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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38화 (138/430)

제138화

“아직도…… 인가요.”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두 눈이 시름에 잠겼다.

돌연, 그녀의 눈에서 구슬처럼 맑게 반짝이는 액체가 흘러내렸다.

“3년이나 천검종이 찾아내지 못했다면, 설마 오라버니는 이미…….”

그 순간, 운청휘는 가슴을 그대로 쥐어뜯기고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듯했다. 실로 고통스러웠다. 절대로 울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건만, 3천 년 만에 만난 여동생은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오라비가 돌아왔다고, 가족을 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고 외치고 싶었다.

괴로워하는 여동생을 안고 달래주며 근심을 없애 주고 싶었다.

그러나 운청휘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달려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데만도 몹시 힘이 들었다.

신식으로 살핀 채아에게서 과연 마종을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일급 마종이 아니라, 소도원마종(小道源魔种)이었다.

만약 일급 마종이었다면 운청휘는 몸을 깎아서라도 마종을 제거했겠지만, 소도원마종이라면 나설 수 없었다.

소도원마종은 말 그대로 육신과 영혼에 침투해 있는 종기와도 같다.

일종의 원시마종으로, 진정한 도심종마대법을 익힌 자만이 이 원시마종을 타인에게 심을 수 있다.

즉, 궁우신이 거두지 않는다면 누구도 거둘 수 없었다. 심지어 전성기 시절의 운청휘가 온다고 해도 이를 제거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채아의 안전을 원하는 운청휘로서는 나설 방법이 없다는 게 원통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그는 채아가 자신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스스로의 기운을 한껏 억누르고 있었다.

채아는 어렴풋하게나마 파동을 느낀 듯했지만,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몰랐기에 신경 쓰지 않은 듯했다.

운청휘의 신식이 점점 채아를 멀리 떠나보냈다.

마차마저 신식의 감지 범위를 벗어나자, 운청휘는 그제야 천천히 신식을 거두었다.

‘궁우신……!’

운청휘가 저절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나고, 손가락을 타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3천 년을 살면서, 이토록 살심이 들끓은 적이 있었던가. 궁우신, 반드시 죽여주마!’

오직 가족을 만나기 위해, 선제의 지위와 무위를 버리고 갖은 고생을 하며 천성대륙으로 돌아왔다.

한데 3천 년 만에 만난 가족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채아의 몸에는 소도원마종이 있어, 운청휘의 깊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만약 선제의 무위가 그대로 있었다면, 이미 이 지역 전체를 피의 바다로 바꾸고 시체로 산을 쌓았으리라.

“휴우. 겨우 성녀의 마차가 떠났군.”

마차가 멀어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몇몇 이들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채아의 마차가 다가온 것만으로도 숨을 쉬기가 버거워 허덕이고 있던 차였다.

겨우 자유로워진 이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다른 이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성녀가 그렇게 미인이라며? 수명이 줄어드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를 한번 보려는 사람들이 늘어섰다지.”

“사부님, 괜찮으십니까?”

진관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자리에서 진관해만이 운청휘와 채아의 관계를 알고 있었으니, 그의 동요를 느낀 모양이었다.

“진관해, 이제 네놈이 방 장로를 모욕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지?”

흉수를 탄 중년인의 냉소가 진관해의 귓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후배. 어서 말하지 못할까? 무슨 목적으로 천검종에 왔느냐?”

중년인의 거만함은 운청휘에게도 미쳤다.

“지금 나를 불렀나?”

운청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답했다. 어느새 그의 전신을 살기가 가득 채웠다. 궁우신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곳이 없었는데, 때마침 중년인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다.

“네놈 말고 다른 후배가 있느냐? 당장 대답해라!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여 주지!”

“네 이놈! 이제야 알겠군. 내문제자 송초양(宋楚阳)이 아니냐!”

별안간 진관해가 호통을 치며 중년인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감히 장로에게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종문의 규칙을 잘 알지 않느냐.”

“하하하, 그게 어떻단 말이냐? 장로라고 다 같은 장로더냐? 방 장로께서 계시는 한 이 천검종에서 누가 나를 억누를 수 있단 말인가!”

송초양이 코웃음을 치며 두 눈에 살기를 일렁였다.

“네놈이 먼저 종규를 들먹였으니, 더러운 꼴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네놈을 죽여야겠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초양이 오행의 힘을 일으켜 채찍을 만들어 내었다. 매섭게 일렁이는 채찍이 운청휘를 향해 쇄도했다.

“사부님, 제자가 하겠습니다. 부디 제자가 저놈을 처치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진관해는 황급히 운청휘를 달랬다. 만약 운청휘가 송초양을 죽이기라도 하면 천검종의 화를 피할 길이 없었다.

진관해가 서둘러 아공간 반지에서 18개의 깃발을 꺼내 들었다. 이윽고 크게 손을 휘두르니 깃발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세 사람을 에워싸며 진을 이루었다.

“나생문.”

진관해의 외침과 함께 진이 완성되었다.

비록 영신은 선천경 1단계라고 하나, 운청휘가 알려 준 이 진이라면 선천경 5~6단계의 무인도 죽일 수 있었다.

“진법?!”

송초양의 얼굴이 대번에 굳었다.

진관해는 진법대사로 위명을 떨친 자다. 궁우신의 눈에 들 정도라면, 그가 펼친 진의 위력이 어떠하겠는가!

