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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40화 (140/430)

제140화

어느덧 하늘 끄트머리에 창백한 빛이 어슴푸레하게 번지는 새벽이었다.

“쉬운 게 없군. 궁우신뿐만이 아니라 천검종 자체가 내 상상을 뛰어넘었군.”

방으로 돌아온 운청휘가 중얼거렸다.

“내문 제자, 아니, 전수 제자까지 되어야 한다. 정녕 천검종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구나.”

적잖은 설렘이 운청휘의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도심종마대법, 어혼성숙비전은 마침 그가 원하던 물건이 아닌가. 천검종에 녹아든다면 얻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운청휘는 임무의 내용이 적힌 옥간을 들고 전송진으로 향했다.

사해왕조로 통하는 전송진 앞에는 4명의 청년과 1명의 여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운청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운청휘?”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누군가 또 물었다.

“자네의 무위는? 선천경 3단계? 아니면 선천경 4단계?”

운청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천경 1단계.”

“선천경 1단계?”

그들이 일제히 미간을 찌푸렸다. 개중 한 명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쩐지 운청휘라는 이름을 찾을 수 없더라니. 자네, 내문 제자 검증 임무에 참가하는 게 맞긴 한가?”

모두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앞으로 나섰다.

허리에 장검을 찬 그는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번 임무의 수령인 강해(江海)라고 한다. 그런 무위로 내문 제자 검증 임무에 참가하는 건 둘째치고, 낙오되지 않도록 정신 차리라고! 또, 힘을 써야 할 때는 몸을 사리지 말아야 한다. 자, 출발하자. 시간이 없어! 어딜 가든 내 명령을 따르도록!”

강해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이 말을 마치자, 모두가 전송진에 올랐다.

슈우우-

금빛 광채에 휩싸인 일행이 천검종에서 사라진 직후, 사해왕조와 가장 가까운 전송진에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이런 이동에 익숙한 듯, 전송진에서 나타나자마자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사해왕조로 향했다.

“다들 옥간은 확인했겠지? 마지막으로 임무의 내용을 정리하겠다. 석달 전, 사해왕조의 비적이 나타나 백성들을 약탈했을 뿐만 아니라, 황궁까지 습격했다. 황제마저 포로로 잡혔지. 황제의 적자인 내문 제자 굴정준(屈靓骏)이 이 소식을 듣고 사해왕조로 갔지만, 그도 행방불명이 되었다.”

내문 제자의 실종.

천검종을 지탱하는 일원이 사라졌으니 천검종에서는 반드시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더욱이 굴정준은 사해왕조의 후계자로서 천검종에 오지 않았는가. 어찌 보면 그가 실종된 것으로 천검종은 체면을 깎인 셈이다.

“강해 사형, 이해되지 않는 게 있어요.”

대열 속에서 한 청년이 갑자기 말했다.

“사해왕조는 운역 내의 작은 왕조에 불과합니다. 양경 무인도 사해왕조에서는 대접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굴정준은 선천경의 무인이니, 사해왕조 제일의 기재일 텐데요.”

“종문에서는 사해왕조를 습격한 비적들이 요도와 마도의 사람이라 보고 있네.”

강해가 문득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요도와 마도?”

운청휘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그가 아는 요도란 곧 요족이었다. 이에 해당하는 이들은 기령과 같은 영수였다.

마도는 비적을 말하는지, 다른 마도인지 알 수 없었다.

선계에서는 마도를 두 가지 의미로 분류했다. 문자 그대로의 마도와, 진정한 마도.

문자 그대로의 마도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살인마에 불과하다.

진정한 마도는 수련에서 사리사욕을 취할지언정, 하늘을 역행하는 야망을 지닌 무인이었다.

그들은 수련에서 정도를 따르지 않고, 모든 이치를 거스르며 무위를 높여간다. 그만큼 위험할 수밖에 없지만, 그 대가는 보통의 수련에서보다 몇 배나 거대했다.

이것이 운청휘가 아는 진정한 마도였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반응을 살피니, 그들은 다르게 아는 듯했다.

“강해 사형, 그럼 굴정준은 그들에게 끌려간 걸까요?”

누군가 또 물었다.

“사실에 가까울 걸세. 그들을 제외하면 사해왕조에서 누가 굴정준의 상대가 되겠는가? 납치 외에, 죽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네.”

강해가 추측한 것들을 말하며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의 임무는 굴정준의 위치를 탐지하는 거다. 그가 살아 있든, 시체가 되었든 추후의 처리는 종문이 맡아야지.”

강해가 손을 내밀자, 그의 손에서 작은 옥구슬이 떠올랐다.

이를 알아본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환 옥석이다. 이것을 부수면 종문의 고수들이 제일 먼저 도착할 거야.”

“밑에 작은 마을이 있으니, 먼저 내려가서 보죠.”

이 각쯤 갔을까, 저 멀리 모래 회오리가 거세게 이는 마을이 보였다. 강해가 제일 먼저 허공에서 내려앉으며 중얼거렸다.

“피비린내가 심한데, 여기 방금 비적에게 털렸어.”

작은 마을에 내려온 후, 일행은 공기 중에 남은 피비린내를 맡았다.

‘피비린내뿐만 아니다. 살기도 남아 있지만 누군가 고의로 숨겨 두었군.’

