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그러나 운청휘는 다시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마종은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더냐. 비록 마종을 영신으로 옮겼다고 하나, 마종을 심은 이가 네 마종을 회수할 때를 고려해 보았느냐? 네 무위를 잃거나, 본체가 함께 떨어져 나가는 상황도 생겨날 수 있거늘.”
진관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의 말은 그가 처한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부님 말씀대로입니다. 이 제자는 줄곧 암암리에 무위를 수련하며 마종을 심은 이가 감지하지 못하도록 진법으로 무위를 숨겼습니다. 영변경에 오른 후 마종을 영신으로 옮겼는데, 영신으로 옮기면 본체는 속박에서 벗어날 줄 알았지요. 그러나 육신을 벗어나니 영혼이 마종에 속박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진관해가 한숨을 내쉬었다.
“본체는 숨길지언정 영신을 드러낸 건, 마종을 심은 이에게 도살당하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도살’이라고 언급했을 때, 진관해의 눈에 뿌리 깊은 증오심과 굴욕이 떠올랐다.
도살이 무엇인가. 가축을 키우는 이들이 잔뜩 살찌운 가축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던가.
자신은 그 가축들과 다를 바 없는 처지였다.
* * *
그 시각, 일곱 명의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수만 리 떨어진 천원왕조로 향하고 있었다.
“젠장, 그 백의여인은 도대체 누구인 거냐! 우리 운역 운가의 사람을 죄다 죽이다니!”
“흥, 운란명의 사인을 밝혀내고 운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그 여인을 추격하겠어! 운가의 힘을 전부 동원하는 한이 있어도!”
“그 여자 아마도 천원왕조에서 왔을 거야!”
“백의를 입고 묵색 장궁을 든 데다 미모가 굉장한 여인이었지. 정말로 천원왕조에서 왔다면, 그 여인을 모르는 이가 없을 터!”
허공을 가르며 천원왕조로 향하던 이들이 제각기 울분을 토해냈다.
선두에 있던 중년인이 손사래를 치며 화제를 돌렸다.
“그 이야기는 접어 두자! 우리가 천원왕조에 가는 이유는 운란명의 사인을 밝히기 위함이다! 감히 그를 죽이다니! 우리 운역 운가에 침을 뱉은 행위나 다름없어!”
또 다른 이가 거들었다.
“운가의 사자임을 알면서도 운란명을 살해했으니, 사인을 밝히는 일이 쉽지는 않을 거다. 다만 천원왕조에 도착한 즉시 4대 가문과 성공학관, 황실의 책임자를 잡아서 고문하면 그만이다!”
* * *
진관해에게 마종을 심은 사람은 천검종의 종주 궁우신(宫雨晨)이었다.
운청휘도 다소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마종을 녹이는 방법은 다양하나, 모두 충분한 무위가 뒤받쳐 줬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군. 진관해, 두 달만 기다리거라. 내가 선천의 경지에 도달하면 네 마종을 녹여 주마.”
“사부님은 선천생령이 아니십니까?”
진관해가 다소 놀라며 물었다. 그는 운청휘에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그 정도 기운을 뿜어내는 이가 아직 선천의 경지가 아니라니?
“아직은 아니다.”
운청휘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군요…….”
진관해는 다소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꼼짝없이 두 달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힘이 빠질 만도 했다.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확신이 견고히 자리 잡았다. 운청휘는 화신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보여 준 수단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마종이 심어진 후 천검종에 들어갔다고 하였느냐? 하면, 천검종에서…….”
“사부님께서는 채아 성녀를 말씀하시는군요?”
진관해가 별안간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어찌 알고 있지?”
운청휘의 호흡이 별안간 흐트러졌고, 지금껏 초연하던 얼굴에 걷잡을 수 없는 기대가 스쳤다.
“지금의 천검종에서 채아 성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진관해는 작게 감탄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채아 성녀는 천검종에 들어온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무위가 월경에서 선천의 경지까지 도달했습니다. 종주님의 직전제자가 되고, 성녀의 호칭을 하사받았지요. 성녀는 천검종 내에서 굉장히 높은 지위이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술술 털어놓던 진관해가 갑자기 주저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다만 무엇이란 말이더냐?”
운청휘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진관해의 망설임은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운청휘는 자신의 짐작이 빗나가기만을 바랐다.
“제자가 보기엔, 궁우신이 채아 성녀에게도…… 마종을 심은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운청휘의 몸에서 폭발한 살기가 돌풍을 일으켰다.
콰르릉……!
사방 수백 장의 대지가 가뭄이 든 것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고, 허공에서는 귀곡성과 같은 기이한 소리가 휘몰아쳤다.
우우우……!
마치 비명과도 같은 소리에 진관해는 소름이 돋는 듯했다. 삼백여 년간 영변경까지 수련해오며 온갖 굴곡을 겪었지만, 살기만으로 이토록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마치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되돌아온 듯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궁우신의 무위는 어느 경지이며, 천검종의 위치는 어디이더냐. 낱낱이 고하거라!”
운청휘에게서 섬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관해는 한겨울에 홑옷만 입고 있는 듯 냉기를 느끼며 주춤거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살기로 펄럭이는 운청휘의 머리칼과 홍포가 기이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진관해를 노려보는 운청휘의 두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흉수를 연상케 했다.
