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운청휘가 가소롭기 짝이 없다는 듯 그를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월경일 때도 반절의 선천 무인과 대등하게 겨루었다. 양경에 이른 나를 가둘 줄 알았나?”
운청휘에게는 시답잖은 일이었지만, 한 번은 운청휘를 가두었으니 나름대로 자랑으로 여겨도 좋을 터였다. 그에게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수수께끼지만.
운청휘의 말을 듣던 봉업노조가 별안간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껄껄 웃었다.
“그렇군. 그랬어. 노조는 후배에게 속을 뻔했구나!”
“속여? 내가 무엇을 속였단 말이지?”
운청휘가 무심하게 물었다.
“후배의 속임수가 제법이로군. 소력을 죽일 때는 영력만을 써서 자네를 양경 무인으로 생각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지만 자네는 노조와 같은 반절 선천이 분명하이! 아니라면 무슨 수로 오행의 힘을 이기겠는가?”
봉업노조는 여기까지 말하고 또 냉소했다.
“후배, 허풍도 정도껏 하는 게 좋다네. 월경 단계에서 반절의 선천과 무승부를 거두었다고? 전설 속의 월경 극경이라도 어림없지! 그래, 자네가 만에 하나 구성 기재라면 양경 9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겠지. 하지만 월경과 선천경은 엄연히 격이 다른 존재! 정말 자네가 반절의 선천을 만났다면 패배 외에는 꿈도 꿀 수 없겠지!”
봉업노조가 혀를 끌끌 차더니 운청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엇 하러 네놈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나는 월경 극경에 이르렀고, 무승부를 거둔 것도 사실이거늘. 9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구성 기재인 것도 사실이다.”
운청휘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사실을 이야기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봉업노조는 너무 웃어서 허리가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어느새 눈물까지 찔끔 흘러나왔다.
“이만큼 살며 별별 사람을 다 보았지만, 자네처럼 허풍을 떠는 이는 정말 처음 보는구만!”
이어 봉업노조가 조롱하듯 덧붙였다.
“후배, 좀 더 허풍을 떨지 그러네. 아예 선제를 자칭하는 건 어떤가!”
“이미 선제이거늘 허풍을 떨 이유가 있을까.”
봉업노조가 아무리 조롱한들, 운청휘의 태도를 무너뜨릴 순 없을 듯했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후배, 자네 실성한 게 아닌가? 벌써부터 정신이 혼미하니, 안타깝게 됐구만! 자네가 정말 선제라면, 이 노조는 진선일세!”
봉업노조는 여전히 운청휘를 조롱하며 웃음을 흘렸다.
“진선이라. 그리운 호칭이로구나. 생각만으로도 단번에 선인들을 죽였거늘.”
운청휘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봉업노조는 웃음을 뚝 멈추더니 한동안 그를 빤히 노려보았다.
“후배, 노조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았는데, 정말 당해낼 수가 없구나! 천하의 누구도 자네 앞에서 허풍으로 일등이라 할 수는 없을 걸세!”
“지금껏 허풍으로 들었단 말이지?”
운청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천성대륙에 돌아온 후 꽤 시간이 흘러 본제가 처음으로 신분을 밝히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었거늘, 반응이 참으로 실망스럽군.”
운청휘가 봉업노조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소도도는 대장로와 다른 세 장로를 제외한 소력의 부하들을 죄다 죽이고 옷을 툭툭 털었다.
그가 운청휘에게 다가오며 환하게 웃었다.
“운 형제, 청소가 제법 걸리고 말았군! 이번에도 자네에게 폐를 끼쳤으니, 이 몸은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소도도의 말투에서 억누르지 못한 감격이 묻어나왔다.
“폐를 끼쳤다고? 이 허풍밖에 모르는 자가 감히 이 노조를 꼼짝 못 하게 만든다는 뜻이렷다?”
봉업노조는 콧방귀를 뀌었다.
“되었네. 소원의 부하들까지 자네들에게 죽었고, 노조는 반절 선천을 이길 수 없으니 연라성을 떠나야겠군.”
“허풍?”
소도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운청휘는 허풍을 부릴 이유도 없거니와 그런 말장난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흥! 노조의 입으로 말해야 하는가? 형제라고 하더니, 아는 게 없나 보군! 그도 아니라면, 자네들이 내통하여 노조에게 거짓을 고하는가?”
소도도가 의아해하는 것조차 거짓말이라 생각했는지, 봉업노조가 연신 코웃음을 쳤다.
“이 영감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운 형제?”
소도도는 봉업노조의 정신이 혼미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쯧쯧, 노조는 네놈들의 얄팍한 거짓말도 이제 질렸다!”
봉업노조는 완전히 질렸다는 듯 경멸을 숨기지 않으며 손을 내저었다.
“네놈의 형제는 반절의 선천이 아니더냐! 노조는 승산 없는 싸움에 몸을 던질 생각은 없으니, 이만 가 보겠네!”
봉업노조가 말을 끝내자 떠날 준비를 했다.
“뭐, 저자가 반절의 선천이라고?!”
“도도 소가주보다 어려 보이는데 벌써 그런 경지라니……!”
“도도 소가주의 과감한 행적은 다 의지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로군!”
대장로와 다른 세 명의 장로들은 봉업노조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뜰 뿐이었다.
