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7화
아공간 반지는 선천영액 510방울을 제시한 소약이 낙찰 받았다.
선천영액을 지불하고 반지를 획득하자마자, 소약과 소가의 일원들은 서둘러 건곤 경매장을 떠났다. 운청휘가 그들을 은밀하게 뒤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로.
소약 일행은 연라성 상공을 가르지르며 빠르게 소가로 향했다.
“약 집사, 비록 소도도가 잔꾀를 부리긴 했지만 가주님이 맡긴 임무를 완벽하게 달성하셨습니다!”
문득 한 명이 아첨을 떨며 웃어 보였다.
“돌아가면 가주님께서 분명 후한 상을 내리실 겁니다!”
소약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확실히 소도도는 그와 경쟁하며 예상치 못한 돈을 쓰게 만들었다.
그것뿐이라면 소도도가 그저 고약한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약은 찜찜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소약이 가격을 부른 순서는 소도도의 다음이었다.
즉, 소도도가 선천영액 500방울을 제시하기 전까지, 소약은 그만한 가격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소도도는 어찌 단번에 그가 가진 선천영액과 유사한 숫자를 불렀을까? 설마 자신이 가진 선천영액의 보유량을 알기라도 한 걸까?
“……멈추거라. 물건을 전부 놓고 사라지도록.”
그때, 낮은 목소리가 소약 일행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그들이 어리둥절한 사이에, 붉은 장포를 입고 빈 검집을 멘 장발의 젊은이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자는…….’
생각에 잠겨 있던 소약이 눈을 부릅떴다. 그는 단번에 젊은이가 며칠 전 흉수산맥에서 소도도와 함께 있던 운청휘임을 알아보았다.
“쯧쯧, 후배. 벌써부터 노상강도가 되려는 건가?”
소약이 빈정거리며 혀를 찼다.
“노상강도?”
소약의 일행은 곧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언라성 4대 가문 출신인 그들은 강도를 만나는 일이 처음이었다. 누가 그들에게 강도질을 하려 들까? 더욱이 그들의 본거지인 연라성에서!
“강도라 생각한다면 마땅히 물건을 다 내놓아야 하지 않겠나.”
운청휘가 싸늘한 표정으로 답했다.
“죽고 싶은 건가!”
소약이 노성을 터트리며 살기를 끌어올렸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영력으로 이루어진 장창이 운청휘를 향해 쇄도했다.
“네놈에게는 과분한 물건이다.”
싸늘한 음성을 내뱉으며, 운청휘는 소약의 만행을 떠올렸다. 본래는 경매장에서 낙찰 받은 물건만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순간 살심이 솟구쳤다.
그가 손을 가볍게 내젓자, 거대한 영력화장이 소약 일행을 날벌레 쫓듯이 후려쳤다.
콰르릉!
수백 장 상공에서 불빛이 번쩍이며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일었다. 마치 거대한 번개가 연라성을 뒤덮은 듯했다.
천둥소리처럼 귀를 먹먹하게 하는 폭발이 소약 일행을 휩쓸었다.
그들은 이미 한 줌의 재로 변해, 공중에 천천히 흩어지고 있었다.
소약이 지니고 있던 아공간 반지는 운청휘의 수중에 들어왔고, 그는 곧바로 영라반지를 꺼냈다.
영라반지를 쥔 운청휘는 곧바로 봉인을 걸어 두었다.
* * *
그 시각.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봉우리 사이로, 거대한 궁전이 언뜻 모습을 드러냈다.
궁전 안에는 오직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를 짐작할 수 없어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문득 눈을 뜨자, 마치 밤하늘을 가르는 유성처럼 그의 눈동자가 일순 빛을 내었다.
“……본좌가 새긴 낙인이 사라졌다. 음? 지운 게 아니라 기이한 힘으로 차단한건가?”
낮은 중얼거림과 함께 그자의 모습은 신성한 궁전의 수십만 장 밖에 나타났다.
궁전의 뒤편에서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산봉우리들이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안개가 흩어질 때마다 천검봉(天剑峰)이라는 위풍당당한 글자가 나타나곤 했다.
그자는 또다시 안개처럼 모습을 감추었고, 수십만 장 밖에서 나타났다. 이를 몇 번 반복하니, 안개가 자욱한 산봉우리는 이제 완전히 멀어져 있었다.
“일부러 그것을 연라성에 두었건만, 본좌의 낙인을 차단했다? 그렇다면 아공간 반지의 연화도 가능하겠구나!”
* * *
수백 장 상공에서 일어난 대폭발에 온 연라성 사람들이 한순간 넋을 놓았다.
건곤 경매장을 나온 이들 또한 대폭발을 목격하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4대 가문 중 하나인 소가를 습격하고 물건을 빼앗은 사람이 연라성에 있다니!”
그들의 얼굴에 짙은 공포감이 어렸다.
“소가에 손을 댔다면, 우리도 안전하지 않아!”
“어서 연라성을 떠나야 한다!”
판단을 마친 사람들은 각자 최대 속도로 연라성의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일단은 흩어져서 나중에 합류하세. 이렇게 하면 운이 나쁜 가문만 그자를 마주치겠지. 누구든 그자를 마주치면 순순히 물건을 내놓는 게 좋을 걸세.”
곧, 25개의 거대 세력이 모두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성을 빠져나갔다. 그들은 나름대로 최대한 방향을 달리해 나아가려 했다.
건곤 경매장을 나오던 소도도 일행도 공중에서 일어난 폭발을 목격했다.
소도도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떠올랐지만, 결코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저 뜻밖이라는 듯 올려다보던 소도도가 생각에 잠겼다.