운청휘가 마을을 가볍게 훑으며 생각에 잠겼다.

비적이 다녀갔다면 피비린내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마도의 사람이 지닌 살기가 남아 있는 건 꽤나 수상쩍었다.

“이 괘씸한 놈들아! 며칠 전에 약탈하고 내 손자를 죽인 것도 모자라, 또 왔느냐!”

황토로 벽을 쌓아 올려 지은 집에서 별안간 10여 명의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선두에 선 이는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외관과 달리 노인은 손에 쥔 식칼을 사납게 휘둘렀다.

강해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손을 휙 내저었다. 오행의 힘으로 노인이 가볍게 밀려났다.

“노인장, 오해했군요. 우리는 비적이 아니라 천검종의 사람들입니다.”

강해 일행 중 유일한 여걸 엽추월(叶秋月)이 말했다.

“그 말대로 우리는 천검종에서 나왔소. 비적을 소탕하기 위해 사해왕조까지 온 것이오.”

“이 마을을 습격한 비적이 어느 방향으로 떠났는지, 알려 주지 않겠습니까?”

강해와 운청휘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정말로 비적이 아니라고?”

식칼을 든 노인이 미심쩍은 듯 그들을 쳐다봤다.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정말 비적이라면 이렇게 설명하고 있겠습니까?”

엽추월이 또 말했다.

“하긴, 자네들이 비적이었다면 노부는 이미 죽은 목숨이겠지.”

엽추월의 말을 믿는 듯, 식칼을 든 노인이 중얼거렸다.

“촌장님, 저들이 정말 천검종에서 나온 이들이라면 마땅히 잔치로 환영해야 합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잔치를 제안했다.

강해 일행이 거절하려고 했으나, 누군가 선수를 쳤다.

“맞아요, 촌장님. 음식을 들면서 이 협객들께 비적의 정보를 전해 줍시다.”

“협객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식칼을 든 촌장이 강해 등을 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진심 어린 환대를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대신, 잔치에서 비적에 관한 정보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알려 주십시오.”

한동안 망설이던 강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운청휘는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강해를 바라보았다. 설마 세상에 나온 게 처음이란 말인가?

비적에게 약탈당한 직후에 잔치를 열고, 그 잔치에 외부인을 초대하는 게 정상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건만, 운청휘를 제외하면 강해 등은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제야 운청휘는 왜 이번 임무를 맡겼는지 깨달았다.

굴정준의 행방을 조사하는 일 외에도, 강해 등에게 속세의 경험을 쌓게 하려는 듯했다.

잔치 준비는 빠르게 끝났고, 곧 상이 차려졌다.

“천검종은 수십 개 지역을 지배하는 대세력인데, 이런 어리석은 놈들을 배출하는구만?”

“쯧쯧, 굴정준보다 더 어리석은 놈들이 몰려 왔구만.”

강해 일행이 술잔을 입에 털어 넣은 순간,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저열한 웃음을 흘렸다. 어느새 10여 명의 사람이 강해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다.

“술에 독이 있어.”

강해 일행의 안색이 순식간에 시퍼렇게 변했다. 독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온몸이 마비된 듯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네, 네놈들이 비적이었구나.”

“하하하, 이제야 알았다니, 너무 늦은 거 같은데?”

늙은 촌장을 연기한 오당가(五当家)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오당가, 한 녀석이 술을 마시지 않았어!”

강해 일행을 살피던 한 명이 불쑥 내뱉었다.

“그 녀석이?”

오당가의 시선이 운청휘에게 향했다.

“저 녀석, 줄곧 일행에게 무시당하지 않던가. 무위가 낮거나 처신을 잘못한 모양인데,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걸 보면 무위가 낮은 모양이군.”

“그럼 저 녀석은 손 쓸 필요가 없나?”

“그래, 내가 나서지.”

어깨를 으쓱인 오당가는 운청휘에게 다가가 멸시의 눈빛을 보냈다.

“이제부터 네놈들을 혈살종(血煞宗)의 신사(神使) 대인께 끌고 갈 거다. 목숨이 아깝거든 애송이, 네놈도 순순히 잡히는 게 좋을 게야.”

“뭐, 혈살종이라고?!”

퍼렇게 질려 있던 강해 일행은 혈살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혈살종이 무엇이더냐?”

선계의 일은 모두 알아도 천성대륙의 세력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운청휘였다. 그가 덤덤하게 묻자, 주위가 술렁였다.

“혈살종도 모르다니, 저놈은 기대할 것도 없군.”

강해 일행마저도 어느새 운청휘를 경멸하는 시선을 보냈다.

유일하게 운청휘만이 독주를 마시지 않았기에 한 줄기 희망을 품었건만, 혈살종도 모르는 애송이라니! 눈앞이 절로 깜깜해지는 듯했다.

“천검종은 10개의 거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명실상부한 대세력이지. 하지만 일부 세력은 우리 천검종에 반기를 들었고, 충돌하기도 한 데다 은연중에 우위를 점하기도 했어.”

엽추월이 가까스로 입을 열어 설명했다.

“그뿐이더냐? 100여 년 전, 네놈들의 종주가 혈살종 본거지를 쳤지만, 결국 혈살종에 나가떨어지지 않았는가!”

코웃음을 치며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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