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13화 (113/430)

제113화

천검종주 궁우신에게 마종이 심어진 진관해는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 진관해가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송구합니다, 사부님. 사부님도 아시다시피, 지금으로서는 그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합니다.”

한숨을 내쉰 진관해가 서둘러 덧붙였다.

“사부님, 기껏해야 한 달이면 끝날 일입니다. 제자가 안양행성에 연이 있으니, 이 서신을 가져가시면 반드시 사부님을 모실 이가 나올 테지요.”

진관해는 미리 준비한 서신을 건네며, 영패 하나를 꺼내 보였다. 앞뒤로 ‘혈’과 ‘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의 별호인 혈문노조를 증명하는 상징이었다.

“만약 안양행성에서 문제가 생기거든, 이 영패를 보여 주십시오. 이 제자가 직접 모시지 못하는 만큼, 사부님의 여정에 번거로움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안양행성까지 얼마나 걸리지?”

운청휘는 진관해의 서신과 영패를 받아 들며 물었다.

“선천경 1단계인 제자라면 이십여 일쯤 걸리지만, 사부님이시라면…… 십여 일쯤 걸릴 겁니다.”

잠시 헤아려 보던 진관해가 답변을 내놓고 아공간 반지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천운왕조에서 운역 안양행성으로 가는 경로가 표시된 지도입니다. 이 경로대로라면 최단 시일 내에 도착하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운란명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온 이들은…… 이 제자의 보필 없이 사부님께서 얼마나 상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진관해가 조심스레 물었다.

“네 말대로, 그들 중 가장 무위가 높은 이도 선천경 3단계인 게 확실하느냐?”

운청휘는 대답 대신 뭔가를 추측하듯 되물었다.

“네. 그들은 운역에서 명성이 자자하여, 제자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무위가 가장 높은 이가 선천경 3단계임이 확실합니다.”

진관해는 확신에 가득 찬 대답을 내놓았다. 운청휘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기묘한 미소를 남길 뿐이었다.

***

이틀 후, 흉수산맥의 상공에 두 그림자가 언뜻 비추었다. 끊임없이 동쪽으로 날아가는 그림자의 수만 장 뒤에서, 5명이 은밀히 그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운청휘. 우리 중 2명이 운청휘에게 죽었다. 아무리 무위가 가장 약하다고 해도, 선천경에 이르렀거늘!”

“운란명도 마찬가지. 게다가 천원왕조도 장악해 천운왕조로 이름을 바꾸지 않았나! 더욱이 전관해가 조천령까지 내줬으니, 우리가 천운왕조에 손을 대면 반드시 천검종이 개입하겠지!”

“하지만 운청휘는 죽음을 자초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천운왕조에 있었다면 손댈 방법이 없지만, 지금은 천운왕조를 떠났으니!”

“우리가 지금 그를 죽이면, 천검종도 개입할 수 없어!”

“비록 약한 놈들이었지만 이미 동료 두 명을 잃었으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어!”

“운청휘와 동행한 소도도, 저놈은 20년 전에 죽였어야 했다.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아!”

지금 소도도의 무위로는 자신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운청휘는 푸른 불꽃으로 소도도를 밀다시피 해 비행하고 있었다.

“운 형제, 우리를 쫓아오는 이들을 알아차렸나? 그중 한 명은 운명(云明)이라고 하는데…… 놀랍게도, 20여 년 전 내 부모님을 죽이는 데 일조한 자네!”

소도도는 평소와 같은 어조로 말했지만, 두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한 시진 정도만 기다리도록. 흉수산맥에 완전히 접어들면, 이곳을 그들의 무덤으로 만들어 주지.”

운청휘의 눈에도 옅은 살기가 스쳤다.

처음 그들을 쫓았던 일곱 명 중 다섯 명은 혼패(魂牌)의 기운을 풍겼다. 운청휘는 혼패의 기운이 없는 두 명을 해치웠고, 혼패를 지닌 다섯 명은 운청휘를 끈질기게 추격하고 있었다.

혼패는 명패(命牌)라고도 불리는 특수한 패로, 무인의 영혼이 담겨 있다. 패의 주인이 봉변을 당하면 혼패가 깨짐으로써 죽은 이의 신분과 죽은 지점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했다.

운청휘와 소도도는 천운왕조의 범위를 벗어났다. 운역 운가가 천운왕조를 노리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흉수산맥까지 그들을 유인한 셈이다.

한 시진 반이 흐른 후, 두 사람은 흉수산맥 최심부 상공에 도달했다.

“여기면 되겠군.”

운청휘가 신호를 보내자 소도도가 몸을 멈췄다. 둘은 추격자들이 오는 방향을 마주하고 섰다.

“응? 도망가지 않는데?”

“이미 흉수산맥의 최심부까지 왔다. 우리들도 신중해야 하거늘, 저들은 더 겁이 나겠지!”

“사람을 이리 번거롭게 했으니, 단번에 죽이는 대신 적당히 놀아 줘야겠군!”

냉소를 흘린 다섯 사람은 일 다경도 지나지 않아 삼백여 장의 거리를 두고 멈췄다.

“어째서 계속 도망치지 않느냐? 쥐새끼처럼 아주 잘 도망치던데!”

중년인 한 명이 운청휘를 비웃으며 외쳤다.

“시끄럽다!”

운청휘가 성가시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짝!

삼백여 장 떨어져 있던 중년인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얼한 뺨을 감싸 쥐었다.

“이 자식이, 감히 내 얼굴을 때려?”

뺨을 맞은 중년인이 이를 바득 갈더니 곧바로 운청휘를 향해 공격해 들어갔다.

