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원장은 과장도,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지금 원장의 경지인 절반의 선천은 양경 9단계와 선천의 경계의 중간에 있다.
그가 절반의 힘을 발휘해 달린다면, 양경 9단계의 무인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두세 배는 빠를 터였다.
운청휘는 월경의 무위로 그의 속도를 따라잡다 못해 대등하게 오지 않았던가.
“절반입니까? 저도 전력으로 임하지 않았습니다.”
운청휘도 여유롭게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몇 할의 힘을 내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이 그리 말했다면 비웃었겠지만, 자네는 속이지 않을 테고 속일 생각도 없음을 잘 알고 있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곧 천우성으로 가야 하니, 시작하십시오.”
원장은 뭔가 말하고 싶은 기색이었지만, 이내 참아내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네, 한번 겨뤄 보세!”
원장이 공격에 나섰다.
그가 손을 흔들자 허공에서 영력으로 형성된 예리한 화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하나 강력한 기운을 담은 화살은 하늘을 촘촘하게 덮은 채 운청휘를 겨냥하고 있었다.
운청휘는 자신에게 쇄도하는 화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검지와 중지를 들어 하복부에서 미간까지 긴 선을 그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기의 막이 그의 전신을 덮어 감쌌다.
쐐애액!
다음 순간, 하늘을 가득히 메운 화살이 운청휘의 막과 부딪히며 거대한 진동을 일으켰다. 원장이 쏘아낸 화살은 최소 1만 개는 되는 양으로, 화살 하나하나가 월경의 무인을 참살할 위력을 담고 있었다.
그러한 화살과 운청휘의 기운이 부딪혔으니, 주변의 대지가 성할 리 없었다.
거대한 짐승이 휩쓸고 간 듯 터져나간 나무와 부서진 바위, 끝없이 이는 흙먼지가 시야를 차단했다.
오직 운청휘만은 이 공격에서 비켜나간 이처럼 아무런 흐트러짐도 없이 원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리 쉽게 나의 만시일발(萬矢一發)을 막아낸 겐가?!”
원장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전력으로 상대하십시오! 이 정도의 공격은 손가락을 튕기기만 해도 충분히 막습니다!”
운청휘가 경고하듯 말하며 손을 휘저은 순간, 영력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하늘을 뒤덮으며 원장에게 쏟아져 내렸다.
원장이 방금 쓴 기술과 동일한 형태였지만, 원장에게 쇄도하는 화살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나 있었다.
“자네도 이 기술을 수련하였는가? 아니, 이건 월경의 무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늘. 자네가 월경 극경에 이르렀어도 불가능해!”
원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장님의 말처럼, 만시일발이 아닙니다. 굳이 이 기술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십만개화(十萬開花)라 부르겠습니다.”
운청휘는 다소 오만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운청휘가 영력으로 만들어낸 화살은 그의 말처럼 10만 개에 달했고, 이 공격 앞에서 원장의 기술은 겨우 맺히기 시작한 봉오리나 다름없었으니.
원장이 황급히 자신의 앞에 영기의 막을 둘렀다.
쿵! 쿵! 쿵! 쿵! 쿵!
10만 개의 화살은 거의 동시에 원장을 덮쳤고, 창공을 가르는 굉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극심한 충격파에 허공이 마치 찢겨나가는 듯 구불구불한 환영마저 일으켰다.
그 와중에, 원장은 두 걸음 후퇴하고 말았다!
평소라면 두 걸음이든 열 걸음이든 후퇴하는 일은 문제가 아니겠으나, 운청휘가 보인 기술 앞에서 이리 밀렸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운청휘의 실력은 원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화살이 모두 지는 꽃처럼 사라진 후, 원장은 영력을 일으켜 주변을 안개처럼 뒤덮은 흙먼지를 몰아냈다.
그 역시 상처는 없었지만, 두 눈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정하게 넘긴 백발이 헝클어지고 도포 자락 또한 엉망이 되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나……, 나는 방금 칠 할의 힘으로 버텼다네!”
원장은 전에 없이 어색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압니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모든 힘을 쏟아붓겠네!”
원장의 표정은 한껏 엄숙하게 가라앉았다.
그와 겨루기로 했을 때부터, 원장은 한 가지 상황을 우려했다. 그가 자신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그러나 한바탕 겨루고 나니, 확신이 섰다.
운청휘의 실력은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다! 어쩌면 아득히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휘몰아쳐라!”
원장의 준엄한 호령이 울리자, 대자연이 그에게 복종하듯 격렬한 돌풍을 일으켰다.
휘오오오…….
직경 삼 장에 이르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원장의 앞에서 휘몰아쳤다.
푸른 잎사귀며 부러진 나뭇가지, 돌멩이를 비롯해 휩쓸려온 흙먼지까지…… 회오리 안에서 거세게 회전하며 이따금 부딪쳐 불빛을 일으키기도 했다.
운청휘는 삼십여 장 떨어져 있었음에도 거센 풍압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회오리바람이 일어난 후에는 수십 장 길이의 거목이 허리가 꺾이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이게 나의 절기이니, 부디 조심하게!”
원장의 경고와 함께 직경 삼 장에 달하는 회오리바람이 몸집을 수십 배 부풀렸다.
운청휘가 있던 자리는 순식간에 거센 바람에 휩싸이고 말았다.
***
선천생령의 경지에 이르면, 오행의 힘을 운용할 수 있다.
