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진비(秦飞)가 엽오를 구한 것은 그것으로 엽가의 인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소도도는 어떠한 이득도 없을뿐더러 우리 상관가의 미움을 샀지. 어디가 득이고 실인지는 진비가 잘 알 텐데?”
상관가의 가주가 말한 ‘진비’는 지금 무대에 서 있는 심판의 이름이었다.
무대 위에서 진비가 부들부들 떨더니 노성을 내질렀다.
“장단봉, 건방지구나! 천교대전의 무대에 네가 난입할 수 있더냐? 게다가 천교대전의 규칙에는 패배를 인정한다는 조항은 없거늘! 노부는 심판의 신분으로 네놈에게 내려가라고 명령하겠다! 계속 버티려거든, 노부의 대처를 원망하지 말거라!”
장단봉에게 호통을 치는 진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늙은이, 벌써 머리가 오락가락하오? 두계희가 엽오를 마무리하려고 했을 때, 영감은 어떻게 했지?”
중상을 입은 소도도는 평소처럼 욕설을 퍼부을 기력이 없는지, 그저 따지며 말을 이었다.
“젠장, 네놈이 엽가에 아부하는 걸 이 몸이 못 알아볼까! 이제는 상관가에 개처럼 꼬리를 흔들고 있구나! 영감탱이, 성공학관에도 미움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잘 생각해 봐라. 만약 이 몸이 뜻밖의 사고라도 당하면, 성공학관이 네놈을 도살하고도 남는다!”
“진비, 상관가에 아부하며 창피하지도 않느냐? 소도도의 말을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성공학관은 네놈이 함부로 건드릴 곳이 아니다!”
장단봉도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하, 네놈들이 성공학관을 내세워 노부를 위협하려 드느냐? 어림도 없다! 승부가 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시합에 개입할 수 없다. 성공학관뿐만 아니라, 천검종(天剑宗)이 와도 이 노부는 ‘안 된다’라고 말하겠네!”
심판 진비가 공정한 척을 하며 단호히 말했다.
“장 부원장, 지금 성공학관의 이름으로 심판을 위협하려는 것인가?”
곧 무대 맞은편의 상석에서 중년인 한 명이 내려와 진비를 감쌌다.
“저기 봐, 상관가의 가주, 상관정덕(上官正德)이야!”
중년인을 알아본 군중들이 하나둘씩 쑥덕거렸다.
“우야, 경기를 계속하거라!”
상관정덕이 상관우를 격려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비, 자네의 소임을 다하게. 성공학관의 일은 내가 책임지지!”
이번에는 심판을 보며 자신만만하게 말한 상관정덕이었다.
“소도도. 노부가 책임질 테니, 무대에서 내려와라!”
어찌 자신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장단봉은 무거운 표정이었지만 소도도를 향해 손짓했다.
“네!”
지금은 잘난 체를 할 때가 아니었다. 몸에 남은 영력을 쥐어짜서라도, 무대에서 멀리 떨어져야 했기에 소도도는 냉큼 몸을 날리려 했다.
“소도도, 어딜 가는 게냐!”
상관우가 고함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신형이 흩어지더니, 순식간에 소도도에게 달려들었다.
“상관우, 벌써 귀도 안 들리냐? 이 몸이 패배를 인정했잖아!”
소도도가 무대 아래로 날아가며 소리쳤다.
“패배를 인정했다고? 진 심판이 아까 한 말을 못 들었냐. 시합 규칙에 패배를 인정한다는 조항은 없어!”
그러나 상관우는 싸늘하게 맞받아쳤다.
쉬이익……!
장단봉이 손을 휘두르자, 영력으로 만들어진 수백 개의 화살이 일제히 상관우를 겨냥하며 쇄도했다.
“장단봉, 네놈의 상대는 나란 말이다!”
아들이 공격당하는 모습에 상관정덕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허공을 가르던 수백 개의 화살이…… 허무하리만치 가볍게 흩어졌다.
“푸……!”
오히려 장단봉이 피를 한 움큼 뿜으며 휘청거렸다.
“양경의 수단답구나……!”
장단봉이 창백해진 얼굴로 상관정덕을 바라봤다.
“운청휘…… 충분히 봤을 테니, 이제 자네가 나설 차례네!”
장단봉은 피를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그는 원장이 보낸 서신을 받았다. 어제 운청휘가 황성으로 출발했다고 했으니, 분명 이 주위에 있으리라.
그렇게 단정을 지은 장단봉은 구경꾼들 사이에 있을 운청휘를 향해 말을 건 셈이다.
“운 형제가 여기 있다고?”
상관우에게 쫓겨 다니던 소도도가 돌연 눈을 반짝였다.
아니나 다를까, 붉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나 운청휘의 형제를 네놈이 죽이고 싶다면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던 가?”
운청휘의 싸늘한 시선이 상관우를 향했다.
냉랭한 음성이 끝을 맺을 즈음, 영력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상관우를 내리쳤다.
운청휘의 등장에 상관우는 다소 의아했지만, 그가 만든 영력화장을 보고 가소롭다는 표정을 보였다.
영력화장은 자신이 월경 6단계일 때도 하찮게 여기던 기술이다.
상관우는 여유롭게 허공을 향해 일격을 내질렀고, 영력으로 형성된 주먹이 거대한 쇠망치처럼 영력화장을 짓눌러 갔다.
