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자신이 과연 운청휘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그의 머릿속에서 저울의 추가 한 쪽으로 기울었다.
상관정덕은 돌연 손가락을 튕겼다.
그의 영력이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불꽃이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삼백 장 상공에 커다란 글자를 아로새겼다.
[상관]
***
“응? 가주님의 소집령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가주님께서 가문의 일원을 죄다 불러 모았어!”
“외황궁 쪽이야, 빨리 가자!”
상관정덕이 하늘에 새긴 글자는 상관가 내의 일원을 불러 모으는 소집령이었다.
글자를 발견한 상관가의 일원은 모두 외황궁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그중에는 상관가의 4대 장로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들은 모두 양경의 경지에 도달한 강자였다.
쿵쿵쿵……!
개중에는 길들인 흉수를 타고 질주하는 병사들도 있었다.
“응? 저건 상관가에서도 가장 높은 소집령이 아닌가!”
“맙소사, 상관가가 왕위 찬탈을 도모하는 거야? 외황궁에서 최고 수준의 소집령을 발동하다니!”
“어서 외황궁에 가보세! 황성은……, 오늘 분명 큰일이 날 것 같으이!”
상관가의 소집령을 알아본 이들은 벌떼처럼 외황궁을 향해 몰려갔다.
황성 4대 가문의 엽가, 운가, 구양가도 모두 정탐을 위해 외황궁으로 사람을 보냈다.
***
한편, 소집령이 내려진 직후 내황궁도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 터였다.
“폐하, 상관정덕이 외황궁에서 최고 단계의 가문 소집령을 발동했습니다.”
“폐하, 어림군 수령이 이미 5천의 어림군을 소집하여 궁전 밖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폐하, 3만이 넘는 상관가의 기병들이 외황궁에 도달하였습니다. 한데,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폐하……!”
금란전(金銮殿)은 순식간에 들이닥친 30여 명의 태감이 죄다 서신을 들고 무릎을 꿇는 통에 소란스러울 지경이었다.
용의(龙椅, 황제의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중년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순식간에 대전을 뒤덮었다.
모여 있던 태감들은 중년인의 용포 자락만 간신히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호흡도, 심장 박동마저도 멎을듯한 기운이었다.
“짐도 알고 있으니, 모두 물러가도록.”
중년인의 목소리는 구천을 떠도는 넋처럼 허무하게 울리는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이 가득했다.
“용위(龙卫)!”
모두를 물린 후, 중년인이 허공을 응시하다 문득 입을 열었다.
“폐하, 찾으셨사옵니까!”
텅 빈 허공에서 돌연히 금빛 갑옷을 입은 10명의 병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든 2급 마종에게 전하라. 10일 내 작전을 시작하고, 보름 후 병사들을 극광성으로 출발하라고 이르도록!”
용포를 입은 중년인의 명이 떨어지자, 병사들은 홀연히 금란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시각, 외황궁.
천교대전의 무대 앞에 눈에 핏발을 세운 상관정덕이 서 있었다.
그는 족히 수만은 되어 보이는 가문의 일원들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개중 4명은 100여 세가 넘는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상관정덕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닌, 상관가의 4대 장로였다.
“가주님, 어찌하여 소집령을 발동하셨는지요?”
상관정덕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곧 비통함이 짙게 서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우가…… 살해당했네!”
“뭐라고요?”
4대 장로를 포함한 상관가의 일원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가주를 바라보았다.
***
상관가는 아직 후계자를 확정 짓지 않았지만, 다들 상관우가 차기 가주가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상관우도 어릴 때부터 후계자로서 교육을 받고 자란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성공학관에서 성도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어느 가문이든 후계자의 사망은 거대한 타격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상관가의 소가주를 잃었으니, 이 일은 거대한 파급을 불러올 터였다.
“가주님, 소가주를 죽인 자가 누구입니까?”
4대 장로들은 하나같이 살기등등한 기세를 피워 올리며 물었다.
“운청휘!”
“운청휘? 성공학관의 운청휘를 말씀하십니까?”
4대 장로가 곧바로 성공학관과 운청휘를 언급하며 두리번거렸다.
“그렇네!”
상관정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간도 크구만! 성공학관도 마찬가지야!”
“소가주님까지 손을 대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나!”
“가주님, 성공학관 놈들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그들의 수급을 거둬 소가주 곁으로 보내겠습니다!”
4대 장로는 모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노성을 내뱉었다.
“당장 성공학관 놈들을 참살하라!”
“운청휘뿐 아니라 성공학관의 모든 이들을 없애 버려라!”
그들의 노성을 따라, 상관가의 일원들이 모두 분노의 함성을 터트렸다.
“때가 거의 되었군…….”
여전히 상석에 앉아 지켜보던 운역 운가의 사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지금 운청휘를 살리기 위해 나선다면, 그에게 빚을 지울 수 있다.”
그의 신형이 별안간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마치 하늘을 유유히 거니는 선인처럼 천천히 무대 위에 내려앉았다.
