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18화 (118/430)

제118화

당옥택을 죽인 후, 소도도는 더는 번거로워지고 싶지 않았는지 육개의 목숨도 빼앗았다.

상황은 정리된 듯했으나, 그와 소빙빙 사이의 분위기가 다소 미묘해지고 말았다.

“연라성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이 오라버니가 바래다주마.”

소도도가 먼저 어색한 분위기를 깨트렸다.

“응…….”

고개를 끄덕인 소빙빙이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도도 오라버니, 당옥택과 육개가 말한 것들…… 나는 하나도 몰랐어.”

소도도는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일행은 다시 길을 떠났고, 흉수산맥을 벗어날 무렵 또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총관 할아버지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거의 동시에 서로를 알아본 양측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육개, 그놈은 어찌 되었습니까? 당옥택 등을 마주치진 않으셨습니까?”

육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기력이 정정한 노인이 한달음에 달려 나와 소빙빙을 살폈다.

“총관 할아버지, 괜찮아요. 육개도 당옥택도 도도 오라버니가 해치우셨어요.”

소빙빙이 대답했다.

“도도 오라버니? 이분 말씀이십니까?”

노인이 소도도를 보더니 속으로 생각했다.

‘이상하군. 낯이 익은 청년인데?’

“응…….”

소빙빙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 소약(苏药), 소가의 총관으로서 아가씨를 구해주신 도 공자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소약은 급히 소도도에게 예를 갖춰 인사하며, 놀란 마음을 감췄다.

‘고작 약관이 넘은 듯한데, 당옥택을 죽일 무위를 가졌다니, 대단하군!’

‘도 공자’라는 호칭에 소빙빙이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총관 할아버지.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잘 보세요. 소엽 언니의 정혼자, 소도도 오라버니예요!”

“노소가의 소도도? 천원왕조에 계시는 게 아닙니까?”

소약이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소도도를 돌아보았다.

“……노소가의 소도도?”

어느새 그의 말투는 냉담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래, 내가 그 소도도일세!”

소도도가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영정패(灵晶牌)는 각각 은자 5,000만 냥의 값어치가 있소. 아가씨를 구해준 보답으로 합시다!”

소약이 어느새 두 장의 전표를 꺼내 소도도에게 던져 주었다.

영정패는 천검종 휘하의 전장(钱庄)에서 발행한 것으로, 천검종의 세력이 미치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사용이 가능하다. 천운왕조가 발행한 은표보다 지역적인 한계가 없으니, 매우 활발하게 쓰이는 편이었다.

“약 총관님, 너, 너무 많은 액수가 아닙니까!”

소약의 일행 중 한 중년인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소약은 그를 한번 흘겨보기만 하고 다시 소도도에게 말을 이었다.

“노부가 급히 나오느라 소지한 금액인 이뿐이지만, 부족하다면 추후에 더 드리지요. 충분하시거든, 거래는 이쯤 합시다!”

“필요 없네. 이만한 돈이 있거든, 자네 관이나 마련하게나!”

소도도는 코웃음을 치며 전표를 다시 소약에게 던져 버렸다.

“운 형제여, 이만 가세. 여기 있다간 떼부자가 되고도 남겠네!”

소도도가 말을 마치고 운청휘를 재촉했다.

“도도 오라버니……!”

소빙빙이 다급히 쫓았지만, 몇 걸음 뛰기도 전에 소약이 그녀의 혈을 짚어 혼절시켰다.

“약 총관님, 이렇게 보내도 되는 겁니까?”

일행 중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모처럼의 기회입니다. 차라리 지금 소도도를…….”

말을 하던 이가 목을 긋는 동작을 해 보였다. 소약의 주름진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게 가능했다면 노부가 진작 손을 썼을 거네!”

소약이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육개와 당옥택을 죽였으니 되었네. 소도도는 최소 양경 2단계의 무위를 지녔을 걸세. 노부는 그를 죽일 자신도 없거니와 이로써 당가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되었으니, 손을 쓰지 않았네.”

반나절 후, 소도도와 운청휘는 연라성에 진입했다.

연라성은 천운왕조의 어느 성보다 규모가 컸는데, 성벽의 높이만 해도 삼십여 장에 이르렀다.

성문을 오가는 이들도 많았으며, 자연스레 활기가 넘쳤다. 소도도는 묵묵히 사람들 틈에 섞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운 형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노소가에 큰일이 난 모양일세!”

오는 내내 침묵을 지키던 소도도가 돌연 입을 열었다.

“소약 영감의 태도, 기억나는가? 빙빙을 구해줬다고 하니 그리도 고마워하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태도를 바꾸지 않았나. 나는 소엽의 정혼자일세. 소가의 사위나 다름없는데, 영감이 은근히 적의를 내뿜더군! 그동안 빙빙에게 노소가의 일을 슬쩍 물어봤는데,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소도도의 가족에게 변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정보를 얻기 위해 객잔으로 향했다.

객잔은 많은 이들이 식사를 하러 오는 만큼, 오가는 소문을 듣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분명 소도도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리라.

두 사람은 객잔의 1층 창가 쪽 자리를 잡은 후, 젓가락을 놀리며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운학(苏云鹤)이 사도(邪道)에 빠졌다는데 정말입니까?”

