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임무는 어디 팽개치고 벌써 오는 거야? 교관님이 분부한 일에 잔꾀를 부리면 벌을 받을 거다!”
“소도도, 손에 잡고 있는 자는 누구지?”
“허! 배짱도 좋구만. 임무도 끝내지 못했으면서 마음대로 사람을 데려오고. 만약 사달이라도 나면 뒷감당할 자신은 있나?”
“쯧. 강호의 경험도 없는 자들이 뒷배만 믿고 설치는군!”
“누가 네놈들에게 이 몸이 일을 못 끝냈다고 전한 거냐? 임무는 반경 칠백 리 내의 지형을 조사하라는 내용이었다. 별것도 아닌 일인 것을!”
소도도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손에 든 중년인을 내려놓고 그들을 가리켰다.
“이 밤중에 불침번을 맡는 걸 보니, 내원에서도 힘이 없는 자들이구나? 하하, 부인할 생각일랑 하지 말게! 이 몸의 10대 조상님부터 관상을 봐 왔다네! 오호라, 자네들의 쇠약한 상을 보니 말할 것도 없군! 자네들의 인당까지 어두워지면 재수 없는 일이 반드시 일어날 걸세!”
“……하하하!”
“소도도, 정녕 제정신이 아니구나. 강호의 초출들도 그런 수법에는 안 당한다!”
열 명은 일제히 박장대소했다. 하지만 개중 몇몇은 웃으면서도 어딘가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희가 재수가 없으니 재수가 없었겠지. 재수가 있어도 재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소도도가 왜 이리 궤변을 늘어놓나 했더니, 그는 말을 하면서 순식간에 몸을 날려 경비를 서던 이들에게 뛰어들었다.
짜악! 짝!
경쾌한 소리가 연달아 열 번 울렸다. 소도도는 열 명의 뺨을 한 대씩 때린 후, 그들이 자각하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다리를 걷어찼다. 열 명이 죄다 고꾸라져 신음했다.
“봤느냐. 곧 재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믿지 않다니!”
말을 마친 소도도가 바닥을 나뒹구는 이들 중 한 명에게 침을 퉤 뱉었다.
“운 형제. 저 세 얼간이에게 보고하러 가세. 저들이 우리가 가져온 지도를 보고 은을 퍼부을지도 모르겠네!”
소도도가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었지만, 운청휘는 무시로 일관했다. 그들은 내원 교관들이 묵는 천막 앞에 섰다.
소도도가 손을 흔들어 중년의 산적을 부르더니 곧 그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다.
중년 산적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곧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저, 정말 그렇게 말해야 합니까?”
소도도가 중년 산적을 발로 걷어찼다.
“시키는 대로 말할 것이지, 혓바닥이 길구만! 여기서 죽고 겐가?”
소도도가 일행을 죽이는 광경을 본 산적은 그에게 꼼짝도 못 했다.
결국 중년의 산적이 목청을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청풍채의 산적이 성공학관의 세 교관님을 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랫도리가 단단하여 밤마다 무수히 많은 여인을 거느리니, 붉은 깃발이 쉴 새 없이 펄럭입니다!”
중년 산적이 얼마나 목소리를 쥐어짰던지, 천막 안에서 자던 이들까지 놀라서 깨어났다.
몇몇 이들은 별안간 들려온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했지만, 몇몇 이들은 알아듣자마자 박장대소하며 배를 잡았다.
“하하하! 밤일을 치르다 죽는다와 박자가 똑같으니, 이것 참! 이번의 인솔 교관님들의 사생활이 꽤나 허술하다더니, 낭야산의 산적들도 다 알 정도인가? 산적은 역시 산적이야. 아부도 몰래 말하면 교관님들이 자랑스러워할 것을, 어찌 이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떠들 수 있지?”
소도도가 들으란 듯이 외치자 그 목소리를 들은 여생도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다잡았다.
앞으로 저 세 명의 교관을 절대 멀리해야 한다.
다만 감이 좋은 몇몇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군. 청풍채의 산적이 언제 나타난 거지?”
곧 천막 안에서 생도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정작 교관들의 천막은 한발 늦게 열리더니, 음침한 안색으로 살기를 줄줄 흘리는 세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 소리 질렀던 것이 네놈이냐?”
“겁 없는 도적놈이, 이 몸이 네놈을 죽여 버리겠다……!”
한 교관이 짙은 살기를 흩뿌리며 중년 산적에게 일수를 날렸다.
“교관님, 안 됩니다! 이자는 저와 운 형제가 천신만고 끝에 청풍채에서 노획했습니다! 살아 있는 지도이니, 죽여서는 안 됩니다. 암요, 안 되고 말고요!”
그러나 소도도가 교관의 기술이 닿기도 전에 중년 산적의 목덜미를 잡아채 끌어당겼다.
그가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응?”
공격을 했던 교관은 뜨악한 얼굴로 소도도를 바라보았다.
방금 그가 보여준 속도는 결코 교관의 실력에 뒤지지 않았다!
“소도도, 방금 그 말, 자네가 시킨 거냐?”
교관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교관님, 아주 큰 오해입니다. 교관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드넓은 강물처럼 끝이 없는데 어찌 그런 경박한 말을 시켰겠습니까! 다만 저 도적의 말에 생도는 감명하였습니다. 어느 누가 세 교관님처럼 용맹하게 밤마다 여러 명의 여인을…… 퉤퉤, 생도이 입을 잘못 놀렸습니다. 벌로 뺨을 때리지요. 이렇게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데, 참.”
