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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71화 (71/430)

제71화

“황성 운가의 방계 자제 운비라, 내 차례가 아닌 게 아쉽군.”

운청휘가 아쉬움에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화와 운비는 월경 2단계로, 무위는 동등하지만 수련한 무공과 사용하는 병기는 운비의 수준이 더 높았다.

다만 이화는 월경 2단계의 극까지 수련했으니, 그가 원한다면 월경 3단계에도 도달할 수 있을 터.

만약 운비가 무공과 무기로 이화를 압도할 수 없다면, 이화를 상대로 세 번의 공격도 버텨내지 못할 게 뻔했다!

“……음?”

별안간 운청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신식이 운비와 이화의 사담을 포착해냈다.

“이화, 이번 대항전의 10위 안에 들어 상금을 받으려고 한다지? 내게 패해 준다면, 두 배의 금액을 주마!”

“두 배라고? 좋다!”

두 사람은 서로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합의를 마치고 바로 대결에 들어갔다.

삼십 합을 겨룬 끝에 ‘아쉽게도’ 이화가 패했다.

구경꾼들은 예상했다는 듯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승자는, 역시나 운비야!”

심판 막운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결과 발표를 잠시 미루었다.

곧 그가 운비를 짧게 칭찬한 후 결과를 발표했다.

“8번 승리!”

월경 5단계의 막운이 두 사람이 대결 전에 나눈 대화를 어찌 모를까.

다만 어떤 음모를 꾸미든, 그는 심판으로서 결과를 발표했다.

운청휘의 대전운은 좋은 편이었다. 상대는 고작 월경 1단계, 모두가 당연하다는 시선을 보낼 때 운청휘는 곧바로 상대를 제압했다.

운청휘야말로 이번 본선의 복병이었다. 예선을 치를 때부터 그와 동급의 생도라도 그와 30합 이상을 겨루지 못했으니.

그보다 무위가 낮은 생도는 공격 한 번이면 단번에 패배가 결정되었다.

운청휘를 주시하고 있던 일부 호사가들은 운청휘의 자료를 찾아냈다.

18세, 월경 2단계.

“운청휘, 익숙한 이름인데…….”

무대 아래에 있던 운비가 운청휘를 보며 잠시 사색에 잠겼다.

별안간, 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설마 천우성 운가의 운청휘?”

얼마 전 황성의 운가에 다녀온 운비는 운청휘의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운청휘는 천우성 운가의 후계자이지만, 얼마 전 천우성 운가는 황가운가(皇家云家)에 등을 돌렸다.

무위와 기타 자료도 적혀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저 이름을 들은 기억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었다. 그 역시 황성 운가의 방계 구성원일 뿐이기에, 알아낼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었다.

운청휘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운비는 옆의 생도에게 넌지시 속삭였다. 그 생도가 고개를 끄덕이며 운청휘에게 다가갔다.

“운청휘, 누가 자네에게 천우성 운가에서 왔는지 물어보라고 시키더군.”

운청휘가 그의 곁을 지나가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러하다.”

이날, 총 150경기가 치러졌고, 300명 중 절반만이 다음 경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150명의 생도가 모이자, 막운 심판이 곧바로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8번 운비와 75번 운청휘!”

***

보통 막운은 번호만 불러 경기의 시작을 알렸으나, 이번에는 번호와 함께 운비와 운청휘의 이름을 불렀다.

“좋은 경기겠어. 저 운비가 복병 운청휘를 만났잖아?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니까.”

“헤헤, 그래도 승자는 운비가 아닐까. 운비는 이화도 이겼잖아. 운청휘가 비록 복병이어도 그동안 상대가 비교적 평범했었어.”

“맞아. 운청휘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운이 많이 따랐어. 운비는 실력만으로 온 거고.”

구경하는 생도들이 제각기 경기의 결과를 점쳐 보고 있을 때, 무대에 올라온 운비가 막운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막 교관님. 후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운비와 운청휘의 대전은 운비가 사전에 막운에게 부탁해 얻어낸 결과였다.

운청휘가 무대에 오르길 기다리며, 운비는 냉소와 함께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지족(支族)의 배신자여, 이 몸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는 게냐!”

“지족의 배신자?”

“무슨 일이야. 운비가 왜 운청휘에게 지족의 배신자라고 하는 거야?”

“설마, 황성 운가가 다른 성에 분족(分族)을 두고 있다고?”

“그렇다면 운비가 배신자라고 하는 건 무슨 이유인 거지?”

운비가 일부러 목소리를 드높였기에, 무대 주위에 있던 많은 생도가 그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이제 알겠구만! 운청휘의 천우성 운가가, 운비가 있는 황성 운가를 배신한 거야!”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떠들었는데, 어제 운비의 부탁을 받아 운청휘에게 질문했던 생도다.

“뭐라고요…….”

“천우성 운가가 겁도 없이 황성 운가를 배신한 거야?”

“들어 본 적 있어! 보름 전에 천우성 운가가 배신했다더군. 그래도 운청휘가 천우성에서 왔을 줄이야!”

“감히 황성 운가를 배신하다니, 천우성 운가는 지금쯤 멸문했겠지?”

“아니야! 여전히 건재해. 하지만 황성 운가가 선포하지 않았나. 석 달 후에는 반드시 천우성 운가를 멸문시키겠다고.”

“그러면 두 달 반밖에 안 남았잖아!”

연단협회는 천우성의 일을 철저히 감춰 두었다.