다만 오행의 힘은 그저 하나의 명칭으로, 금·목·화·수·토를 부르는 게 아니다.
가령 원장이 방금 일으킨 회오리는 풍 속성에 해당하는데, 오행 중 가장 강한 속성이 금·목·화·수·토이기에 다른 속성의 힘은 별개로 취급했다.
그러니 오행에 들어가지 못한 풍 속성은 자연스레 약한 기운으로 취급하기 쉬우나, 이 또한 속성의 힘이다.
단순한 영력 방출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이 강한 힘에 드는 셈이다.
“만약 선천의 경계에 이르렀다면, 저도 무사하진 못했을 겁니다. ……아쉬울 따름이군요.”
돌풍의 눈에 서 있는 운청휘는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듯, 태연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는 굉음 속에서도 똑똑하게 원장의 귀에 전달되었다.
“……사라져라!”
운청휘가 일갈하며 영력을 일으켰다. 거대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휘몰아쳐 나오더니, 회오리는 단숨에 그 힘에 삼켜져 사그라들었다.
곧바로 주위의 임야가 평소와 같이 잔잔해졌다.
“이럴 수가, 이렇게 간단하게 나의 절기를 깨 버리다니……!”
원장은 황망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진정한 풍 속성의 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볍게 고개를 저은 운청휘가 신형을 날려, 원장의 삼 장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진정한 풍 속성의 힘이라면, 방금처럼 가뿐하게 깨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지금의 힘으로도 모든 양경 무인을 참살할 수 있겠죠.”
“모든 양경 무인을 참살한다고? 허허. 지금껏 그리 생각했건만, 이제는…….”
원장이 말끝을 흐리더니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젠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적어도 월경 극경의 자네도 상처 입힐 수 없잖나!”
“저를 상대로 말입니까.”
운청휘는 다소 가소롭다 느꼈지만, 태연하게 답했다.
“논외로 생각하십시오. 제가 있는 경지는…… 원장님이 상상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오만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사실 운청휘는 꽤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있는 곳은 원장이 10번을 환생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한낱 개미가 인간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을까?
그들은 인간이 손가락 하나만으로 자신들을 눌러 죽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인간의 손가락에 얼마나 큰 힘이 담겨 있는지 영원히 모를 터였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도 평생 바다를 헤엄쳐 다니지만, 바다의 크기는 영영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은 평생에 걸쳐, 바다의 극히 일부분에서 살아갈 테니.
“논외라고? 확실히…….”
원장은 부정은커녕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보통의 무인이 어찌 극경에 이를 수 있을까. 운청휘는 극경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월경 극경의 무위로 절반의 선천의 경지에 이른 그와 대등하게 겨루었다.
이게 특례가 아니라면, 무엇을 특례라고 부를까!
그들의 승부는 대등하게 이루어졌는데, 원장의 공격도 운청휘를 상처 입히지 못했지만 운청휘도 원장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운청휘가 참천검의 검집을 들었다면, 승부의 행방은 달라졌겠지만…….
“선천생령으로 가는 길을 알려 드렸으니, 도달할 수 있는지는…… 원장님을 믿어 보겠습니다. 저는 이제 천우성으로 돌아가 할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할 일’을 언급하는 운청휘의 눈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그가 연화동에서 수련에 매진하는 동안, 황성 운가 등의 세력은 그의 가족 167명을 죽였다.
그뿐일까. 이미 죽었어도 발견되지 않은 이들의 존재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기다리게……!”
운청휘가 떠나려 하자, 원장이 그를 불렀다.
“연단협회의 사면령은 12일 후에 끝나는 걸로 알고 있네. 지금의 자네라면 천우성까지 하루면 갈 수 있을 테지. 그러니 11일의 시간이 있지 않은가? 그동안 학관을 위해…… 부탁을 해도 되겠는가?”
운청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탁하는 원장은 전에 없이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제가 천교대전에 참가하길 원하십니까?”
걸음을 멈춘 운청휘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지금 전속력을 낸다면, 하루가 아니라 반나절이면 천우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 두는 것쯤은 나쁘지 않을 터였다.
“천교대전을 아는 겐가?”
최근 운청휘가 신식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음을 알 리 없는 원장은 다소 놀란 듯했다. 그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천교대전은 50년에 한 번씩 있는 축제로, 학관에도 자네에게도 귀중한 기회일세. 그러니 자네가 성공학관 소속으로 참가하길 바라네! 천교대전은 7일이면 끝나니, 그 후에 천우성으로 가도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천우성으로 가려면 황성을 지나쳐야 하지. 가는 길에 수고한다 여겨줄 수 없겠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침묵 끝에 운청휘가 승낙했다.
운역 운가 따위는 알 바가 아니지만, 원장의 부탁이라면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복숭아를 받았으면 자두로 보답하라는 말처럼, 그동안 원장이 운청휘를 배려하고 은혜를 베풀었으니 운청휘도 격이 맞는 보답을 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연화동에 있을 때, 원장이 공휘를 천우성으로 보내 천우성 운가를 보호하라고 내린 명령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원장님의 보호 덕분에, 저도 이 경지까지 수련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례라 생각하십시오.”
운청휘의 승낙에 원장이 한숨을 돌렸다.
“응? 빙백사가 정보요원이 천교대전의 소식을 가져왔다고 하네.”
원장이 돌연 눈을 깜박이더니 운청휘에게 손짓했다.
“가세, 나와 함께 학관으로 돌아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