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21화 (121/430)

제121화

눈 깜짝할 사이에 반 시진이 흘렀지만, 아무도 의사청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동안 운청휘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미동도 없어 잠든 것처럼 보였다.

소도도는 무표정하게 앞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묵묵히 시간을 세고 있었다.

소도도가 예고한 반 시진을 넘겨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소도도의 눈가에 스산한 기운이 서렸다.

결국 이 각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의사청 밖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먼저 대장로가 들어섰고, 그와 비슷한 연배의 다섯 노인이 뒤를 따랐다. 소가의 여섯 장로가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20여 명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대장로가 불러모았으니, 저들은 모두 가문 내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일 터였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소도도의 눈에 익은 이가 없었다.

“이 다섯 명은 장로들이다. 다른 이들은 재정 관리, 단방 관리, 무공각 관리, 법보각 관리네. 네놈이 죽인 약방 관리인만 제외하면, 노소가의 모든 고위층이 이 자리에 있구나.”

모두 자리에 앉자 대장로가 좌정한 이들을 소개했다.

소도도는 묵묵히 그들을 한번 훑어보더니 한 손을 다탁에 올렸다. 그가 다섯 손가락으로 다탁을 두드리자 ‘쿵’ 소리가 거듭 울렸다.

거의 일 다경 내내 다탁을 두드리는 소도도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결국 회색 옷을 입은 장로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10년 만에 돌아오셨으니 그야말로 가문의 경사가 아닙니까. 마땅히 축하연을 열어야겠지요. 하지만 돌아오시자마자 약방 관리인과 일꾼들, 대장로 댁의 호위병도 죽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가 어찌 환영할 낯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왕자라도 죄를 지으면 백성과 같이 다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주님의 손자라고 해도 가문의 법도는 지켜야 합니다. 장로의 신분으로 당신에게 묻겠소. 약방 관리인과 일꾼들, 대장로의 호위병은 무슨 법도를 어겼기에 죽인 거요?”

또 한 명의 장로가 거들었다.

“약방의 관리인은 내 사촌 형일세. 나를 설득할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그대를 가문의 법도에 따라 처벌해도 탓하게 말게나!”

재정 관리인은 냉랭하게 말하며 소도도의 이름을 부르길 서슴지 않았다.

“소도도. 나는 호위병 총통이네. 대장로 댁에서 자네가 죽인 호위병은 내 부하 중 한 명이지. 마찬가지로 나를 설득할 이유를 대지 못하면, 나는 마땅히 자네를 죽여 부하의 복수를 하고 말겠네!”

스산한 기운을 내는 호위병 총통이 말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자는 누구지? 가주의 손자씩이나 되어 이 자리가 얼마나 진중한 자리인지도 모르는가? 감히 어중이떠중이를 달고 오다니!”

고위층 한 명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운청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나를 그리 불렀나?”

줄곧 침묵을 지키던 운청휘가 고개를 들었다.

“흥, 말귀는 알아듣나 보군. 소도도에게 말했건만, 네까짓 게 뭐라고 끼어드느냐!”

그자가 코웃음을 치더니 상대하기도 싫다는 내색을 보였다.

“네놈이야말로 어딜 끼어들고 있지?”

그때, 소도도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을 내뻗었다. 거대한 손이 그자의 목을 덥석 휘감고는 단번에 꺾어 버렸다.

“운 형제, 이런 쓰레기를 치우려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다네.”

소도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재정 관리인을 돌아보았다.

“감히 주인을 업신여기는 약방 관리인을 벌했는데, 여기에 설명도 필요한가?”

소도도의 싸늘한 시선이 재정 관리인을 향한 순간, 영력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손이 그자를 잡아 허공으로 내던졌다.

“이게 이 몸의 설명이니 똑똑히 듣게나!”

또다시 하나의 거대한 손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두 손이 약방 관리인을 단단히 붙들더니 양쪽에서 잡아당겨 종이처럼 반 토막을 내었다.

“총통. 아까 뭐라고 했었나? 자네를 설득할 이유를 대지 못하면 나를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소도도를?”

살기로 번뜩이는 소도도의 시선은 이제 호위병 총통에게 향했다.

“감히 가문의 사람을 두 명이나 죽이다니, 어찌 이리 오만방자한가!”

호위병 총통은 기죽기는커녕 무의식적으로 호통을 쳤다. 동시에 그가 급히 칼을 뽑아 소도도에게 달려들었다.

“가문을 위해서라도 네놈을 죽여 문호를 정리하겠다!”

“문호를 정리한다고? 네놈 혼자서 말이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소도도가 휘두른 거대한 손이 호위병 총통을 날려 보냈다.

퍼억!

의사청 돌담에 사람 모양의 구멍이 뚫리며 잔해가 부스스 흩어졌다.

돌담 아래 쓰러진 총통을 보니, 이미 온몸의 뼈가 부스러져 죽은 상태였다.

“어이, 삼장로. 왕자라도 죄를 지으면 백성과 같이 다스린다고 했던가? 나는 가주의 손자이지만 가문의 법도를 무시할 수는 없지. 합리적인 이유라, 그래! 지금 알려 줌세. 그 이유는 당연히!”

소도도가 삼장로를 돌아보더니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당당히 외쳤다.

“노소가는 나 소도도의 노소가니까!”

“저게 무슨 소린가?”

“저자는 그냥 살인을 즐길 뿐이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문의 사람을 죽였어!”

