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극경이라고? 자네…….”
공휘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는 마치 괴물이라도 본 듯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다른 것이라면 원장께서도 아낌없이 자네를 지원하겠지만…… 연화동은 아니 될 말!
공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얼마 전 폭동으로 봉인해 두었거늘…….”
공휘가 말을 잇지 못하고 서둘렀다.
-지금의 자네가 모든 것을 알 자격은 없네. 무엇보다 지금 연화동은 외부에 개방하지 않네. 정 들어가고자 한다면…… 네 번째 성도가 되어야 하네!
네 번째 성도?
운청휘의 시선이 독채로 향했다. 나란히 늘어선 세 채의 독채.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이 바로 성도일 터였다.
-원장 다음가는 권리를 지닌 이들이 성도라네. 이 노부도 그들의 일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지. 모든 성도는 원장의 후계 반에서 양성되고 있네. 자네라면 이미 알지도 모르겠군. 원장님은 자네를 네 번째 성도로 양성할 계획을 두셨네. 성도가 되어 원장의 자리에 오를지는 오롯히 자네의 능력에 달린 일이네!
공휘가 전하려는 뜻은 확고했다.
기회는 주어졌으니,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변이 없다면 내일 아침, 자네는 첫 번째 성도 시험의 임무를 받을 걸세. 그러니 몸 상태를 잘 유지하게나!
말을 마친 공휘는 왕찬을 든 채로 지면을 박차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가 순식간에 수십 리를 뛰어넘고, 호수의 수면을 박차 다시 공중으로 뛰어오르길 몇 차례 반복하자 금세 운청휘의 시야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운 형제. 방금 공 머슴이 자네에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네만.”
공휘가 가자마자 소도도가 운청휘에게 다가왔다.
“흐흐. 얼마 안 가 독채가 하나 늘어나겠구만! 쯧쯧, 그건 남들도 탐내는 자리지.”
운청휘가 고개를 들어 소도도를 바라봤다.
“실력도 있고, 재능도 출중하건만 왜 천막에 몸을 숨기고 있지?”
소도도가 비록 자신의 무위를 보여주지 않았지만, 어찌 운청휘의 눈을 속일 수 있었을까.
소도도는 월경 4단계의 무위를 가졌고, 그의 천부적인 재능은…… 사성 기재였다!
그가 진심으로 왕찬을 상대했다면, 손가락 하나로 왕찬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자…… 자네 그것도 아는 겐가?”
자신의 무위를 단번에 들키자 소도도가 눈을 부릅떴다.
“에이, 사실대로 말하지. 때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운해(云海) 그 놈에게 원한을 샀다네. 만약 내가 저자세가 아니였다면…… 사흘도 되지 않아 그에게 죽임을 당할 걸세!”
소도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해가 누구지?”
“운해는 독채에 사는 세 명 중 하나고, 황성 운씨세가의 직계자제지. 음? 운 형제도 운씨인데 황성 운씨인 건가?”
“…….”
운청휘의 두 눈이 저절로 커졌지만 빠르게 되돌아왔다.
“아니다.”
운청휘의 대답에 소도도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속 말했다.
“운해는 월경 6단계의 사성 기재라네. 기재 반의…… 아니, 성공학관 전체를 놓고 봐도 엽천과 상관우(上官羽)만이 그와 견줄 수 있지. 셋 다 성도의 신분으로 독채에 살고 있네. 참, 운형제. 조금 쉬어 두게나! 나도 자네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봐서 아는데, 셋의 경쟁이 아무리 치열해도 합심하면 피할 길이 없지 뭔가. 지금 독채에는 상관우만 있으니, 그가 가장 먼저 운 형제를 노릴 걸세!”
소도도가 잠시 후 다시 말했다.
“나는 운 형제의 능력을 믿네. 그저 그때가 되면, 잊지 말고 나를 위해 운해도 죽여 주게나! 나도 술에 취해 미인의 무릎에서 잠들고 깨어나며 천하를 다스리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성도가 될 수 없다면 소금에 절인 물고기 꼴과 어찌 다를까.”
소도도는 ‘미인의 무릎에서 잠들고’ 라는 말을 할 때 입가에 묻은 침을 닦기도 했다.
“운 형제, 상관우에 대해서 알려 주지. 월경 4단계의 사성 기재인데, 소문으로는 지급신공을 수련했다더군. 그 외에도 지급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느 병기를 사용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닌 이가 없네. 병기를 본 이들이 모두 죽었으니……. 성도의 자료는 원장이 숨겨서, 다른 건 모르겠으이. 그러니 운 형제! 상관우를 만나면 조심 또 조심하게나. 물론 그의 부모도 못 알아보게 그들을 죽이게나! 운 형제, 힘내시게! 힘! 힘내게나!”
말을 마친 소도도는 참으로 가볍게 주먹을 쥐고 연거푸 응원하는 시늉을 했다.
운청휘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그는 소도도를 때려 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기재 반을 떠나온 공휘는 18층 높이의 탑 아래에 도달했다.
그가 공손한 얼굴로 높은 탑을 올려다보았다.
“원장님, 운청휘가 성공학관에 온 목적은 연화동이라고 합니다. 그가 다른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극경’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높게 솟아오른 탑에서는 한참 동안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공휘가 숨을 낮추고 기다렸다. 이곳의 시간은 비현실적으로 흐르는 듯했다.
“시조 이후 3천 년 동안 이 대륙에 극경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았건만…….”
성공학관의 시조, 검신 풍무극광(风无极光)!