외부로 새어 나간 소식은 꽤 단편적으로, 천우성 운가의 배신만이 알려졌을 뿐 이유와 경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더욱이 황성 운가가 곧바로 나서지 않고 석 달의 시간을 두었는지…… 외부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황성 운가의 방계 자제인 운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운청휘의 이름만 기억에 남아 있었을 뿐, 무위며 성별도 잊은 지 오래였다.

“막 교관님, 부탁이 있습니다!”

운비가 심판 막운을 보며 모두의 앞에서 말했다.

“저와 운청휘의 대결에서…… 생사결을 허가해 주십시오! 운청휘의 천우성 운가는 한낱 분가이면서도, 도리를 잊고 공공연하게 황성 운가를 배신했습니다! 저는 황성 운가의 일원으로서 운청휘라는 반족(叛族)의 후계를 없애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운비의 말은 무대 주변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순간 소란스러웠지만 구경하던 생도들은 곧 운비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의 요구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가문을 위해 반족의 후계를 제거한다.

이는 도덕적으로도, 명분이 충분했으므로.

다만 운비를 지지하면서도 왜 막운이 운비의 요청을 들어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대항전인 만큼 규정은 엄격했다. 부상을 입혀서도 안 되며, 생사결은 당연히 금지되었다.

주변의 생도들은 막운의 거절을 예상하며 시선을 집중했다.

묵묵히 운비의 말을 듣고 있던 막운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생사결은 대항전의 규칙에 어긋난다. 자네의 상황은 알겠지만, 자네만을 위해 전례를 깰 수는 없지. 그런데도 하고자 한다면, 운청휘의 동의가 필요하네.”

막운이 말을 끝내고 운청휘를 봤다.

“운청휘, 생사결에 동의하는가?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네. 노부가 잠시 시간을 주지. 그 후에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동의로 여기겠네.”

무대 주위의 생도들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운청휘를 주시했다.

그러나 그들은 운청휘가 동의하지 않을 거라 추측했다.

당연하게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실력이라면 생사결이 되는 즉시 운청휘가 죽지 않겠는가.

막운이 제시한 시간이 쉼 없이 흘러갔지만, 운청휘는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승낙도 거절도 아닌 그의 태도에 구경하던 생도들은 언제 그가 입을 열지 고대하고 있었다.

“운청휘, 시간이 되었다. 반대하지 않았으니, 이 대결에서…… 생사결을 허가한다!”

시간이 지나자 막운이 모두의 앞에서 선포했다.

운청휘가 침묵을 지키는 내내, 막운이 월경 5단계의 기세로 운청휘를 억누르고 있었다는 건 아무도 모를 터였다.

월경 2단계의 무인이 어찌 월경 5단계의 기세를 이겨내고 입을 열 수 있을까.

다만 운청휘는 그 기세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고, 내내 침묵을 유지한 건 그저 대세를 따라 생사결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이 또한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운청휘, 지족의 배신자 주제에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

운비가 냉소를 흘리며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을 타고 소름 끼치는 한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운비가 한광검(寒光剑)을 사용했어!”

“왕급 상품의 보검이잖아! 이거, 결과가 너무 뻔하구만!”

각자의 의견이 분분할 때, 운비는 이미 몸을 날려 운청휘를 향해 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운청휘는 무대에 올라온 이후부터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장검이 지척에 도달해도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죽어라!”

운비가 흉포하게 소리칠 때, 한광검의 검 끝이 운청휘의 코앞에 도달했다. 이렇게 가까우면 절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때, 운청휘가 천천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운비의 한광검이, 운청휘의 중지와 검지만으로 가볍게 붙들렸다.

꽈당!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한광검이 운비의 손에서 벗어났다.

운청휘는 두 손가락으로 방향을 바꿔, 한광검을 공중에서 뒤집었다. 어느새 검 끝이 운비를 겨누고 있었다.

운청휘의 새끼손가락에서 가느다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펑 소리와 함께 한광검의 칼자루를 내리쳤다. 순식간에 한광검이 앞으로 밀려 나갔다.

푸욱!

검 끝은 운비의 아랫배를 파고들었다.

“아……!”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에 운비가 비명을 내질렀다. 왕급 상품의 보검인 한광검은 배추라도 썰듯이 그의 몸을 가르고 있었다. 그의 비명만으로는 한광검을 멈출 수 없었다.

아랫배를 찔러 들어간 한광검이 순식간에 그의 등을 뚫고 나왔다.

쿵! 쿵!

그 충격으로 운비가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5보, 6보, 7보…….

운비가 뒷걸음질 칠수록 한광검은 먹이를 문 맹수처럼 그의 몸을 파고들었고, 어느새 칼자루까지 아랫배에 닿으려 했다.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운청휘가 두 손가락만으로도 한광검을 잡아낸 일도 충격이었지만, 한광검이 방향을 틀어 주인을 찌를 줄은……!

이 모든 일이 몇 호흡 만에 일어나니 사람들은 반응할 틈도 없었다.

“운비는 실력이 만만찮잖아? 이화도 격파했는데, 저렇게 간단히 운청휘에게 패배한 거지?”

“게다가, 운청휘는 몸도 움직이지 않고 시종일관 두 손가락만 사용했어.”

공포에 질린 생도들이 수군거리자, 심판 막운이 즉시 소리쳤다.

“운청휘, 자네가 이겼으니, 어서 운비를 놓아주게!”

운청휘는 못 들은 척 한광검이 운비의 몸을 파고 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막 교관님, 살려 주십시오……!”

운비는 점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감을 느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생도들 앞에서 막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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