“육장로님, 가문을 위협하는 소도도를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아무리 가주님의 손자라고 해도, 가문의 법도를 무시하고 가문의 일원을 죽였으니 법도에 따라 처리해야지!”

“노가주님께서 자리를 비우셨으니, 우리가 대신하여 벌해야 합니다!”

장로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격분하여 성토의 목소리를 내었지만, 직접 달려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장로님, 저희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삼장로가 목소리를 잔뜩 낮춰 대장로에게 물었다.

“죽고 싶으면 나시게나. 노부도 그의 상대가 못 된다네.”

대장로 역시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했다.

“모두 한 번에 덤비면 되지 않겠습니까?”

삼장로는 여전히 불만이 남은 듯 끈질기게 말해왔다.

“대장로님,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소원 가주가 돌아온 후 우리부터 칠 겁니다!”

회색 옷을 입은 장로가 다급히 끼어들었다.

“어리석군. 소원이 우리를 용서하든 말든 그건 나중 일일세. 지금 나서면 반드시 죽는데, 사후의 일을 벌써 생각하는가?”

대장로가 이를 악물고 낮게 호통을 쳤다.

그는 사람을 보내 소도도가 사람을 죽인 이유를 알아보고 온 터였다. 약방의 관리는 소도도의 요청을 거절했고, 직접 약방을 방문했을 때는 소도도에게 업신거리다 분노를 사 죽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호위병도 소도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빈정거리다 목숨을 잃었다.

다소 과격한 수단이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소도도는 법도를 세운 셈이다.

소도도의 말처럼 노소가는 소도도의 노소가다.

다른 이들은 모두 소도도의 부하나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

“삼장로. 내가 너희 모두를 죽일 수 없다고 했는가? 그리고 이장로, 소원을 뭐라고 부른 건가? 가주? 하! 우리 노소가의 가주가 언제부터 가축이 되었지?”

삼장로와 이장로는 목소리를 한껏 낮췄지만, 그들의 대화를 놓칠 소도도가 아니었다.

“그래, 하나하나씩 함세. 이 몸이 오늘 당신들을 전부 죽일 수 있는지 꼭 보고 싶지 않은가?”

소도도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곧바로 삼장로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우선 네놈부터 처리하고!”

영력이 가득 담긴 주먹이 머리에 직격하자, 삼장로는 생각할 순간도 얻지 못하고 머리가 터져 엎어지고 말았다.

“다음은 네놈일세, 이장로. 가축을 가주로 받들었으니, 네놈은 가축보다 못한 게 아닌가? 그리 살 바에는 지금 죽는 게 덜 부끄럽겠네!”

소도도가 빠르게 이장로에게 일장을 날렸지만, 그는 각오하고 있었는지 몸을 돌려 일권으로 맞섰다.

퍼억, 쿵!

두 손이 부딪치자마자 귀청을 울리는 타격음이 이어졌고, 충격파가 사방에 휘몰아쳤다. 탁상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금이 가자 운청휘가 손을 올려 그대로 보호했다.

이장로는 충격의 반동으로 날아가며 공중에 피를 한 움큼 흩뿌렸다. 그의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소도도가 달려들더니 일권으로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고작 숨 몇 번 쉴 정도의 시간 동안, 장로 두 명이 소도도의 손에 죽었다.

“대장로, 사장로, 오장로, 육장로, 네놈들은 소원의 편인가?”

어느새 가장 높은 자리로 돌아와 앉은 소도도가 살기등등한 눈으로 그들을 훑어보았다.

“……아닐세!”

망설이던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머리끝까지 울화가 치밀긴 했지만, 소도도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대장로는 몇 번이나 소원의 이름을 직접 불렀고, 삼장로와 이장로는 소원을 ‘가주’라 칭했다. 그 호칭이 그들의 입장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삼장로와 이장로는 소원의 사람이 확실하다.

그 때문에 망설임 없이 두 사람을 죽인 소도도였지만, 대장로는 일부러 살려 두었다.

“우리 네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소원의 사람들일세.”

대장로가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소원의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의 편이라는 뜻도 아닐세! 적어도 가주님께서 정식으로 자리를 넘겨주지 않는 이상은!”

다른 장로들도 앞다투어 대장로와 뜻을 함께했다.

“소원의 편이 아니면 그만이지, 내 편이 되어 달라곤 안 했다네. 이 소도도, 혼자서도 충분한 것을.”

소도도는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지만, 어느새 그의 눈에서 살기가 지워져 있었다.

“다른 이들이 소원의 심복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10살까지 노소가에서 생활했던 소도도는 여섯 장로를 보자마자 그들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다른 20여 명의 고위층은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아마도 소도도가 노소가를 떠난 후, 소원이 직접 발탁한 이들이리라. 자연히 소원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하하하, 좋아요, 네 명 다 좋아요!”

바로 그때, 바깥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소력이! 그가 어떻게……?”

네 장로의 눈에 곤혹스러움이 스쳤다.

대장로가 소도도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그가 소도도가 지시한 시간보다 늦은 건 허세를 부리거나 소도도의 기를 죽이려는 게 아니었다. 고위층들에게 연락을 취함과 동시에 소원 부자를 속일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늦게 도착했건만…….

“소력은 반년 전 양경 5단계에 도달했다네…….”

대장로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더불어 소원은 사적으로 여러 객경을 두고 있지. 그중에는 반절 선천 기재도 있다고 들었네.”

곧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십여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들어섰다.

다소 음침한 느낌을 주는 그 청년은 소도도를 보자마자 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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