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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67화 (67/430)

제67화

선계의 선제가, 겨우 월경 9단계의 범인에게 당해 마종을 품게 되었으니, 그 굴욕과 분노를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죽인다. 가규를 죽일 것이다. 운청휘의 머릿속에 깊은 분노와 증오가 새겨졌다.

가규만이 아니라, 천원학관, 그 배후에 있는 황실의 일원 전부를…… 자신의 손으로 없앨 것이다.

“야옹!”

“가규가 마종을 심었으니, 당장 빼내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내 몸의 무위는……, 그놈에게 넘어갔겠어.”

운청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공휘가 왔군.”

운청휘가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니 청색 그림자가 이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앞으로 사흘간 혼수상태를 유지하며 신식으로 마종을 연화해야겠다. 기령, 날 대신해 사람을 찾아 다오. 화살 한 개만 달라고 하면 된다.”

***

3일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운청휘는 3일째 오후에 정신을 차렸는데, 심신의 소모가 극심해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식이 없는 동안 그의 몸은 쉬지 않고 마종을 흡수하고 있었다.

“운 사제, 깨어났구나!”

별안간 천막이 걷히더니, 한 여생도가 뜨거운 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아직도 낭야산인가?”

운청휘가 힘없이 물었다.

“맞아. 그동안 공 부원장님께서 대열을 인솔하고 도적을 토벌했어. 이변이 없다면 공 부원장님께서 돌아오시는 즉시 학관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물을 든 생도가 천천히 다가와 운청휘의 앞에 서더니 덧붙였다.

“공 부원장님께서 너를 돌보라고 하셨어.”

운청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3일 전, 공휘의 도착을 알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동시에 기령에게 심부름을 보낼 수도 있었다.

“소도도는?”

운청휘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공 부원장님과 함께 도적 토벌하러 갔어.”

생도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능설(凌雪), 운청휘는 깨어났느냐?”

천막 밖에서 몇 사람의 발소리가 울리더니 중년인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교관님들! 운 사제가 방금 깨어났어요!”

능설이 외치자 곧 천막이 열리며 세 명의 교관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의 손에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이 들려 있었다.

“하하, 운청휘. 참 잘 자는구나, 사흘이나 자다니!”

비웃듯이 내뱉은 교관이 빠르게 능설의 뒤로 이동해, 혈을 가볍게 짚어 그녀를 혼절시켰다.

“운청휘, 이 약을 마셔라!”

약을 든 교관이 앞으로 몇 걸음 걸어왔다.

“배려는 감사하나, 몸은 회복되었으니 필요 없습니다.”

운청휘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하하, 이것은 고본배원(固本培元) 약초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을뿐더러 마시면 몸이 강건해지고 무위도 증가시키지!”

약을 든 교관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농이 지나칩니다. 정말 고본배원의 약초라면 어찌하여 육엽식심초(六叶蚀心草)가 들어 있습니까?”

운청휘가 약을 든 교관에게 말했다.

“그…… 그걸 어떻게?”

약을 든 교관의 얼굴색이 변했다.

“됐어. 쓸데없는 말 하지 말게. 강제로 입에 넣으라고 말했잖아. 이런 수법을 쓰지 말고 녀석이 스스로 마시게 해야할 거 아닌가.”

능설을 붙잡고 있던 교관의 말에, 멀찍이 있던 교관이 비웃음을 흘렸다.

“어서 마셔라, 운청휘! 다음 생에는 주제넘은 짓을 하지 않도록 사람을 알아보는 식견을 가지거라!”

“알아봐야 할 사람이라……. 상관우를 말하는 겁니까.”

운청휘가 말하는 사람을 쳐다봤다.

“그렇다!”

“운청휘 네놈은 스스로 죽음을 재촉한 거다. 하필 상관 소가주를 건드리다니!”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나 아느냐? 성공학관의 3대 성도 중 한 명인 데다, 황성 4대 가문 중 하나인 상관 가문의 소가주이시다! 설령 천원왕조의 태자라도 상관 소가주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거늘!”

세 명의 인솔 교관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됐어.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공휘 그 늙은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네놈은 이 독약을……, 마셔 줘야겠다!”

세 교관은 아예 ‘독약’이라며 적나라하게 말하고 있었다. 체면을 구기는 일이었지만,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 말을 들은 운청휘가 죽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테니. 운청휘가 스스로 먹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먹일 작정이었다.

“일 다경만 기다려 주십시오.”

운청휘가 양보하듯 말했다.

“어차피 죽는다면 그동안이라도 인생을 되돌아보며, 왜 상관 소가주의 눈 밖에 났는지 생각해 보려 합니다.”

“하하하, 참 재밌구나! 곧 죽을 텐데 일 다경이라도 살아 보려 하는군!”

“하하하, 우리가 인솔을 맡았으니, 소원대로 해주자고. 이런 작은 요청쯤이야 너그럽게 봐줌세!”

“약은 이곳에 두마. 일 다경 후에 알아서 마시거라. 괜한 수작을 부리면 네놈이 약을 마시기 전에 흠씬 때려주겠다!”

세 교관은 낄낄거리며 천막을 나섰다.

그들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운청휘가 수정처럼 투명한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도홍의 3급 마종이었다.

후우우…….

운청휘는 정신을 집중하고 마종을 마저 흡수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의 두 눈이 가느다랗게 뜨여, 때를 기다리는 용을 연상케 했다.

