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81화 (81/430)

제81화

지루해하던 소도도가 소엽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부릅떴다.

“너, 너는……!”

소엽을 멀거니 보던 소도도가 질겁하더니 막풍에게 소리쳤다.

“항복! 어차피 나보다 순위가 높으니, 패배해도 내 순위는 변함없지. 어이, 심판관! 어딜 넋 놓고 있나! 3번이 이겼으니까 빨리 선언하게나!”

별안간 그가 억지를 부리니, 막풍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결과를 선언했다.

“3번이 승리, 3번의 도전 기회에는 변화가 없다. 다음은 2번!”

소도도는 어느새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손톱까지 피가 배어날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지만, 눈치 챈 사람은 운청휘뿐이었다.

“소엽을 아나?”

운청휘가 넌지시 전음을 보내 물었다.

“알기만 할까. 젠장. 동명이인이기를 바랬거늘…….”

소도도의 대답에는 깊은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그러나 진정으로 상대가 두렵다기보다는……, 어쩐지 꺼림칙하게 여기는 기색이 묻어났다.

-운 형제, 자네는 다른 이를 잘 알아보지 않던가. 진미아의 팔에…… 수궁사가 있지 않았나?

잠시 머뭇거리던 소도도의 전음이 이어졌다.

-자네……, 소엽의 팔에 수궁사가 있는지 봐주겠나?

-……있군.

운청휘는 전음을 듣자마자 신식으로 소엽의 팔을 훑었다.

“있단 말인가……!”

소도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주춤주춤 물러나다 하마터면 무대 아래로 떨어질 뻔했다.

비틀거리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큰 충격을 받고 의욕을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 틀림없는 수궁사다.”

운청휘가 이 같은 소도도의 모습을 보고 반복해서 말했다.

“아직도 있다니, 충격이군…….”

넋이 나간 듯 답하던 소도도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운청휘 쪽을 바라보았다.

“운 형제, 절대로 그녀에게 우리가 사이좋다는 걸 알리지 말게. 안 그러면 반드시 후회할 걸세!”

여느 때와 달리 소도도는 진지한 얼굴로 운청휘를 바라보며 당부하더니, 재차 강조했다.

“나를 믿게나. 그렇지 않으면 자네는 반드시 후회할걸세!”

“후회?”

운청휘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녀의 무위가 높지만, 천부적인 재능은 삼성에 불과하다.”

“내가 말하는 후회는 그런 후회가 아닐세. 어찌 되었든 내 말 듣게! 자네를 위해서라네!”

더없이 진지한 소도도의 표정을 보고 운청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곧 운청휘의 시선은 황기령의 무대로 향했다.

황기령은 진미아와 같은 월경 6단계의 무인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삼성 기재였다.

즉, 월경 7단계의 무인도 격파할 수 있다는 뜻이다.

“누구에게 도전하면 좋으려나. 1번 조여룡은 내가 상대할 수 없으니 덤비면 안 되겠고…….”

황기령이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영력이 담긴 그의 목소리는 장내에 퍼져나갔다.

“8번 소도도, 나와 한 수 겨루겠는가?”

황기령의 눈빛은 삽시간에 소도도를 향했다.

“나에게 도전하겠다고?”

소도도가 입술을 핥았다.

“물론이지, 도전을 받아들이겠나?”

황기령의 눈빛에는 도발과 농담이 뒤섞여 있었다.

“하하, 당연히……, 싫다네!”

소도도는 우선 침착하게 웃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

“녀석……!”

황기령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도도의 장난에 놀아난 셈이 아닌가!

“녀석은 얼어 죽을 녀석이냐. 8위인 나를 괴롭히는 게 무슨 재주인가. 능력이 있다면 조여룡과 겨루시게!”

소도도가 하찮은 벌레를 보듯 황기령을 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뭐라고?!”

“약자에게만 강한 놈이라고 했네! 불만인가?”

말을 마친 소도도가 황기령을 향해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시합 규칙만 아니었다면, 황기령은 소도도를 죽이고도 남았다. 그러나 소도도는 그의 도전을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황기령이 소도도에게 부전승을 거두었으니, 3번의 도전 횟수는 변화가 없다. 다음은 1번 조여룡!”

심판 막풍의 건조한 목소리와 함께, 1번 생도 조여룡의 차례가 돌아왔다.

“드디어 조여룡의 차례야!”

“여기 있는 이들 중 조여룡에게 맞설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군!”

다들 조여룡이 나서길 기대했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조여룡을 상대할 이가 누가 있을까.

조여룡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듯,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만약 아무도 도전하지 못하겠다면, 순위전에서 기권하겠어!”

“아무도 도전하지 못한다고? 정말 잘난 체하는군. 내가 너와 싸워 주마!”

듣기 좋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3번 소엽이었다.

***

“어?”

조여룡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씨익 웃었다.

동시에, 소엽이 조여룡의 무대로 날아들었다.

“소 사매, 그 면사를 벗겨서 얼굴을 봐도 될까?”

