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챙캉! 캉! 챙!
고명인이 제자리에서 회전하자, 손발에 달린 칼이 번쩍이는 회오리바람이 되어 사방을 매섭게 휘감았다.
소도도의 손바닥이 회오리를 뚫으려 했지만, 예리한 상처만 입을 뿐이었다.
“걸걸걸, 이 정도의 공격으로 나를 죽이려고 했나?”
고명인이 냉소를 흘리며 외쳤다.
슈우우……!
예리한 칼로 이루어진 회오리가 소도도에게 불어 닥쳤다.
무대의 바닥이 회오리바람에 휩쓸리며, 곳곳에 돌멩이가 날아다녔다.
“소도도가 접근도 못하잖아? 고명인은 정말 강하구만!”
“고명인이 그렇게 행패를 부리며 살 수 있는 것도, 다 무위 덕분이지.”
“올해 천원학관 대항전에서 고명인이 4위를 했다는데? 세 성도 다음 순위잖아!”
“고명인은 월경 8단계의 무위에, 이성 기재라고 들었어! 게다가 손과 발 대신 쓰는 검은 죄다 황급 상품이니, 전투력이 양경 2단계의 무인 못지않아!”
군중의 수선스러운 반응과는 달리, 소도도는 침착하게 고명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을 철저하게 응징할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한 방에 죽여주지!”
소도도가 손바닥의 피를 닦고 등 뒤의 봉을 꺼내 들었다.
“한 방에 나를? 하하하……!”
고명인이 폭소를 터트리며 동시에 그에게서 일어난 회오리바람이 몸집을 키웠다.
슈우우……!
빠르게 회전하는 칼날이 허공에 화려한 불빛을 흩뿌렸고, 월경의 무인을 단번에 산산이 조각낼 듯 위협적인 소리를 내었다.
소도도는 날렵하게 허공으로 떠오른 후, 손에 쥔 영양봉을 높이 치켜들어 그대로 내리쳤다.
콰아앙!
그 순간, 무대를 장악한 회오리바람이 일시에 사라지며 영양봉이 고명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챙강! 챙강! 챙강! 챙강!
고명인의 손발이었던 칼들은 조각이 되어 무대에 떨어졌고, 영양봉에 직격당한 그의 머리는……, 무른 과일처럼 터지고 말았다.
“소도도가……, 한 방에 고명인을 죽였어!”
“어떻게 이럴 수가, 고명인의 전투력은 양경 2단계의 무인과 비슷할 텐데!”
관중들이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수군거렸다.
그들이 보기에 소도도가 고명인을 죽일 수 있다고 해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소도도는 단 한 방으로 고명인을 죽여 버렸다!
“응?”
상석에서 지켜보던 운역 운가의 사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다소 의외라는 눈치였다.
“안심하시게, 운 공자. 소도도는 오래가지 못할 걸세. 세 번째 상대가 내 아들 상관우라네!”
중년인이 얼른 운역 운가의 사자에게 설명하며 안심시켰다.
“상관우?”
그 이름을 듣고 운역 운가의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우의 천부적인 재능은 우리 운역에서도……, 간신히 기재라 불릴 수 있겠군.”
“하하, 제 아들이 과분하게 운역에 간다면 공자께서 잘 돌봐주시오!”
중년인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웃음 지었다.
그는 다름 아닌 상관우의 부친이자, 4대 가문 중 하나인 상관가의 가주였다.
***
고명인이 죽었다.
적지 않은 놀라움을 일으키긴 했지만, 안타까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천원학관에서 온 이들도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명인 같은 인간쓰레기는 진작 죽었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다음 상대 또한 소도도는 손쉽게 물리쳤다.
곧 세 번째 대결을 할 차례인데……, 이대로라면 두 번째 시합 출전도 수월해 보였다.
“소도도 승리, 세 번째 상대는 천원학관의 상관우!”
그러나 심판의 선언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집었다.
“뭐라고?!”
“상관우가 이렇게 빨리 나온다고?”
“소도도는 끝났네. 의심할 바 없이 패배가 분명해. 설령 하늘을 뒤엎을 능력이 있어도, 상관우의 상대가 되기나 할까!”
“보아하니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아. 상관가의 가주가 운역 운가의 사자의 환심을 사려고……, 상관우를 내보는 거야!”
“그렇다면 소도도는 죽음을 자초한 건가. 운역의 사자에게도 미움을 사다니……, 잘됐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나서 주니, 운역 운가의 사자는 손을 쓸 필요도 없겠어!”
심판이 상관우의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무대 주위는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랐다.
그의 또래 무인 중 상관우를 숭배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상관우가 패배를 모르며, 세상을 압도하는 영웅 그 자체였다.
군중의 환호를 뒤로하며, 옷차림은 간단했지만 제왕의 고귀함을 내뿜는 청년이 무대에 올랐다.
청년을 본 순간 소도도는 곧바로 영양봉을 꺼내 방어 자세를 취했다.
뻔뻔한 행동이긴 했지만, 이토록 추앙을 받는 상관우는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었으니 소도도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소도도, 우리 또 만나게 되었군!”
상관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소도도를 바라봤다.
소도도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말을 이었다.
“원래 네놈은 운해의 사냥감이었지.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는데……, 널 죽여 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어쩔 수 없군.”
“누가 부탁한 건데?”
소도도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 있구만! 이 몸이 운해를 싫어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운해보다 네놈은 한참 모자란 놈이야! 적어도 운해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 남의 엉덩이에 얼굴을 조아리지도 않거든. 하하하!”
“뭐라고?!”
