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94화 (94/430)

제94화

“두 소협,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겨루세.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긴 싫다네.”

엽오가 호의적인 미소를 보냈다. 그는 온화하고 점잖은 인상을 지닌 청년이었다.

“좋아요! 정당한 승부를 하죠!”

두계희가 선뜻 승낙했다.

“하하, 그럼 내가 먼저 공격하겠네…….”

온화한 목소리로 공격을 알리는 엽오의 눈에, 희미하게나마 살기가 스쳤다.

두계희는 엽오가 보인 온화한 태도에 감명을 받은 듯, 한 합을 겨룰 때마다 아쉬워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두 사람 다 절기를 펼치니, 무대가 폭파되고 공격이 부딪치는 소리가 관중들의 귀를 먹먹하게 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지도 않았고, 살기를 숨기지도 않았지만 그저 힘을 겨루고 있었다.

보기에는 멋진 전투였지만, 다소 위기감이 떨어지는 광경이었다.

이러한 전투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관중들은 두 무인의 절기를 구경하며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결국 승부를 가리기 위함이니 목숨이 걸려 있다는 절박함은 느낄 수 없었다.

어찌 되었든, 두계희와 엽오에게 있어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승부다.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던 소도도는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뭔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지만 동시에 참고 있는지, 입술이 몇 번인가 달싹였다.

옆에 서 있던 장단봉 부원장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엽오는 꿍꿍이가 있는 듯하네. 그가 예선 때 상대한 이들은 모두 죽거나 다치지 않았나.”

“희아는 속여도 이 몸은 못 속이죠. 엽오는 줄곧 살기를 억누르고 있네요.”

소도도 또한 목소리를 낮춰 답했다.

“어? 그럼 왜 두계희에게 알리지 않았는가?”

장단봉이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험악한 인심을 겪어 보는 일도 경험이 될 테죠.”

아니나 다를까, 소도도의 대답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엽오가 감춰 둔 엄니를 드러냈다.

두계희와 엽오는 동시에 주먹을 날렸고, 주먹이 맞부딪히는 순간 엽오는 다른 손으로 두계희를 겨냥했다.

그의 손에는 육안으로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가느다란 독침이 쥐어져 있었다.

“좋지 않은데…….”

소도도의 안색이 돌연 어두워졌다.

“저놈이 독을 쓸 줄이야. 지금 희아에게 알려도 늦어!”

엽오에 손에 있는 은침을 모르는지, 두계희도 손을 들어 다가오는 그의 손을 막아냈다.

쾅!

두 손바닥이 맞부딪치자 사방이 번쩍이더니, 충격파가 일며 무대 밖까지 퍼져나갔다.

쿵쿵쿵……!

엽오는 한참을 뒤로 물러나더니 휘청거리며 겨우 걸음을 멈췄다.

“푸……!”

엽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곧 피를 왈칵 토해내었다.

“두계희, 너……!”

“너는 무슨 너냐. 누가 알려 주지 않았으면, 네놈의 수작에 당할 뻔했어!”

허공으로 떠올랐던 두계희가 무대로 내려와 천천히 엽오에게 다가갔다.

이때 엽오의 손바닥을 주의 깊게 보았다면, 작은 멍과 함께 은침이 그의 손바닥에 꽂혀 있는 광경을 알아차릴 터였다.

“희아가 그의 수법을 알아차리다니?”

소도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누가 알려 줬다고 했는데?”

소도도의 머릿속에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고 눈은 무대 주위의 군중을 훑었다.

잠시 후, 그의 눈에 실망의 빛이 어리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운 형제, 운 형제, 대체 어디 있는겐가.”

물론, 운청휘는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그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면, 소도도가 어찌 그를 발견할까.

방금 두계희에게 은침의 존재를 알린 이가 바로 그였다.

엽오가 손을 뻗기도 전에, 그의 신식이 은침을 감지했기에 운청휘는 두계희에게 전음으로 사실을 알렸다.

두계희는 어렸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엽오의 수법을 역으로 이용했다. 은침은 엽오의 손바닥에 꽂혀, 순식간에 그의 몸에 독을 퍼트렸다.

“하…… 항복하겠네!”

엽오는 두계희의 냉소적인 표정을 보고 그 자리에서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나 곧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속이려고 했는데, 내가 항복할 기회를 줄 것 같나요?”

두계희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엽오의 주변에 영력의 막이 얇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 막이 엽오의 목소리가 다른 이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도도 형이 말했어요. 나를 죽이려고 하면 누가 됐든, 배경이 어떻든 일단 죽이고 보라고. 네놈이 바로 나를 죽이려는 사람이잖아!”

두계희가 소도도의 말을 떠올리며 엽오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영력으로 이루어진 예리한 검이 손 위에 형성되었다.

두계희가 그 칼로 엽오를 찌르려는 순간…….

“멈추게!”

냉혹한 목소리와 함께 80세의 노인이 다가왔다.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를 알아야지. 엽오는 이미 패하였거늘, 어찌 죽이려고 드는가.”

이미 엽오와 두계희를 가로막고 선 노인이 두계희를 꾸짖었다.

“엽오, 내려가게. 이번 시합은 두계희의 승리네.”