쾅!
주먹과 손바닥이 거세게 충돌하며, 군중들이 휘청거릴 정도로 큰 충격파가 이어졌다.
서로의 기술이 상쇄될 때, 군중들은 상관우가 만들어 낸 주먹이 큰 손에 파괴되었다고 여겼다.
“안 돼!”
상관우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하찮게 여겼던 영력화장이, 자신의 주먹을 깨부수고 쇄도해 오고 있었다!
콰아앙!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순간, 폭음과 함께 무대가 거세게 몸을 떨었다.
“우야……!”
상관정덕이 비명을 지르며 상관우가 있던 자리로 내달렸다.
“이 위력은…….”
상석에 앉아 줄곧 내려다보고 있던 운역 운가의 사자도 이 순간만큼은 얼굴빛이 변했다.
방금 운청휘가 보인 한 방의 위력은 이미 그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상관정덕은 서둘러 영력으로 무대에 자욱한 흙먼지를 걷어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무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손바닥 모양의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깊이가 수십 장은 될 듯한 구덩이 안으로, 상관정덕이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우야, 나의 우야……!”
곧 그의 눈에, 구덩이 안에 상관우가 없다는 사실이 선명히 새겨졌다.
“아……!”
상관정덕이 비통한 소리를 내지르며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금수만도 못한 놈! 감히 나의 우를, 시체도 남김없이 죽이다니!”
그의 외침은 무대 주위를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뭐, 상관우가 죽었다고?”
상관우가 누구인가?
또래의 무인들에게는 신화 속의 인물이나 다름없었고, 천원왕조 전체를 둘러보아도 그와 견줄 수 있는 이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그 상관우는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압사 당했다.
군중들은 온통 운청휘에게 시선을 집중하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붉은 장포를 두르고 고고히 서 있는 운청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한 시선으로 주변을 훑을 뿐이었다.
“저자의 천부적인 재능은 운역 운가에서도 절정의 기재다. 만약 저자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운청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전에 없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운역 운가의 사자는 곧바로 운청휘를 굴복시킬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굉장하네, 운 형제! 며칠 못 본 사이에 또 무위가 폭등하였군! 상관우를 한 방에 죽이다니, 자네는 정말……!”
소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운청휘를 바라봤다.
“이 짐승 같은 놈! 감히 나의 우를 죽이다니, 네놈의 목숨을 받겠다!”
관중들의 환호성과 소도도의 경탄 등 온갖 목소리로 시끄러운 가운데, 돌연 상관정덕의 비통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상관 가주, 운청휘가 천교대전의 규칙을 파괴했으니, 노부가 저 녀석을 사로잡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심판 진비가 돌연 상관정덕을 제지하고 나섰다.
‘운청휘를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상관 가문에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허울만이 아닌 진정한 인정을!’
진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조심해라 운청휘, 진비는 양경의……!”
장단봉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운청휘가 진비에게 공격을 가했다.
거대한 손이 온 하늘을 가리며 드리웠고,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정도의 위압을 발산했다.
양경의 무인인 진비마저도 두려움을 느끼고 손에 땀을 쥐었다.
진비는 충동적으로 나선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는 상관우를 단 일격으로 죽였건만, 어찌 그보다 무위가 낮다고 확신하였을까.
그러나 진비에게는 퇴로가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상관가의 인정을 받기는커녕, 자신마저 상관가의 분노를 사게 될지도 모른다.
진비는 이를 악물고 절기를 펼쳐내 다가오는 거대한 영력화장에 맞섰다.
“운청휘, 노부가 우선 네놈의 영력화장을 깨뜨리고 네놈을 사로잡……!”
쾅!
영력화장은 마치 개미를 짓누르는 무정한 손가락처럼, 진비의 공격과 맞부딪쳤다.
그 직후, 진비는 그대로 튕겨 나갔다. 동시에…….
콰앙! 우르릉!
무대 주변에 있던 이들이 황급히 귀를 막았다. 거대한 굉음이 온몸을 찢어발길 듯했다. 무대는 고통에 몸을 떠는 이처럼 쉴 틈 없이 진동하며 무대 주변까지도 여진을 일으켰다.
“이것은……!”
간신히 입을 연 사람들마저 곧 할 말을 잃고 넋을 놓았다.
“야…… 양경의 심판 진비가 상관우와 같은 꼴이 되었잖아!”
“굉장하네!”
모두가 경악하는 와중에도 소도도만은 눈을 반짝이며 운청휘을 지켜보았다.
“운 형제는 도대체 어떻게 수련했기에 무위가 이리도 쑥쑥 오르는가? 단약을 먹어도 이렇게 까지는 안 될 텐데?”
부원장 장단봉도 마른침을 삼키며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치 거대한 흉수를 마주한 듯 두 눈에 공포가 떠올라 있었다.
‘원장님께서 그와 세 명의 성도 중 그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셨군……!’
상석에 앉아 있던 운역 운가의 사자마저도 눈을 부릅뜨고 운청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 자로다. 저놈은 반드시 굴복시켜야 해. 확실한 수단을 써서, 어떻게든 굴복시켜야만 한다!”
그 순간, 상관정덕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상관우가 죽었을 때만 해도, 그는 끓어오르는 살기에 휩싸여 운청휘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진비마저도 운청휘의 일격에 목숨을 잃자, 그의 분노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간신히 이성을 끌어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