상관우의 안색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이 몸이 얼마나 직설적으로 말해 줘야 알아듣겠냐? 남들을 다 하찮게 여기는 네놈이 나를 죽이려 드는 게, 아부를 떠는 게 아니면 뭘까? 그런데 이건 알고 있나? 네놈이 아부하는 놈은 속이 아주 좁아서…… 금세 네놈을 질투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될 거다!”
소도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외쳤다.
“응? 상관우가 나온 게, 소도도의 말처럼 운역 운가의 사자에게 아부하려는 거였어?”
“아마도……, 그런 거 같군!”
“퉤, 그를 존경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실망스럽군!”
“게다가 소도도의 말이 맞아. 운해는 누구에게도 그 몸을 굽혀서 아부하려고 하진 않을걸? 그러니 상관우가 운해에 못 미치는 거지.”
상관우가 이를 갈며 손을 뻗자, 영력으로 만들어 낸 채찍이 소도도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소도도는 피하지 않고 똑같이 채찍을 만들어내 맞섰다.
차악!
두 채찍이 부딪친 순간 사방으로 불꽃이 튀었고, 숨 쉴 틈도 없이 소도도의 채찍이 끊어지고 말았다.
상관우가 조종하는 채찍은 곧바로 소도도의 몸을 내려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상관우는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빠르게 다른 손을 허공에 뻗었다. 허공에 떠오른 예리한 화살이 소도도를 노리며 날아들었다.
쐐애액!
소도도는 통증을 참으며 화살을 피하려 몸을 돌렸지만……, 기이하게도 화살은 그가 몸을 돌린 순간 각도를 바꾸며 그를 쫓았다.
이 정도로 영력을 조종하는 건, 소도도에게는 아직 먼 경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소도도가 드물게 경악했다. 상관우의 영력 운용은 이미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더는 숨길 수도 없겠군……!”
작게 투덜거린 소도도가 영양봉을 휘둘러 공격을 맞이했다.
콰앙!
영양봉은 순식간에 상관우가 환화시킨 무기를 박살냈다.
“좋지 않은데……!”
그러나 소도도의 안색이 어둡게 변했다. 시야에 상관우가 보이지 않는다!
소도도는 무심결에 몸을 돌려 사방으로 영양봉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영양봉을 휘두르며 일으킨 빛으로 허공이 온통 번쩍였다.
“그 몽둥이가 아무리 좋은 물건이어도, 네놈의 실력으로는 제대로 쓰지 못할 거다.”
별안간 상관우의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뒤이어.
쾅!
소도도의 아랫배에 그의 일장이 강하게 파고들었다.
소도도가 밀려나기도 전에 다시 일장이 날아들어 왼쪽 어깨를 타격했고, 소도도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깨가 완전히 바스라졌다.
“어? 이건 무슨 재질인가, 나무도 아니고 철도 아닌데.”
어느새 영양봉을 손에 쥔 상관우가 이리저리 살피며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황급 상품의 검 네 자루를 한 방에 조각냈었지. 흠, 경도만 보면 이 몽둥이는 지급 이상이겠어.”
상관우가 영양봉을 살피고 있을 때, 소도도는 반동으로 삼십여 장을 날아간 상태였다.
“컥컥……!”
피를 뿜어낸 소도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상관우를 응시했다.
“상관우, 너도 돌파할 줄 몰랐네, 게다가…… 월경 8단계라니!”
“하하, 다 마라(摩罗) 그 영감 덕분이지. 나를 성공학관에서 내쫓지 않았다면, 어찌 보름도 걸리지 않아 월경 8단계까지 돌파했을까!”
상관우는 냉소를 머금으며 소도도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가 언급한 ‘마라’ 영감은 성공학관의 원장이었다.
“어? 그게 마라 영감이랑 무슨 상관인데?”
비록 중상을 입었어도 그의 호기심은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상관우에게 들은 이름을 바로 외치는 소도도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대답하려던 상관우가 멈칫하더니 곧 코웃음을 쳤다.
“흥! 네놈은 곧 죽을 텐데 그런 걸 알 필요 없지!”
“내가 죽는다고 누가 그래?”
소도도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체내의 모든 영력을 일으켜 쩌렁쩌렁한 소리로 외쳤다.
“심판, 나 소도도는 항복하겠소. 빨리 상관우가 나를 죽이는 걸 막아 주시오! 어이, 시치미 떼지 말고! 두계희가 엽오를 죽이려고 했을 때는 막았잖아!”
***
“장 부원장님, 도도 형이 패배를 인정했는데 심판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제가 나설까요?”
두계희는 걱정스러운 듯 부원장 장단봉을 쳐다봤다.
“일단 여기에 있거라. 소도도를 이리 잃을 수는 없다!”
장단봉은 곧바로 무대 위로 향해 외쳤다.
“상관우, 관용을 베풀 거면 베풀어라, 소도도가 패배를 인정했으니, 그를 살려 주게!”
어느새 소도도를 지키듯 선 장단봉이 상관우를 바라보며 준엄하게 말했다.
“진(秦) 심판, 자네도 마찬가지네.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를 알아야지. 소도도는 패배를 인정했거늘, 어찌 결과를 발표하지 않는가?”
이어서 장단봉은 심판을 바라보며 꾸짖었다.
관용을 베풀 때는 베풀어야 한다.
진 심판이 엽오를 구했을 때 한 말이 아니던가.
무대 맞은편의 상석에 앉은 이들 중, 운역 운가의 사자와 몇몇은 모두 냉소를 머금었다.
상관우의 아버지, 상관가의 가주도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