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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78화 (78/430)

제78화

“운 사형, 저……, 저도 본선에 진출했어요!”

생도들 사이에서 두리번거리던 능설도 운청휘를 발견하고 반갑게 외쳤다.

예선에 참가한 인원은 모두 5천 3백 명. 그중 3백 명만이 본선에 오를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본선 진출자는 내원에서도 300명 안에 드는 실력자임을 의미한다.

예선이 마무리되며 하루가 저물고, 본선은 다음 날 바로 열리게 되었다.

심판 막풍이 무대에 올랐다.

“본선은 예선전과 비슷하게 치르겠다. 본선 참가자들은 모두 번호를 뽑고, 노부가 무작위로 부른 번호가 대결하는 방식이다. 단, 본선은 하루 최대 10경기만 치러지며, 총 보름이 소요된다. 즉, 보름 뒤 최종 순위전이 열린다.”

막풍이 규칙을 설명하자, 본선에 진출한 생도들이 모두 번호를 뽑았다.

운청휘의 번호는 8번, 소도도는 18번으로 결정되었다.

“운 형제, 내원 대항전은 만만치 않다네. 월경 5단계의 기운을 벌써 여러 개나 감지했으니!”

번호 뽑기가 끝나자 소도도가 운청휘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무위가 월경 5단계에 이른 생도는 상급 생도가 될 자격을 얻는다.

그러나 어떤 참가자는 일부러 경지에 오르지 않다가, 시합에 참여한 후 5단계를 돌파하기도 했다.

그 예로 미아가 있다. 그녀의 진짜 무위는 월경 6단계지만, 정예 학관에 들고 싶지 않았는지 월경 4단계로 무위를 알려 두었다.

닷새는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운청휘와 소도도의 순서는 오지 않았고, 닷새째 되던 날 오후에 능설의 차례가 왔다. 그녀의 상대는 예선에서 월경 5단계를 돌파한 생도였다.

“내원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는 미녀 능설을 만났으니, 영광일세!”

상대는 능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인사치레를 건넸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음심은커녕 투지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빠르게 시작되었다. 월경 5단계의 생도가 주먹을 내지르며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를 분출했다.

능설은 피하지 않고 옥장(玉掌)을 펼쳐내었다.

“운 형제, 능설 사매의 상대는 만만치 않구만! 젠장, 월경 5단계라니!”

비록 소도도는 운청휘처럼 신식으로 무위를 파악할 순 없지만, 그도 무인이다. 분출하는 영력을 통해 상대의 무위를 알아낼 수 있었다.

“걱정 말도록. 능설의 재능은, 기재 반의 생도들과 견줄 수 있는 경지이니.”

운청휘는 간단하게 답하고 생각에 잠겼다. 능설이 진선혈맥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다른 이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기를 본다면 능설은 이미 삼성 기재. 진선혈맥이 내내 자극을 줄 테니, 언젠가는…… 구성 기재가 될 터!’

우르릉……!

능설의 옥장이 상대의 주먹과 맞부딪혔다.

그 여파가 사방에 강렬한 진동을 일으켰고, 월경 5단계의 상대는 그대로 밀려 나갔다.

쿵쿵…….

20보 가까이 밀려 나간 후에야 겨우 후퇴를 멈춘 상대가 이를 악물었다.

“말도 안 돼……!”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월경 5단계의 무인이 고작 한 방에 이런 꼴불견을 보이다니!

“질 수 없다. 일부러 무위를 억누르고 여기까지 왔는데……! 올해의 대항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월경 5 단계의 남학도가 얼굴에 독기를 품더니 능설을 향해 폭격을 퍼부었다.

“……음?”

무대 아래에 있던 운청휘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는 신식으로 상대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알아보았다. 검게 변색된 은침이다.

“운 형제, 왜 그러는가?”

곁에 있던 소도도가 운청휘의 안색이 변한 걸 알아차리고 그의 시선을 좇았다. 소도도 또한 은침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젠장, 죽고 싶은 거냐. 감히 능설 사매에게 수를 쓰려 하다니!”