조여룡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덤비기나 해!”

소엽이 말을 마친 순간 가느다란 옥장이 조여룡에게 향했다.

“하하, 성격이 보통이 아니야. 다만 난폭한 여인은 취향이 아닌데!”

조여룡은 여유롭게 옥장을 피하며 소엽의 손을 잡아챘다. 그는 공격하는 대신 소엽의 손을 슬쩍 쓰다듬었다.

“흐흐, 좋군.”

음흉한 웃음을 흘린 조여룡이 소엽을 품에 끌어안더니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덮은 면사를 잡았다.

“놔!”

시합 중에 이렇게 희롱을 당할 줄이야.

소엽은 분노와 수치심을 느끼며 온 힘을 다해 그를 뿌리친 동시에 얼굴을 내리쳤다.

짝!

뺨에 가해진 얼얼한 충격에 조여룡은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멍하니 서 있는 틈을 타, 소엽이 다시 한 번 조여룡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

“……감히 내 얼굴을 때려?”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낮게 중얼거린 조여룡에게서 음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구경하던 이들이 절로 움찔할 정도의 기세였다.

“천한 것이 감히! 아무도 내 얼굴에 손을 대지 못했거늘! 죽여주마!”

소엽은 다시 조여룡의 뺨을 때리려 했으나, 분노한 조여룡은 틈을 주지 않고 그녀를 거세개 내리쳤다.

쿵!

소엽은 바닥에 쓰러지며 피를 한 움큼 토해내었다.

“내가 졌어요!”

소엽은 바로 패배를 인정했다.

“졌다고? 감히 도망가려고 수작을 부려? 그럴 순 없지. 여기서 죽여주마!”

이미 살기를 줄줄 흘리는 조여룡은 그녀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살초를 흩뿌렸다.

퓩! 퓩! 퓩!

조여룡의 살초가 소엽에게 닿기 직전, 세 개의 굵은 영기가 무대로 날아들어 조여룡을 향했다.

“누가 감히 끼어들어!”

호통을 친 조여룡이 검초를 틀어 폭격해오는 기를 맞받아쳤다.

쾅! 쾅! 쾅!

연달아 굉음이 울리고, 세 개의 기운을 막아낸 조여룡이 가슴을 들썩이며 분노를 터트렸다.

“교관님. 심판으로서 생도들 간의 전투에 개입하시는지요?”

조여룡의 싸늘한 시선이 심판 막풍에게 향했다.

“어딜 보고 있나. 이 소소도 님이 한 것이거늘!”

살기등등한 외침과 함께 소도도가 날아들어 소엽을 부축했다. 소엽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드물게도 배려와 온화함이 가득했다.

“괜찮아?”

“컥컥, 나……, 난 괜찮아!”

소엽이 말하기도 전에 피 두 모금을 내뱉었다.

“도도 오라버니……. 역시 나를 신경 쓰고 있었구나!”

소엽이 이때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 같으니. 저 녀석에게 손도 내주고 안기기까지 하다니, 나를 얼마나 망신 줄 셈이야?”

소도도가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건 내 잘못이야.”

소엽이 고개를 숙였다.

“잘못? 아니. 잘못은 조여룡에게 있지! 감히 이 몸의 여인을 희롱했으니, 살기 싫은 게 분명해! 한 번만 죽이려고 했는데, 네게 살초를 쓰고 중상까지 입혔으니, 두 번 죽여도 모자라!”

소도도는 어느새 어두운 표정으로 이를 갈더니, 조심스레 소엽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가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조여룡을 노려보았다.

“감히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다니, 네놈을 반드시 죽어야겠다. 누구도 네놈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소도도가 손을 들어 올림과 동시에 맹렬한 태풍이 무대를 휘감았다.

휘우우웅……!

소도도의 몸에서 방출된 영력이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다음 순간, 소도도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곧바로 조여룡의 코앞에 험악한 얼굴을 드러내었다.

퍼억!

한 방만으로 조여룡은 붕 떠올라 날아갔다.

그러나 땅에 떨어질 틈도 없이, 무대를 휘감고 있던 태풍이 조여룡을 튕겨내 다시 소도도의 눈앞으로 이끌었다.

퍽! 퍽! 퍼억!

분노한 소도도는 쉴 틈 없이 조여룡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영력이 담기지 않은 주먹이었지만, 조여룡의 얼굴이 어느새 퉁퉁 부어올랐다.

“네놈, 감히 이 몸의 여인을 건드렸으니,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겠다!”

소도도의 흉포한 기세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짝! 짜악! 짝!

그가 쉴 새 없이 뺨을 때리고 있는 사람은 내원의 일인자 조여룡이다. 모두가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맙소사, 대체 소도도는 무위가 어느 경지인 거야?”

“조여룡은 월경 6단계의 무인인데, 손도 못 쓰고 맞고 있잖아!”

“같은 월경 6단계인 황기룡마저 조여룡에게 도전할 엄두를 못 냈어.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생도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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