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운청휘는 소도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도도, 부탁 하나만 하지. 아무도 모르게 황청풍을 풀어 놓게.”
“운 형제, 자네…….”
소도도가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곧 씨익 웃어 보였다.
“알겠네!”
소도도는 즉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몸을 숨겼다. 그가 음흉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겨 기운을 끌어 올렸다.
펑! 펑! 펑!
황청풍을 제압해나가던 교관 세 명이 동시에 그 기운에 눌려 주춤했다. 황청풍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포위를 뚫었다.
“누군가 몰래 손을 쓰고 있다!”
“어디서 온 놈이냐. 우리 성공학관 사람들까지 습격하다니!”
“도망치게 두지 마라! 다른 산채에까지 소식이 퍼질 것이다!”
세 교관이 전열을 가다듬고 공격을 시작했지만, 또다시 세 갈래의 기운이 솟아나와 교관들을 억눌렀다.
“어느 선배님인지 모르나, 감사하오! 성공학관의 조무래기들아, 본 두령을 기다려라! 이 치욕을 반드시 열 배로 돌려주마!”
황청풍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기에, 절대로 잡히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그가 하늘로 솟구치더니 쏜살같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남은 도적들이 두령이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교관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월경도 아닌 폐물들이 감히 우리에게 덤비다니!”
아무리 탁월한 무위를 지녔어도, 수천 명의 인파에 둘러싸이니 단번에 포위를 뚫을 수는 없었다.
세 교관은 하는 수 없이 달려드는 도적들을 베어 넘기기 시작했다.
“덤벼라!”
“추악한 도적들을 모두 죽여라!”
성공학관의 생도들도 전투에 합류했다.
낭야산의 도적은 모두 살인을 일삼고 이곳까지 이른 자들로, 한 명 한 명이 모두 엄청난 살생을 하여 업을 쌓은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토벌할 뿐이니, 생도들은 살인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명예로 느꼈다.
백성들을 위해 악을 정벌하고 있지 않은가!
소도도는 몸을 숨긴 채 습격을 멈추고 생도들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운청휘는 황청풍이 몸을 날린 즉시 그의 뒤를 쫓았다.
황청풍은 깊고 험준한 산맥을 가로질러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도주하고 있었다.
그의 온 몸에서 분노와 증오심이 줄줄 흘러나왔다.
“성공학관 놈들, 본 두령을 기다리고 있거라. 이 황청풍, 반드시 네놈들을 죽이겠다! 맹세하겠…… 응?”
거듭 다짐을 하던 황청풍이 걸음을 멈추었다.
멀리 언덕 위에 피처럼 붉은 장포를 입은 젊은이가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보통 사람처럼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젊은이는 빈 칼집을 메고, 어깨에 손바닥만 한 고양이를 얹고 있었다.
그러나 도적질로 잔뼈가 굵은 황청풍은 눈앞의 젊은이를 보고 방심하지 않았다. 낭야산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부터, 보통 사람이 아니다.
“아니야. 저자는 익숙한데, 어디서 본 적이 있단 말이야.”
황청풍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 분명 성공학관의 생도들 중에 저 젊은이가 섞여 있었다!
“황실의 사람이더냐?”
운청휘가 바로 공격하지 않고 차분하게 물었다.
“네…… 네놈이 그걸 어떻게?”
황청풍이 눈을 부릅떴다. 두 눈에 공포가 선연했다. 그의 가장 깊은 비밀을, 너무나 단번에 짚어내지 않는가!
“어떻게 알았냐고? 천원왕조가 진정으로 네놈들을 토벌하고자 했다면, 이미 뿌리도 남기지 않았을 터. 지금의 성장이 어찌 가능하겠나?”
운청휘가 차분히 말했다.
“흥, 낭야산은 모두 도적들. 싸우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군대 따위에 비할 수 없다!”
황청풍이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한 사실이다만, 네놈과 시답잖은 말을 나누자는 게 아니다. 어떻게 네놈을 보자마자 알아차렸겠느냐? ……네놈의 몸에 있는 3급 마종이 아니라면!”
황청풍은 저도 모르게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황실의 비호를 받는다는 사실을 지적했을 때도 놀랐지만, 지금보다 더 놀랄 수는 없었다!
머리가 좋은 이들이라면 천원왕조의 병력이 정말 낭야산의 도적들을 토벌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것뿐이라면 황청풍이 주춤거리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마종은…… 추측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황청풍이 마종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천성대륙 전체를 걸쳐 단 7명뿐이었다. 자신에게 직접 마종을 심은 이, 4급 마종을 키우는 다섯 명, 그리고 바로 자신.
그런데 지금, 눈앞의 젊은이가 자신이 마종을 키운다는 사실과 함께 정확한 단계까지 말하고 있었다.
“그…… 그들 다섯을 네놈이 죽였다고?”
운청휘의 말에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는지, 황청풍이 눈을 부릅떴다.
두 사람이 말하는 다섯 명이란, 기령의 기습으로 죽은 5명의 두령들이었다.
운청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후에 있는 자가, 천원학관의 부원장 가규(贾奎)더냐?”
“뭐, 뭣……! 나를 죽이려는 거냐?”
황청풍은 숨이 멎는 듯했다. 운청휘는 일반인과 다름없는 기운을 풍겼지만,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위압감이 있었다.
“아니, 네놈은 날 죽일 수 없다! 가규 주인님께서 이 낭야산에 계신다. 만약 나를 죽인다면, 바로 알아차리실 터! 그때엔 네놈도 살 수 없을 거다!”
“가규? 그자가 감히 나를 당해낼 성싶던가?”
당치도 않다는 듯 말하는 운청휘의 손에는 이미 참천검의 검집이 들려 있었다.