“그럴걸세. 소운학은 벌써 석 달이나 두문불출하지 않았나. 예전에는 7일마다 세가회의를 열었다더군. 하지만 최근 석 달 동안 세가회의는 장로들이 대신했다고 해.”

“맞아요.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났는데, 소운학에게 큰일이 났다지요?”

한 중년인이 술을 한 입 마시더니 불쑥 끼어들었다.

“며칠 전에 소가가 발표하지 않았나. 소엽과 노소가의 소도도라는 사람의 혼약이 파기되었다지? 소엽은 4대 가문 중 하나인 이가(李家)의 후계자와 혼삿날까지 정했다네. 한 달 후라던데? 이가의 후계자인 이영재(李英才)로 말하자면, 겨우 22살인데 이미 월경 9단계의 무위를 지닌 데다 이성 기재일세. 전투력에서는 양경 2단계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니, 많은 선배 무인들이 이영재가 50년 내로 연라성 제일의 고수가 될 거라고 칭찬이 자자해!”

그때 소도도가 젓가락을 놓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세, 운 형제. 상황은 대강 알았으니, 서둘러야겠네.”

운청휘도 따라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도록. 네 조부가 사도에 빠졌다 한들, 그를 치료할 방도는 있다.”

안색이 어두워진 소도도가 고개를 천천히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닐세. 운 형제. 차라리 사도에 빠지셨다면 걱정이 없겠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느덧 눈시울이 붉어진 소도도가 힘겹게 말을 맺었다.

“……공격을 당하신 게 분명하지 않겠나.”

두 사람이 객잔을 나서려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앞을 막아섰다.

“소도도, 운청휘?”

다소 거만한 목소리와 함께, 사십 대의 중년인이 독기가 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훑었다.

“사람을 잘 알아보는군. 이 몸이 소도도일세!”

운청휘와 소도도가 고개를 끄덕였고, 소도도가 이렇게 말했다.

“용건이 무엇인가? 이 몸은 바쁘니 괜히 길을 막지 말게나!”

“드디어 찾았군. 죽기 싫으면 당장 따라오게!”

독기를 품은 중년인이 명령조로 말하며 덧붙였다.

“소개를 잊었군. 내 이름은 당원(唐源). 당가의 객경(客卿, 타국 출신으로 그 나라에서 관리가 된 사람)일세.”

중년인의 소개에 객잔이 갑자기 수선스러워졌다.

“뭐? 당가의 객경 당원이 여기까지 오다니!”

“저자는 악랄하다고 소문이 난 자야. 당가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더욱이 양경 2단계의 고수라 별호도 당회자수(唐刽子手)일세!”

“소도도? 운청휘? 저들은 누군데 당회자수가 나선 거지?”

“잠깐만. 소도도라면 들어 본 것 같네. 설마, 소가와 혼약이 파기된 노소가의 소도도? 그는 10년 전에 연라성을 떠났는데, 돌아왔단 말인가? 친손자가 돌아왔으니 노소가주가 좋아할 일이지만, 운이 나빴어. 쯧쯧.”

“아무렴. 돌아오자마자 당원이 찾으니 운이 나빠도 너무 나쁘지!”

“지금의 노소가는 10년 전의 노소가가 아니야. 당원에게 걸렸다면, 도마 위에 놓인 고기나 다름없지.”

당원을 알아본 이들이 제각기 수군거리며 운청휘와 소도도 쪽을 힐끔거렸다.

“뭘 꾸물거린 겐가? 무서워서 몸이 굳기라도 했나?”

운청휘와 소도도는 요지부동이었는데, 당원은 그들이 겁에 질렸다고 생각한 듯 혀를 찼다.

“당옥택인지 뭔지, 당가 두 번째 장로라더니 쓰레기가 따로 없군. 정말 이런 얼간이들에게 죽었다고?”

“네가 그 일을 어찌 아느냐?”

운청휘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불쑥 입을 열었다.

“소가의 소약이 알려 주더냐?”

“네놈들 멍청하진 않구나!”

당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후가 밝혀져도 상관없다는 투였다. 그는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넘쳤다.

“도도. 그만 가자꾸나.”

운청휘가 두 눈을 내리깔았다.

“소가로 가야겠군.”

운청휘는 배은망덕한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와 소도도는 소빙빙을 구해주지 않았던가. 소가가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당가에 소식을 전했다면 참고 넘길 일이 아니었다.

“가? 하하하, 잠꼬대하는 거냐?”

당원은 운청휘의 말을 듣자마자 껄껄 웃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그만 됐다! 더는 놀아주기도 귀찮구나. 꾸물거리지 말고 가자!”

“이 중늙은이가! 네놈이나 관으로 들어가라!”

더는 화를 참지 못한 소도도가 벌컥 성을 내며 당원을 치려 들었다.

“죽고 싶은 게냐!”

욕을 들은 데다 공격까지 하려 드니, 당원도 순간 살기가 솟구쳤다. 그도 손을 내뻗어 소도도의 일장에 맞섰다.

쿵!

주먹이 부딪혔을 뿐이건만 공기가 크게 진동하며 그 여파가 객잔의 대문을 두 동강 내었다.

당원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는 크게 떠밀린 듯 뒤로 날려가더니 거리로 털썩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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