운청휘는 단번에 다가오는 자의 무위를 알아차리고 검집을 손에 꺼내놓았다.

“이럴 수가! 형당을 관장하는 공휘(孔辉) 부원장이잖아!”

“운청휘도 이제 끝났군.”

“부원장은 규칙을 어기는 일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다스리지. 형당의 책임자답지 않은가!”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청색의 그림자가 황무지에 안착했다.

“자네가 운청휘인가?”

청의를 입은 사내는 곧바로 운청휘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렇습니다.”

운청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곤 참천검의 검집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그는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저들을 전부 자네가 죽인 건가?”

청의인이 재차 물었다.

“그것도 맞습니다.”

운청휘도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있었는가?”

청의인이 물었다. 그는 간결하고 정확하게 말하는 걸 선호하는 듯했다.

“응? 어떻게 된 거지?”

“부원장의 성격이라면 진작에 운청휘를 제압했을 텐데……?”

“맞아. 여러 해 동안 형당을 관장하면서 티끌만 한 잘못도 넘어간 적이 없어. 이유가 어찌 되었든 원규를 어기면 나서지 않았나.”

“하지만, 이유를 묻고 있는데? 이제 와서?”

장원에 사는 생도들이 일제히 얼굴을 찌푸리며 속삭였다.

이 광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던 소도도가 운청휘를 힐끔 보더니 뭔가를 떠올린 듯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공 원장님! 이 일은 운청휘만을 탓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별안간 나선 소도도가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은근슬쩍 공휘에게 ‘부원장’이라는 호칭 대신 ‘원장’이라 부르며 그를 치켜세우고, 달변을 늘어놓았다.

소도도의 말인즉슨, 왕찬의 하인이 운청휘를 모욕하는 것도 모자라 요강 비우기를 요구했다. 그 후 손동이 나서서 학관을 위한다는 핑계로 운청휘를 억압하려 들었다. 더욱이 한 무리나 되는 이들이 한꺼번에 운청휘를 제압하려고까지 했다…….

소도도의 혀가 바쁘게 움직일수록, 운청휘는 모욕을 당했으나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나쁜 짓을 일삼는 생도을 죽인 영웅으로 변모해 갔다.

주맹과 손동, 방건 모두 소도도의 이야기에서는 악당이 되어 있었다.

살아남은 일곱 명은 이미 폐인이나 다름없으니, 운청휘가 자비를 베풀어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며 소도도는 거듭 운청휘를 치켜세웠다.

어느새 죄도 사라지고 오히려 공을 세운 영웅이 된 운청휘는 멍하니 소도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 원장님, 경과는 이렇게 된 것입니다!”

말을 마친 소도도가 공휘에게 밝은 표정을 보였다. 그의 표정은 아첨이 아니라 왠지…… 집안 어른에게 잘 보이려는 아이와 비슷했다.

공휘는 뺨을 쓸어내리다 운청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도도의 말이 사실이렷다?”

“……비슷합니다.”

운청휘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네가 저지른 살인은 용서할 수 있다.”

공휘가 잠시 뒤 이어서 말했다.

“그럼, 오늘 일은 불문에 부친다!”

“……네? 부원장님, 그게 무슨……!”

공휘의 간결한 대답에 장원의 청년들은 눈을 부릅떴다.

오직 소도도만이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잘 봐라, 얼간이들아. 원장님도 운청휘를 두둔하는걸!”

***

“부원장님. 이 반의 규칙은 원장 대인께서 친히 만드신 것입니다. 이렇게 처분을 내리시면…… 원장 대인의 명을 어기는 게 아닙니까?”

별안간 왕찬이 나서서 항의했다.

“응? 감히 나를 가르치는 게냐?”

공휘의 얼굴이 굳어지며 난데없이 사방에 한기가 몰아쳤다.

운청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

공휘가 말을 하며 내뱉은 입김일 뿐이건만, 그것만으로도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압도적인 패배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 그런 게 아닙니다! 그저 규칙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거고, 누구든 규칙을 어기면 엄벌에 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왕찬이 거대한 중압감을 받아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헐떡거렸지만 끝까지 말을 내뱉었다.

“규칙? 좋다! 노부가 네게 규칙이 무엇인지 알려 주마!”

공휘와 왕찬은 상당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공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짝’ 하는 소리가 나며 왕찬의 고개가 돌아갔다.

공휘가 내보낸 영력이 거대한 손바닥의 형상을 갖추며 왕찬의 뺨을 때린 것이다.