그가 가볍게 검집을 휘두르자, 붉은 기류가 회오리를 이루며 황청풍을 덮쳤다!
콰르릉……!
산맥을 떨어 울릴 듯한 굉음과 함께, 지면이 가볍게 흔들렸다.
이런 공격 앞에서는 월경 6단계의 황청풍이든, 월경 7단계의 무인이든 당해낼 수가 없다.
한편 기령은 운청휘가 검집을 꺼내기 직전에 몸을 날려, 황청풍이 죽는 순간 그의 몸에서 마종을 꺼내 돌아왔다.
“가자. 먼저 돌파하자꾸나!”
“야옹!”
기령이 잔뜩 흥분해 크게 울었다.
“가규는 2급 마종의 소유자. 그가 이곳에 있다면, 여기 있는 마종의 수는…….”
운청휘는 말을 맺지 못했다. 드물게도 그의 마음이 술렁거려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잠시 후, 둘은 몸을 숨길 장소를 찾아내었다.
곧바로 그들이 얻은 마종의 흡수가 시작되었다.
“월경 6단계의 무위로는 나를 월경의 이상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없지, 다만, 성경 10단계는 충분히 되겠군.”
“야옹야옹!”
기령의 눈에도 기대가 가득했다.
성경 10단계, 바로 극경의 경지다. 그 경지에 도달한다면, 그들의 전투력은 배로 늘어날 수 있었다.
그때가 되면 한 손으로 월경 6단계의 무인쯤은 간단히 죽이고도 남았다.
***
극광성, 성공학관의 최심부. 18층 높이의 탑 앞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청휘의 자료를 찾았습니다. 천우성 운가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자질이 출중하여 천우성 제일 기재로 불렸습니다. 다만 3년 전에 실종되었다가 최근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합니다. 한데, 실종된 동안 학관의 정보망으로도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세상에서 증발한 것처럼…….”
탑 아래에 공손하게 선 공휘가 천천히 운청휘의 자료를 읊어 내려갔다. 그의 보고가 끝나고 잠시 후, 탑의 꼭대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공학관에 반기를 들 마음이 없다는 게 확실하면, 모든 것을 바쳐 키울 것이건만.”
“그러나, 원장님…….”
공휘가 머뭇거리다 다시 말했다.
“운청휘와 연단협회(炼丹协会)가 관계가 있는 듯합니다. 그가 단신으로 황성 운씨세가의 운범, 천원학관의 임위를 제거한 일을 모두 연단협회가 숨겨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어떻게 전투를 치렀는지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성공학관에 왔을 당시, 천우성 운가의 대문에 연단협회의 영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이 각이 족히 지났을 무렵, 생각을 마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연단협회는 천원왕조의 본토 세력이 아닌데, 만약 운청휘가 그들과 깊이 연관되었다면…… 성도 시험은 빨리 끝내야 합니다!”
“글쎄. 본좌에게 필요한 시간은 3일이다. 운청휘와 연단협회의 연관성은, 그 후에 본좌가 친히 물어보겠다. 그러나 지금 시급한 것은 천원학관과의 대결! 공휘, 당장 낭야산으로 향하도록. 필요하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운청휘와 소도도의 안전을 확보하라.”
“네!”
명령을 받든 공휘가 채비를 서둘렀다. 문득 그가 머릿속을 스친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원장님, 운청휘의 천부적인 재능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지입니까?”
“알 수 없군.”
그러나 이어지는 목소리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다만 무슨 일이 있든, 운청휘를 붙잡아 두라고 빙백사가 말했다네.”
* * *
운청휘와 기령이 관문을 닫고 빠져나올 때 시간은 이미 밤이 깊었다.
“야옹?”
“지금 돌아갈 필요는 없다. 소도도 혼자서도, 충분히 생도들을 지킬 수 있다.”
고개를 가로저은 운청휘의 눈이 반짝거렸다.
“지금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우선하자꾸나.”
3년 전, 운청휘는 낭야산으로 수련을 떠났기에 이곳의 지형이 익숙했다.
산채 몇 개의 위치도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운청휘는 한 산채를 목표로 잡았다.
“역시 마종의 냄새가 나는구나. 이번 임무는 토벌이라는 구실을 붙였을 뿐…… 성공학관과 천원학관의 충돌이 틀림없다.”
운청휘가 낮게 투덜거리며 기령과 함께 산채에 잠입했다.
규모는 청풍채와 비슷했지만, 운청휘는 쓸데없는 피를 흘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기령을 시켜 마종의 보유자만 습격하라 일렀다.
이 각여 후.
3급 마종 1개, 4급 마종 5개가 그들의 수중에 들어왔다.
운청휘와 기령은 곧바로 산채를 벗어났다.
그들이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성공학관의 토벌대도 산채에 도착했다.
이미 고강한 이들을 잃은 산채는 토벌대 앞에서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 해보고 전멸했다.
“하하하! 세 교관님 덕분에 연속으로 산채 두개가 전멸하였습니다! 과연, 대단한 신위입니다!”
“교관님들의 신위가 세상을 덮었습니다!”
“교관님들만 계신다면 닷새도 채 걸리지 않아 낭야산의 모든 산적을 뿌리 뽑을 수 있겠습니다!”
연속된 쾌거에 생도들은 극도로 흥분해 떠들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교관들을 향해 아첨을 늘어놓았다.
세 명의 교관은 달콤한 아첨에 취해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도적 토벌에 나섰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위가 정말 하늘을 찌를 듯한 도취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직 소도도만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운 형제, 왜 단독행동을?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소도도!”
그때 교관 한 사람이 몸을 돌려 소도도를 봤다.
“대열을 무단이탈한 운청휘가 오늘 내로 돌아오지 않으면, 학관의 명령을 어긴 죄를 물어 처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