“상관 가주. 이 운 모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겠소?”
무대에 오른 그가 상관정덕을 보더니 꽤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
“운 공자, 서운한 말씀을 하는군. 운 공자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겠네!”
상관정덕 또한 서둘러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상관정덕의 태도가 만족스러운 듯, 운역 운가의 사자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었다.
“하하, 나는 상관 가문이……, 운청휘를 놔줬으면 한다네.”
여유롭게 말하던 그가 상관정덕을 힐끗 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성공학관의 나머지 사람들은 자네들 마음대로 처리하게.”
“운 공자, 다른 일이라면 응당 따르겠지만 운청휘는 제 아들을 죽였……!”
“운청휘를 풀어 주면, 상관가에 운역 운가의 한 자리를 내어주지!”
상관정덕의 말이 끊겼지만, 그는 불만을 품을 겨를도 없었다.
“운 공자, 저, 정말인가?”
그 순간, 상관정덕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엉겁결에 말을 내뱉은 그는 곧 실수를 알아차리고 즉시 몸을 굽혔다. 운역 운가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속일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가 절을 올리며 거듭 예를 표했다.
“고맙소, 운 공자!”
상관정덕뿐만 아니라, 4명의 장로도 눈을 번득였다.
운역 운가에 들어갈 자리를 얻는다면, 상관우의 죽음이 상쇄될 수 있는 거대한 보상이다. 이로써 상관가는 한 걸음 더 도약하지 않겠는가!
“운청휘, 본 공자의 말을 잘 들었는가?”
운역 운가의 사자가 운청휘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의 눈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타인을 내려다보는 이 특유의 오만함이 가득했다.
“어서 운 공자께 인사드리지 못할까! 운 공자가 네놈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네놈은 지금쯤 우리 상관가의 분노로 한 줌 재가 되었을 터!”
상관정덕이별안간 운청휘에게 호통을 쳤다.
“응?”
운청휘가 반응도 하지 않자, 운역 운가의 사자 또한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한 번 더 일깨워 줘야 하는 건가…….’
그가 생각을 마치자마자 전신에서 고귀하고 막강한 기세가 폭발하듯 발산되었다.
“운청휘, 내가 비록 자네의 목숨을 살렸지만, 상관 가문의 후계자를 죽였으니 상관 가문의 모든 사람에게 머리를 세 번 조아리거라.”
“……정말 고맙소, 운 공자.”
상관정덕이 감격에 겨워 인사를 올렸다. 어떤 보상이 주어졌든 간에 운청휘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다. 비록 복수를 이루진 못해도, 운청휘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다면 아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겠는가.
“운청휘, 운 공자께서 무릎을 꿇으라 하시지 않았느냐!”
상관정덕과 4대 장로가 일제히 운청휘를 바라봤다.
“번견 노릇을 하니 잘도 짖어 대는구나.”
줄곧 침묵하던 운청휘가 불쑥 내뱉더니, 소도도를 향해 몸을 돌렸다.
“도도, 저 얼간이가 당신이 원한을 샀다는 운역 운가의 사자인가?”
얼간이라니?
운청휘의 표현에 모든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소도도도 잠시 넋이 나간 듯했지만 곧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맞다네. 저자가 운역 운가의 사자일세. 운 형제, 듣자 하니 얼간이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다닌다고 하니 조심하게. 괜히 옮겠네그려.”
“그와는 무슨 원한이 있지?”
운청휘가 돌연 물었다.
“운 형제, 정말로 알고 싶은건가?”
소도도가 어쩐지 주저하는 듯 되물었다.
“당연하다.”
운청휘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어머니는 운역 운가의 사람이네. 아버지와 함께했다는 이유로 가문에 희생당했지. 내가 천원왕조까지 온 건 운역 운가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운란명(云兰明)이 알아차렸더군.”
소도도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운청휘의 신식은 그의 마음에 깃든 오래되고 짙은 살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 그래. 운란명의 아버지가 내 부모님을 죽인 이들 중 하나지. 하하, 운 형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지 모르겠…….”
“그러지.”
운청휘는 소도도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기에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가?”
“운란명이 죽기를 원하지 않나?”
운청휘가 당연하다는 듯 되물었다.
“운 형제, 잘 생각하게. 운란명을 죽이게 되면……, 자네는 운역 운가 전체의 미움을 사게 될 걸세!”
소도도의 표정이 평소와 달리 진중해졌다.
“도도. 낭야산에서 공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나? 만약 내게 봉변이 생기면, 성공학관을 나가겠다고 했지. 그 말을 할 때 뒷일도 생각하고 있었나?”
그러나 운청휘는 담담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생각하긴 했지. 그뿐인가, 그 뒤엔 정말 죽는 줄 알았다네. 그때의 무위로 공휘와 맞섰다면, 그가 손가락 하나로 나를 짓뭉개 버렸겠지!”
다시 생각해도 무섭다는 듯, 소도도가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