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86화 (86/430)

제86화

공휘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손불평뿐 아니라 다른 3명의 부원장도 학관 대항전에 참여한다네.”

“젠장, 모든 부원장의 무위가 최소 월경 9단계인데 어떻게 상대하라는 건가요. 원장이 될 재목이면 졸장부도 아닐 테고, 최소 삼성 이상의 재능이 있지 않겠습니까? 전투력도 모두 양경의 강자인데…….”

불평을 쏟아내던 소도도가 돌연 말을 멈추더니 공휘를 바라보았다.

“공 부원장님, 아예 학관 대항전을 부원장 대항전으로 바꾸는 게 어떠세요. 어차피 매번 마지막엔 생도들과 관련이 없잖아요.”

공휘는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이런 불만을 보이는 이는 소도도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대항전에 참가한 사람들은 내·외원 생도를 막론하고, 심지어 상급 생도들과 상급 교관들까지 부원장의 뻔뻔함에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부원장에게 참가 자격이 주어진 건 3천 년 전에 결정된 일이다. 공휘의 권한으로는 그 자격을 박탈할 수 없을뿐더러, 원장이라 해도 제지가 불가능했다.

“공 부원장님, 제안 하나 드려도 괜찮으시죠?”

문득 소도도의 얼굴에 음흉한 웃음이 걸렸다.

“원장님도 참가하심이 어떠신지요? 그리고 저와 운 형제, 원장님 셋이서 연합하는 거죠. 그렇게 되기만 하면, 흐흐흐…….”

옹졸함의 극치를 달리는 웃음을 짓는 소도도 앞에서, 공휘는 머리가 욱신거리는 듯했다.

“불가능하네!”

공휘가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히 내뱉었다.

“손불평 등이 뻔뻔하지만, 노부는 아니라네!”

“그게 아니면, 참가는 하되 생도나 교관들은 상대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손불평 같은 뻔뻔한 자를 만날 때 상대하는 건 어떠세요?”

소도도가 예상해둔 것처럼 차선책을 내놓았다.

“그건…….”

공후의 얼굴에 망설임이 나타났다.

“에이, 공 부원장님!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에요. 손불평 같은 자들만 상대하면 체면이 깎일 일도 없고, 오히려 공 부원장님의 명성이 드높아질 거예요! 그리고…….”

별안간 소도도가 공휘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속삭였다.

곧 공휘의 얼굴이 흥분으로 붉어지며 눈을 부릅떴다.

“자…… 자네 확실한가?”

“헤헤, 확실하죠. 능설 사매와 제가 얼마나 각별한 사이입니까!”

소도도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알겠네, 그를 참가시킬 수 있다면, 노부는 비난쯤은 감수할 자신이 있네. 노부도 이번 대항전에 참가하지!”

공휘는 꽤나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일을 지체해서는 안 되니 지금 두 갈래로 나누죠. 저와 운 형제는 능설 사매를 찾아가서 설득할게요. 공 부원장님은 그동안 저희를 대신해 등록해 주세요!”

소도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알겠네!”

공휘가 몸을 돌려 날아가려는데 운청휘가 돌연 소리를 쳤다.

“공 부원장님, 저는 용무가 있어 참가할 수 없으니, 두 분이 하셔야 할 겁니다.”

“운 형제, 자네?”

소도도가 뜨악한 표정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겨우 공휘를 꾀어냈는데, 운청휘가 참가하지 않겠다니?

“정말로 일이 있으니 안 됩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저어 보이곤 천천히 말을 이었다.

“도도의 무위와 공 부원장님 협력한다면,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겁니다. 안심하십시오.”

운청휘가 강경하게 나오자 공휘와 소도도는 더 설득하지 않고 각자 떠났다.

곧 운청휘도 독채를 나와 호수를 지나칠 즈음이었다.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서, 빙백사가 돌연 두 눈을 크게 뜨고,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콰르르…….

빙백사는 빠른 속도로 운청휘를 향해 헤엄쳐 오고 있었다. 수면이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월경 9단계의 영수이자 혈맥이 높은 빙백사는 양경 2단계의 무인도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설령, 운청휘가 검집을 쥐어도 승산이 장담할 수 없었다.

곧 운청휘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빙백사에게서 악의 한 점 없는 친근함을 감지했다. 빙백사는 그저 용건이 있어 접근하는 듯했다.

“……음?”

마침내 수면 위로 수많은 물을 흩뿌리며 솟아오른 빙백사는 둥그스름한 이마에 굵은 정혈을 흘리고 있었다.

“나와 인연을 맺을 생각인가?”

운청휘도 다소 뜻밖인 듯 눈을 깜박이다, 곧 손을 내밀어 빙백사가 흘리는 정혈을 만졌다.

“스스스-.”

운청휘의 귓가에 빙백사가 전해온 목소리가 들렸다.

“호오. 이 몸이 어려움에 처하면 정혈을 불태우라? 네가 제일 먼저 나를 돕겠다?”

운청휘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고맙군. 너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으마.”

빙백사의 인정을 기억해 둔 운청휘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기재 반을 떠난 후, 신식을 펼친 운청휘는 청련지심화의 영혼과 소통한 끝에 성공학관의 최심부까지 침투할 수 있었다.

그가 일부러 자신을 노출하지 않는 이상, 선천생령이라 할지라도 운청휘를 발견할 수는 없다.

이 각의 시간이 흐른 뒤, 운청휘의 눈앞에 18층 높이의 거대한 탑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 탑 아래에, 연화동이 있었군.”

‘연화동’이라는 명칭은 자연스레 동굴을 연상시켰기에, 운청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그도 연화동이 탑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터였다.

