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겨우 양경 5단계의 무위가 가주라면, 상관가도 별 볼 일 없구나!”
영력화장이 서서히 흩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상관정덕은 바람이 빠진 공처럼 오그라들었고, 납작해 형체도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가주가 죽었으니, 네놈들도 뒤를 따라야지!”
준엄한 호통과 함께, 운청휘가 손등을 뒤집어 내려치자……!
우르릉!
상관가의 장로 3명이 거대한 손바닥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눌리고 말았다.
“황성 운가. 네놈들이 내 가족에게 한 짓을, 오늘 본제가 확실히 되돌려 주마.”
“스윽! 스윽! 스윽!”
연달아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상관가의 가주와 장로들이 모두 일격에 즉사했다. 이 광경을 보고도 운청휘를 적대할 용기를 가진 이는 없었다.
황성 운가의 노인 3명은 이미 전의가 꺾여 부들부들 떨다, 애써 심호흡을 하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운청휘, 지금이라도 그만두게! 자네뿐만 아니라 천우성 운가가 화를 입을 걸세!”
“자네는 분가의 자제가 아닌가. 하극상을 멈추게! 그렇지 않으면 운가의 법도가 절대 용서하지 않을 터!”
“운청휘! 지금 멈춘다면 노부가 운가를 대신해 자네와 천우성 운가의 죄를 사면해 주마!”
“하극상? 하하하! 황성 운가 따위가 본제의 위에 군림하려 들지? 사면이라니, 터무니없기 짝이 없군. 네놈들은 내 가족들을 죽이고, 내 조부님께 운가의 무시(武侍)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나? 오늘, 네놈들만이 아니라 황성 운가 전체를 본제가 세상에서 지워 주마!”
운청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그의 말이 끝나자, 영력화장이 세 사람의 머리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저놈과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다……!”
세 사람은 결사 항전의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뜻을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그들의 머리 위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심판하듯 내려앉았다.
“엽가는 본제에게 원한을 품을 일도 없거늘, 감히 공격하려 들었으니 본제를 탓하지 말도록!”
운청휘가 엽가의 노인 3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무심히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니 되오……!”
“운청휘, 우리를 살려 주시게, 여, 엽가는 오늘 이후로 자네를 절대 적으로 삼지 않겠네! 우리가 보장함세!”
“운청휘……!”
우르릉!
순식간에, 엽가의 양경 무인 3명도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누가 이 자리에서 말을 꺼낼 수 있을까. 군중들은 제각기 입을 틀어막고 넋이 나간 채였다.
운청휘가 방금 죽인 이들은 모두 양경의 강자.
천원왕조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중 한 명도, 운청휘가 만들어 낸 손을 피하지 못했다.
심지어 양경 5단계의 강자 상관정덕마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그는 다른 세 가문의 가주와 성공학관의 원장, 그리고 황제에 견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운란명은 이미 정신이 나간 듯했다.
무릎을 꿇고 운청휘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그는,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모두에게 공평히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처럼, 그는 나약하고 무력했다.
“우, 운청휘. 나를 죽이지 말게! 이미 내가 무릎을 꿇지 않았나! 그, 그래, 이번 천교대전의 수상자를 전부 성공학관의 학도들로 배분해주겠네. 그러니 나를 살려주시게나!”
운란명이 부들부들 떨더니 무릎을 꿇었다. 그는 아예 바닥에 머리를 연신 부딪치며 쿵쿵 소리를 냈다.
운청휘의 강함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는 진심으로 경악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운역 운가의 제일 기재라도, 운청휘를 당해낼 수 없을 터였다.
운란명은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천교대전의 수상을 배분해준다?”
운청휘가 픽 웃고 말았다. 선제인 그가 천교대전의 수상 따위가 성에 찰까?
“그렇네, 천교대전의 수상을…… 자네가 나를 살려 준다면 수석부터 차차석까지 3명을 모두 자네에게 주겠네!”
운란명이 다급히 말하며 기대로 두 눈을 빛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반발심을 품었다. 운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운청휘를 비롯해 그와 관련된 모든 이를 죽일 마음이 가득했다.
“운청휘, 네 이놈……!”
그러나 운란명의 희망은 덧없이 꺼지고 말았다.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손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영력화장이 그의 전신을 덮쳐 왔다.
콰아앙!
운란명의 숨이 끊어지자, 운청휘는 고요해진 군중을 뒤로하고 내황궁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잠시 다녀오지.”
그의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신형이 사라진 후에야 일행들의 귓가에 목소리가 닿았다.
“도도 형, 운청휘는 저…… 정말 대단해요. 꼭, 꼭 저를 그에게 소개시켜 주세요!”
두계희는 황급히 소도도에게 달려가 외쳤다. 앳된 얼굴에 운청휘에 대한 경외와 존경심이 가득했다.
“헤헤, 당연하네. 그가 누구의 형제인데. 이렇게 함세, 성공학관에 돌아간 후 내가 자네를 운 형제에게 소개시켜 주지!”
소도도가 두계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정말이에요, 도도 형? 약속한 거예요!”
두계희는 깡충깡충 뛰었고, 어느새 소소도마저 숭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이 도도 형이 언제 희아를 속인 적 있었나?”
소도도가 득의양양하게 말할 무렵, 내황궁에 도착한 운청휘가 굳은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1급 마종의 기운이……, 사라졌군!”