오직 영력의 통제가 극에 이르고 무의 조예가 깊은 사람만이 배출한 영력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

눈앞의 공휘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 규칙이 하극상을 가르치더냐? 노부의 일에 네놈이 끼어들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공휘가 말하며 또 영력으로 만든 손바닥으로 왕찬의 얼굴을 때렸다.

“네놈에게 있어서 이 노부의 말이 곧 규칙이다!”

“부원장님 진정하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왕찬은 얼굴에 남은 고통에 신음할 겨를도 없이 얼른 무릎을 꿇었다.

공휘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곤 위엄 있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가 이 자리에서 한 가지를 발표하마. 오늘부터 기재 반 내에서 생사결을 허락한다! 승부는 생사불문, 오롯한 본인의 책임이다. 더불어, 운청휘는 월경 2단계의 이성 기재다. 운청휘의 무위를 고의로 잘못 전달한 냉준과 호덕승에게는 3년 치 녹봉을 제하는 처벌을 내린다.”

“어쩐지…….”

“그렇군. 성경 9단계의 무위라고 하기엔 너무 압도적인 실력이었긴 했지!”

공휘의 발표에 몇몇 사람이 비로소 납득했다.

정말로 운청휘가 성경 9단계로 이 같은 일을 벌인 거라면, 그는 최소 삼성…… 아니, 그 이상의 기재일 테니.

“부원장님, 질문 있습니다!”

무릎을 꿇었던 왕찬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방금의 말씀대로, 승부는 생사불문, 오롯한 본인의 책임이라면…… 제가 지금 소도도에게 도전해도 되겠습니까?”

“뭐라?”

공휘가 눈썹을 찡그렸다.

“뻔뻔하군, 왕찬! 장원의 생도이 천막에 사는 내게 도전하겠다? 배짱이 있으면 3년만 기다려! 3년 후에 부모도 못 알아볼 만큼 때려 주지! 못 한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질 것이다!”

소도도가 공휘의 뒤에서 왕찬에게 욕을 퍼부었다.

왕찬은 눈썹을 찡그렸지만, 소도도의 말을 못 들은척하며 공휘를 올려다보았다.

“부원장님,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대결이든 생사결이든 서로의 동의가 필요하다. 소도도에게 도전하고 싶다면 소도도의 동의를 먼저 얻거라.”

공휘가 말했다.

“과연 영명하신 결정입니다! 결투라면 응당 쌍방의 동의가 있어야지요. 이봐, 왕찬! 억지로 만든 일은 결과가 나쁘다는 말도 못 들어 봤나!”

소도도가 급히 말하고 마지막에 왕찬을 향해 모욕적인 손짓을 해 보였다.

“멍청아, 정말 도전하고 싶다면 3년만 더 기다려라!”

왕찬이 일어나서 침착한 얼굴로 소도도를 바라보았다.

“소가야. 네놈이 남자라면 정정당당하게 나와 생사결을 하자!”

“내가 남자인지 아닌지가 궁금하냐?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 묻지 그러냐! 20년 전……”

“소도도, 죽여 버릴 거야!”

소도도의 조롱에 왕찬이 숨을 몰아쉬며 손을 내뻗었다.

“무례하구나!”

그 순간, 공휘가 강력한 기세로 왕찬을 날려 보냈다.

쿵쿵쿵!

착지 이후 왕찬은 세 발짝 물러섰다.

왕찬은 미간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얼굴을 일그러뜨렸고, 두 주먹에서 빠드득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저 부원장은 공정성 따윈 개나 줘버리고 운청휘와 소도도를 두둔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쭐대지 마라, 소도도! 기회는, 기회는 분명 있을 테니까! 나 왕찬이 맹세하건대, 네놈을 죽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네놈뿐만 아니라, 네놈의 가족 전부를 한 사람씩…… 죽여주겠다!”

왕찬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지만 공휘의 얼굴을 마주하고 찢어질 듯한 눈초리로 소도도를 위협했다.

말이 끝나고 그는 운청휘를 다시 쳐다봤다.

“그리고 운청휘 네놈. 네놈도 처참하게 죽여주마. 네놈 가족도 모조리!”

“……방금 뭐라?”

줄곧 잠자코 있던 운청휘가 두 눈을 번쩍 떴다.

왕찬과 소도도 사이의 원한이기에 묵묵히 있었건만, 지금 왕찬의 말은 넘어갈 수 없었다.

자신을 위협해도 넘어가지 못할 판에, 자신의 가족까지 위협하고 있다니.

혈육, 가족, 줄곧 운청휘에게 있어 최대의 역린이었다.

“네놈과 네놈의 가족들을 처참하게 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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