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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14화 (114/430)

제114화

운청휘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지막으로 이염죽을 만났을 때, 그녀는 기령과 협력하여 장신연을 찾으려고 했다.

그때는 난기류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시력을 증대하는 법보를 연제하여 장신연을 살피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꾼 모양이다.

“응?”

운청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염죽 또한 그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나를 발견한 건가.”

이미 그녀는 운청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운청휘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소도도를 돌아보았다.

“도도, 서두르지.”

안색이 변한 운청휘는 소도도를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일각도 지나지 않아 마음을 정한 듯 멈춰 섰다.

“이염죽이 곧 이쪽으로 오겠어. 뒤에 꼬리가 붙었지만……. 나를 믿고 오고 있을 테니 외면할 수 없겠군. 도도, 먼저 이것을 가지고 최대한 빨리 서식지를 벗어나, 안전한 곳을 찾으면, 그곳에서 기다리도록.”

운청휘가 파신전을 소도도에게 건넸다. 파신전은 이미 그가 연화하여 활력의 낙인을 찍어 둔 터라, 일정한 범위 내라면 파신전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소도도가 이걸 가져간다면 손쉽게 뒤쫓을 수 있다.

“운 형제, 설마 지금 오는 게…… 영단경 흉수인가? 아니라고 해 주게!”

소도도가 질색을 하며 파신전을 받아들었다.

“……영단경 흉수다.”

소도도는 망설였지만 결국 운청휘의 말을 따랐다.

지금의 무위로 운청휘를 따라나섰다간 도움은커녕 그의 발목을 붙들 가능성이 컸다.

소도도와 헤어지고 원래의 길로 돌아가는 데 일 다경 가까이 걸렸다. 비로소 운청휘의 시야에 이염죽과 흉수가 들어왔다.

위잉!

검집이 부르르 떨더니 곧바로 운청휘의 손안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 운청휘의 무위로는 영단경의 흉수에게 흠집도 낼 수 없다. 다만 검집이 있으면 상황이 달라질 터였다. 빠르게 나서준 검집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고맙구나!”

이염죽이 삼백여 장을 밀려 나갔다. 그녀는 운청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허공에서 몸을 돌려 옆으로 비켰고, 운청휘는 그 사이로 참천검의 검집을 휘둘러 들어갔다.

우우우!

온 산맥을 뒤흔드는 비명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이윽고 참천검의 검집이 홍수와도 같은 검기를 내뿜으며 휘몰아쳤다.

동시에, 저 멀리 있던 흉수가 돌진하며 망설임 없이 검기와 맞부딪쳤다.

콰앙!

대지가 비명을 지르며 요란하게 뒤흔들렸다. 사방에서 울리는 폭음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카가각……!

흉수가 밀려나며 지면에 깊은 도랑 네 개가 파이고, 등에서도 몇 갈래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염죽의 아름다운 눈이 살짝 커졌다. 영단경의 흉수를, 일검으로 퇴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상처가 없어?”

놀라는 이염죽과는 달리 운청휘는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의 일검은 4할 이상의 힘을 소모한 공격이었다.

“우오오!”

포효와 함께 흉수의 거대한 몸뚱이가 덮쳐왔다.

작은 산이 단번에 쏟아지는 듯했다. 운청휘는 가볍게 몸을 날리려 했으나……, 그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사방에서 몰려와 몸을 옥죄었다!

“영단의 힘? 흉수가 영단을 사용할 줄 알다니, 제길.”

미간을 찌푸린 운청휘가 서둘러 검집을 휘둘렀다. 온몸을 옥죄고 있던 영단의 힘이 사라진 순간, 그는 다시 흉수의 뱃가죽을 찔러 들어갔다.

우우우……!

소름이 돋을 듯한 비명이 이어지더니 동시에 해일과 같은 기운이 밀려들었다.

“이 소저!”

운청휘는 고통을 견디며 이염죽을 돌아보았다.

그 순간 이염죽이 묵색 장궁의 활시위를 당겼고, 묵빛의 그림자가 허공을 갈랐다.

피이잉……!

묵빛 화살과 거센 검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공중에 아름답고도 섬뜩한 선을 그려내었다.

콰앙!

배를 직격당한 흉수의 거대한 몸뚱이가 날아가며, 구멍이 뚫린 뱃가죽 사이로 선홍색 내장이 얼핏 비쳤다.

홍수처럼 밀어닥친 검기가 상처를 타고 흉수의 몸속으로 들어가 전신을 헤집어 놓았다.

퍼어엉!

거대한 흉수의 몸뚱이가 지면에 부딪힌 순간, 숨이 끊어지기는커녕 서늘한 기운을 세차게 뿜어냈다.

“영단의 힘!”

두 사람의 안색이 급변했다. 운청휘는 서둘러 검집을 가로로 내세워 몸을 지켰고, 이염죽은 묵빛 장궁을 들어 스스로를 보호했다.

펑펑펑!

무수한 자갈이 서로 부딪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앞에서 눈부신 불꽃이 일었다.

“푸……!”

운청휘의 입에서 선혈이 터져나왔다. 연달아 검집을 사용한 탓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말았다.

이염죽은 피를 토하진 않았으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 하얀 도자기처럼 보였다.

“후오오!”

그때 흉수가 몸을 뒤집으며 더욱더 포악한 기운을 내뿜었다.

푸슉!

사방으로 내뿜어진 영단의 힘이 운청휘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그가 쥐고 있던 검집마저 휩쓸려 날아가고 말았다.

“푸……!”

