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빙빙이라 불린 소녀는 서둘러 달려와 소도도의 한쪽 팔을 붙들고 거듭 얼굴을 확인했다.
“빙빙,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네! 10년 만에 보다니, 정말 놀랐어!”
고향에 가까워진 데다 지인까지 만나니, 소도도의 마음은 기쁨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운 형제, 이쪽은 소엽의 여동생 소빙빙이네.”
소도도가 운청휘에게 빙빙을 소개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운청휘는 가벼운 미소로 답했다.
“빙빙, 이쪽은 나의 가장 절친한 형제 운청휘란다!”
이윽고 소빙빙 또한 소개를 받았다.
“응!”
소빙빙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시선은 소도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가씨, 늦었습니다. 이만 돌아가셔야 하니, 그만 작별을 고하시죠.”
사십 대로 보이는 호위병 한 명이 불쑥 끼어들었다.
“도도 오라버니, 연라성으로 가는 길이야? 그럼 함께 가자!”
소빙빙은 호위병의 말을 무시하고 소도도를 바라보며 천진하게 권했다.
“그래. 마침 이 몸이 보살펴야 할 사람도 있는데 빙빙의 호의를 어찌 거절할까. 함께 가자꾸나!”
소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 공자, 다 같이라뇨. 우리 아가씨는 예의상 한 말씀입니다!”
중년 호위병이 단칼에 말을 자르며 나섰다.
“응?”
소도도와 소빙빙 둘 다 눈썹을 찌푸리며 중년 호위병을 바라봤다.
“육개(陆开), 무슨 헛소리야, 정말로 오라버니와 같이 가고 싶어서 한 말이야!”
소빙빙이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이 사람이 소도도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어찌 데려갑니까!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 됩니다!”
육개가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흥, 나와 도도 오라버니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랐는데, 내가 구별도 못 할까 봐?”
소빙빙은 코웃음을 치며 소도도의 팔을 꽉 붙들었다.
“아가씨, 10년 가까이 못 만나지 않았습니까. 만약 당가(唐家)가 소도도를 닮은 사람을 보낸 거면 어찌합니까?”
중년 호위병 육개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육개, 무슨 뜻이야? 설마 내가 도도 오라버니도 못 알아볼 정도로 어리석다는 거야?”
결국 소빙빙이 호통을 치며 화를 내자, 육개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그는 운청휘와 소도도에게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흥! 정말 당가가 보낸 첩자인지 알 수도 없거늘……! 괜히 무례하다 탓하지 마십시오!”
육개가 이렇게 나오니, 다른 호위병들도 운청휘와 소도도에게 적의를 드러내었다.
운청휘와 소도도는 침묵을 지켰지만, 뭔가 생각하는 듯 시선은 멀리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육개는 소빙빙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했지만, 어딘가 찜찜한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동행을 무척 꺼리는 태도 자체가 수상쩍었다.
다시 이틀이 흐르는 동안, 소빙빙과 소도도는 그리움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도도는 그간 자신이 활약했던 일을 다소의 과장을 섞어가며 신나게 떠들었고, 소빙빙은 소도도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소도도는 뒤통수에 꽂히는 육개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육개 뿐일까, 다른 호위병들도 같은 마음을 품고 있으니 자연히 푸대접이 돌아왔다.
식사 시간에는 하룻밤 지난 음식을 내주었고, 그마저도 아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라면 진작 화를 냈을 소도도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그가 화를 내지 않으니 운청휘도 그의 뜻을 존중해 침묵을 지켰다.
화를 억누르고 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였다…….
이날 오후, 다시 식사 시간이 되자 호위병 한 명이 하룻밤 지난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우리 아가씨께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언제든 네놈들을 내쫓을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식사를 가져온 호위병이 목소리를 낮춰 경고하고 자리를 떠났다.
소도도가 호위병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음식을 그대로 집어 던지고 운청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운 형제, 지금 내가 가장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저놈들을 납작해질 때까지 두들겨 패주는 것일세!”
운청휘가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리하면 소빙빙만 곤란해지겠지. 조금 더 지켜보도록 하지.”
다음 날 정오!
“아……!”
가장 앞에서 탐사를 하며 나아가던 호위병이 비명을 내질렀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린 순간, 호위병은 흰자를 드러내더니 온몸이 썩어 들어가며 곧 한 줌의 핏물이 되고 말았다.
“쉬이이!”
이윽고 독사가 적을 위협하는 오싹한 소리가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양경 5단계의 뱀 흉수라. 설마 천재지보를 지키고 있었던가?’
담담히 상황을 추측한 운청휘가 신식을 펼쳤고, 곧 그의 신식에 무언가가 감지되었다.
십오 장 정도 떨어진 자리에, 갓난아기 손바닥만 한 작은 무 3개가 자라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무처럼 생긴 백옥삼이었다!
운청휘는 차분히 동요를 가라앉혔다. 부상을 입은 지금, 가장 필요한 천재지보가 백옥삼이다. 물론 백옥삼은 아주 진귀한 취급을 받기에, 양경의 흉수가 지킬 법했다.
