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아가씨, 그들은 줄곧 우리의 비호를 받았습니다. 설마 저희에게 도움도 주지 못하겠습니까? 그리고 육개 대장이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저들은 진작 흉수의 먹이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이양이라는 호위병이 강경하게 대꾸했다.
“아가씨, 이양의 말이 맞습니다. 저들끼리만 있었다면 이미 잡아먹혔을 겁니다!”
“홍란염사를 잠시 유인할 뿐이니, 저희에게 보답할 기회를 주려는 겁니다!”
다른 호위병들은 육개의 눈빛을 받고 이양을 거들었다.
“홍란염사를 유인하면 그만 아니던가?”
그때, 모두의 소란을 잠재우듯 운청휘의 맑은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홍란염사가 지키고 있어도 백옥삼을 손에 넣을 수 있지. 네놈들은 어떻게 나눌 작정이지?”
‘홍란염사가 지키고 있는 천재지보가 백옥삼이었나? 이 무슨 횡재란 말인가!’
육개가 속으로 중얼거리더니 운청휘를 향해 말했다.
“자네 말대로, 홍란염사를 유인하지 않고 백옥삼을 전부 캐면 자네에게 넘겨주도록 하지.”
“헤헤, 육개 대장의 말대로야! 홍란염사를 유인하지 않고도 백옥삼을 캘 수 있는지 보자고!”
다른 호위병들도 냉소적으로 말했다.
“후후. 사양할 이유가 없지.”
운청휘가 가볍게 웃으며 홍란염사 쪽으로 다가갔다.
“도도 오라버니, 친구가 사지로 뛰어드는데 어찌 말리지 않으시나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소빙빙이 소도도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걱정하지 마, 빙빙. 내 형제가 저리 말했다면, 반드시 이뤄낼 거야. 이 도도 오라버니가 벌써 몇 번이나 목격했으니 믿어 봐!”
소도도는 태연히 웃으며 소빙빙을 다독일 뿐이었다.
지면의 가시덤불이나 수풀은 육개가 제거해 두었으니, 그저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운청휘는 산책이라도 하듯 걸음을 내디뎠고, 어느새 홍란염사의 일 장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쉬쉬쉬……!”
홍란염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청휘를 호시탐탐 노려보며 혀를 날름거렸다. 금방이라도 주둥이를 크게 벌려 운청휘를 덥석 삼켜 버릴 듯 위협적인 모습이었다.
운청휘가 다시 한 걸음 내디뎠다.
육개 등이 홍란염사의 공격을 예상한 순간, 홍란염사는 돌연 스르륵 미끄러져 물러났다.
“어떻게 된 거야? 홍란염사가 물러나잖아?”
육개를 비롯한 호위병들이 어리둥절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홱!
운청휘가 다시 두 걸음 나아갔다.
“쉬쉬쉬……!”
홍란염사는 빠르게 혀를 날름거렸지만, 기이하게도 운청휘를 공격하기는커녕 여전히 물러날 따름이었다.
“홍란염사가 또 물러났어! 게다가 더 멀어지잖아!”
육개 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이제 운청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는데, 별안간 홍란염사의 옆을 슥 스쳐 갔다.
어느새 백옥삼 앞에 도달한 운청휘가 몸을 살짝 구부려 한 손으로 백옥삼을 움켜쥐었다. 영력을 일으켜 뽑아 올리니, 갓난아기의 손바닥만 한 백옥삼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맙소사, 너무나 강한 파동이야!”
백옥삼이 뽑힌 순간,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기운에 육개 등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쉬쉬쉬……!”
홍란염사는 더욱더 빠르게 혀를 날름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듯 붉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는 홍란염사가 날뛰기 직전에 보내는 경고나 다름없었다.
운청휘는 홍란염사를 무시하며 다른 백옥삼 앞으로 다가가 영력을 일으켜 뽑아내었다.
두 번째 백옥삼에 담긴 힘은 첫 번째 백옥삼에 담긴 힘보다 강력했다.
이때 홍란염사는 부들부들 떨다 못해 바닥에 몸을 길게 뻗어 배를 보이고, 부릅뜬 동공이 운청휘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육개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홍란염사의 짙은 적의를 느끼며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상상하는 홍란염사의 공격은,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서 운청휘가 세 번째 백옥삼 앞으로 걸음을 옮겼고, 자연스럽게 세 번째 백옥삼도 뽑아 들었다.
쿠웅!
그 순간, 홍란염사는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듯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지면을 내리쳤다.
“쉬쉬쉬……!”
홍란염사가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드디어 죽겠구나!”
홍란염사가 운청휘에게 돌진하니 오히려 육개 등은 안심이 될 지경이었다.
분명 이전에 홍란염사가 보인 행동들은 다소 괴이했다. 바닥을 구르고 지면을 내리칠 만큼 분노했음에도, 화를 억지로 눌러 참는 듯 운청휘를 공격하지 않았다.
양경의 흉수가 무슨 연유로 그리 참는단 말인가?
“응?”
그러나 육개 일행이 더욱더 경악할 광경이 펼쳐졌다.
홍란염사는 마치 환영처럼 운청휘에게 빠르게 달려들었으나……, 그에게 닿기도 전에 괴성을 내지르더니 몸을 돌려 숲으로 내달렸다.
우드득……!
그 돌진에 큰 나무며 수풀, 관목 등이 꺾이고 넘어지고 무너지더니 어느새 홍란염사는 기척도 느끼지 못할 만큼 멀어져 버렸다.
