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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35화 (135/430)

제135화

병사들은 의연하게 무기를 들고 몰려오는 박쥐족을 노려보았다.

운청휘는 신식을 펼쳐 날아오는 박쥐족 전체를 살폈다.

“역시 이성을 잃었군. 우두머리조차도 흉수나 다름없다.”

“대인, 저들이 대체 왜 저러는 겁니까?”

뒤에 있던 호천천이 물었다.

“조종당하고 있지 않느냐. 누군가 저들을 이용해 혈정을 만들고자 하는군.”

낮은 목소리로 답하는 운청휘의 눈이 한껏 가늘어져 있었다.

그가 두 손을 들어 휘두르니, 거대한 두 개의 영력화장이 흡혈 박쥐족 대군을 내리쳤다.

콰아앙!

콰아앙!

굉음과 함께, 하늘을 빼곡히 덮은 검은 점들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우두머리마저도 일격에 중상을 입은 듯, 그대로 추락하고 있었다.

운청휘는 곧바로 영력을 일으켜 우두머리를 끌어당겼다.

흡혈 박쥐족의 외모는 사람과 흡사했으나 귀와 이빨이 날카로웠고, 등 뒤로 뻗어 나온 검은 날개가 각각 일 장의 길이에 달했다.

“어혼성숙비전(御魂星宿秘典)이로군.”

마침내 신식을 통해 깨달은 운청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대인, 어혼성숙비전이 무엇인지요?”

호천천은 처음 듣는 이름에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도심종마대법 못지않게 악명이 높은 마공이다.”

운청휘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 마공으로 통제되면, 점점 이지를 상실하고 걸어 다니는 시체나 다름없이 변하게 되지.”

“그렇다면 어혼성숙비전을 사용하는 사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도움으로 혈정을 만들게 재촉하는 것입니까? 혈정은 또 무엇입니까?”

호천천이 다시 물었다.

“인공 선석!”

* * *

천지가 잉태한 광석으로 알려진 선석은 선계에서는 화폐이자 수련 도구로 쓰였다. 가장 낮은 선인부터 선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수련에는 늘 선석이 함께했다.

그렇다면 인공 선석이라 불리는 혈정은 무엇인가?

선석과 마찬가지로 흡수가 가능한 기운이 담겨 있지만, 선석과 달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덩어리다.

무엇보다 만드는 과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참혹하여, 선계에서는 혈정의 유통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이 혈정을 만들기 위해, 흡혈 박쥐족은 어혼성숙비전에 조종당하고 있었다. 어혼성숙비전에 당한 자는 영혼이 점점 깎여나가며, 결국에는 움직이는 몸만이 남게 된다.

본래 흡혈로 살아가는 흡혈 박쥐족이지만, 인간의 피에 거부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지내왔다.

사람들 또한 흡혈 박쥐족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며, 서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어혼성숙비전에 조종당하는 지금, 흡혈 박쥐족은 이성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들에게 있어 피가 흐르는 모든 생명체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보름간 막성은 흡혈 박쥐족의 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터였다.

사람이나 영수, 요괴의 피는 혈정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천운왕조에는 사람만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흡혈 박쥐족의 첫 번째 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인공 선석?”

선석이라는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본 호천천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운청휘는 호천천에게 일일이 답해줄 시간이 없었다. 그가 선천생령급의 흡혈 박쥐족의 몸에서 혈정을 빼냈다.

피로 가득한 혈정은 짙은 선홍색을 띠고 있었다. 선기를 능가할 힘이 아닌가.

운청휘는 곧바로 혈정을 영라반지에 넣은 후 호천천을 돌아보았다.

“너는 여기서 막성의 백성들을 지켜라. 잠시 서북쪽 황무지에 다녀오겠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운청휘의 신형이 급속하게 서북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서북쪽 황무지는 오랜 세월 동안 불어온 모래바람으로 인해 초목이 누렇게 시들어 있었다. 어딜 둘러보아도 모래와 풍화되어가는 돌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운청휘의 신식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흡혈 박쥐족을 감지해냈다. 구덩이를 파고 숨어 있는 그들 모두에게서 포악한 기가 흘러나왔다.

어혼성숙비전에 중독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운청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영력화장을 일으켜 지면을 연신 내리쳤다.

콰앙! 콰앙! 쿠르릉!

순식간에 반경 삼천 장 이내의 지면이 핏빛 웅덩이를 이루었다.

오직 선천생령급의 박쥐족만이 혈정을 생성해낼 수 있기 때문에, 운청휘는 다시금 서북쪽으로 향했다.

일 각여의 시간이 흐른 뒤, 운청휘의 신식에 선천생령급의 흡혈 박쥐족이 포착되었다.

운청휘가 곧바로 그들에게 일격을 가한 후, 두 개의 혈정을 떼어냈다.

어떤 흡혈 박쥐족도 그의 신식을 피할 수 없었다. 마치 모든 흡혈 박쥐족의 목숨을 거두러 온 듯, 운청휘는 멈추지 않고 나아갔다.

“음? 영단경에 접어들면 어혼성숙비전에 당하지 않은 모양이군. ……부상을 입었어.”

운청휘의 신식은 지하 삼백여 장 아래에 숨어 있는 흡혈 박쥐족 여인을 감지해냈다.

“조종당하지 않은 데다, 흡혈군주의 핏줄이로군!”

신식으로 여인을 살핀 운청휘는 곧바로 하강하여 사막을 수직으로 관통했다. 고작 숨 몇 번 쉴 시간이 지나자, 운청휘가 여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당신, 인간이에요? 그럴 리가, 나를 발견하다뇨.”

