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93화 (93/430)

제93화

그들은 탑을 나왔을 때처럼 눈부신 속도로 돌아왔다.

탑 위에 나란히 서자마자, 탑 아래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소식을 전했다.

“원장님, 드디어 오셨군요! 천교대전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탑 아래에서 보고를 올리던 이는 당황한 얼굴로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게, 소도도가…… 운역 운가에서 보낸 사자와 아는 사이인 듯합니다. 다만 원한이 있는 사이로, 시합 내내 운가 사자에게 핍박을 당한 모양입니다…….”

***

성공학관을 나서자마자 운청휘는 급히 황성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월경의 범위에 속해 있었지만, 양경 무인이 할 수 있는 공중 비행을 펼치며 그들 못지않은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어찌나 빠르던지, 귓가에는 바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스치고 지면은 끊임없이 요동쳤으며, 극광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다.

극광성과 황성, 천우성은 삼각형과 흡사한 형태로 이어져 있었다. 그중 극광성과 천우성이 가장 멀고, 황성은 두 성을 중심으로 동남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운청휘의 무위라면 반나절이면 천우성에 도달할 수 있고, 극광성에서 황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보다 다소 짧았다.

황혼이 질 무렵 성공학관을 떠났던 운청휘는 수많은 산과 강을 건너 밝은 달이 떠오를 즈음 황성에 도달했다.

천원왕조의 중심지인 황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번성하였으며,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한밤중에도 등불을 내건 가게들이 즐비하여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극광성보다도 3배는 더 넓은 황성의 중심부까지 날아간 운청휘는 사람들이 없는 어두운 골목에 내려앉았다.

길을 묻거나 돌아다닐 겨를도 없이, 운청휘는 곧바로 주루를 찾았다.

천교대전 같은 축제는 가장 뜨거운 화제일 테고, 주루는 정보가 가장 많이 오가는 곳이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주루에 들어서자마자 점소이가 공손히 그를 맞이했다.

“나리,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저희는 간단한 요리부터 제비집, 상어 지느러미에 흉수의 고기까지 취급하고 있습니다. 술 종류로는…….”

운청휘는 탕수갈비와 잉어찜, 약재를 넣은 백숙, 돌솥에 쪄낸 고기를 주문했다.

술은 주문하지 않았다. 선계의 술을 맛본 그에게 천성대륙의 술은 물보다 못한 존재였다.

곧 요리가 나오고 젓가락을 들려는데, 주변에서 운청휘의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헤헤, 정말로 놀라운 세상이라니까. 성공학관이 열심히 길러낸 세 명이 순식간에 천원학관의 생도가 되었잖아?”

“어? 운해, 엽천, 상관우 세 사람이 벌써 천원학관에 들어갔다고?”

“맞아, 오늘 점심에 천원학관의 원장이 그들에게 친히 요청했다더군.”

“하하하, 그렇다면 성공학관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닭도 날아가고 달걀도 몽땅 깨진 셈이 아닌가. 하하하!”

“좀 이상하지 않나? 운해를 비롯한 세 사람은 성공학관에서 성도라고 들었는데, 왜 천원학관으로 간 거지? 성도는 원장의 후계자나 다름없는데!”

“자네들은 아직 못 들었나 보군. 그들이 떠난 데에는 운청휘라는 생도가 관련이 있다지 뭔가. 원장이 그를 네 번째 성도로 키우려고 했다던데, 세 사람이 어찌 동의할까! 그래서 암암리에 운청휘를 억압했다고 들었네.”

다들 신이 나서 떠들어 대는 와중에, 한 사람이 꽤나 자세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억압은 당연히 부당하지. 그래도 운청휘가 출중한 기재라면 억압을 이겨내고 성장하며 성도가 될 자격을 얻겠지만, 견디지 못하면 자연히 성도가 될 자격도 잃지 않겠나. 하필이면 성공학관의 원장이 운청휘를 암암리에 도왔다지? 심지어 사사로운 일에도 운청휘의 편에 섰다고 하니, 세 성도가 불만을 느낄 수밖에.”

말을 늘어놓던 이는 이목을 끌자 더욱더 신이 나 내막을 털어놓았다.