운청휘에게는 목숨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세 사람이 존재한다.
부모님과 여동생 채아가 그 사람들이었다.
채아를 위해서라면, 운청휘는 모든 힘을 포기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그녀가 원한다면 천지를 부수는 일도 마다하지 않을 터였다.
무엇보다 세 사람을 다시 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천성대륙으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사, 사부님! 구, 궁우신의 무위는 현경이오나, 몇 단계인지는…… 제자도 알지 모릅니다. 더욱이 천검종의 위, 위치 또한……! 그곳은 걸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정교한 진법으로 만들어진 저, 전송진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운청휘의 기세에 눌린 진관해는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여기까지 말한 것만으로도 탈진할 지경이었다.
“우…… 운역의 안양행성에 천검종으로 통하는…… 전송진이 있습니다!”
천성대륙의 무인은 다음과 같은 등급으로 나뉜다.
성경, 월경, 양경, 선천경, 영단경, 현경, 영변경.
선천경 이전의 경지에서는 모두 영력을 수련하지만 선천생령, 즉 선천경에 든 이후로는 오행의 힘을 수련하기 시작한다.
“운역의 안양행성. 알겠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의 살기를 억지로 눌렀다.
“천검종주 궁우신, 선제의 분노를 뼈저리게 느끼고 싶지 않다면…… 감히 채아에게 마종을 심지 않았기를 바라마. ……일어나라. 천우성의 일을 해결하는 즉시 안양행성으로 향해야 한다.”
운청휘는 모든 감정을 뒤로하고 천우광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발밑에 푸른 불꽃이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그를 허공으로 밀어 올렸다.
진관해도 서둘러 운청휘의 뒤를 따랐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의 시야에 천우광장 상공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는 전투가 들어왔다.
거대한 폭포라고 해도 좋을 물줄기가 원장을 덮쳤고, 원장은 풍 속성의 힘으로 저항했으나 바람은 흐르는 물을 이기지 못했다.
점차 원장의 패색이 짙어지며 방어에 급급했다.
“푸……!”
또다시 물줄기에 충돌하자 원장이 짙은 피보라를 내뿜으며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를 지키듯 휘몰아치던 회오리바람도 순식간에 흩어지고 말았다.
“마라, 짐에게 무릎 꿇고 복종하면, 죽이지는 않으마.”
황제가 천천히 하늘을 딛고 원장을 향해 걸어갔다.
“네놈과 짐은 선천경 1단계이지만, 짐은 2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 더욱이 짐이 쓰는 오행의 힘은 수 속성. 오행에 포함되지도 못하는 네놈의 풍 속성으로 감히 짐에게 대적하겠느냐? 두 가지 선택지를 주겠다. 복종하거나, 목숨을 내놓거라! 성공학관도 그 뒤를 따르게 해 주마!”
그때, 천우성 곳곳에 자리잡고 있던 백 개의 그림자가 황제를 향해 솟구쳤다.
“폐하, 큰일입니다……!”
“응?”
황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들은 엄중한 훈련을 받아 어지간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만큼 공들여 키운 자들이 이토록 허둥지둥할 일이 뭐란 말인가?
“폐하, 사상혈제대진이 파괴된 것 같습니다.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뭐라 하였느냐!”
아무리 황제라 해도 그 소식엔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 운청휘가 틀림없다! 짐이 반드시 네놈의 구족을 멸하리라! 용위는 지금 즉시 천우성 운가를 말살하라!”
“예!”
“예!”
“예!”
명령을 받은 백여 개의 그림자가 동시에 천우광장을 향해 쇄도했다.
목표가 정해진 만큼 그들의 움직임은 간결하고 빨랐다.
천우광장에 있는 천우성 운가의 일원들을 죽인다!
“네놈, 정녕 죽고 싶더냐!”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았던 운청휘는 천우광장을 향해 쇄도하는 그림자들을 보며 또다시 살기를 내뿜고 말았다.
본래부터 가족을 무엇보다 아끼는 운청휘다.
가족을 해친 이들에겐 수십 배, 수백 배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겨우 채아의 소식을 알게 된 지금, 채아의 몸에 마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운청휘를 몹시 초조하게 만들었다.
천우성 운가의 일을 생각해 겨우 되찾은 평정심이건만, 또다시 그의 가족들이 위기에 놓이자 운청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영력을 분출했다.
“전부 죽여주마!”
거대한 영력화장이 하늘을 뒤덮었다.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손으로 인해 흡사 태양이 두 개가 뜬 듯했다.
백 명의 용위들은 땅에 발을 딛기도 전에 전부 영력화장에 직격당했다.
펑펑펑펑펑!
피투성이가 된 시체 백 구가 광장 바닥에 허물어져 내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황제의 용위들은 모두 월경과 양경의 무인들이다. 그런 그들이 공격 한 번으로 즉사하다니? 황제가 눈을 부릅뜨며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망할 황제. 네놈은 감히 나를 자극하고, 끊임없이 내 가족들을 위협하였으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운청휘의 건조한 음성과 함께, 거대한 손이 황제를 내려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물이여, 거센 풍랑이 되어라!”
황제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거대한 물결이 하늘을 뒤덮으며 빠르게 영력화장을 휩쓸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