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20화 (120/430)

제120화

소도도와 소순의 눈에는 사방에서 날아다니는 흉수들과 산채만 한 크기의 거인들이 어슬렁거리는 광경이 비쳤다.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배었다.

그러나 흉수든 거인이든, 마치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유유히 스쳐갈 뿐이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모두 환각이다. 홀리지 않도록 지키고 있으니 안심하도록.”

의아해하는 두 사람의 귓가로 운청휘의 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곧, 세 사람은 석문 앞에 멈춰 섰다.

“석문도 내부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소순이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외쳤다.

“강제로 열면 그만.”

운청휘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강대한 영력이 솟구쳤다.

그의 몸에서 솟구친 영력이 석문을 향해 돌진하더니, 마치 거대한 손이라도 된 듯 석문을 그대로 잡아 뜯었다.

“이럴……!”

소순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을 벙긋거렸다.

“가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 문은 선천경 1단계 무인의 공격을 10번 이상 막아낼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런데 영력만으로 문을 뜯어내시다니……!”

운청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디 석문뿐이랴. 지금의 전투력이라면 선천경 1단계의 무인도 한 방에 죽일 수 있건만.

마침내 석실에 들어서자, 오래 고여 있어 탁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석실 중앙으로 향했다.

백발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였다.

“할아버님……!”

노인은 안색이 창백한 데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듯 피부가 축 처져 있었다.

도무지 무공을 익혔다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의 앞에 검고 푸르죽죽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비참한 몰골을 마주한 소도도가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궜다.

“역시 중독이야. 독으로 인해 체내의 모든 피가 썩어 들어갔군.”

이때만큼은 운청휘의 목소리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걱정하지 말도록. 치료법은 있으니. 다만, 피를 교체해야 하는데…….”

“물을 게 있는가, 운 형제! 내 것을 쓰게!”

소도도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하며 다가왔다.

“그러지.”

운청휘가 곧바로 손을 쓰려다 잠시 생각하더니 먼저 소도도의 피를 한 방울 얻었다.

이어서 노인의 몸에서도 피 한 방울을 얻어낸 후, 신식으로 두 피를 감쌌다.

한데 엉겨드는 핏방울을 바라보던 운청휘의 안색이 미미하게 굳었다.

‘도도는 그의 조부와…….’

운청휘는 잠시 소도도를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역시 피를 교체하는 방법은 위험이 크겠어. 대신 안전한 방법을 알려 주지. 이 방법으로도 할아버님을 구할 수 있으니 안심하도록.”

운청휘가 약 30여 종의 약초를 종이에 적어 내밀었다.

“이 약초는 비교적 흔한 종류이니, 가문의 약방에도 있을 터, 어서 가져오게.”

소순이 얼른 종이를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가겠습니다!”

그러나 소순은 일각도 지나지 않아 빈손으로 돌아왔다. 표정도 어둡게 가라앉았기에, 소도도가 다급히 물었다.

“왜 그러나, 총관. 설마 약방에 약초가 없는 건가!”

“약방에는 있지만…… 소인은 가져올 수 없습니다!”

“가져올 수 없다? 그게 무슨 뜻인가? 제대로 말하게!”

소도도가 다그치듯 물었다.

“약방은 이미 소원(苏园) 어르신의 사람들이 점령했습니다.”

소순이 고개를 들지 못하며 설명했다.

“백부의 사람들?”

소도도가 잠시 중얼거리더니 곧 소순을 돌아보았다.

“이 약초는 할아버님의 치료에 필요한 것들일세. 그대로 전했는가?”

“소인이 얘기했지만, 그들은 주지 않았습니다……. 소가주님, 소원 어르신은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소순의 목소리에는 짙은 슬픔이 배어 있었다.

소도도의 조부는 좀처럼 후사를 보지 못해 양자를 들였는데, 그가 소도도의 백부 ‘소원’이었다. 공교롭게도, 소도도의 조부가 마흔을 넘겼을 무렵 소도도의 아버지가 태어났다.

“가주님께서 두문불출하신 뒤로 소원 어르신이 업무를 맡아왔습니다. 재무(账房), 약방, 단방(丹房, 단약을 달이는 곳), 무공각 등 가문의 주요 부서에 자신의 심복을 관리인으로 두었지요. 소인이 방금 듣기로는, 3일 후 열리는 세가회의에서 아들 소력(苏力) 공자를 후계자로 내세우려 한답니다!”

소순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소도도가 몸을 일으켰다.

“총관, 약방으로 안내하게나. 그들이 어찌 이 몸을 막겠나?”

두 사람은 곧장 약방으로 향했다.

이 각 후, 어깨에 자루를 짊어진 소도도와 소순이 돌아왔다.

“운 형제여, 약초를 전부 가져왔다네!”

자루를 내려놓은 소도도가 안에 있는 약초를 몽땅 쏟아부었다.

“……싸우고 왔더냐?”