단신으로 성공학관을 창시하고, 극경에 도달한 자.
극경은 모든 경계의 극한이다.
무도의 단계인 성경, 월경, 양경, 선천경에 이르기까지 모두 1단계에서 9단계의 경계로 나뉘어 있다.
다만 무인 중 극히 드물게, 만고에 빛나는 기재만은 모든 경계의 10단계에 들어설 수 있다.
성경 10단계, 월경 10단계, 양경 10단계, 선천경 10단계……. 3천 년간 검신 풍무극광만이 극경에 도달할 만큼, 전설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가 정말로 극경을 위한다면, 본좌의 무위를 소모해서라도 연화동의 천화를 제압하고 그를 연화동으로 들여보내야지. 다만 그 대가가 너무 크구나. 그의 말만을 믿고 있을 순 없다. ……이렇게 하지. 본좌가 우선 세 명의 성도들에게 그를 심사할 수 있는 임무를 내리지. 동시에 그의 잠재력을 살펴보고, 학관에 대한 충성도도 시험해 보겠다.”
공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원장님, 혹시 세 명이 압박하면 제가 몰래 그를 도우면 되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다. 다른 이의 공격도 버티지 못한다면 성도가 될 자격이 없지. 더욱이 그를 돕게 된다면 소도도가 당했을 때 본좌의 묵인에 대한 불만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을 터. 이번 임무에 소도도를 함께 배치하지. 아무리 소질이 뛰어난들, 갈고닦지 않으면 돌과 다름이 없는 법. 소도도도 이제 두각을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나.”
원장이 소도도를 언급하자 공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으로 골치 아픈 녀석이건만, 세상에 둘도 없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다. 번번이 그의 재능에 놀라면서도, 도통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왕찬의 장원에 입주해 잠을 청했던 운청휘는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운 형제, 문을 여시게. 날세, 도도일세! 자네의 호형제 소도도! 큰일 났지 뭔가! 성도 검증의 임무가 내려왔는데, 나도 포함되었어! 살려 주게나, 운 형제! 문을 열지 않으면 난 도망가고 말 걸세!”
쿵쿵쿵!
소도도가 소리를 지르며 문을 힘껏 두드렸다.
꽈당!
대문이 열리고 세수를 끝낸 운청휘가 걸어 나왔다.
“임무 심사는 뭐지?”
“젠장, 낭야산으로 비적을 토벌하러 가는 걸세! 우리더러 낭야산을 점거한 모든 도적을 뿌리 뽑으라지 않는가! 천원왕조의 군대도 토벌하지 못한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다니……. 운 형제, 말해 보게. 얼마나 자신이 있는가? 오 할도 안 된다면 나는 지금 도망가겠네! 위험할 땐 도망가는 게 상책이지! 나는 이제 겨우 약관이고 삼대 독자에 혼인도 치르지 않았으이. 만약 내가 죽으면 소가는 영영 끝이 아닌가. 무엇보다…… 나, 나는 여인의 손 한번 못 잡아봤다네. 차라리 지금이라도 기방에 다녀올까? 그렇지, 운 형제. 운 형제도 비슷하지 않은가?”
소도도가 이루 말할 것 없이 진지한 얼굴로 운청휘의 대답을 기다렸다.
운청휘는 가급적 크게,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넘처나는 의지력으로, 소도도를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을 가라앉혔다.
이 멍청한 작자가!
운청휘의 식견이 넓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번 임무,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은 없나?”
“기재 반은 우리 두 명일세. 아, 대신 내원 교관 세 명이 이끄는 내원 생도들의 대열이 있지. 우리가 합류해도 우대는 못 받아. 더욱이 우리가 기재 반 소속이라는 것도 들키면 안 된다네. 노출되면 실패로 처리되고, 그 외에도…… 그렇지. 대열의 사망자 수가 다섯 명이 넘으면 안 되네!”
소도도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5명 이상 사망하면 안 된다?”
운청휘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이 대열은 총 몇 명이지?”
“우리와 3명의 내원 교관을 포함하면 100명일세!”
“100명의 인원 중 5명 이상 사망하면 안 된다라, 성도가 집행하는 임무의 난이도가 상상이상인데. 대체 어딜 봐서 성도가 되기 위한 임무이지?”
소도도와 운청휘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호수를 박차고 청색의 그림자가 질주하고 있었다.
그림자가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준엄한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
“운청휘, 소도도, 시간이 되었다. 낭야산으로 출발해라!”
***
내원의 교관과 생도들은 운청휘와 소도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휘는 직접 데려다주는 대신 장소만 알려 주었다. 운청휘와 소도도가 도착하자, 3명의 내원 교관과 생도들의 시선이 꽤 곱지 않았다. 그들을 싫어하는 티가 역력했다.
“이 각이나 늦지 않았느냐! 뒷배가 있다고 참으로 거만하구나!”
“뒷배?”
운청휘와 소도도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시치미를 떼는구나. 외원의 생도들이 무슨 자격으로 이번 임무에 합류할 수 있는가!”
“쯧, 누가 배후이든 발목을 잡는다면…… 그때 우리를 탓하지 말거라!”
“여기서는 각자 한 사람 몫은 해야 한다. 네놈들도 똑바로 하도록!”
내원의 생도들은 대놓고 두 사람의 체면을 깎아내렸다.
내원 교관들은 생도들을 말리기는커녕, 두 사람에게 마뜩찮은 시선을 보냈다. 곧 그들은 서로 시름에 잠긴 눈빛을 교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