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핏빛 동굴처럼 보이는 입안에서 영력의 줄기들이 하나로 뭉쳐 들기 시작했다.
위이이-
마치 황무지를 할퀴는 모래바람처럼, 섬뜩한 소리가 천지를 떨어 울렸다.
영단경의 존재가 영력을 응집했으니, 오행의 힘보다 더 높은 경지의 힘이 금방이라도 흉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올 듯했다.
호천천은 납작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욕구만이 솟구쳤다.
“대인, 저것을 받아내실 수 있겠습니까?”
온몸을 짓누르는 위압감 속에서 호천천이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말을 내뱉은 후엔 힘이 죄다 빠져 그대로 쓰러질 듯했다.
“받아낼 수 없겠구나.”
운청휘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극경이라 한들, 그는 양경의 경지에 속했다.
아직 영단경까지는 두 개의 단계를 돌파해야 한다. 흉수가 토해낸 영력의 덩어리는 영단경의 힘을 담고 있으니, 운청휘가 막아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네?! 대, 대인! 그럼 어찌해야……!”
호천천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다.
“호들갑 떨지 말도록. 받지 못한다면 피하면 그만 아니더냐.”
운청휘는 태연스레 말하는 동시에 호천천을 붙든 채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흉수가 분출한 영력의 덩어리가 그들이 있던 자리에 꽂혔다!
콰앙!
마치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무지개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보기에만 아름다울 뿐, 이어지는 굉음과 갈라지는 대지가 공포스러운 광경을 연출해냈다.
영력 덩어리가 그대로 직격한 대지는 백만 장에 이르는 거대한 구멍이 파였고, 짙은 연기가 사방을 메웠다.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다 천천히 흩어져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폭발을 목격한 호천천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선천경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온갖 상황을 다 마주했지만, 이와 같은 폭발은 처음 목격한 터였다.
“이것이 영단경의 경지인가.”
호천천이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저러한 공격이라면 그와 같은 선천경지의 무인 수천을 죽이고도 남으리라.
“큰 차이가 없구나.”
나지막한 혼잣말이 들린 순간, 운청휘의 신형은 그대로 흩어졌다가 흉수의 눈앞에서 완성되었다.
그가 맨손으로 흉수의 발톱을 쥐고 들어올리자, 흉수는 마지 종잇장처럼 허공에 들리더니 그대로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콰아앙!
콰아앙!
운청휘는 한번 붙든 흉수의 발을 놓아주지 않았고, 흉수가 지면에 맹렬히 처박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살점을 파인 대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피 대신 먼지와 돌덩이들을 뿜어내었다.
호천천이 두려움에 가득한 눈으로 흉수의 모습을 좇았다. 껍데기가 이미 몇 조각으로 갈라져 있었다.
“이리 오너라!”
운청휘는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거대한 손은 뒤로 크게 휘돌며 수천 장 밖의 호천천을 끌어당겼다.
“이 틈에 마종을 심어 두거라.”
“뭐라고요!”
호천천은 운청휘를 대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잊을 만큼 경악했다.
“영단 흉수에게 마종을 심으라뇨!”
“그럼?”
운청휘는 어이가 없다는 듯 호천천을 바라봤다.
“그게 아니라면, 무엇 하러 너를 데려왔겠느냐?”
“하지만 대인, 저는 흉수에게 마종을 심어 본 적이 없습니다. 눈앞에 있는 흉수는 영단 흉수란 말입니다.”
호천천은거의 울상이 되어 억지로 웃어 보였다.
“네가 마종을 심기 쉽게끔 일부러 무력화시켰건만, 뭘 꾸물거리느냐?”
호천천이 여전히 망설이고 있기에, 운청휘가 재촉하듯 덧붙였다.
“좋다. 시간이 없으니, 네가 마종을 심으면 한 번도 겪지 못한 기회를 내려 주마.”
기회. 그 두 글자를 듣는 순간 호천천의 눈에서 망설임이 사라지며 뜨거운 열기가 솟구쳤다.
그의 눈에 운청휘는 영단경의 고수처럼 보였으니, 그가 말한 기회라면 평생에 한 번 얻기 힘든 기연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호천천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투명하고 작은 구슬이 그의 손끝에 맺혔다.
그가 마종을 내보내려는 순간, 운청휘가 마종을 빼앗더니 직접 영단경 흉수의 미간 사이로 밀어 넣었다.
“후…….”
호천천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마종이 흉수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 마치 깊고 거대한 바닷물에 둘러싸인 듯 출렁이는 힘을 느꼈다.
만약 흉수의 마종을 흡수할 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영단경의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잽싸게 단념했다. 상상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운청휘를 상대로 마종을 빼앗다니, 차라리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게 더 좋은 최후가 될 터였다.
그동안 운청휘는 호천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만약 호천천이 정말로 다른 마음을 먹는다면, 손수 때려죽일 생각이었다.
호천천이 얌전히 있는 걸 보고, 운청휘는 손을 가볍게 휘둘러 흉수의 몸에 들어간 마종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동시에 반대편 손을 휘두르자 긴 나뭇가지가 날아오며 흉수의 가슴을 관통했다.
섬뜩한 소리와 함께, 핏빛으로 물든 흉수내단(凶兽内丹)이 가지에 꽂혀 나왔다.
“네가 날 위해 한 일이 있으니, 소홀히 대하지 않으마.”
운청휘가 담담하게 내뱉으며 흉수의 내단을 영라반지에 집어넣었다.
“억!”
호천천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영단경 흉수의 내단이라니, 그 귀한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운청휘는 냉큼 아공간 반지에 넣어버리는 게 아닌가.