‘운 형제가 좀 더 은밀하게 손을 쓸 줄 알았는데, 연라성의 상공에서 손을 댈 줄은 몰랐군. 음? 다른 세력들도 겁을 내다니? 하긴, 운 형제의 대담함이라면 모든 세력을 칠 수도 있지. 그들이 선천영액을 가지고 있으니!’
선천영액을 떠올린 순간 소도도는 참지 못하고 군침을 흘렸다.
‘이 몸이 아는 운 형제라면, 반드시 내게도 나눠주겠지!’
소약 일행을 죽인 후, 운청휘는 곧바로 성문 쪽으로 향했다.
다른 성에서 왔던 거대 세력들을 뒤쫓아, 그는 성문 입구에서 수백 장 상공으로 솟구쳐 날아갔다.
“세계수, 선식양정, 영라반지. 곧 얻게 될 선천영액까지…… 연라성에서 뜻하지 않은 큰 수확을 거두었어.”
운청휘가 작게 중얼거리는 순간, 그의 몸이 흐릿하게 번지며 가장 근처에 있는 세력의 일원들에게 쇄도했다.
그의 몸에서 강대한 영력이 세차게 밀려 나오더니 허공에서 거대한 새장의 형상을 이루었다.
순식간에 여섯 명이 영력의 새장에 갇히고 말았다.
“선천영액을 놓고 가거라. 그리하면 목숨은 살려 주마.”
영력의 새장은 운청휘의 모습을 시야에서 차단했고, 오직 목소리만 들을 수 있게 했다.
“응? 상대방이 모습을 숨기려는 건가?”
“그럼 우릴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거군!”
갇힌 이들은 오히려 기뻐하며 아공간 반지에 있던 선천영액을 전부 병에 담아 밖으로 던져 주었다.
선천영액이 아무리 귀한들, 죽음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아닌가.
운청휘는 선천영액을 받는 순간 연기처럼 흩어지며 자리를 떠났고, 갇혔던 이들은 운청휘의 옷자락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세력을 마주쳤을 때도 운청휘는 동일한 수법을 사용했고, 이 각 후에는 20개 세력이 지녔던 선천영액을 전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말은 밤에 풀을 먹여야 살이 찌고, 사람은 부수입이 있어야 부자가 된다더니. 그 말대로군.’
운청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선계에 있던 시절, 이런 약탈은 비일비재했다.
의탁할 곳도 없이 선계에 떨어진 이상 운청휘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써야 했다.
수련에 필요한 자원을 얻기 위해, 자연스레 강도질하는 버릇이 들었다.
그는 선계의 거대 세력을 죄다 찾아다니며 재물을 강탈했고, 선제로 군림해 풍족함을 누리게 되었을 때 강도질을 그만두었다.
“남은 세력은 5개인가. 선천영액은…… 3,000여 방울을 얻었으니 수확이 괜찮군.”
말을 하면서도 이미 그는 다음 세력을 뒤쫓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연라성.
선천영액을 강탈당한 20개의 세력가는 결국 연라성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곧장 소가의 저택으로 달려가 소가의 가주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소철 가주! 선천영액을 강도에게 빼앗기고 말았소! 그자는 정말…… 광마(狂魔) 그 자체였습니다!”
“가주! 우리는 소가와 연합하여 그자에게 대항하고 싶소!”
“소가는 약탈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집사도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광마는 소가와 원한이 있는 게 아니오?”
“그렇군, 소가와 원한이 있는 게 분명해! 우리는 물건만 가져갔을 뿐이지만, 소가의 사람은 죽이지 않았소!”
그들이 앞다투어 소가의 가주와 논의를 벌이는 동안, 뿔뿔이 흩어졌던 다른 세력도 연라성으로 돌아왔다. 곧장 소가로 향한 5개 세력 또한 소가와의 연합을 통해 광마 토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 * *
어느덧 선천영액 4,000여 방울을 수중에 넣은 운청휘는 연라성의 수백 장 상공을 소리 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노소가로 돌아가는 대신, 은밀하게 몸을 움직여 건곤 경매장에 도달했다.
“소약이 지불한 선천영액은 청의노인이 가지고 있겠지.”
운청휘가 신식으로 온 경매장을 살폈고, 곧 청의노인의 위치를 감지했다.
“소가 일행이 약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죽었다 하였느냐? 다른 성에서 온 세력들도 선천영액을 약탈당했다니!”
때마침 하인의 보고를 받은 청의노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좋지 않아. 다른 세력까지 손을 댔다면, 우리 경매장도 올 테지.”
청의노인의 동공이 약간 움츠러들었다.
“우리 건곤 경매장에 온 것인가?”
하인은 겁을 먹은 듯 눈을 굴리다 황급히 말을 늘어놓았다.
“어르신, 우리는 천검종의 비호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감히 건곤 경매장을 넘보겠습니까? 게다가 노조께서 이곳을 지키시는 한, 누가 온들 두렵지 않습니다! 노조는 선천경 4단계의 무인이시니, 광마가 온다고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청의노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광마라는 자는 소가를 비롯한 25개의 거대 세력을 강탈하지 않았더냐. 그만큼 대담한 자가 건곤 경매장 한 곳을 두려워할까? 더욱이 실력이 없다면 그리 날뛰지도 않았을 것이다!”
“보아하니 판단이 나쁘지 않군. 소약이 지불했던 선천영액 510방울만 내놓는다면 경매장은 건들지 않겠다.”
청의노인의 추측이 끝나기 무섭게,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사람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영력으로 이루어진 새장이 내리꽂히더니 대전에 있는 모든 이들을 가두었다.
“노조. 당신의 실력이라면 이 새장을 깰 수 있겠지. ……하지만 포기하거라.”
또다시 청의노인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수려는 순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