운청휘가 나타나자, 여인은 몹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소 날카롭고 긴 귀를 제외하면, 인간과 흡사해 보이는 외모였다.

길게 자라난 날개가 그녀를 보호하듯 온몸을 감싸자,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대체 이곳에 무슨 일이 생겼지? 이곳에 살던 박쥐족은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느냐?”

운청휘의 질문에 상대는 대답은커녕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잠시간의 침묵 끝에, 운청휘는 영라반지에서 금빛 단약을 꺼내 건네주었다.

“일 할의 확률의 가능성으로 깨어난 흡혈군주 핏줄로도 네 영혼의 부식을 완전히 막지 못하는 군. 어혼성숙비전의 영향이야. 이대로라면 열흘 내에 영혼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이걸 먹으면 영혼의 부식을 완화할 수 있으니, 받아라.”

얼떨결에 단약을 받아들긴 했으나, 여인은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흡혈군주의 핏줄인 건 어떻게 알았죠? 게다가 당신이 말하는 어혼성숙비전, 그게 우리를 조종하는 무공이란 말인가요?”

운청휘는 대답 대신, 눈짓으로 단약을 가리켰다.

여인은 잠시 망설인 끝에 단약을 입에 넣었다. 그녀가 단약을 흡수한 순간, 그녀의 머리에서 핏물이 솟구쳐 올랐다.

“부식의 힘이 완화되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여인이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시선이 운청휘에게 향했다.

“당신이 운청휘?”

“나를 알고 있나?”

운청휘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의 기억력은 정신력과 관련이 있다.

운청휘는 살면서 만난 모든 사람을 기억했으며, 그중에는 선계에서 3천 년을 보내며 만난 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을 아는 흡혈 박쥐족 여인은 없었다.

또한 여인도 운청휘의 이름만을 아는 듯, 어딘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너희에게 어혼성숙비전을 쓴 자가, 나를 알고 있나?”

운청휘가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아니요!”

여인이 고개를 내젓고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 사람은 신비한 힘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어요. 젊은지, 늙었는지,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도 구분할 수 없었어요. 더욱이 한마디도 하지 않아서 목소리도 몰라요.”

여인이 운청휘를 빤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당신을 아는 건 저를 구해준 사람 때문이죠.”

“그 사람이 누구지?”

질문을 던지며 운청휘는 문득 진관해를 떠올렸다.

그의 무위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했으나…… 운청휘는 곧 생각을 바꾸었다.

진관해가 사람을 구했다는 사실마저 믿기 힘들뿐더러, 누군가를 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언급할 이유가 없었다.

운청휘의 머릿속이 의혹으로 물들 무렵, 여인의 말이 이어졌다.

“나를 살려 준 사람은 커다란 활을 지녔고, 눈보다도 더 흰옷을 입은 절세의 미녀였어요.”

“이염죽.”

운청휘는 곧바로 한 여인을 떠올렸다. 동시에 의외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흡혈 박쥐족 여인에게 어혼성숙비전을 걸 수 있다면, 최소한 현경의 무인일 터. 반대로 현경의 무인에게서 이 여인을 구해냈다면, 최소한 현경에 맞설 능력이 있는 자여야 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이염죽은 영단경 흉수에게 홀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이 연합한 끝에 가까스로 벗어났건만, 그 이염죽이 이 여인을 구해냈단 말인가?

‘정말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이군.’

이염죽의 성장 속도는 운청휘에 못지않았다. 새삼 감탄이 나오는 운청휘였다.

무위를 회복하며 선제의 경험이나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수련의 속도가 빠른 운청휘와 달리, 이염죽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대체 그녀는 누구이기에, 어떤 방식으로 그와 비슷한 수련 속도를 내고 있단 말인가?

“그분 이름이 이염죽이었군요.”

이염죽의 이름을 곱씹는 여인의 목소리에서 짙은 경외감과 고마움이 묻어났다.

“그분이 저를 구해주며 이런 말을 했어요. 제 영혼의 부식을 완화하거나 철저하게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천운왕조의 운청휘뿐이라고 했죠!”

그 말에 운청휘의 마음에 강한 확신이 맺혔다.

그가 이염죽의 몸에 있는 한독을 억제했으니, 박쥐족 여인의 영혼을 부식하는 힘쯤은 자연스레 다룰 수 있었다. 이염죽도 그 점을 알고 말을 남겼으리라.

“그녀가 널 구하고 어디로 갔지?”

운청휘가 읊조리듯 나직하게 물었다.

“우리 흡혈 박쥐족의 성지로 들어갔어요!”

여인이 망설이다가 이어 털어놓았다.

“우리는 서북쪽 황무지에 사는 흡혈 박쥐족이에요. 우리의 성지에, 멸망의 화근이 있어요.”

“네 영혼의 부식을 막으면, 나를 그 성지로 안내하도록.”

말을 마친 운청휘는 신식으로 여인의 영혼을 감쌌다. 선제의 신식이 영혼의 흠집 하나를 고치지 못할까.

“아주 강한 영혼의 힘이군요.”

여인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이미 영단경의 경지에 이른 여인의 영혼은 보통의 영혼과 달랐으나, 운청휘를 마주하자 본능적인 전율이 일었다.

이 각이 흐르자, 여인의 영혼을 부식하던 힘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소녀 김태연, 목숨을 살려 주신 운 공자께 감사드립니다!”

여인이 돌연 운청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라.”

운청휘는 영력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성지로 안내하도록.”

운청휘는 곧바로 김태연을 대리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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