호랑이도 개들에게 물리는 일이 종종 있다. 지금 운청휘가 그 처지다.

가규가 마종을 심었을 때, 세 교관이 독약을 들고 와 마시길 강요하고 있었다.

운청휘의 굴욕감이 끝에 달했다. 하루빨리 무위를 회복하는 수밖에 없다.

선계든, 인계든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운청휘는 여전히 선계를 지배했던 선제로서, 이 굴욕을 계속 감당할 생각이 없었다.

호랑이가 개에게 물려도, 용이 늪에 빠져도 절대로 조무래기 따위에게 능욕당하지 않는 법!

제대로 된 수련은 점진적인 순환을 거쳐야 한다. 무위의 회복도 마찬가지나, 지금의 운청휘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 일 다경.

무엇보다 세 교관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휘몰아치니, 살기가 폭발할 듯 들끓었다.

운청휘가 거침없이 흡수하면서, 마종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주어진 시간의 절반이 지나자, 어느새 마종은 절반만 한 크기가 되었다. 투명한 마종이 점차 혼탁하게 물들어가다, 마침내 시간이 되었을 땐 빈 껍데기만 남았다.

그 순간, 운청휘의 눈에서 으스스하고 시린 빛이 하늘을 내려치는 벼락처럼 반짝였다. 그의 주위로 잡힐 듯 말 듯 한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외부의 영력이 실체화되어 형성된 기운이었다.

마침내, 그의 무위가 월경까지 회복되었다!

성경 10단계(극경)와 성경 9단계의 거리가 산 하나를 두고 있다면, 월경 1단계로 회복한 운청휘는 성경 10단계와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를 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하하, 운청휘, 일 다경이 다 되었다! 어서 독약을 마셔라!”

후련하다는 듯 큰 웃음소리가 들리며, 곧바로 세 교관이 천막으로 들어왔다.

***

세 명의 인솔 교관이 들어왔을 때.

운청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그의 몸을 휘감은 기류가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음, 방금까지 시름시름 앓더니 어찌 스스로 일어서있지?”

한 명이 낌새를 눈치 챈 듯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설마 독약을 마시고 잠깐 정신이 맑아진 건가? 독약이 그대로인데?”

“자네 둘 한눈 팔지 말게. 어차피 곧 죽을 놈이야. 앓든 회복되었든 무슨 상관인가?”

그 사람은 냉소를 지으며 운청휘를 바라봤다.

“시간이 되었다. 어서 마셔라! 시체 정도는 거둬 주지.”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나는 시체를 남길 생각이 없다만.”

운청휘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가운데에 있는 사람에게 걸어가 손을 잡았다.

“죽음을 재촉하는 게냐. 곧 죽을 놈이 반항하다니……!”

손을 붙들린 자는 대번에 주먹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제대로 내뻗기도 전에 다른 손마저 운청휘에게 붙들렸다.

빠득!

뼈가 으스러졌지만 운청휘는 멈추지 않았다.

빠드득…….

팔의 모든 뼈가 산산이 조각나며 끔찍하게 뒤틀렸다.

“아……!”

그는 팔이 뒤틀리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으나, 비명이 멈추기도 전에 운청휘는 손을 뒤집어 그자의 목을 조른 채 들어 올렸다.

“네놈들은 이 몸에게 굴욕감과 분노를 느끼게 했으니, 죽은 후에 영광인지 불행인지 생각해 보도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운청휘는 내동댕이쳤고, 그자가 부딪히면서 천막이 요란하게 찢어졌다.

퍼억!

운청휘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그자를 놓치지 않고 직격해 몸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천막 안으로 살점과 피가 한 차례의 장마처럼 쏟아졌다.

“이제 네놈들 차례군!”

“이…… 이럴 수가!”

남은 두 사람은 황망하게 피 세례를 맞고 있었다. 세 교관 모두 월경 6단계의 무인이건만, 눈앞에서 한 명이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숨을 거두었다. 시체조차 없이!

“어떻게 된 건가! 운청휘가 갑자기 이렇게 강해진다고? 중상이든 아니든 그저 뒷배로 들어온 외원 생도인데……! 어떻게 교관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나…… 나도 모르겠네. 운청휘가 수를 쓰지 않았는데 이렇게 강한 줄 어찌 알겠나!”

두 사람은 완전히 당황한 듯 계속해서 뒷걸음질 쳤다. 그중 한 명이 덜덜 떨며 말을 내뱉었다.

“우, 우리가 착각한 걸지도 모르네. 우, 운청휘는 외원 생도가 아니라 상관 소가주처럼 기재 반의 생도일 수도 있네!”

“기재 반?”

다른 한 명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더니 뭔가를 깨달은 기색을 보였다.

“사…… 상관우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질 수 있는 건, 여…… 역시 기재 반밖에…… 운청휘는 평범한 생도가 아니었군!”

“우리가 미련했어! 큰 실수했네!”

“상관우에게 아첨하기 위해 운청휘를 건드려서는 안 되었어……. 운청휘뿐 아니라 소도도도 기재 반일지도 모르지!”

“신선과 싸우면 평범한 사람이 죽지……! 그들이 아무리 어떻게 싸워도 우리가 끼어들 자격이 없는게 아닌가!”

“아니, 그뿐만이 아니야. 운청휘에게 시간을 주지 말았어야 했어!”

말을 하며 두 사람은 점점 후회에 짓눌렸다.

초조해진 그들은 운청휘에게 용서를 구하는 방법 외에는 떠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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