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허공에 뜬 이양의 손발에서 섬뜩한 소리가 네 번 울려 퍼졌다.
투둑……!
네 개의 손발이 먼저 바닥에 떨어지고, 혼절한 이양도 지면에 처박혔다.
그의 몸 아래로 선혈이 흥건하게 번져 나왔다.
“씁……!”
다른 호위병들은 질겁하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들은 운청휘가 이양을 공격한 수단을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양의 손발이 운청휘에게 잘렸다는 사실만큼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운청휘, 백옥삼은 둘째 치고 감히 이양의 손과 발을 자르다니!”
육개가 앞으로 나서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가축을 건드려도 주인의 얼굴을 살핀다고 하는데, 내 앞에서 이양을 이 꼴로 만들다니. 내 체면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군!”
“혀가 참으로 길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게냐?”
운청휘는 성가신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죽어라!”
고함을 지른 육개가 폭발하듯 영력을 끌어올렸다. 무수한 영력의 줄기가 하늘을 뒤덮으며 운청휘를 향해 내리꽂혔다.
짝!
운청휘는 단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요란하지도, 거창하지도 않았다. 그저 따귀를 올려붙이듯 간결한 동작이었다.
다음 순간, 육개의 몸이 무너지며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푸…… 우우!”
육개는 목숨은 부지했지만 한 줄기 선혈을 내뿜었다. 동시에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거듭 울렸는데, 이가 죄다 부러진 듯했다.
“대장……!”
호위병들이 다급히 달려와 육개를 부축하고 살폈다.
“육개 대장, 괜찮습니까?”
“콜록……!”
육개가 입을 연 순간,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의 입에서 여러 개의 이빨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뭐, 뭐 하고 있는 거냐. 어서 운청휘를 죽여!”
육개는 필사적으로 외쳤지만, 이가 부러진 탓에 발음이 새어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대신 열심히 운청휘를 가리키고 있으니 의미는 알아들을 법했으나…… 호위병들은 어색하게 시선을 피했다.
월경 9단계의 육개도 한 방에 나가떨어져 이 꼴이 되었는데, 자신들이 덤빈다고 무슨 방도가 있으랴? 시체라도 온전히 건지면 다행이다.
육개도 곧 상황을 깨달았는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몹쓸 놈들!”
***
이 각 후,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다.
줄곧 잠잠하던 소도도가 운청휘에게 다가오더니 슬쩍 운을 뗐다.
“운 형제. 어찌하여 육개를 살려 두었나? 자네의 마음에 드디어 자비가 생겨났는가?!”
소도도는 아까부터 이것을 묻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아는 운청휘는 악인은 아닐지언정, 원한은 반드시 원한으로 갚고 은혜는 은혜로 보답하는 신념을 지닌 사람이었다.
“저자를 지금 죽이든 나중에 죽이든, 무슨 차이가 있지?”
운청휘는 무심하게 대답하며 걸음을 옮겼다.
“역시, 운 형제는 역시 운형제군. 암, 운 형제가 난데없이 인자해지겠는가. 육계의 배후를 끌어낼 참이라면, 나도 협력함세!”
소도도가 마침내 후련해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빙빙과 마주했을 때 그들의 동행을 강력하게 반대하던 육개가 아니던가.
당시 그는 ‘당가’라는 세력을 이유로 대었다.
그때부터 운청휘와 소도도는 육개에게 알 수 없는 찜찜함을 느끼고 있었다.
또 하루가 지나, 드디어 흉수산맥의 중부 구역을 벗어나 외곽 구역에 접어들었다.
몇 시진 정도 걸었을까, 탈것이 내달리는 진동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왔구나! 줄곧 기다렸다!”
줄곧 소빙빙의 뒤를 지키며 운청휘와 거리를 벌리던 육개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이 음침하게 가라앉은 순간, 길들인 흉수를 탄 다섯 명이 일행의 눈앞에 나타났다.
“당가 둘째 장로, 당옥택(唐玉泽)……!”
그중 한 명을 본 순간, 소빙빙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당옥택?”
소도도가 반응을 보였다. 그의 기억 속의 당옥택은 연라성에서도 손꼽는 양경 무인이었다.
그러나 소도도는 곧 평정을 찾았다. 백옥삼을 연화한 후, 월경 8단계의 무위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사성 기재이니 양경 3단계의 무인도 이길 수 있다. 상황을 조금 더 파악하기로 한 듯, 소도도가 그를 주시했다.
“하하하, 당 장로님, 마침내 오셨군요!”
육개가 별안간 웃음을 터트리자, 소빙빙이 어리둥절하게 돌아보았다.
“응?”
육개는 당옥택이 올 줄 알았다는 듯, 희색이 만연했다.
“육개, 잘해주었다! 네 공은 노부가 반드시 가주님께 전하겠네!”
육십 대로 보이는 당옥택은 육개를 칭찬하더니 일행을 슥 훑어보았다.
“자네들은 육개와 합류하도록. 소빙빙만 남기고, 모두 죽여라.”
당옥택의 뒤에 있던 네 명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네!”
“네!”
명령을 받은 네 사람은 즉시 흉수를 이끌고 운청휘 쪽으로 달려들었다.
“아가씨, 죄송해요. 소가의 야심이 큰 것을…… 탓하시죠!”
육개가 곧바로 손을 뻗어 소빙빙을 붙들었다.
“육개, 우리 소가는 자네를 박하게 대하지 않았는데, 감히 우리를 배반하다니……!”
소빙빙은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육 수령, 설마……!”
다른 호위병들도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육개를 바라봤다.
“전부 죽어라!”