대전 밖에 내려앉으니, 입구의 현판에 새겨진 ‘금란전’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이곳에서 1급 마종의 기운을 느꼈건만.”
운청휘가 잠시 생각에 빠져 중얼거렸다.
“역시나, 황제가 1급 마종을 소유하고 있었군. ……음?”
그때, 운청휘의 신식이 금빛 갑옷을 입은 중년인의 접근을 감지했다.
“자네가 운청휘인가?”
갑옷을 입은 중년인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렇다.”
“나는 몽기(蒙奇), 어림군의 수장. 폐하께서 자네에게 열흘 안에 성공학관의 원장 마라를 주살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스스로를 몽기라고 말한 중년인이 운청휘를 바라봤다.
“……뭐라고 하였느냐?”
운청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몽기는 운청휘를 본 이후 내내 명령조로 말하고 있었다.
“듣지 않았느냐? 폐하의 뜻을 거역하려는 건 아니겠지?”
황제의 명령이라 해도 운청휘가 별 반응이 없으니, 몽기의 시선이 냉랭해졌다.
그러나 몽기는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 자네는 상관정덕 등을 죽였을 뿐 아니라 운역의 사자도 감히 죽였으니 거리낄 게 없는 거로군.”
말을 마친 몽기가 잠시 상황을 즐기듯 즐거워했다.
“운청휘, 가규를 기억하겠지? 가규는 폐하의 충성스러운 종일세. 자네는 가규의 하인이니, 폐하의 부하가 되는 게 당연하지!”
“가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운청휘의 두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천성대륙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굴욕을 느꼈을 때가, 가규에게 마종이 심어졌을 때가 아니던가!
“가규는 어디 있지?”
운청휘가 눈을 약간 뜨며 물었다.
“응? 간도 크구나, 주인의 이름을 직접 부르다니! 운청휘, 내가 일러주지 않았다고 탓하지 말거라. 다음에 가규를 보면 공손하게 대하도록. 가규의 성격상 네놈을 바로 죽이진 않아도, 죽고 싶어질 만큼 고통을 주고도 남는다!”
몽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설교조로 말했다.
“그리고 폐하를 뵙게 될 때 모든 사람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데, 폐하의 윤허 없이는 멋대로 일어날 수 없다!”
“본제가 묻지 않았느냐. 가규는 어디에 있지?”
운청휘의 두 눈이 다시 가늘어지며 그의 외침이 폭발했다. 몽기의 마음속에 그대로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푸우우……!
몽기가 별안간 피를 토하며 기침을 했다. 운청휘의 목소리에는 중후한 영력이 담겨 있어, 평범한 이라면 즉사했을 터였다.
“네놈이 정녕 살고 싶지 않은 게냐! 감히 나를 공격해?! 나와 네 주인 가규가 무슨 사이인지 아느냐? 이 몸이 한마디만 하면 가규가 네놈의 손발을 자를 수도 있다!”
몽기는 피를 닦을 겨를도 없이, 분노하며 운청휘에게 고함을 질러 댔다.
짜악!
그러나 운청휘는 거리낌 없는 따귀를 날려 주었다.
“운청휘, 내 얼굴을 때리려는 게냐?”
따귀를 맞고 얼떨떨해진 몽기가 멍청한 질문을 던졌다.
짜악! 짝!
운청휘는 연거푸 그의 얼굴을 내려쳐 대답을 대신했다.
“이 지, 짐승 같은 놈! 가규를 만나면 반드시 말해 주겠다. 그가 네놈을 고문할 수 있도록!”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몽기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가규는 어디 있냐고 묻지 않았느냐.”
운청휘가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이미 그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운청휘, 몇 번이나 가규의 이름을 입에 담다니! 가규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분수를 모르는 것이다!”
운청휘가 또다시 가규의 이름을 부르자, 몽기가 포효했다. 그러나 운청휘의 인내심도 이 순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영력화장이 공중을 가르며 떨어져, 그대로 몽기의 육체를 산산이 조각내었다.
운청휘가 곧바로 몽기의 영혼을 붙잡았다.
“본제가 마지막으로 물으마. 가규는 어디 있지?”
몽기의 영혼이 어리둥절해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자신의 몸은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건만, 이 상태는 뭐란 말인가?
“어, 어떻게! 감히, 감히 나를 죽이다니! 어떻게 가능한 거지? 내 영혼이 구속되다니! 정말로 죽으면 이리된단 말이냐? 아악!”
질문을 퍼붓던 몽기의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푸른 불꽃이 튀며 그의 영혼을 태우고 있었다.
이제서야, 몽기는 깨달았다. 운청휘는 처음부터 그의 위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내, 내가 잘못했네. 살려주시게나! 가규가 어디 있는지 말하겠네. 그는 폐하와 함께 천우성에 있네. 엽가와 운가의 가주, 엽천과 운해도 거기 있네. 폐하께서는 천우성의 그물을 거두고 천우성에 성공학관의 원장 마라가 들어오게끔 계획을 세우셨지. 그, 그물을 거두는 건 모든 마종의 힘을 거두는 일인데…… 폐하께서는 마종의 힘으로 선천생령에 도달하실 거라네! 내가 아는 건 전부 말했네. 제발, 제발 살려주시게!”
푸른 불꽃이 거세게 일었다.
몽기의 애원은 잿더미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모두가 천우성에 있다라. 그렇다면 한 번에 해결해 주마.”
운청휘가 작게 중얼거리더니 땅을 박차고 황궁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