화가 치민 소도도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머리카락처럼 가늘지만 맹렬한 기운을 품은 영력이 무대로 향했다.

펑!

심판 막풍이 별안간 소도도가 날린 영력을 제지하고 나섰다.

“막풍, 늙어서 눈이 멀었습니까? 저 자식이 은침을 들고 있잖습니까?”

욕을 퍼부은 소도도가 무대 위로 훌쩍 뛰어올라 월경 5단계의 상대를 날려 버렸다. 그가 들고 있던 은침은 소도도의 영력으로 무대 위에 둥둥 떠 있었다.

“능설 사매를 죽이려고 하다니, 살고 싶지 않나보군!”

소도도가 입을 삐죽거리며 막풍을 노려보았다.

“막풍, 당신이라면 저 은침을 보고도 남았을 텐데, 왜 말리지 않았습니까? 이 몸이 나설 때 왜 막은 건 또 뭐고!”

소도도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막풍이 조금이라도 헛소리를 하면 곧바로 달려들 기세였다.

갑자기 난입한 소도도에게 많은 시선이 쏠렸고, 그의 앞에 떠 있는 검은 은침 또한 이목을 끌었다.

“소 사형, 이 은침이 44번의 것이라고요?”

능설이 물었다. 44번은 그녀의 상대인 월경 5단계의 생도였다.

“맞아! 막지 않았더라면, 은침이 사매의 손바닥을 찔렀을 거네!”

소도도가 짧게 설명하더니 결국 심판 막풍에게 달려들었다.

“막풍, 당장 설명하는 게 좋을겁니다.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 여기서 당신을 때려죽이겠어!”

소도도가 노골적으로 막풍을 협박했다. 그는 이미 월경 5단계에 도달한 기재다. 보통의 월경 9단계라면 너끈히 격파할 수 있고, 월경 8단계의 막풍쯤은 한 방에 죽일 수 있었다.

많은 이들 앞에서 협박을 들으니 막풍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막풍은 성을 내기는커녕, 몸을 낮추었다.

“노부는 은침을 발견하지 못하였네.”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로 슬쩍 넘어가려고?”

소도도가 코웃음을 치더니 은침을 조종해 막풍의 앞에 접근시켰다.

“이렇게 하시죠. 이 은침으로 한번 찔러 봅시다. 아무 변화가 없다면 이번 일은 넘어가고, 만약 일이 생긴다면……, 이 몸이 바래다주지요.”

다들 막풍이 크게 화를 낼 줄 알았다. 생도가 교관을 위협하고 있으니 마땅한 예측이었지만, 막풍은 선선히 손을 내밀었다.

곧 바늘이 들어간 자리에 핏물이 비치더니 흘러나온 피가 무대 위로 두 방을 떨어졌다.

“피가 변색되지 않았군. 독은 없어 보이니, 이번엔 넘어가겠습니다!”

소도도가 막풍에게서 눈을 떼고 무대 아래를 훑어보았다.

“모두 들으시게나! 능설 사매는 이 몸의 동생이나 다름없으니, 감히 수작을 부린다면……, 이렇게 될 거네!”

소도도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손끝에 영력을 실어 쏘아냈다. 소도도의 영기는 빠르게 날아가 44번의 영해를 관통했다.

모두의 앞에서, 44번이 폐인이 되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무대에서 내려가는 소도도를 보며 주위의 생도들이 앞 다투어 말을 쏟아냈다.

“대체 소도도는 뭐 하는 생도이길래 저렇게 날뛰지? 모두의 앞에서 무위를 폐할 뿐 아니라 심판마저 위협하다니!”

“하지만 무위가 너무 강해! 44번의 경지에 반항도 못 했으니!”

“심판도 꾸짖기는커녕, 은침을 손에 찌르는 걸 방관하기 까지 했잖아…….”

내·외원을 막론하고 모든 생도가 소도도를 주목하고 있었다.