“하하하! 역시 운 형제일세! 백옥삼쯤이야, 운 형제에겐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지 않겠나!”
소도도가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운청휘를 제외하면, 소도도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린 유일한 사람이다.
운청휘는 분명 홍란염사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암암리에 기세로 홍란염사를 억누르고 있었다.
홍란염사와 운청휘는 양경 5단계로, 무위는 동일하다. 그러나 운청휘는 선천경 3단계의 무인을 상대할 수 있는 전투력을 지녔으니, 기세로 홍란염사를 겁주는 일쯤이야 간단한 일이었다.
“도도, 하나 줄 테니, 삼키고 완전히 녹여.”
어느새 다가온 운청휘가 백옥삼 하나를 소도도에게 건넸다.
“백옥삼은 치료약 외에도 무위를 증가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네 무위라면 백옥삼을 연화하는 즉시 무위의 증진을 이룰 수 있겠군.”
“뭐, 뭐? 운 형제, 지금 한 단계라 했나?!”
소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백옥삼을 덥석 입에 넣었다.
“지금 내가 월경 7단계인데, 이 백옥삼을 연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월경 8단계에 이른다는 말인가? 굉장해, 운 형제, 자네는 정말 굉장하이!”
소도도는 굳이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았다.
이미 사성의 기재인 만큼, 월경 8단계에 도달한다면 전투력에서는 양경 3단계도 상대할 수 있었다.
“소도도가 월경 7단계라고? 게다가 백옥삼이 무위를 증진시킨단 말인가?”
육개 뿐 아니라 다른 호위병들도 소도도의 말에 경악했다.
“그렇다면, 내 무위는 월경 9단계이니 백옥삼을 복용하면…… 양경으로 진입할 수 있는 건가?”
육개가 중얼거렸고, 눈에는 탐욕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것은 네게 주지.”
운청휘는 또 하나를 소빙빙에게 던져 주었다.
백옥단으로 정제하든, 무위 증진의 영약으로 복용하든 쓰기 나름이다.
어차피 운청휘가 아니라면 백옥단으로 정제할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필요한 양만 가지면 된다. 소도도의 지인이니 그럭저럭 마음에 들어 소빙빙에게 넘겨줬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운청휘……!”
호위병 이양이 불쑥 호통을 쳤다.
“운청휘, 네놈은 줄곧 우리의 비호를 받았는데, 이제 우리에게 보답해야 하지 않겠나!”
호통을 치면서 이미 운청휘의 코앞까지 다가간 이양이었다.
“그래, 그 보답으로 백옥삼 하나를 저 소저에게 주지 않았더냐.”
운청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흥, 어딜 육개 대장을 빠트리느냐! 네놈이 죽지 않게 비호해 준 사람이 바로 육개 대장이시다. 어서 남은 백옥삼을 대장에게 넘겨라!”
이양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웃기는 군. 쓸 데가 있으니 거절하마.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네놈들에게 넘길 성 싶으냐.”
운청휘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감히 거부하는 건가?”
이양이 얼굴을 찌푸렸다.
“운청휘, 줄곧 육개 대장의 보호를 받았으면 보답을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느냐!”
또 다른 호위병이 이양을 거들었다.
“육개 대장이 네놈을 위해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순조롭게 백옥삼을 손에 넣었을 줄 아느냐? 엄밀히 따져도 백옥삼은 전부 육개 대장의 것이지!”
또 한 명의 호위병이 말했다.
“맞아, 육개 대장이 자리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홍란염사가 백옥삼을 따게 놔뒀겠어?”
“운청휘, 어서 백옥삼을 육개 대장에게 돌려주게!”
“그래, 돌려주지 못하겠나!”
모든 호위병이 운청휘를 포위하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돌려달라?”
운청휘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호위 대장 육개를 바라봤다.
“내가 홍란염사를 유인하지 않고 백옥삼을 캔다면, 내가 모두 소유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 것을 돌려달라니, 참으로 가소롭구나.”
“흥, 육개 대장이 그런 말을 했었나? 우리는 전혀 듣지 못했는데?”
“운청휘, 육개 대장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지?”
“운청휘, 우리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순순히 넘기는 게 좋을 거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우리 탓을 하지 말도록!”
육개는 아무 말 없이 운청휘를 응시했고, 다른 호위병들만 앞다투어 운청휘를 위협하고 있었다.
“육개. 이들의 말이 네 뜻인가?”
어느새 운청휘의 두 눈이 한껏 가늘어져 있었다.
백옥삼을 입에 머금고 연화시키느라 바빴던 소도도는 운청휘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가관일세, 가관이야. 갈수록 죽고 싶어 하는 얼간이들만 늘어나는군.”
“무례하구나, 네까짓 게 뭔데, 감히 육개 대장의 존함을 직접 부르는 게냐!”
이양이 벌컥 성을 내더니 곧 육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자가 도무지 잘못을 깨닫지 못하니, 대장을 대신해 꾸짖고 백옥삼도 되찾아 오지요!”
“그런 마음가짐을 보여 주니, 어찌 말리겠나. 자네가 해결하게!”
육개가 선심을 쓰듯 말하더니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최대한…… 목숨만 살려 주게!”
“절대로 죽이진 않겠지만…… 사지가 멀쩡할 진 보장할 수 없겠습니다!”
이양이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운청휘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감히 내 사지를 운운해?”
운청휘가 말을 마친 순간, 이양이 난데없이 비명을 지르며 어딘가에 부딪치기라도 한 듯 훌쩍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