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그러나, 뭐 어떠한가. 자네는 내 형제이니, 자네를 위해 성공학관을 나가도, 천하를 등져도 상관없다네!”
조금의 거짓도, 흥분도 없이 소도도는 담담하게 진심을 털어놓았다.
“하하, 나를 위해 천하를 등질 수 있다고 하니, 나도 자네를 위해 운역 운가를 처리할 생각이다.”
운청휘 또한 담담하지만, 진심으로 답했다.
“운 형제, 그만 말하게. 더 하면 내가 울고 말겠어. 공연히 나를 감동하게 하다니.”
소도도가 눈가를 슥슥 문지르더니 말을 이었다.
“운 형제. 나 혼자서는 절대 이번 생에 복수를 이루지 못할 거야. 방금 형제의 말이 내게 희망을 주었으니, 믿고 있겠네. 자네가 복수를 해 줄 그날만을 기다리겠네!”
“걱정 말도록. 실망할 일은 없을 테니. 나는 한 말을 늘 지켰고, 하물며 너와 관한 약속이라면 어길 리가 없지.”
운청휘는 소도도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영력이 소도도에게 스며들었다.
소도도의 창백한 얼굴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더니 평소와 같은 얼굴빛을 띠었다.
“우선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나면 어깨의 상처를 치료해 주지.”
운청휘의 시선이 소도도의 반대쪽 어깨에 잠시 머물렀다.
그쪽 어깨는 육 할 이상이 상관우의 공격에 바스라진 상태였다.
“하하하, 알겠네, 그럼 저 얼간이 운란명을 처리해 주게!”
소도도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지.”
운란명은 운역 운가의 사자의 이름이다. 운청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려 상관정덕과 운란명을 바라보았다.
“운청휘, 감히 본 공자를 얼간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소도도를 위해 본 공자를 죽인다고 하였느냐?”
운란명은 이때 전에 없이 어둡고 음침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그에게서 피어나는 살기가 어찌나 차갑고 짙은지, 주위에 서 있던 상관 가문 일가는 말문이 턱 막혔다.
다만 그의 무위보다는 그의 배경이 두려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듯했다.
“음? 귀가 안 들리는 게 아니었나? 그렇다면……, 죽는게 났겠군. 네놈만 죽으면 정리되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말도록.”
운청휘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
가뜩이나 음침한 운란명의 표정이 더욱더 음험한 빛으로 물들었다.
“네놈의 천부적인 재능을 높게 샀건만……!”
“지금은 어떠하느냐?”
말과 동시에 운청휘는 영력으로 만들어 낸 손바닥을 날려, 운란명의 얼굴을 후려쳤다.
짜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운란명의 고개가 휙 꺾였다.
“하하하, 좋아, 운 형제, 바로 그렇게, 놈을 더 때리라고!”
소도도가 잔뜩 신이 나 그를 부추겼다.
짝! 짝! 짝!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운청휘는 운란명의 얼굴을 세 번이나 후려갈겼다. 운란명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맞은 탓인지, 화가 나서 붉어졌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운역 운가는 네놈 같은 폐물만 있더냐. 고작 이런 공격도 막아내지 못하니, 보지 않아도 뻔하군.”
운청휘가 싸늘하게 운란명을 내려다보았다. 시선에 경멸이 가득했다.
“후우, 후우, 후우우……!”
운란명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저절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단 한 번도 이런 취급을 받은 적이 없거늘! 연거푸 손바닥으로 맞으니 헤아릴 수 없는 치욕스러움에 몸이 떨렸다.
“승복하지 않는가? 그래, 천원왕조에 와서 아첨만 듣다가 이리 치욕을 당하지 않았느냐. 이대로 승복한다면 그야말로 버러지가 아니겠느냐.”
운청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무대 주위로 선명하게 퍼져나갔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운청휘의 말대로, 운란명은 운역 운가의 사자이니 천원왕조에서 대접을 받는 게 마땅했다. 다만 운청휘는 그에게 아첨하지 않았고, 아첨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운청휘가 운란명에게 준 건 치욕뿐이었다.
“장 원장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운청휘가 돌연 부원장 장단봉을 보며 말했다.
“……알겠네!”
장단봉 역시 멍하니 서 있다가 운청휘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다가왔다.
“장 원장님, 어제 저놈에게 무릎을 꿇었다죠?”
운청휘가 물었다.
“그렇네…….”
장단봉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운란명, 당장 무릎을 꿇어라.”
운청휘가 운란명을 바라보는 시선은 한없이 싸늘했다.
“운청휘, 네놈을 죽이겠다. 갈가리 찢어 버리고 말겠어! 네놈뿐 아니라 네놈의 가족, 학관, 네놈 주변의 모두를 죽이고 말겠다……!”
운란명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분노와 치욕스러움이 극에 달한 탓인지, 두 눈을 희번덕거리기까지 했다.
“상관정덕, 상관가의 전력을 쏟아 부어 운청휘를 제압하도록! 성공한다면 나 운란명과 운역 운가가 자네들에게 세 가지 빚을 지게 된다네!”
“허억……!”
운란명의 명령에 상관정덕과 4대 장로들이 숨을 들이켰다.