“돌아오게! 자네는 녀석의 상대가 못 되네!”

다섯 사람 중 인솔을 맡은 이가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히 외쳤다.

“이제야 물러나겠다? 허락한 적 없거늘.”

운청휘 또한 앞으로 나섰다. 중년인의 눈앞에 태산이 내려앉기라도 한 듯, 거대한 주먹이 생성되더니 그의 몸을 내리쳤다.

콰앙!

단 한 방으로 피와 살점의 비가 우수수 쏟아졌다.

“저 새끼를 다 같이 공격해야 한다. 어서!”

중년인의 외침을 필두로, 네 명은 일제히 최절기를 운청휘에게 쏟아 부었다.

그들은 모두 선천경의 무인으로, 오행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콰르릉!

운청휘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성되며 흉수산맥이 울부짖었다. 거대한 구덩이 안에 물, 불, 바람의 오행의 힘이 휘몰아치더니 누구도 살아나올 수 없는 죽음의 바다를 생성했다.

그러나…… 운청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죽은 건가?”

네 사람이 두리번거리며 운청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체가 안 보이는군.”

“아닐세……!”

돌연 대장 격인 중년인의 안색이 변했다.

“공격을 피한 거다! 조심하도록!”

우득!

그때, 공중에서 연기처럼 나타난 운청휘가 한 사람의 목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하나가 산맥으로 추락했다.

쾅! 쾅!

세 사람이 반응할 틈도 없이 운청휘의 영력화장이 두 번의 공격을 가했다. 또다시 살점이 터지는 파열음과 함께 두 명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네놈의 이름이 운명이더냐?”

운청휘가 마지막 한 사람을 바라봤다.

“내 이름을 안다고? 분명히 소도도 그 천한 종자가 알려 줬을 테지.”

홀로 남은 운명은 눈을 번득이더니 소도도를 힐끔 보았다.

‘지금의 나는 운청휘를 이길 순 없다. 살 방법을 찾으려면…… 우선 소도도를 인질로 삼아야겠군.’

생각을 마친 운명의 신형이 곧장 소도도에게 향했다.

그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운청휘에게 등을 고스란히 노출하지 않았는가. 소도도를 붙잡도록 둘 운청휘가 아니었다.

운청휘는 반사적으로 손을 휘저었고, 거대한 손이 운명의 등을 강타했다.

콰앙!

지면으로 떨어진 운명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다. 그는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렸고, 온몸의 뼈는 죄다 부서져 조각의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도도, 뒤처리는 자네에게 맡기지.”

운청휘는 운명의 숨통을 끊지 않았다. 그의 목숨을 거둘 자격이 있는 사람은, 소도도였으므로.

“하하하, 운 형제, 자네는 나의 은인일세! 정말로 고맙네!”

잔뜩 흥분한 소소도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가 운명에게 달려들었다.

“영감탱이. 네놈이 살아 있어서 이 몸이 얼마나 기쁜지 아나? 꿈에서도 이날만을 기다려왔다네!”

소도도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그는 한쪽 발로 운명의 손가락을 지그시 밟은 뒤, 영력을 일으켜 단번에 짓눌렀다.

“아……!”

한 손가락이라고 해도 다른 손가락들과 연결되었으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운명의 비명이 들리자 소도도는 후련함을 느끼며 이 각여의 시간 동안 그에게 온갖 고문을 가했다.

마침내 운명의 숨이 끊어지자, 잠자코 지켜보던 운청휘가 몸을 돌렸다.

“이 길은 진관해가 다년간에 걸쳐 찾아낸 길이다. 운역과 가장 가깝지만 그만큼 위험도 있을 터. 곧 영단경 흉수의 서식지로 들어가겠구나.”

운청휘가 훌쩍 몸을 날리며 말하자, 뒤에서 소도도가 황급히 뒤따라왔다.

“영단경 흉수라? 그것참, 이 몸이 고향 땅을 밟기도 전에 죽을 수도 있으이!”

소도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영단경의 흉수라니. 그 흉수의 재채기 한 번이면 그는 죽고도 남는다.

“걱정마라. 서식지의 가장 바깥을 우회하여 지나가면 될 터.”

소도도를 안심시킨 운청휘는 곧 신식을 펼쳤다. 사방 백 리 이내에서 운청휘의 신식을 피할 수 있는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연단경 흉수의 서식지 부근을 지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면 곧바로 대응할 작정이었다.

서식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여 리를 날아가고도 아직 서식지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앞으로 이백여 리를 더 가야 완전히 벗어날 듯했다.

“……음?”

돌연 운청휘의 안색이 변했다. 그가 곧바로 신식의 범위를 삼백 리까지 확장하자, 눈보다 흰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감지되었다.

‘이 소저? 어찌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의 신식은 이염죽뿐만 아니라, 그녀가 쥐고 있는 화살에도 머물렀다. 화살촉에는 희고 검은 구슬이 꽂혀 있었다.

그 거대한 구슬은, 다름 아닌 눈알이었다!

“크오오!”

이윽고 사나운 포효가 울려 퍼졌다. 작은 산 정도의 크기에 철갑옷을 두르고, 거대한 등껍질을 짊어진 거북 모양의 흉수가 포악한 기운을 뿜어내며 이염죽을 추격하고 있었다.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빠른 속도로 이염죽을 쫓는 흉수는 외눈이었다.

분명, 이염죽의 화살에 한쪽 눈을 빼앗겼으리라.

“저 흉수는 현무의 혈통이로군. 뽑아낸 눈은…… 법보를 연제하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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