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반 시진 후.
왼쪽 어깨에 완전히 살이 차올랐고, 피부는 어떤 부상도 없었다는 듯 말끔했다.
‘천검종의 세력은 수십여 성에 닿아 있다. 지금의 전투력으로는 단신으로 천검종에 맞설 수 없겠군. 천검종주 궁우신은 현경의 무인이니 그를 꺾고 채아와 부모님을 찾아 무사히 떠나려면…… 역시 선천생령까지 회복이 필요하겠구나. 그리해야 능력을 더 온전히 발휘할 터.’
운청휘가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방법은 단약의 복용이다. 보통의 단약이라면 단숨에 연화할 수 있으니, 빠르게 무위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될 터였다.
물론, 단약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존재한다.
마종의 흡수.
다만 운역에 온 후로 마종을 지닌 이는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으니, 이 방법은 당장 쓸 방도가 없다.
‘역시 도도의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고 진관해를 찾는 수밖에 없겠군.’
결론을 내린 운청휘가 방을 빠져나왔다. 바깥의 하늘은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소도도를 찾아가 약초의 목록이 적힌 명단을 건넸다.
“도도, 이 약초를 최대한 빨리 마련하여 가져오게.”
당장은 마종을 찾을 수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운청휘는 약을 만들 생각이었다.
“알겠네!”
소도도가 집사를 불러 그에게 일을 맡겼다.
“한데 운 형제, 내가 소식을 하나 들었는데 말일세. 내일 연라성의 경매장에서 대형 경매가 열리는데, 연라성의 4대 가문뿐만 아니라 인근 성의 가문들도 참가한다고 하이.”
소도도가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얼른 떠들기 시작했다.
“……상고 전쟁 시대의 아공간 반지도 나오던가?”
묵묵히 듣고 있던 운청휘가 돌연 흥미를 보였다.
“맞네! 건곤 경매에서 이미 검측을 끝냈다는군. 아공간 반지의 내부가 수십만 평에 달한다지 않나! 다만 주인의 낙인이 남아 있어서 당분간 반지를 열지 못한다네. 어때, 흥미롭지 않은가?”
소도도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수십만 평이라고?”
조금 전까진 옅은 흥미였지만, 지금은 반드시 반지를 얻어야 했다. 내부 공간이 그만한 크기에 달한다면, 선계에서도 진귀한 취급을 받는다.
더욱이 그 방대한 공간에, 이전 주인이 남긴 물건이 있지 않겠는가!
연라성 최대의 규모일 뿐만 아니라, 운역 최대의 경매장인 건곤 경매장.
배후에 천검종이 있다고 알려진 건곤 경매장은 경매가 열리는 날마다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운청휘는 소도도와 노소가 사람들을 따라 건곤 경매장으로 향했다.
아무리 쇠약해졌어도 4대 가문이기에, 노소가의 일원들은 2층의 귀빈석으로 안내되었다.
2층 귀빈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신식으로 훑어보던 운청휘가 익숙한 노인을 감지했다.
눈을 감고 여유롭게 경매의 시작을 기다리는 노인은, 소가의 집사 소약이었다.
운청휘가 희미하게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그와 소도도를 당가에 넘긴 장본인이 아니던가.
소빙빙이 소도도의 처제만 아니었다면, 배은망덕한 자를 싫어하는 운청휘는 당장에 그를 죽였을 터였다.
곧 1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매가 시작되었는지, 무대 위로 청의노인이 올라와 공손히 예를 갖췄다.
“참으로 많은 분이 와주셨으니, 노부가 건곤 경매장을 대표하여 감사를 올립니다. 다들 오늘 경매에 나올 아공간 반지를 기대하지 않으십니까. 먼저 알려 드리자면, 아공간 반지 외에도 곧 나올 경매품 또한 아주 진귀한 물건입니다!”
영력이 실린 청의노인의 목소리가 멀리 퍼져나갔다.
청의노인은 많은 이들의 시선 속에서 첫 번째 경매품을 공개했다.
아기 팔뚝만 한 굵기의 마른 나뭇가지가 고운 비단 위에 놓여 있었다.
“겨우 저딴 게 진귀하다고?”
마른 나뭇가지를 본 사람들은 실망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저건 썩은 나무잖아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진정하시오, 여러분. 이제부터 노부가 가치를 알려 드리겠소!”
청의노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뭇가지를 집어 들었다.
주름진 손 위로 불꽃이 훅 일어나더니 그대로 나뭇가지에 옮겨붙었다.
“선천생령!”
“저 노인은 선천생령이다!”
“그렇다면 저 불꽃은 화 속성 오행의 힘으로 일으킨 불꽃이로군!”
경매를 주관하는 이조차 선천생령이라니,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노인은 건곤 경매장의 책임자라네. 보통은 실력을 노출하지 않는데, 저 나무를 소개하려고 특별히 나선 모양이군.”
“청의노인이 경매를 주관한다는 건, 그만큼 비범한 물건들이 있다는 뜻이야!”
“오늘 경매는 큰 수확이 있겠어!”
2층 귀빈석에 앉은 이들이 수군거렸다.
2층의 귀빈석에 앉을 수 있는 이들은 오직 거대 세가의 일원들만 가능했다.
가령 연라성의 노소가와 소가, 당가, 이가와 운해성의 거대 세가들의 대표, 거암성(巨岩城)의 세가 등…….
그때 운청휘의 시선은 청의노인이 들고 있는 마른 나뭇가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세계수로군! 천성대륙에서 세계수를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선계에 있을 무렵, 운청휘는 하나의 전설을 들었다.