흉수를 탄 네 명은 도살용 칼을 들고 소빙빙의 호위병을 베어 들어갔다.
펑! 펑! 펑! 펑!
소도도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 순간, 그의 뒤에서 네 개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맹렬하게 쇄도하는 기운이 네 개의 칼을 쳐 멀리 날려 버렸다.
“육개, 네놈의 하찮은 재주는 여기까지냐? 이 몸은 하품이 나올 지경일세!”
소도도는 빈정대는 목소리만을 남기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펑펑펑펑……!
연거푸 네 번의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흉수를 타고 있던 이들이 종잇조각처럼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모두 월경 9단계의 무인들이었으나, 한 명도 소소도의 공격을 방어하지 못했다.
아니, 공격을 하는 소도도의 모습을 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멈춰, 오지 마라. 다가오면 소빙빙을 죽여 버릴 거야!”
육개가 한 손으로 소빙빙의 목을 움켜쥔 채 소도도를 위협했다.
“얼간이는 나을 방도가 없으니 애석한 일일세. 정말로 빙빙을 죽인다면, 이 몸이 손쓸 일도 없이 당옥택이 나서지 않겠나?”
소도도가 육개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더 말을 섞기도 귀찮구나! 그만함세!”
지루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은 소도도의 신형이 그대로 사라졌다.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육개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빛이 번쩍이듯 소빙빙을 빼낸 그가 한 손을 뻗어 육개의 배를 강타했다.
푸우!
바닥에 주저앉은 육개가 피를 한 움큼 내뱉었다.
“육개, 소가의 야망이 크다더니, 무슨 뜻인가? 어서 말하는 게 좋을 걸세. 이 몸이 그리 너그럽지 못하다네.”
소도도는 소빙빙을 보호하며 육개의 앞에 섰다.
“노부의 입으로 듣는 게 정확할 것이다!”
흉수를 탄 당옥택이 몸을 솟구치더니 소도도의 삼 장 앞에 훌쩍 내려앉았다.
“소빙빙의 아버지 소철(苏哲)은 터무니없는 야심을 품고 운해성(云海城) 조가(赵家)의 후계자에게 혼담을 넣었네. 더불어 조가와 연합하여 연라성의 다른 가문을 장악하려 들었지!”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버님은 조가의 혼담을 거절하셨고, 난 누구와도 정혼하지 않았어!”
소빙빙이 즉시 날카롭게 반박했다. 그녀는 연라성 4대 가문 중 하나인 소가 출신이자, 가주의 딸이었다.
“누가 그런 얄팍한 수에 속을까! 소철이 야심이 넘쳐도 어리석진 않지. 대놓고 조가의 혼담을 승낙했다면 다른 세 가문이 연합해서 소가를 칠 테니, 은밀히 진행했을 터!”
당옥택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소빙빙, 얌전히 나선다면 다칠 일은 없네. 그저 우리 당가의 소가주와 혼례를 올리기만 하면 된다네. 혼례를 마치면 소가로 돌려보낼 걸세.”
“뭐? 당가와 소가가 사돈지간이 된다는 뜻인가?”
소도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그렇다네. 소가와 당가가 연합한다면 다른 두 집안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지. 그리하면 연라성은 소·당가의 천하가 아니겠는가!”
당옥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 장로님, 저자는 소도도로 노소가(老苏家)의 자손이니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안색이 창백해진 육개가 다급하게 외쳤다.
운청휘가 소도도를 힐끔 바라보았다. 소도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연라성 4대 가문에는 소씨 가문이 2개 존재한다.
하나는 소엽, 소빙빙 자매가 태어난 소가. 다른 하나가 소도도가 소속되어 있는 소가였다.
본래 두 집안은 하나의 소가였다. 10대 조 전에 소가에 쌍둥이 형제가 태어났는데, 천부적인 재능과 무위가 대등하여 승패를 가리기 쉽지 않았다.
형제는 가주의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지만, 누구도 승복하지 않아 결국 한 명이 자신을 따르는 일원들을 데리고 자립하였다. 그는 새로운 소가를 세우고 발전시켰는데, 소엽과 소빙빙이 그 후예였다.
기존의 소가는 자연스레 ‘노소가’라 불리게 되었다.
“자네가 노소가의 자손이라고?”
당옥택이 눈을 부릅뜨더니 곧바로 전투 태세를 취했다.
그는 소도도의 전투력이 양경임을 확신하고 함부로 맞서려 들지 않았다.
단, 그가 노소씨의 자손이라면 절대 보낼 수 없었다.
어느새 당옥택의 손에 황급 상품의 보검이 들렸다.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소도도의 미간을 향해 날카로운 검 끝이 날아들었다. 공격하기까지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양경 1단계라……. 10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무위일세!”
당옥택이 공격을 펼치는 순간, 소도도는 기를 이용하여 대략적인 무위를 알아차리고 코웃음을 쳤다.
“칵!”
미간으로 날아든 검은 소도도의 두 손가락에 가볍게 잡혔다. 소도도가 부채라도 펼치듯 손을 돌리자, 장검은 그대로 당옥택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이럴 수가……!”
당옥택이 눈을 부릅떴다. 그가 비록 양경 1단계라 하나, 양경 2단계와 겨우 한 단계의 차이가 아닌가! 더욱이 황급 상품의 보검이 있으니 전투력은 대등한 수준일 터였다.
그러나 등골을 타고 흐르는 이 불길한 예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몸 앞에서 노소가를 건드리다니, 그만 죽으시게나!”
살기를 품은 한마디가 당옥택이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어느새 소도도의 기운을 따라 빙글 돌아선 장검이 그의 목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