결국 이염죽도 선혈을 토했지만, 머뭇거리지 않고 묵빛 장궁에 토해낸 피 몇 방울을 떨어트렸다.

“혈영사일전(血影射日箭)!”

맑은 외침과 함께 그녀의 신형이 높이 날아오르며 화살을 쏘아냈다.

묵빛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운청휘는 소멸의 기운을 감지했다.

진정한 의미로, 천지를 파멸시키고 하늘의 태양마저 부술 듯한 화살이 흉수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우오오오……!”

죽음의 위기를 느낀 흉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사지를 움츠려 철갑 안으로 숨었다.

퍼엉!

묵빛 화살이 흉수의 철갑에 부딪히자 화살촉과 철갑이 끊임없이 마찰하며 불꽃을 터트렸다.

키이잉……!

“콜록콜록…….”

이염죽이 힘겹게 기침을 하면서도 서둘러 운청휘에게 날아갔다. 그녀가 운청휘를 붙들고 허공을 박차고 올랐다.

“어찌하여 저 흉수를 공격했지?”

보통의 거북이가 아님을 알기에, 운청휘는 다소 노기가 서린 음성으로 물었다.

“한쪽 눈이 필요했으니까.”

이염죽은 건조한 음성으로 답할 뿐이었다. 이전보다 더 감정이 희미해진 듯했다.

운청휘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녀의 무위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전투력은 선천경 5단계, 혹은 6단계의 무인과 대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무위로 영단경의 흉수를 공격했다면, 죽음 외에 다른 결과를 떠올릴 수 없었다.

운청휘는 그녀에게 탄복했다. 그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결국 흉수에게서 한쪽 눈을 빼내지 않았던가.

흉수가 다시 머리를 내밀었을 때, 이미 그녀는 운청휘를 데리고 흉수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크오오! 우오오!”

흉수는 그리 영리하지 않은지, 그 자리에서 분노를 터트리며 울부짖기만 했다.

이염죽은 눈 깜짝할 사이에 운청휘를 데리고 오백여 리를 날아 도망쳤다.

“나는 천원왕조로 갈 거야.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이염죽이 불쑥 입을 열었다.

“운역으로 가려 한다.”

그녀의 말에 운청휘도 목적지를 밝히고 덧붙였다.

“천원왕조라 하는 걸 보니, 아직 모르는군? 천원왕조는 사라졌고, 지금은 천운왕조가 되었다.”

“천원이든 천운이든 내 알 바 아냐. 어쨌든 가는 길이 다르다면,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이염죽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답할 뿐이었다.

“나 또한 너의 목숨을 구했다. 어찌 그리 말하는 거지?”

전보다 냉막해진 태도가 수련하는 무공의 영향 때문이라는 걸 알지만, 운청휘는 불쑥 치솟는 불만을 참을 수 없었다.

이염죽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술을 움직였다.

“……나중에 갚을게!”

이 각 후.

이염죽은 소도도가 피신한 곳까지 운청휘를 데려다주더니, 인사도 없이 몸을 날려 떠났다.

“좋은 사람이었건만, 감정이 사라지다니.”

떠나는 이염죽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 운청휘가 소도도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운청휘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려 있었다.

“도도, 당분간은 날 부축 좀 해줘.”

뜻하지 않은 일전으로 운청휘는 8할 이상의 힘을 소모했을 뿐더러, 왼쪽 어깨는 완전히 관통당해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이변이 없었다면, 운청휘는 운역의 안양행성에 도착해야 했다.

그러나 15일이 지난 지금, 소도도가 부상을 입은 운청휘를 보살피며 가는 탓에 속도는 한없이 느려지고 있었다.

정오 무렵, 둘은 흉수산맥 자락을 빠져나와 운역성 쪽으로 인접한 중부 구역에 도착했다. 흉수산맥이 워낙 큰 탓에 천운왕조는 물론이고 운역의 대부분에도 산맥이 뻗어 있었다.

“운 형제, 이 지도의 종착지는 안양행성의 성도 안양성이라네. 다만…….”

소도도가 말끝을 흐리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지금 방향을 바꿔서 연라성으로 향하면 3~4일 정도 걸릴 걸세. 부탁이네, 운 형제! 나, 나는…… 연라성에 먼저 가고 싶네!”

소도도는 평소답지 않게 초조해하며 부탁했다.

열 살 때 연라성을 떠나 10년 동안 고향을 밟지 못했으니, 그리운 마음이 오죽할까!

운청휘는 은은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번 부상은 요양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잘되었군. 자네의 집에서 머무르면 되겠어.”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다.

영단의 힘에 관통되었으니, 보통의 무기로 입은 상처와는 결이 달랐다. 스스로 회복하는 속도가 10배 이상 느려지고 말았다. 영단의 힘으로 다치지 않았다면 이틀 내로 회복하고 여정을 계속했을 터였다.

그의 승낙에 소도도는 활짝 웃으며 운청휘를 이끌어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그들의 어깨에 황혼이 내릴 무렵, 10명의 대열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대열 속에서, 분의(粉衣)를 입은 소녀가 소도도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 도도 오라버니?”

대열을 무심히 지나치려던 두 사람은 소녀의 외침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분의를 입은 소녀를 보자 언뜻 머리를 스치는 사람이 있었다. 운청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소도도의 정혼자 소엽과 상당히 비슷하지 않은가.

“소빙빙(苏冰冰)?”

걸음을 멈췄던 소도도 역시 기억을 더듬는지 말이 없다가 곧 이름을 외쳤다.

“도도 오라버니, 정말로 오라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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