“감히! 나는 방 장로의 뜻을 전하기 위해 온 사자다! 나를 죽인다면 방 장로를 치는 일과 다름없거늘! 방 장로의 노여움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송초양은 연신 방 장로를 언급하며 진관해를 위협하려 했다.

“내 사부를 모욕한다면, 방북이라도 죽일 거다!”

나생문이 발동하자, 진 안에서 눈이 멀 듯한 빛이 터져나왔다. 무수한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바깥에서 보면 나생문 안에서 번개 무리가 춤을 추고 있었고, 송초양은 그 중앙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콰르릉! 콰르릉! 콰르릉!

셀 수 없이 쏟아지는 번개에 직격당한 송초양과 흉수의 몸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초양의 몸은 한 줌 가루가 되어 천천히 흩날렸다.

“누가 감히 천검종에서 무력을 사용한 게냐!”

송초양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무인이 빠르게 접근했다. 천검종의 법률 집행 부대였다.

“네놈이냐, 진관해!”

선두에 서 있던 수령이 진관해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사실 지금의 천검종에서 진관해를 모르는 이는 드물었다. 북역에서 곤수대진을 펼쳐 적염천교를 잡았을뿐더러, 궁우신이 직접 발탁한 장로가 아닌가.

“장 대장, 자네가 있으니 다행이군.”

진관해가 수령을 보며 느긋하게 말했다.

“내문 제자 송초양이 장로에게 하극상을 저질렀으니, 종규에 따랐을 뿐이다.”

“하극상? 종규대로라면 법률 집행 부대에 넘겨 무위를 폐하고 종문에서 축출하는 게 옳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는가.”

장 대장이라 불린 사내가 딱딱한 어조로 말하며 눈을 치켜떴다.

“특수 상황이라면?”

진관해의 여유로운 답이 이어졌다.

“특수 상황의 경우 사후보고의 권리를 갖지!”

장 대장이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꼬박꼬박 설명해 주었다.

“그래, 노부가 지금 사후보고를 하고 있지 않은가?”

진관해는 태연하게 말하고는 장 대장을 향해 덧붙였다.

“장 대장. 자네도 방북의 사람임을 노부가 잘 알지. 하지만 어른들의 싸움에 꼬마가 끼어드는 법이 아니라네!”

말을 마친 진관해는 곧장 운청휘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장 대장, 진관해가 송초양을 죽였는데, 그냥 보내줘야 합니까?”

뒤에 서 있던 부대원 한 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멍청한 것, 진관해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나?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경고한 거잖느냐!”

장 대장이 이를 갈면서도 침착하게 답했다.

외문 제자, 내문 제자의 눈에는 법률 집행 부대가 거스를 수 없는 존재일 테지만, 장로들에게는 종문의 도구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진관해는 방 장로의 사람을 죽였다.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지.”

장 대장은 진관해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사부님,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일단 천검종 제자의 신분을 준비해 드릴까요?”

길을 나선 후, 진관해는 다시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관해는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그럼 천검종 제자의 계급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아래가 외문 제자로, 양경의 무인입니다. 그 위로 내문 제자가 있으며, 선천경의 경지에 도달해야 할뿐더러 천검종의 검증을 받아야 하지요. 내문 제자가 되면 매달 선천영액 100방울과 선물을 받을 수 있으니, 다들 내문 제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물론 그 위의 신분도 있습니다. 전수 제자와 장로입니다. 명목상으로는 전수 제자와 장로의 위치는 동등하나, 혜택과 실권은 장로가 더 많이 받는 실정이지요. 단, 전수 제자는 다음 종주로서 키워지는 만큼 그 위치가 특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선계의 문파들도 천검종과 비슷한 규칙을 지녔기에, 운청휘는 별다른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로는 실권이 있고 혜택을 받지만 종주가 될 수는 없다. 전수 제자는 자신을 극한으로 단련시켜 종주가 될 잠재력을 얻지 않는가.

일 각이 지난 후, 진관해는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는 궁전으로 운청휘를 안내했다.

“사부님, 이곳이 검증당입니다.”

수십만 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궁전에는 약용문(跃龙门)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검증당은 비공식적인 명칭이었다.

왜 약용문인가?

말 그대로 이곳의 검증을 통해, 용처럼 날아오르라는 뜻을 담았다.

약용문의 검증을 받으면, 범인의 경지를 벗어나 천검종의 제자가 된다. 비록 이곳에서 하찮게 여기는 외문 제자라고 해도, 바깥에서는 일국의 황제 못지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사부님, 내문 제자의 검증을 받아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궁전에 들어서자 진관해가 운청휘에게 말했다.

“천검종 내에서 외문 제자는 별다른 혜택이 없어, 주로 외성에서 활동합니다. 반면 내문 제자는 제약이 적고 특정 구역을 제외하면 천검종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선천경의 무위면, 검증은 충분하느냐?”

운청휘가 진중하게 물었다.

채아를 만나기엔 이르지만, 어떻게든 접점은 만들어 두어야 한다. 적어도 내문 제자의 자격이 있어야 성녀를 접할 수 있으리라.

“아닙니다. 선천경은 검증 신청을 위한 자격이며, 통과하기 위해서는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진관해가 설명했다.

“그럼 어서 안내하거라.”

비록 반절의 선천이지만, 선천경의 무인으로 위장하는 건 운청휘에게 간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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