말을 마친 소도도는 정말로 자신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짝짝 소리가 이어졌지만, 소리만 크고 영 부실한 동작이었다.
기이할 정도로 과장되고 가식적인 그의 태도를 보고 있으니, 운청휘마저 그를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세 교관은 아예 씨근덕거리며 소도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우…….
그들은 터지기 직전의 화약통처럼 속이 부글거려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소! 도! 도! 네놈이, 이 어르신이 당장 네놈을 제압해 주마!”
“그뿐이더냐!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세 교관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에서 불을 뿜어낼 기세로 소도도를 노려보았다.
그들이 살면서 경박한 이를 더러 보긴 했지만, 소도도같은 자는 처음이었다.
- 우선 진정하시게! 어차피, 조만간 저 놈과 운청휘는 죽일 거니까!”
한 교관이 이를 악문 채 전음으로 두 교관에게 말을 전했다. 그도 심호흡을 하며 억지로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생도들 앞에서 그를 죽인다면, 본전도 못 찾는 셈이네. 학관에 돌아가서 어찌 설명하겠는가.
다른 두 사람은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이를 악물고 있었다.
-상관우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소도도를 죽이고 말 것이야!
-그래. 반드시 그를 가루로 만들어 주겠어!
-상관우가 어찌 소도도 따위를 죽이라고 당부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살기를 간신히 억누른 세 사람이 각오를 다지며 소도도를 노려보았다.
“이 사람의 신분을 확실히 밝혀낸 거냐? 정말로 청풍채의 산적이 맞다고? 이자가 고의로 자네들에게 잡힌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게냐?”
소도도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 있게 외쳤다.
“물론이고말고요. 제 인격을 담보로 삼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문제가 없는 단순한 포로며, 우리의 살아 있는 지도일 뿐입니다!”
주변이 어색한 침묵으로 뒤덮였다.
인격.
소도도가 인격을 말하고 있다…….
할 말을 잃은 이들이 어색하게 주변을 힐끔거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저 경박한 소도도가 인격을 담보로 삼는다고?
순간 모두의 생각이 일치하는 듯했다.
말을 내뱉은 소도도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교관님들. 저 도적은 정말 저희가 사로잡았습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시거든, 여기 운 형제에게 물어보시지요. 운 형제! 뭐 하는가. 교관님들께 내 말이 진실이라 얘기해 주게! 자자. 자네도 인격을 담보로 거세. 나와 운 형제의 인격이라면, 교관님들이 믿고도 남을걸세.”
운청휘의 얼굴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이 순간, 그는 결심했다.
이번 임무가 끝나면 소도도를 멀리할 것이다.
반드시!
“……저 도적은 저희의 포로가 맞습니다.”
그제야 사람들은 중년 산적이 포로라고 생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서. 내일 아침 전까지 낭야산의 지도를 전부 그리도록.”
“또한, 청풍채에 남아 있는 인원과 월경 이상의 무인이 누구인지, 전부 털어놓거라!”
세 명의 교관이 중년 산적을 직접 천막 안으로 데려갔다.
“모두 준비해 두도록. 내일 아침, 청풍채가 우리의 임무 첫 대상이 될 것이다!”
수런거리던 생도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 천막 안에서 교관 한 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외침에 생도들의 마음이 들끓고, 내일의 전투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흐흐, 세 교관님이야말로 풍류를 아는 사내의 본보기입니다. 이런 곳에서도 욕구를 해결하고자 무려 중년 산적까지 찾으시다니…….”
소도도의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중년 도적의 말에 따르면, 청풍채는 낭야산에 있는 산채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도적 소굴이었다.
청풍채 내에서 가장 무위가 높은 자는 두령인 황청풍(黄清风)으로, 월경 6단계의 무인이었다.
황청풍은 여덟 명의 측근을 두었는데, 그들 각자가 월경의 무위를 소유한 데다 가장 약한 자도 월경 3단계의 무위를 지녔다.
그 외에도 수천 명의 도적이 청풍채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 전부가 수도 없이 사람을 죽여, 살인에 능한 이들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세 교관은 백 명의 생도을 이끌고 낭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산세가 험난한 천연의 요새였지만, 낭야산도 산일뿐이다.
이따금 야수들을 마주치긴 했으나, 백 명의 대열은 한나절 동안 별 탈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이동하는 동안 소도도는 운청휘의 옆에서 떠들었는데, 대개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내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경국지색의 선녀 9명이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지. 그들의 말로는 내가 9세 우인(牛人)의 환생이니, 신위가 세상을 압도하여 대륙을 통일한다고 하지 않겠는가? 아아, 하지만 나란 사람은 유유자적하게 노닐며 살고, 그저 저 교관님들처럼 아랫도리나 단단하면 만족할 뿐일세!”
옆에서 듣고 있던 이들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소도도의 이야기는 임무에 나서 긴장된 이들의 마음을 풀어 주었다.
학관에 있을 때는 좀처럼 웃을 일이 없건만, 소도도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생도들은 여느 때보다 자주 웃게 되었다.
한편 소도도는 주변의 이들이 웃자 신이 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오시(午时, 11시~13시)가 되었을 무렵, 백 명의 대열은 거대한 산봉우리 아래에 도달해 있었다.
중년 도적의 말로는, 청풍채는 산봉우리 꼭대기에 있다고 했다.
높이가 육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운청휘만이 뭔가를 감지해냈다.
“운청휘, 소도도. 올라가서 청풍채 내에 몇 명이 있는지 조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