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그 시각, 운청휘는 마종을 찾고 있었다.
모든 2급 마종 보유자는 최대 5개의 3급 마종을 심을 수 있다.
천우성에 있었을 당시 운청휘는 3급 마종을 지닌 임위를 죽였고, 지금 낭야산에서 2개의 마종을 손에 넣었다.
이제 가규에게는 2개의 3급 마종만 남아 있을 터.
황청풍의 말대로 가규가 낭야산에 있다면, 남은 3급 마종도 어느 두령의 몸에 있는 게 확실했다.
몇 시진 후. 운청휘와 기령은 또 다른 산채의 어귀에 도달해 안을 살폈다.
평지에 쌓아 올린 산채는 그 면적이 삼십만 평에 달했고, 신식으로 살펴보니 10만 명이 넘는 도적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월경의 기운이 무척이나 많았다.
“야옹?”
기령이 진지한 표정으로 운청휘를 바라봤다.
“이곳에서 진짜 주인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운청휘가 고개를 저으며 물러났다.
“2급 마종이라. 탐이 난다만, 지금의 실력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겠어.”
운청휘가 말한 진짜 주인은 천원학관의 부원장 가규였다.
“그저 월경 9단계의 무위뿐인 줄 알았건만, 그 자체로…… 이성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군!”
바로 그때, 운청휘의 시야에 백 명의 대열이 들어왔다. 성공학관의 토벌대였다!
“역시 세 교관님의 책략이 뛰어나군. 이곳만 멸하면 나머지는 별것 아니니!”
“맞아. 낭야채라는 기둥이 없다면, 나머지 산채는 그저 오합지졸이지!”
먼 거리였지만 운청휘는 그들의 이야기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어리석은 놈들의 따귀라도 때려 주고 싶었지만, 곧바로 인솔 교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낭야산의 도적들이여! 우리는 성공학관의 토벌대다.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나와 투항하라!”
쩌렁쩌렁한 외침에 운청휘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침묵했다.
왜 성공학관은 저 얼간이들을 인솔 교관으로 보냈단 말인가?
낭야채. 낭야산 제1의 산채!
고작 백 명으로 토벌할 수 있는 도적들이었다면 이미 천원왕조가 보낸 군대에 사라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들이 정말 어리석어서 고작 3명의 월경 무인에게 사라지길 기다리고 있었단 말인가?
화가 끓어올랐지만, 운청휘는 차분하게 생각을 이어갔다.
분명 소도도의 부추김이 있었을 터. 그는 왜 교관들과 함께 생도들까지 이 사지로 몰아놓은 것일까.
운청휘의 미간이 구겨졌다.
***
“이 쓰레기들아! 우리 성공학관의 내원 교관님들이 친히 강림하셨거늘, 어서 나와 영접하지 못할까! 우리를 이끄는 교관님들은 모두 월경 6단계의 무인이다! 어서 나오지 않는다면 무릎을 꿇고 자비를 구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낭야채의 두령은 어디 있느냐? 설마 놀라 죽기라도 했느냐? 아니면 우리 교관님들의 신위에 바지를 갈아입으러 갔느냐? 쯧쯧, 두령이란 자가 숨어서 바지나 갈아입는구나! 우리 교관님들이 곧 네놈의 쓸모없는 물건을 조각내어 개 먹이로 줄 터! 이리도 늦장을 부리고 몸을 움츠리니, 네놈들의 두령은 거북이나 다름없는 게 낭아채는 무슨, 차라리 거북채로 부르는 게 낫겠구나! 그래, 거북이니 겁쟁이 무리를 이끌지. 하하하!”
운청휘가 소도도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생각에 잠겨 있는데, 별안간 멀리서 소도도의 욕설이 한바탕 쏟아졌다.
곧바로 침묵이 이어졌다.
성공학관의 생도들도, 낭야채의 사람들도, 심지어 운청휘도 할 말을 잃었다.
전투를 앞두고 양군의 기세를 올리기 위해 욕설을 퍼붓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참으로 드물었다.
무겁게 흐르던 정적은 돌연, 낭야채 저편에서 울려 퍼진 포효로 조각이 났다.
그중 가장 우렁차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월경 6단계의 고수라? 하하하! 이 몸이 산채에 오래 지냈더니, 세 칼에 목숨을 취하는 도홍(屠洪)의 이름을 잊었구나!”
“흐흐. 거북이도 분수는 아는구나! 그래, 오합지졸이 된 지 오래가 아니냐!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두고, 어서 나와 죽을 준비나 해라! 우리 3명의 교관님이 기갈이 들었으니, 네놈을 베어 갈증을 달래야겠다!”
소도도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래, 좋다! 나 도홍이 오늘 세 놈의 월경 6단계 무인이…… 정녕 이 검을 받아낼 수 있을지 봐주겠다!”
분노한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낭야채 쪽에서 한 그림자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도적 토벌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소도도, 이 멍청한 것! 닥치지 못할까!”
“소도도, 네, 네놈이 꿍꿍이가 있으렷다!”
“소도도, 누가 남을 도발하라고 허락한 게냐!”
세 교관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낭야채의 두령이 도홍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그들은 대항할 의지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세 칼에 목숨을 취하는 도홍. 그는 20년 전 천원왕조에 악명을 떨쳤으며, 그 당시 이미 월경 6단계의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무위가 어느 경지에 도달했을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세 교관님, 생도는 억울합니다. 오는 내내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고작 도홍입니다! 세 교관님의 하늘을 찌르는 신위라면 그를 백팔십 번은 족히 죽이실 수 있지 않습니까!”
소도도는 뻔뻔스럽게 아첨하며 도홍을 도발했다.