“그 사사로운 일이 뭔지는 아는가? 운청휘는 천우성 운가에서 왔는데, 운해가 있는 황성 운가의 분가라네. 그런데 3개월 전에, 천우성 운가가 반기를 들었다지? 황성 운가의 직계 자제인 운해가 반역자를 어찌 내버려 두겠는가. 가장 먼저 천우성에 사람을 보내 천우성 운가를 쳤다던데, 성공학관의 원장이 부원장을 보내 그들을 보호했다네. 그것뿐이면 모를까, 더는 손쓰지 못하게 세 사람을 학관으로 소환하려고 했다지? 그 때문에 그들이 분노하고 성공학관을 떠난 걸세! 그런데…… 원장의 소환을 전하러 간 이도 잔인하게 죽이고 떠났다는군!”

내막을 알게 되자 흥분한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그럼 세 사람이 떠난 건 성공학관이 자초한 일이로군!”

“방금 누가 닭도 날아가 버리고, 달걀도 깨진 셈이라고 했는데, 딱 맞는 말이야!”

“성공학관은 지금쯤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특히나 이번 천교대전에 성도가 죄다 빠졌으니, 성공학관의 앞날도 뻔해. 하하하!”

“왜 안 그러겠어. 운청휘가 기재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아. 그가 뭘 믿고 황성 4대 가문과 천원학관을 상대할 수 있겠어?”

“그렇지. 심지어 성공학관이 이번 천교대전에 내보낸 생도 중 운청휘는 없었다던데?”

“성공학관이 보낸 생도는 소도도와 두계희라고 들은 것 같네.”

“소도도? 아, 생각났어. 반 시진 전에 운역 운가의 사자와 충돌한 그자 말이지? 부원장 장단봉이 운역 운가의 사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어서 겨우 넘어갔다더군!”

“나도 들었어. 장단봉이 아니었으면, 소도도는 시체가 되고도 남았을 거야!”

“소도도도 어리석지. 감히 운역 운가의 사자와 충돌하려고 했다니. 운역 운가의 사자가 그자를 죽일 마음만 먹으면, 나서지 않아도 무수한 세력이 힘을 보탤 거라고!”

“운청휘를 감싸다 성도 셋을 잃고, 이제는 운역 운가의 사자에게 덤비는 소도도라니. 하하하! 성공학관은 잔챙이들만 남은 건가?”

“내일 천교대전은 성공학관이 출전할 차례지? 이미 상관가의 가주가 운역 운가에 잘 보이려고 상관우를 출전시키려 한다더군! 시합 중에 소도도를 죽일 생각인가 봐.”

운청휘는 묵묵히 젓가락을 놀리며, 주위에서 떠드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장단봉 부원장이 무릎을 꿇으며 빌었고, 상관가의 가주가 상관우를 시켜 소도도를 죽이려 한다……?

어느새 운청휘의 두 눈이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그의 분노를 알리고 있었다.

“참, 운해 세 사람이 천원학관에 들어갔는데 가족들은 아무런 불만도 없는 건가?”

누군가 불쑥 말을 꺼냈다.

“평소라면 그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들도 원하지 않겠지. 아무리 외부의 조건이 좋다 한들 성공학관의 성도가 되기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겠나. 한데, 천원학관의 원장이 그들에게 약속을 했다더군!”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덧붙였다.

“물론 약속의 내용까지는 잘 모른다네. 다만 그들과 가족들도 매우 흡족해하며 동의했다지?”

주변 이들의 대화를 통해 황성의 상황을 대략 파악한 운청휘는 주루를 떠났다.

이튿날 아침, 운청휘는 천교대전이 개최되는 외황궁에 도착했다.

황성은 내황궁과 외황궁으로 나뉘어, 내황궁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다만 외항궁은 천교대전처럼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개방하여 외부의 출입을 허가하고 있었다.

경기가 치러질 무대는 외황궁의 중앙 광장에 마련되었다.

이른 아침이지만 광장은 사람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외황성의 성루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만 그들은 광장 근처에 있는 이들과 달리 부호 혹은 귀족들이었다.

광장의 정면에는 상석이 마련되어 9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상석 중앙에는 백의를 입은 수려한 외모의 청년이 자리를 잡았다.

표정이 고요하고, 우아한 기품이 흘러나오는 이였다.

그는 누구에게도 시선을 두지 않고 정면을 응시할 뿐이지만, 자연스러운 기품과 의젓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를 자세히 보는 이라면, 태생적인 오만함이 미간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아차릴 터였다.

“운 공자, 경기 개최를 선언해도 되겠소?”

한 노인이 상석에 앉은 청년에게 다다가 물었다.