“응단의 기술이다. 네 선천적 자질로는 영단경에 도달할 수 없지만, 이걸 익힌다면 그나마 확률이 오 할은 늘 것이다.”
곧 운청휘가 영라반지에서 무공서 한 권을 꺼내 보였다.
조금 실망했던 호천천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운청휘의 손에 들린 저 무공서는 천급의 무공이 아닌가!
호천천이 입을 떼기도 전에 운청휘의 담담한 목소리가 앞섰다.
“진관해를 만나면, 네게 심은 마종을 제거해 달라고 해 주마.”
운청휘가 말한 진정한 기회는 바로 이 부분이었다.
마종의 제거! 호천천에게 일생일대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닌가.
언젠가 진관해에게 모든 무위를 흡수당할 처지였던 만큼, 그는 새로운 인생을 얻은 듯했다.
“대인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소인의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옵니다!”
감격을 이기지 못한 호천천이 무릎을 꿇으며 몸을 숙였다.
“마종을 연화해야 하니, 이곳을 떠나지. 연화하는 동안 호법을 서도록.”
반 시진 후, 두 사람은 흉수산맥의 중부 지역에 도달했다.
운청휘는 산봉우리에 직접 굴을 뚫더니 겹겹이 교묘한 진법을 설치했다. 호천천에게 호법을 세워 둔 후, 그는 대진의 중심에 앉아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영단경 1단계의 무위가 나를 얼마나 회복시킬 수 있는가?’
기대와 함께, 영단 흉수의 마종을 꺼낸 운청휘가 두 손을 마종에 올려놓았다.
마종에 담긴 힘이 어찌나 막대한지, 거대한 바다를 조금씩 삼키는 듯했다. 바다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낸다고 해도, 하나의 바다가 어찌 단숨에 마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운청휘가 필요로 하는 힘 자체도 막대했기에, 마종의 연화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이루어졌다.
마종의 삼 할을 흡수한 후에야 간신히 극경의 끝이 보였다.
진관해와 약속한 날까지 어느덧 6일이 남았다.
이틀간 동굴 밖에서 호법을 서던 호천천은 운청휘가 설치해 둔 진법을 살피며 자신도 모르게 엄숙해져 있었다.
호천천도 진관해 못지않게 진법에 매료된 자였다. 다만 진도가 나가지 않아 그만큼 진법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운청휘가 설치해 둔 진법은 하나같이 호천천을 감탄케 했다.
이 각도 되지 않는 시간에 100개에 달하는 진법을 설치한 것도 감탄이 나왔지만, 진법을 모두 엮어 어떤 것을 건드리든 모든 진법의 공격을 받게 만든 수단도 훌륭했다.
진관해라 해도 이런 방식으로 진법을 설치하진 못하리라!
‘대인께서 전주를 나쁜 놈이라 불렀지. 정말로 전주는 대인의 수하인 건가?’
호천천은 진관해가 진법에 얼마나 미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사도에 빠져드는 지경에 이르렀고,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았던가.
‘대인께서 나오신다면, 그분께 충성을 맹세해야겠어.’
호천천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인을 스승으로 모시는 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대인이 몇 가지 상만 내리셔도, 내겐 엄청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시간은 빠르게 흘러, 다음 날이 되었다.
마침내 운청휘는 양경 극경과 반절 선천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후우우…….
이윽고 운청휘의 전신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순간 천지의 조화가 흔들렸다.
드디어, 돌파했다!
* * *
사흘이 지나도, 마종의 힘은 아직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이 힘을 죄다 흡수하면 과연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될까.
“선고 시기 이후 선제는 선계의 절정에 군림하는 자였다. 그러나 선제보다 더 높은 경지에 발을 디딘 사람이 있다면, 내가 되지 않겠느냐.”
운청휘의 눈이 드물게도 열기로 번뜩였다.
선계의 최정점인 선제. 그 위에 어떤 경지가 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운청휘뿐만 아니라 다른 선제들도 몰랐고, 그저 무수한 낭설만 떠돌았다.
겹겹으로 설치한 진법을 해제한 후, 운청휘가 천천히 동굴을 빠져나왔다.
“대인! 마침내 나오셨군요! 축하드립니다!”
호천천이 운청휘를 보고 돌연 무릎을 꿇으며 환영했다.
“일어나거라. 앞으로 내게 무릎을 꿇지 말도록.”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 운청휘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어차피 호천천은 자신의 비위를 맞추려 필사적이니, 이 정도만 해도 알아들을 터였다.
“천운왕조로 가지.”
말을 마친 운청휘는 곧바로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번에는 호천천을 이끌어 주지 않았다.
“천운왕조요?”
호천천은 어리둥절하면서도 황급히 운청휘의 뒤를 따랐다.
아직 그는 천원왕조가 천운왕조로 바뀐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의아할 만도 했다.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운청휘는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진관해와 약속한 날짜까지 이틀. 지금의 무위라면 천운왕조에서 안양행성까지 길어도 하루가 걸린다.
그 전에 천운왕조로 돌아가 가족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이게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게 되는군. 반드시!’
운청휘의 마음에 어쩔 수 없는 초조함이 일었다.
만약 1~2년이 더 주어진다면 궁우신을 제압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 테지만, 그에게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하다못해 반년이라도 있더라면, 현경의 궁우신에게 맞설 수 있으련만!
지금으로서는 천검종에 간다고 해도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나 운청휘가 어찌 이 일을 외면할까? 그의 여동생이 영단경에 도달하면 궁우신이 마종을 뺄 터였다.
무엇보다 그의 여동생 채아는 구음한맥의 소유자니, 보통의 무인보다 눈부신 속도로 성장할 수밖에 없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은데, 그 시간이 아주 빠르게 줄어드는 것 같아 운청휘는 애가 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