“하하하, 언제든지 나를 백팔십 번 죽인다고? 좋다!”
순식간에 도홍의 몸이 세 교관의 맞은편으로 왔다.
도홍이 성난 눈길로 세 교관을 죽일 듯 노려봤다.
“이 어르신이 오랫동안 화가 난 적이 없었거늘, 오늘…… 네놈들을 모두 죽여주마!”
“선배, 오해올시다!”
“선배님, 우, 우리는 당신이 낭야채의 두목인 것을 몰랐소. 알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요!”
“선배님, 성공학관의 체면을 봐서, 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습니까?”
세 교관은 고개를 조아리며 사죄하기 급급했다.
그들이 정녕 위세를 떨치며 으스대던 교관들과 같은 인물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모든 생도가 그 광경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교관님들, 저 거북이 따위에게 겸양이라뇨! 교관님들은 하늘을 찌르는 신위가 있지 않습니까! 손가락 하나로 저 거북이를 죽이실 수 있으면서, 이 무슨 겸손이랍니까!”
소도도가 말하며 도홍을 봤다.
“못난 거북 놈아.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죄를 빌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세 교관님의 진노가, 네놈뿐만 아니라 가문에도 닥칠 거다!”
“후후후!”
도홍이 극도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면서도 광풍과도 같은 콧김을 뿜어냈다.
“죽어라, 네놈들 모두 죽는다!”
도홍이 쥐고 있던 곡도(弯刀, 구부러진 칼)가 스산한 빛을 냈다.
그의 그림자가 허공에 흩어지더니, 날려 보낸 곡도의 궤적을 따라 교관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
우르릉……!
도홍이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맹렬한 폭음이 일었다.
자욱하게 먼지가 일어난 대지는 곳곳이 파이고 깎여 나갔다.
세 교관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제각기 부상을 입으며 물러났다.
이 광경을 본 소도도는 마침내 흡족해하고 있었다.
“세 얼간이들아. 치도살인의 계로는 이 몸을 당할 수 없다.”
그러나 소도도가 곧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구만! 운 형제도 이걸 봤어야 했는데. 에휴, 우리 운 형제…….”
아쉬워하던 소도도의 눈에 멀지 않은 곳에서 날아오는 붉은 그림자가 비쳤다.
그가 양손을 흔들며 반갑게 외쳤다.
“하하하, 운 형제, 우리가 어제 청풍채에서 당한 치욕을 방금 갚았다네!”
소도도가 의기양양한 웃음을 터트렸다.
“머리를 조금 썼지. 도홍의 화를 부추겨서, 세 얼간이에게 목숨을 걸게 했네!”
“……낭야채가 어떤 곳인지 모르나. 어찌 마음대로 그 얼간이들과 생도들을 이곳으로 끌고 왔지?”
운청휘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헉, 운 형제. 오핼세, 오해야!”
소도도가 급히 손을 내저었지만 운청휘가 말을 이었다.
“토벌은 그저 구실. 내막은 성공학관과 천원학관의 전투일 뿐, 낭야산은 그런 천원학관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라도 여기선 몸을 지키는 것만으로 벅차!”
“우리 학관에서 무력이 가장 높은 건 우리가 아니라…… 공 원장이 아닌가!”
소도도의 대답에 운청휘가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공휘? 그가 왔다고?”
그때, 수백 장 멀리 허공에서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색의 점 하나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가규. 이 어르신이 왔는데, 친히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공휘, 오랜만이군!”
쉰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리며,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산채 안에서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음침한 인상과 골병이 든 듯 한 안색이었으나, 두 눈이 무섭게 번득이고 있었다.
공휘의 출현은 운청휘에게도 뜻밖이었다. 운청휘의 계산이 빠르게 시작되었다.
공휘가 가규를 끌어낸다면, 낭야채의 마종은 운청휘의 것이 된다.
“도도! 부탁하지!”
운청휘가 소도도를 보며 말했다.
“운 형제, 나더러 또 교관을 습격해서 도홍이 도망칠 기회를 주라는 건 아니라고 믿네!”
부탁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반응한 소도도가 잠시 후 덧붙였다.
“그렇다면 내가 손 쓸 필요도 없을거네! 그 얼간이들은 일각도 안 되어 도홍에게 죽을 테니까!”
운청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도홍을 인적이 없는 곳으로 유인을 부탁하지.”
소도도가 얼굴에 난색을 표했다.
“그건 어려우이. 도홍은 지금 그 얼간이들을 찢어 죽일 것처럼 보이는데. 어찌 그를 유인하겠는가!”
“가능해!”
운청휘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무력을 쓸 필욘 없어. 말솜씨면 충분하다.”
소도도의 눈이 대번에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 운 형제. 자네도 내 말솜씨가 좋다고 여긴 건가?”
운청휘가 말하기도 전에 소도도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하하하, 운 형제가 나를 이리도 믿어 주니 나도 운 형제를 실망시킬 수 없지!”
소도도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가 도홍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온 산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도홍, 이 천한 놈아! 이 몸이 칼을 연마하라 하였거늘 어찌 검을 연마하고, 상검을 연마하지 말라 했더니 하검을 연마하느냐!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달리려 하는 재주가 참으로 안쓰럽구나! 이 몸의 허락도 없이 칼을 쥐고 무인이라 하다니, 무기가 아깝다! 그 뻔뻔함에 하늘도 치를 떨 지경이구나!”
소도도의 욕설에 가규와 공휘마저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도홍 쪽을 보며 혀를 찼다.
특히, 이때 가규는 소도도를 눈여겨보았다.
다음에 저자를 마주하면,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고 곧바로 죽이겠다고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