운청휘의 손바닥에서 푸른 불꽃이 일더니 약초들을 연화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네. 약방에 있던 자들은 전부 처리하고 오는 길일세.”

소도도가 무덤덤하게 답했다. 그의 눈에는 냉랭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일각 후, 약초의 정제가 끝나고 세 개의 투명한 단약이 완성되었다.

“이 정혈단(净血丹)은 혈액에 녹아든 독을 정화하는 효능이 있지만, 도도의 할아버님은 너무 오랫동안 중독되지 않았더냐. 독성이 전부 녹으려면 사흘 정도 걸리겠구나.”

운청휘는 소도도의 조부에게 정혈단을 하나 먹이며 천천히 설명했다.

“이틀에 걸쳐 복용할 수 있도록 기억해 두거라.”

비로소 소도도의 얼굴에서 한기가 가시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흘이 걸리지만, 쾌차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곧 소도도가 결심을 한 듯 운청휘를 돌아보았다.

“운 형제. 할아버님은 총관에게 맡기고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할 일이 있다네.”

그의 눈은 이미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운청휘도 소순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소순은 조심스레 만류했다.

“소가주님. 소원 어르신은 최근 선천경에 들었습니다. 가주님께서 깨어나신 후에 다시 생각해 보심이 어떻습니까?”

“이 몸이 10년은 참았어도, 사흘은 못 기다린다네!”

단칼에 거절한 소도도가 운청휘와 함께 석실을 빠져나갔다.

***

흉수산맥에서 소빙빙을 마주쳤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소도도는 너무나 많은 화를 억눌렀다. 성공학관의 원장에게도 거리낌 없이 욕설을 퍼붓던 그가 아니던가.

소가가 배반했고, 소엽과의 혼약이 파기된 데다가 가문은 쇠락하고 조부는 큰 부상을 입었다. 더욱이 당가까지 찾아오니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정작 돌아온 가문은 소원이 지배하고 있으니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양자인 그가 가문에 이만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조부의 덕분이었지만, 소원은 만족하기는커녕 노소가를 집어삼키려 들지 않는가.

소도도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별채로 향했다.

“누구냐?”

“무슨 일로 대장로님을 뵈려는 것이냐?”

별채를 지키던 호위들이 두 사람을 보고 냉랭하게 물었다.

“대장로라. 제대로 찾아왔군!”

소도도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호위병을 바라봤다.

“이 몸은 소도도일세. 대장로에게 그리 이르면 알아들을 걸세. 어서 나오라고 전하게.”

“소도도?”

호위병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그들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네놈이 뭔데 대장로님을 함부로 부르느냐!”

곧바로 한 명이 소도도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전부 귀가 먹었나? 이 몸이 대장로를 나오라고 말했지 않나!”

소도도가 폭발하듯 으르렁거리더니 손을 휘둘렀고, 그를 윽박지르던 호위병은 순식간에 살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스읍…….

핏물을 뒤집어쓴 다른 호위병은 덜덜 떨며 가까스로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고…… 공자님을 몰라 뵈었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곧장 대장로님께 알리겠습니다!”

호위병이 비틀거리며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옷을 입은 예순 무렵의 노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소도도, 돌아왔구나?”

노인은 소도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참으로 건방지구나! 감히 내 사람을 죽여?”

“이 몸은 바쁘니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 치우십쇼. 대장로는 노소가의 사람입니까, 소원의 사람입니까?”

소도도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르신은 가주님의 장자니 그 자체로 노소가의 대표가 아닌가. 나는 대장로로서 당연히 어르신을 따른다네.”

검은 옷의 노인이 안색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더욱이, 어르신은 자네의 백부님이건만 함부로 이름을 부르다니. 도가 지나치지 않은가?”

“은혜도 모르는 놈은 이 몸의 백부가 될 자격도 없지! 개를 키워도 그자보다 은혜와 도리를 알 터!”

소도도가 말하면서 일장을 내뻗었다.

“관뚜껑이나 얼른 덮고 들어가거라!”

대장로도 마찬가지로 일장으로 맞이하며 노성을 내질렀다.

“소도도, 이 건방진 놈! 지금도 소가주인 줄 아느냐!”

콰앙!

두 사람의 일장이 부딪힌 순간, 그 충격으로 별채의 대문이 무너지고 말았다.

동시에 대장로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팔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뒷걸음질 쳤다.

“어…… 어떻게? 네놈의 무위가 이렇게 강하다니……!”

대장로가 충격을 받아 텅 빈 눈으로 소도도를 바라보았다.

“이 몸을 뭘로 보고! 반 시진 내로 소가의 모든 고위층을 모아와라. 이 소도도가 세가회의를 열 테니까!”

명령을 내린 소도도가 운청휘와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일각 후, 두 사람은 소가의 의사청에 도착했다.

소도도가 운청휘를 보면서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결국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운 형제. 만약 무슨 일이 생기거든…… 늘 그랬듯이 자네를 믿겠네!”

“걱정하지 말도록. 언제든, 누구든 상관없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된다.”

운청휘는 곧바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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