혼돈의 시기보다 더 오래되고 까마득히 먼 시기에, 세계수는 무수한 가지를 뻗어 올렸다.
가지들은 각각 온 우주를 구성했고, 우주 속의 별들은 모두 가지의 일부였다.
세계수는 우주를 구성하는 동시에 모든 생령의 수련에 필요한 힘을 제공해 주었다.
전설을 들었을 당시 운청휘는 과장된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적어도 과장이 된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청의노인이 손에 든 마른 나뭇가지도 아무런 기운이 없는 듯하지만, 운청휘만은 목황선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선천생령까지 회복한다면 세계수의 목황선기를 흡수할 수 있겠구나. 그때는……!’
드물게도 그의 눈에 걷잡을 수 없는 설렘이 떠올랐다.
천성대륙에는 그저 천지의 영기만이 존재해 무위의 회복 속도가 더뎠다. 수련에 가장 필요한 힘은 선계의 기운이 아니던가.
세계수가 지닌 목황선기는 선기의 일종이고, 정확히는 목 속성의 선기다.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선기를 흡수할 수 있었다!
청의노인은 오행의 힘으로 일으킨 불꽃으로 나뭇가지를 한동안 태웠지만, 나뭇가지는 타기는커녕 형태를 온전히 유지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오행의 힘으로 불러낸 불꽃도 이 나무를 태우지 못합니다. 비범하고 진귀하지 않습니까? 다만 용도를 알아내지 못했으니, 1천만 냥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가격을 올릴 때는 매번 1백만 냥 이상을 불러야 합니다.”
청의노인이 곧바로 경매가를 선언했다.
세계수의 가치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목황선기는 선계에 속하는 힘이기에, 자리에 있던 이들 중 운청휘를 제외하고 누구도 목황선기를 감지하지 못한 듯했다.
“천백만!”
2층 귀빈석에서 가장 먼저 가격을 제시했다.
“천이백만!”
마찬가지로 2층에서 두 번째 가격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천오백만!”
또다시 2층 귀빈석에서 가격을 불렀는데, 이번에는 운청휘였다.
“운 형제, 자네……?”
소도도가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저 나무는 내게 필요한 물건이니 손에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
운청휘가 태연하게 말했다.
“천육백만!”
곧이어 누군가 가격을 불렀다.
“삼천만!”
곧바로 소도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운청휘가 세계수가 필요하다고 했으니, 반드시 운청휘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다.
그간 운청휘에게 신세 진 것에 비하면 금액은 중요치 않았다.
“응? 이건 소도도의 목소리인데?”
마찬가지로 2층 귀빈석에서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이 돌연 눈을 번쩍 뜨며 두리번거렸다. 소가의 집사 소약이었다.
“설마 저 나무의 용도를 알아내기라도 했나? 어쨌든, 절대 소도도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소약이 낮게 중얼거리더니 곧 장내를 뒤흔들 가격을 내뱉었다.
“오천만!”
“뭐, 뭣? 오천만……!”
“소가의 소약이 부른 것 같은데, 미쳤나? 용도도 모르는 나무를 사려고 저리 혈안이 되다니.”
“어리석긴! 노소가의 소도도를 견제하려는 거잖아!”
“어? 방금 삼천만을 부른 게 노소가야?”
놀라는 이들과 의도를 파악하려는 이들, 뒤늦게 깨달은 이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뒤섞여 경매장은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소가에 있어서 오천만 냥은 푼돈이나 다름없어. 오천만으로 노소가를 망신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놓을걸? 그러니 소약이 부를 만하지!”
이에 질세라, 소도도가 다시 금액을 높였다.
“팔천만!”
소약이 빠르게 받아쳤다.
“일억!”
소도도는 하마터면 욕을 퍼부을 뻔했다. 소약은 명백히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금액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운청휘는 싼값에 저 나뭇가지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흥분하지 말아. 저자가 그리 탐낸다면, 가지게 두면 그만일 뿐.”
운청휘가 소도도의 경쟁을 막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가지게 두자고? 운 형제, 자네……?”
소도도는 의아해하더니 잠시 뭔가를 생각하곤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런 뜻이었나! 알겠네, 일단은 저자에게 넘기지! 암, 지금은 말일세.”
소도도는 더 이상 나서지 않았고, 다른 이들은 소약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소약이 1억 냥을 내고 마른 나뭇가지를 낙찰받았다.
“돈이 많은게 좋긴 좋군. 남을 망신 줄 수만 있다면 저만한 돈도 턱턱 내놓으니 말이야!”
“맞아.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돈만 많으면 좋은 거야!”
많은 이들이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노부가 정말 소도도를 망신 주기 위해서 이러는 줄 아는가.”
소약이 낮게 중얼거리며 냉소를 흘렸다.
“소도도가 오천만 냥이나 주고 사려고 했다면, 대단한 물건이 틀림없을 터…….”
첫 번째 경매가 종료된 후, 이어서 나온 물건은 한 장의 지도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어, 많은 이들이 기연을 찾을 수 있는 지도가 아닐까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결국 100만 냥으로 시작되었던 지도는 800만 냥에 낙찰되었다.
소도도도 경매에 참가하려 했으나, 운청휘가 제지했다.
그는 신식으로 지도가 완성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물건임을 알아보았다. 용도는 알 수 없으나, 곳곳에 남은 얼룩은 세월의 흐름이 아니라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든 흔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