“……! 선천에 가까운 기운이군.”

운청휘의 신식이 탑 꼭대기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노인을 감지해냈다.

“저 노인이 성공학관의 원장인가.”

원장의 모습에 운청휘는 약간이나마 호감을 보였다.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성공학관에 들어온 이후 줄곧 그의 보살핌을 받지 않았던가.

운청휘의 신식이 원장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선천에 가깝게 태어난 듯하지만, 애석하게 길이 틀렸군. 선천에 진입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모르는 게 분명하다.’

원장을 살핀 운청휘가 그에게 지시하려 했으나, 곧 아직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 때가 되면 그에게 지시해 돌파하면 그만이거늘.”

마음을 바꾼 운청휘가 작게 중얼거리며 탑 안으로 잠입했다.

탑 안은 온통 어두웠고, 문과 창문이 죄다 닫혀 있어 빛은커녕 공기마저 희박하게 느껴졌다. 마치 수백 장 위의 허공에 떠오른 듯했다.

어둠 속에서, 운청휘의 두 눈이 밤하늘에 떠오른 별처럼 그윽하게 빛났다.

곧, 그의 앞에 또 하나의 부적이 떠올라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운청휘의 눈앞에서 빛나는 부적과 검집에 부착된 부적은 똑같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운청휘는 어둠 속에서도 태연히 첫 번째 층에 자리 잡은 두 계단을 살폈다.

하나는 위층으로, 하나는 지하로 이어지는 듯했다. 다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보이지 않는 결계로 막혀 있었다.

“그때의 결계와 비슷하군.”

운청휘는 청연지심화의 영혼이 봉인되어 있던 산골짜기를 떠올렸다.

“이 결계는 풍무극광이 만들었을 터. 양경의 무인이라도 억지로 이 결계를 돌파하긴 무리겠어.”

신식을 해방한 즉시 운청휘는 결계의 강도를 파악했지만 의외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무리하게 돌파할 필요는 없다.

그는 신식으로 몸을 감싼 후, 결계로 다가갔다.

곧 운청휘의 한쪽 발이 결계를 통과하고, 이어 몸 절반이 결계 너머로 들어갔다.

마치 길을 걷듯이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광경은 탑 꼭대기에 있는 원장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원장이 보았다면, 대경실색했을 터. 결계를 만든 이가 풍무극광인 만큼, 천성대륙에는 누구도 이 결계를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운청휘는 결계를 뚫고 넘어갔다.

“후…….”

어느새 운청휘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가 한숨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풍무극광, 역시 쉽지 않은 자로구나.”

엄밀히 말하자면, 운청휘는 결계를 강행 돌파하지 않았다.

그는 신식을 이용해 자신의 기를 결계와 동일하게 인식시키거나, 자신의 몸을 결계의 일부로 만들 수 있었으므로.

그러나 그가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결계를 통과하기 위해 소모한 신식이 예상보다 두 배나 높았다.

“온 천하에 본제를 제외하고는 결계를 돌파할 이는 없겠어.”

운청휘가 천천히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밟았다. 탑 아래로 내려가는 그의 귓가에 한 줄기 목소리가 스쳤다.

그 목소리는 운청휘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탑 꼭대기에 있는 원장에게 보고하는 듯했다.

“원장님, 천우성의 밀정이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황성 운가, 상관가, 천원학관과 엽가의 인마가 천우성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연단협회의 사면령이 풀리는 즉시, 천우성 운가를 습격할 계획인 듯합니다. 또한, 3일 전 천우성 운가의 일원 27명이 외출 후에 실종되었습니다. 저희의 정보망으로도 그들의 행방을 찾지 못했습니다. ……살해당하고 시체가 회손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탑 위에서 원장이 중후한 기운이 담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람을 더 뽑아서 천우성 운가를 은밀히 보호하게. 그리고 운해, 엽천, 상관우를 모두 학관으로 불러들이거라! 가서 본좌의 명을 전하게나.”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에는 곤란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원장님, 지금 그들을 불러들이면, 반발이 상당할 겁니다.”

원장의 명으로 그들을 불러들인다면, 운청휘를 편애하는 뜻을 널리 알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보고하는 이의 반응도 당연했다.

외부인이라면 모를까, 운해와 엽천, 상관우는 모두 성도가 아닌가! 지위 또한 부원장과 대등한 수준이다.

“상관없다네.”

원장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답했다.

“그들 셋이 불만을 품을지언정, 우리는 운청휘에게 빚을 지울수 있으니.”

결계 안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은 운청휘의 눈은 실처럼 가늘어졌다.

그의 머릿속에서 방금의 보고가 메아리 쳤다.

3일 전, 천우성 운가의 일원 27명이 외출 후에 실종되었다.

그 의미를, 운청휘가 어찌 모를까!

“연단협회의 사면령이 있으면 적어도 석 달은 무사할 줄 알았 건만, 그들의 수단을 과소평가했어.”

성공학관의 정보망조차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살수들의 일 처리가 극도로 은밀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 연단협회의 감시망을 벗어났을 정도로!

연단협회가 천우성 운가를 비호하는 이유는 사면령의 존재 때문이지, 운가의 안위에 직접적으로 손을 쓸 수는 없다.

운청휘는 저절로 들끓는 살기를 억누르며 계단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 탑의 지하로 내려갔다.

일 다경 후, 운청휘는 이미 지하 삼백 장 아래로 잠입했다. 주위의 온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운청휘마저도 미미하게나마 영향을 받고 있었다.

“연화동이 기이하다고 들었지만, 과연. 이곳의 영력은 외부의 10배 이상이구나.”

혼잣말을 내뱉은 운청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