소도도는 쏟아지는 시선에도 태연하게 무대를 내려가 운청휘의 옆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그가 머뭇거리더니 운청휘에게 속삭였다.

“운 형제, 저 은침은 분명 독이 있는게 확실한데, 왜 막풍은 아무 일도 없는 겐가?”

“궤령산(溃灵散)이니까. 흡수되는 순간 영력을 일으키지 않다면 무해하다.”

운청휘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침을 찔렀을 때 막풍은 영력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 이상도 없었을 테지.”

소란이 가라앉고 한 시진이 흘렀다.

“다음은 8번과 50번이다!”

5일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차례가 왔다. 운청휘는 자신의 번호인 8번을 힐끗 내려다보고 무대로 향했다.

“드디어 저 녀석이 오르는구만!”

운청휘가 무대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아봤다.

“8번이 그렇게 유명해? 어떻게 다들 저 8번을 아는 거지?”

한편, 운청휘를 잘 모르는 이들은 의구심을 품으며 주위의 생도들에게 물었다.

“내원에서는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외원에서 그를 모르는 이가 없어!”

“저 8번은 내원 대항전 본선까지 온 유일한 외원 생도라고!”

“게다가 유명한 이유가 하나 더 있지. 그와 맞선 상대는 죄다 무대에서 떨어져서 패배했다는 거야.”

“그게 사실인가. 외원 생도가 상대를 무대에서 떨어뜨려서 본선까지 왔다고?”

“자네를 속여서 뭐 하겠는가. 최소 몇천 명이 봤다네. 게다가 패한 이들 중 2명은 월경 4단계의 내원 생도였어!”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50번이 무대로 훌쩍 뛰어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운청휘를 훑어보던 그의 눈이 별안간 번쩍 뜨였다.

“네가 상대를 무대 아래로 떨어뜨린다는 운청휘냐?”

운청휘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마침내 네놈을 만났구나!”

호탕하게 웃던 50번은 곧 냉소를 흘렸다.

“네놈처럼 별난 녀석은 그저 이기면 그만이지만, 조금 손을 써야겠어. 누가 네놈을 혼내 달라고 했으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50번의 신형이 흐려지며 운청휘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가 곧바로 운청휘를 두 손으로 잡아 무대 아래로 내던졌다.

동시에 50번은 아무도 모르게 영력을 일으켜 운청휘의 체내로 밀어 넣었다.

다른 외원 생도들이었다면, 이만한 영력이 난입하는 순간 경맥혈이 뒤틀리고 말았을 터.

“하하하, 보아라, 운청휘가 곧 무대에서 떨어질 거야!”

“남을 기만하면 결국 되돌려 받게 되어있지. 마침내 탈락하는구나!”

“돼지를 많이 죽이면 돼지가 된다더니, 옛말이 틀린 게 없어!”

붙들린 운청휘가 날아가는 모습에 생도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분명 무대 아래에 널브러져 있어야 할 운청휘가…… 없었다!

곧바로 50번이 경악하며 외쳤다.

“대체 네놈의 무위가 어느 경지이길래 이렇게 빠른 거냐……!”

50번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그의 앞에 바람처럼 나타난 운청휘가 손을 댄 순간, 쿵 소리가 울리며 50번의 몸이 무대 아래로 던져졌다.

지금까지 운청휘를 상대했던 이들과 같은 결과였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50번은 떨어진 직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의 얼굴이 시체처럼 퍼렇게 질려 있었다.

그는 깨어나더라도 폐인의 삶이 예정되어 있다. 운청휘는 50번이 했던 대로 고스란히 영력을 되돌려 그의 경맥혈을 뒤틀어 놓았다.

50호가 실려 나간 후, 경기가 이어졌다.

마침내 10번째 경기에서, 소도도의 번호가 호명되었다.

“다음은 18번과 66번!”

막풍이 호명하자마자 소도도가 무대 위로 훌쩍 뛰어들었다.

“대결할 필요 없이, 바로 항복하겠네!”

한 청년이 소리를 치더니 번호패를 무대 위로 던졌다. 66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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