청년은 묵묵히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노인은 몸을 굽히고 몇 걸음 물러나더니, 그제야 몸을 돌리고 무대로 향했다.

“저기 상석에 있는 청년, 용모가 범상치 않군. 저 청년이 운역 운가의 사자인가?”

“맞네, 운역 운가의 사자가 아니라면 이 천원왕조에서 누가 저토록 고귀한 모습을 보이겠나.”

“보아하니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데 운가에서 여기까지 올 정도라면……, 평범한 이가 아니겠지?”

“말할 필요가 있나. 보나 마나 인재 중의 인재겠지. 운역 운가의 사람 중에 졸장부가 있을까!”

대결이 시작되기 전, 대부분의 군중이 운역 운가의 사자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 틈에 섞여 있던 운청휘도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

다만 군중들이 보내는 경외나 호기심과는 다르게, 운청휘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할 따름이었다.

그를 보기만 해도, 장단봉 부원장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저자의 무위는 도도가 상대할 수 없는 경지군.’

운역 운가의 사자는 소도도와 마찬가지로 사성 기재였지만, 무위로는 소도도보다 높은 월경 9단계를 달성했다.

“첫 번째 대결은 성공학관의 두계희와 천원학관의 정가명(郑嘉明)!”

심판이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두 신형이 무대로 뛰어올랐다.

겨우 열다섯 살의 두계희는 앳된 얼굴이었고, 허리춤에 청색 장검을 차고 있었다.

상대인 정가명은 스물여덟 살로,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두계희를 바라보았다.

정가명의 눈에 은은한 살기가 번득였다.

“희아야, 천원학관의 얼간이에게 지킬 예의는 없다! 모질게 때려죽이라고!”

무대 아래에서 소도도의 응원이 울려 퍼졌다.

“안심하세요, 도도 형! 매운 맛을 보여 주고 올게요!”

두계희가 또랑또랑하게 대답하며 소도도를 힐끗 돌아보았다.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소도도와 두계희는 부쩍 친해진 듯했다.

소도도는 두계희를 ‘희아’라고 부르며 친근히 대했고, 두계희도 그를 따라 하듯 ‘도도 형’이라 서슴없이 불렀다. 그런 와중에 은근히 두계희가 물들어가는 듯했다.

곧, 대결이 시작되었다.

정가명은 곧바로 살초를 날렸는데, 허공을 수놓은 무수한 주먹이 맹렬한 기세로 두계희를 덮쳤다.

두계희는 삼 장 높이의 공중으로 날아가며 소도도를 바라보았다.

“도도 형, 저놈이 저를 주…… 죽이려는데, 똑같이 갚아 줘도 되나요?”

“어허, 쓸데없는 소리! 당연히 갚아 줘야지! 상대가 희아 너를 죽이려고 하면 누가 됐든, 배경이 어떻든! 일단 죽이고 보는 거야!”

소도도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운 공자, 소도도의 저 말…… 속에 가시가 있군!”

상석에 앉은 이들 중, 사십 대의 사내가 은연중에 위엄을 보이며 운역의 사자에게 말을 건넸다.

“신경 쓰지 마시오. 고작해야 땅강아지가 얼마나 오래 뛰어오르겠소.”

운역의 사자는 태연히 대답하며 무대를 주시했다.

무대 위로 두계희의 신형이 떨어져 내리더니, ‘쨍’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장검이 정가명의 앞에서 번쩍였다.

파악!

두계희가 검을 휘두르니, 사방으로 선혈이 튀었다!

정가명은 썩은 나무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가 허물어졌다.

“검을 휘두르기만 했는데 상대가 죽었어!”

“맙소사, 성공학관의 두계희가 일검으로 월경 7단계의 정가명을 죽이다니!”

관중석에서 한 차례 술렁임이 파도쳤다.

다만 그 술렁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가명은 천원학관의 참가자 중 최하위권에 해당하는 이였으므로.

“성공학관의 두계희, 승! 다음은 두계희와 엽가의 엽오(叶傲)!”

심판의 선언과 함께, 온화한 인상을 가진 청년이 무대로 올라왔다.

천교대전의 본선은 3회의 시합을 치르는 방식인데, 연속해서 3승을 거둔 이들만 다음 단계로 향할 수 있었다.

두계희는 본선의 첫 번째 경기를 막 치른 참이기에, 다음 상대를 맞이하는 게 당연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