운란명, 그 뒤에 있는 운역 운가에 세 가지 빚을 지운다……! 헤아릴 수 없는 막대한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운란명의 요구를 충족한다면, 돌아올 대가는 상관가를 천원왕조의 주인으로 만들고도 남는다!
“운 공자, 운청휘는 원래 우리 황성 운가의 반역자이니, 그를 제거하는 중책은 황성 운가에게 맡겨 주시오!”
기세등등한 목소리와 함께, 세 개의 그림자가 무대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일흔 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으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운 공자, 저희 엽가의 소가주 엽천은 일찍이 운청휘와 깊은 원한이 있었는데…….”
엽가의 노인 3명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무대로 뛰어들었다.
그들도 황성 운가의 노인들처럼 양경의 무인이었다.
“알겠네! 자네들 중 운청휘를 잡는 사람이 나 운란명의 인정을 얻게 될 걸세!”
황성 운가와 엽가가 앞다투어 나서는 통에, 운란명은 거듭 알겠다고 소리치며 말을 이었다.
“세 가문이 연합하여 운청휘를 잡는 데 성공하면, 모든 가문에 나의 인정이 돌아갈 걸세!”
운란명이 서둘러 덧붙였다.
운청휘를 잡기도 전에 세 가문이 내분을 벌일 판이다. 차라리 세 가문을 고루 인정하고 운청휘를 잡아들이는 편이 나았다.
“금수 새끼야, 어서 무릎을 꿇고 순순히 잡히지 못할까!”
상관정덕이 제일 먼저 호통을 쳤다.
“금수 새끼야, 용기가 가상하구나, 운역 운가의 사자에게도 치욕을 주다니!”
엽가의 한 늙은이도 호통을 쳤다.
“금수같은 놈, 운 공자의 요구가 생포가 아니었다면, 노부는 당장 네놈의 수급을 네놈의 가족들과 함께 매장시켰을 테지!”
황성 운가의 사람은 냉랭하게 외치며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하하하, 운청휘, 봤느냐. 권세도 없는 네놈이 무엇으로 본 공자와 맞설 테냐? 이제 곧 본 공자가, 네놈에게 죽지 못해 사는 게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 주마!”
운란명이 음험하게 웃어 보였다.
운청휘는 모두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천천히 실눈을 뜨고 운란명을 응시했다.
“무릎을 꿇으라 하였거늘, 그새 잊어버렸느냐?”
말이 끝남과 동시에, 하늘마저 두려워할 기세가 운청휘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상관가, 엽가, 황경 운가의 몇몇 양경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어찌 이런 기세를 내뿜는 무인이 존재한단 말인가?
물러날 기회마저 놓친 운란명은 아예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고 말았다.
“누구도 본제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는데, 네놈이 뭐라고 감히 본제를 거역하느냐?”
운청휘의 얼굴에 두 줄기의 가는 선이 떠올랐다.
천성대륙에 돌아온 후, 그가 다른 이들 앞에서 ‘본제’라 칭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인간 세상에서는 황제를 제외하면 누구도 스스로를 ‘짐’이라 칭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본제’라는 두 글자는, ‘짐’보다 몇 배는 무겁고도 높은 칭호가 아닌가.
짐은 그저 황제이며, 하나의 국토를 통솔할 뿐이다.
그러나 본제는, 인간 세상을 초월한 선제가 아니던가.
선제가 무엇인가. 생각만으로 억만 생령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존재였다!
“본제?”
운청휘의 말에 상관가, 엽가, 황성 운가의 일원들과 운란명이 잠시 멍하니 눈을 끔벅였다. 곧 모두가 포복절도하며 무릎을 쳤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잘못 들은 거 아니겠지. 운청휘가 스스로를 본제라고 했어?”
“겁을 먹고 헛소리를 하는 게지!”
“누구도 그를 거역한 적이 없다고? 대체 누군데? 황제라도 되는가?”
“흥, 아무리 천원왕조의 황제라도 우리에게 함부로 명령하지 못해. 게다가 저놈이 명령한 사람은, 운역 운가의 사자잖아!”
세 세력의 비난이 쏟아질 때 운청휘가 말을 이었다.
“인간 세상의 황제 따위가, 본제와 비교될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운청휘의 말에, 이번에는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상관가의 장로 한 명이 코웃음을 치더니 운청휘가 만들어 낸 거대한 손을 올려다보았다.
“방자한 놈아, 노부가 네놈의 능력을 한번 봐야겠구나!”
상관가의 장로는 영력화장에 맞서며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퍼억!
그러나 그의 외침은 허무하게 흩어지고 말았다. 영력화장이 바닥을 내리친 순간, 장로는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압살 당했다.
“쓰읍!”
모두가 숨을 들이켜며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함께 공격하세. 운청휘의 무위는 절대 노부보다 아래가 아니네. 단독으로 나서면 상대가 될 수 없으니.”
상관정덕이 급히 제안하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가의 남은 장로 세 명과 엽가, 황성 운가의 노인들도 함께 운청휘에게 달려들었다.
“추측이 맞다면, 상관가는 4대 가문 중 가장 세력이 약하겠군?”
콰아앙!
운청휘가 말을 마치자마자, 거대한 영력의 손이 상관정덕을 내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