심판은 두계희를 외면하며 곧장 결과를 발표했다.

두계희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져 있었다.

천교대전은 사생결단을 금지하지 않는다. 승리한 쪽이 상대방을 죽이려 들어도, 결정권은 오직 참가자에게 있었다.

적어도 방금 두계희가 엽오를 죽이려고 마음먹었으니, 그의 생살여탈권은 두계희에게 달린 셈이었다.

엽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용서를 비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심판은 공공연히 개입하여 억지로 엽오를 구해냈다.

관중들은 의외의 광경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멈추세요!”

두계희의 단호한 외침이 울렸다.

“심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두계희는 심판의 반응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만약 패한 사람이 저였다면, 그때도 개입하여 제 목숨을 구할 건가요?”

“두계희, 무슨 뜻이지? 설마 노부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건가?”

수많은 군중 앞에서 추궁당하자, 심판은 화를 내며 따지기 시작했다.

“천교대전에 참가하는 이들은 천원왕조 최고 기재들이지. 노부는 심판으로서 사상자의 발생을 막으려는 거라네! 자네가 패배했더라도, 노부는 당연히 자네를 보호했을 걸세.”

“좋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누군가 당신을 혼내 줄 테니!”

두계희는 가까스로 화를 가라앉혔다.

세 번째 시합이 이어졌고, 상대는 4대 가문 중 하나인 구양가의 자제였다.

10합을 겨룬 끝에 구양가의 참가자는 패배를 인정했다.

“두 소협,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구양가의 참가자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감격하여 무대를 내려갔다.

“별말씀을! 참가하기 전에 부원장님께서 말씀하셨죠. 구양 가의 참가자와는 정당히 겨루라고 하셨어요.”

두계희가 빙그레 웃었다.

“심판, 벌써 3번이나 이겼는데,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나요?”

두계희가 심판을 바라봤다.

“성공학관의 두계희, 본선의 두 번째 단계로 진출.”

심판이 무미건조하게 선언했다.

“다음으로 올라올 사람은 성공학관의 소도도. 그의 상대는 천원학관의…… 고명인(苦命人)!”

고명인?

이름을 들은 순간 운청휘의 눈에 의혹이 깃들었다.

천교대전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본명을 사용한다.

고명인이라는 이름은 불운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언뜻 듣기에는 꼴사나운 별명처럼 느껴졌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한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마침 소도도가 어두운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왔다. 고명인이 누구인지 아는 기색이었다.

“걸걸걸, 드디어 내 차례가 왔군!”

기이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망루에 기대고 있던 이가 무대 위로 훌쩍 올라왔다.

피융……!

무대 위로 올라온 고명인을 본 이들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켜며 수군거렸다.

그는 두 팔과 다리가 없는 대신, 예리한 검 네 자루를 손발 대신 끼워 두었다.

두 다리를 대신한 굽은 형태의 검은 그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챙’ 하는 소리를 내며 듣는 이의 기분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소도도, 이 고명인의 칼에 죽는다면 영광으로 받아들이게!”

고명인이 먼저 입을 열었는데, 그의 목소리는 쉬다 못해 아예 목이 잠긴 듯했다.

“정말로 이름이 고명인인가?”

결국 소도도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걸걸, 물론이라네!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으니, 아무도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내가 고명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네!”

고명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네…….”

관중석에서 고명인을 아는 이가 입을 열었다.

“고명인은 태어날 때부터 사지가 없었고, 얼굴도 기형이라 산속에 버려졌다지. 한데 잡아먹히기는커녕 열세 살까지 야수들에게 길러졌다네. 그 후에 천원학관의 교관에게 입양되어, 수련을 받았다고 들었어. 하지만 야수들에게 길러진 탓인지, 약육강식밖에 모르는 게야. 무공을 익힌 후엔 은혜를 잊고 교관을 죽여 들판에 유기한 자네.”

내막을 아는 또 다른 사람이 거들었다.

“그 후에 고명인은 친부모를 찾아내서, 5년 동안이나 괴롭히다 죽였다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시체를…… 먹었다고 들었네!”

“나도 들었네. 고명인은 아직도 그 습관이 있다는데? 야수들과 생활하면서 그리 습관이 든 모양이야.”

“소문으로는 고명인에게 잡아먹힌 사람이 이미 네 자릿수가 넘었다지!”

고명인의 생애를 들은 이들은 소름이 끼치는지 고명인을 다시 보자마자 몸서리를 쳤다.

“그들이 하는 말이 모두 진짜인가?”

소도도의 무위로 그들의 이야기를 놓칠 리가 있을까. 소도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걸걸, 그게 중요한가?”

고명인이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중요하지 사실이라면 이 몸이 사람들을 위해 자네를 죽일테니까!”

소도도의 눈에 은은한 분노가 일렁였다.

만약 주위에서 떠드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고명인은 인간의 자격이 없는 쓰레기였다. 아니 쓰레기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을 위해 나를 죽인다고? 걸걸걸……, 그런 말을 했던 이들은 죄다 내 뱃속으로 들어갔다네.”

고명인은 먹이를 살피는 야수의 눈빛으로 소도도를 바라보며 입술을 축였다.

소도도는 평소와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한 줄기 섬광처럼 고명인에게 달려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