선계에서 백옥삼은 성약 백옥단을 정제하는 주재료로 쓰인다. 다만 천년 넘게 자란 백옥삼이 재료가 되는데, 눈앞에 있는 백옥삼 세 그루는 겨우 50여 년 정도 자란 듯했다.
그러나 성장 기간이 짧은 만큼 역으로 운청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천년 이상의 백옥삼이었다면 지금의 무위로는 도무지 연화할 수 없을 터였다.
50년 정도라면 제련하여 축소판 백옥단을 정제할 수 있으리라!
휴우우……!
그때, 육개가 영력을 내뿜었다. 한 줄기 거센 영력이 삼십여 장 내의 가시덤불과 수풀, 잡목 등을 모두 불태워 지면을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그러자 시야가 훤히 트이며, 백옥삼 세 그루를 지키는 적색의 뱀 흉수 또한 그대로 노출되었다.
“쉬쉬쉬……!”
뱀 흉수가 그들을 위협하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운청휘와 소도도를 제외한 이들이 질겁하며 주춤거렸다. 육개가 흉수를 알아본 듯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저것은……, 양경 흉수 홍란염사(红鸾炎蛇)야!”
“양경 흉수라고?”
양경의 흉수라는 말을 듣자 일행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중 무위가 가장 높은 육개도 월경 9단계의 무인에 불과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이상해……!”
육개의 눈에 의혹의 빛이 서렸다.
“홍란염사는 살아 있는 생명을 만나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움직이지 않고 위협만 하고 있지 않은가!”
“육 대장, 홍란염사가 혹시…… 어떤 천재지보를 지키고 있는 걸까?”
육개의 뒤에 서 있던 한 호위병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럴 수 있어!”
또다른 호위병이 맞장구쳤다.
“이곳은 흉수산맥의 중부 구역에 해당하니, 보통은 월경의 흉수들이 서식하지. 그런데도 양경의 흉수가 나타났다면, 천재지보에 이끌린 게 확실해!”
“육 대장, 홍란염사 뒤에 있는 무 3개가 천재지보가 아닐까?”
또 다른 이의 말에, 육개는 홀린 듯이 백옥삼에 시선을 고정했다.
“쉬쉬쉬쉬쉬……!”
다른 이들도 백옥삼을 힐끔거리자, 홍란염사가 눈에 띄게 경계하며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역시 천재지보를 지키고 있구나.”
육개의 동공이 작아지며 탐욕의 빛이 스몄다. 양경 흉수가 몸소 지킬 정도라면, 값진 보물이 분명하지 않은가!
“다만, 홍란염사가 지키고 있는 지보를 어떻게 손에 넣느냐가 문제로군.”
아무리 보물이 탐이 나도, 목숨은 더 귀한 법이다. 육개가 난처한 표정으로 홍란염사를 마주했다.
“육 대장, 지보를 얻을 방법을 생각하십니까?”
그때, 호위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설마 자네 방법이 있는 겐가?”
육개가 얼른 호위병을 돌아보며 반색했다.
“육 대장, 홍란염사가 강해 봤자 결국은 인간보다 영리하지 않은 흉수입니다. 일단 홍란염사를 유인해 거리를 벌리면, 지보를 손에 넣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호위병이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육개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옳지. 누군가 홍란염사를 유인하면 그 틈에 지보를 가져오마. 다만, 누가 홍란염사를 유인한단 말이냐?”
홍란염사는 양경의 흉수. 홍란염사를 유인한다 해도 그자는 반드시 죽게 될 터였다.
“하하, 우리가 나설 수는 없지요. 하지만 우리의 사람이 아니라면, 죽어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책략을 내놓은 호위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설마……?”
육개의 눈이 다시 밝게 빛나며, 무의식중에 운청휘와 소도도를 봤다.
“좋아, 그들에게 홍란염사를 유인하라고 하자!”
육개의 대답에 호위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아가씨와 인연이 있다고 해도, 며칠을 우리에게 보호받고 공짜로 먹고 마셨지요. 우리가 폐물을 보호하는 단체랍니까? 제게 맡기십시오, 육 대장! 이런 말을 육 대장이 꺼내긴 불편할 테지요!”
호위병은 운청휘와 소도도를 향해 걸어가더니 그들을 한껏 내려다보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자네들, 그간 놀고먹기만 했으니 몸이 답답하지 않나? 움직일 기회를 주려고 하네만.”
“움직일 기회라고 했나? ……하! 우리를 홍란염사를 유인하는 미끼로 쓰려고?”
소도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더니 들으란 듯이 외쳤다.
소빙빙 일행과 동행한 이틀간 직접 나설 만한 흉수와 마주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잠자코 있었다. 두 사람이 무위를 드러내지 않으니 호위병들은 점점 그들을 밥만 축내는 폐물 취급하며 홀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폐물로 오해하는 상황에서 양경 흉수를 유인하는 일을 맡긴다는 건, 죽으라는 뜻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양(李阳), 무슨 뜻이지? 양경 흉수는 육개도 상대하지 못해. 그런데 도도 오라버니와 운 공자를 보내려고? 말도 안 돼! 죽으라는 소리잖아!”
소빙빙이 당치도 않다는 듯 불만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