“그래, 자네가 비록 허풍선이에 정신이 혼미하긴 하나,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 선천생령에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로군. 영단경, 아니. 현경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봉업노조는 떠나기 전에 운청휘를 보고 말했다.
“노조가 충고 하나 하지. 소원이 돌아오기 전에 연라성을 떠나게나. 모처럼의 기재가 성장할 기회도 없이 소원에게 죽는 건 아까운 일일세.”
“그자가 나를 죽일 수 있단 말이냐?”
운청휘는 조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허풍밖에 떨 줄 모르니 노조의 말도 믿기 어려운가? 소원은 이미 선천경 1단계일세. 반절의 선천과 어찌 비교가 되겠나. 어쨌든 노조가 할 말은 다 했으니, 이만 가겠네!”
봉업노조는 운청휘에 대한 평가에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추가하며 혀를 찼다.
후우……!
실내에 옅은 바람이 일더니, 어느새 그의 신형이 흩어지며 부서진 돌담 밖으로 날아갔다.
“언제 가도 좋다고 하였지?”
운청휘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영력화장이 봉업노조의 전신을 옥죄었다. 그는 미처 출수하기도 전에 거대한 손에 붙들리고 말았다.
운청휘는 일부러 봉업노조와 길게 말을 섞었다. 단순한 흥미뿐만이 아니라, 그를 굴복시킬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는 할 일이 있으니, 연라성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소도도를 돕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나, 운청휘에게 주어진 시간도 한정적이다.
다만 지금의 소도도는 대가문을 지탱할 무위에 못 미치니, 봉업노조를 굴복시켜 소도도를 돕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지금 봉업노조를 놔줄 수 있겠는가.
“네, 네놈이……!”
단숨에 끌려온 봉업노조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반절의 선천이 아니라고.”
운청휘가 봉업노조를 보며 말했다.
“서…… 설마 선천……!”
“그것도 틀렸다. 언제쯤 말을 알아듣겠느냐?”
운청휘가 말을 끊었다.
“분명히 양경 5단계라 했을텐데?”
더는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기에, 운청휘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다만 네놈을 선천생령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울 순 있다. 단, 내 형제 소도도를 위해 10년간 충성한다는 조건이다. 네놈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다. 승낙이 아니면 죽음뿐임을 기억하거라.”
“다, 당연하지 않은가! 선천생령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게 꿈이였거늘!”
봉업노조가 망설였지만, 한순간이었다. 그가 곧바로 운청휘에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간단한 문제이거늘. 네놈이 선천생령의 정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더냐.”
운청휘는 마라에게 했던 말을 봉업노조에게 그대로 해줬다.
“수련을 큰 고해로 생각하거라. 육체는 고해의 끝에, 정신은 그 반대편에 있다. 선천에 들기 위해서는 육체가 고해를 건너 정신과 결합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때 둘을 이어주는 다리가 필요하니…….”
설명을 들은 봉업노조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끝에, 결국 운청휘가 먼저 침묵을 깨트렸다.
“선천생령을 향한 기회는 주었다. 돌파는 네놈이 하기에 달렸으니, 이제 소도도에게 충성을 맹세하라.”
성공학관의 원장 마라는 운청휘의 조언으로 사흘 만에 경계를 돌파했다. 봉업노조의 자질은 그보다 못하지만, 지금까지 수련해왔으니 어리석은 짓만 하지 않는다면 최대 열흘 이내에 돌파할 터였다.
봉업노조가 소도도에게 충성을 맹세하자, 운청휘는 소도도에게 부탁해 그가 수련에 들 수 있는 밀실을 마련해 주었다.
그 후, 소도도가 장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원의 수하들은 다 죽었으니, 가문의 운영을 잠시 맡게나!”
그들은 이미 소도도의 조부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었기에, 가문을 맡길 수 있었다.
“가문의 운영은 문제가 없지만, 사흘 뒤면 소원이 돌아온다네. 그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대장로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쓸데없는 걱정이군! 내 형제는 누구보다 강하고 믿음직스러우니!”
소도도가 망설임 없이 단언했다.
이미 운역으로 오는 길에서 운역 운가의 추격을 받았다.
모두 선천생령의 무인들이었으나 결국 운청휘의 손에 죽지 않았던가. 하물며 소원 한 명이 대수일까!
“무엇보다 사흘 후에는, 운 형제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네. 이 소도도, 염치를 아는 사람일세.”
별안간 소도도가 목소리를 낮추며 진중하게 말했다.
“도움이 필요 없다니, 무슨 뜻인가?”
장로들의 얼굴에 의혹이 떠올랐다.
“어허, 사흘만 기다리게나. 사흘 후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소도도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운청휘를 데리고 떠났다.
운청휘는 소도도에게 방을 하나 빌린 후, 흉수산맥에서 얻었던 백옥삼을 정제하기 시작했다.
왼쪽 어깨의 상처를 치료하는 게 시급했다. 영단의 힘으로 입은 부상이니, 보통의 방법으로는 한 달 이상 요양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관해와 약속한 날짜는 열흘도 남지 않았으니, 보통의 방법을 쓸 틈이 없었다. 그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반 시진 후, 청연지심화를 이용해 백옥단을 완성한 운청휘는 단약을 복용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가 눈을 감고 천천히 단약을 연화하자, 완전히 관통되어 구멍이 뚫린 어깨가 천천히 아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