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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42화 (142/430)

제142화

“담이 큰 놈이군. 하지만 잘 맞췄다. 본 신사를 제외하고 모두 연화시켰지. 네놈들도 순순히 혈지의 양분이 되거라!”

“굴정준도 연화하였더냐?”

나지막하게 물은 운청휘가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굴정준? 아아. 그래, 굴정준 말인가. 똑똑히 봐 두거라!”

신사는 별안간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얼굴을 두르고 있는 핏빛 천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신사의 돌발 행동에 운청휘마저 의아함을 느꼈다.

‘이유도 없이 얼굴을 보일 리가 없다. 설마…… 그런 것이더냐?’

뭔가를 눈치 챈 듯 운청휘가 강해 일행을 살폈다. 강해를 비롯한 그들의 표정은 의혹에서 경악으로 바뀌었다.

분명 신사를 알아보았다!

“맙소사, 저, 저자는 굴정준이야!”

누군가 다급하게 외쳤다.

“하하하, 그렇네! 본 신사가 굴정준일세. 정확히 말하면, 천검종에서 썼던 이름이 굴정준인 셈이지!”

굴정준은 껄껄 웃더니 차가운 눈으로 강해 일행을 훑어보았다.

“궁금한 건 다 알았으니, 이제 미련은 없겠구나. 종주님을 위해 봉헌하거라!”

굴정준이 오행의 힘으로 만들어 낸 거대한 손을 운청휘에게 휘둘러 갔다.

“네놈이 제일 거슬리는구나. 이만 죽어라!”

거대한 손이 운청휘의 몸을 휘감으려는 순간, 그의 신형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거대한 손은 그대로 지면을 내리치며 대지를 뒤흔들었다.

콰앙!

수십 평에 달하는 구덩이가 움푹 파이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저자가 굴정준이라면, 우리는 임무를 완수한 게 아니더냐.

돌연 강해의 귓가에 운청휘가 보낸 음이 속삭였다.

-지금 임무를 걱정할 때냐, 운청휘! 어떻게 살아남을지나 생각하라고!

강해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목숨이 달려 있는 상황에서 임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저자를 죽이지 못해서 내버려 두는 줄 아느냐?

운청휘가 미간을 찌푸린 순간, 강해는 온몸을 덮쳐오는 한기를 느꼈다. 마치 한겨울에 맨몸으로 얼음 동굴에 갇힌 듯했다.

임무를 수행하는 내내 운청휘는 강해가 뭐라 말하든 내버려 두었다.

말을 섞기도 귀찮았을 뿐더러, 개미가 발밑을 기어 다닌다고 크게 화내지 않는 법이다.

다만 언제까지 참아줄 생각은 없었다. 개미가 발을 깨물면, 성가시지 않겠는가?

-내, 내 아공간 반지에 소환 옥석이 있어. 그걸 깨면 종문에서 즉시 고수들을 파견할 거야!

운청휘의 기세에 눌린 강해는 두려움을 느꼈다. 포식자를 마주했을 때 느낄 수밖에 없는 본능이었다.

-다만 지금 내가 영력을 일으키지 못하니, 꺼낼 수가 없다.

-오른쪽 검지로군. 이 반지를 말하느냐?

그 순간, 강해의 몸을 묶고 있던 오금련이 산산이 조각나더니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운청휘가 가볍게 손짓하자, 강해의 손가락에서 반지가 빠져나왔다.

신식을 펼친 운청휘는 아공간 반지에서 간단히 소환 옥석을 찾아 꺼내 보였다.

-이, 이럴 수가! 반지에는 내가 낙인을 남겨 두었는데, 어떻게 꺼낸 거야!

강해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공간 자루와 달리, 아공간 반지는 사용자의 낙인을 새겨 둔다.

무위가 더 높지 않은 이상 타인의 아공간 반지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게 정석이었다.

운청휘는 강해에게 대꾸하지 않고 소환 옥석을 으스러트렸다.

“이런, 소환 옥석이라니.”

상황을 알아차린 굴정준 또한 품에서 소환 옥석을 꺼내 들었다. 그도 운청휘와 똑같은 옥석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손안에서 옥석이 산산이 부서졌다.

굴정준 또한 누군가를 부른 모양이었다. 그가 한층 더 살기를 뿜으며 눈을 번뜩였다.

“오금련을 끊다니, 네놈! 무위를 숨기고 있었군. 적어도 선천경 6단계렷다!”

벌컥 성을 낸 굴정준이 운청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주변에는 오행의 기운이 왕성했는데, 그 기운을 한껏 담은 굴정준의 주먹이 운청휘에게 쏟아졌다.

화륵!

운청휘는 곧바로 청연지심화의 푸른 화염을 일으켜 굴정준에게 맞섰다.

콰앙! 쾅!

두 공격이 충돌하는 순간, 대지가 몸을 떨며 신음했다. 사방을 뒤흔드는 충격파로 인해 대기가 울부짖었고, 지표면이 깎이며 돌과 먼지가 흩날렸다.

막을 수단이 없었던 강해 일행은 그대로 공격에 휩쓸려 제각기 피를 뿜으며 날아갔다.

“저, 정말로 선천경 1단계가 맞아?”

“잘 봐! 굴정준이 저렇게 나가떨어졌잖아!”

누군가의 외침에 일제히 굴정준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순간 굴정준이 허공에 피를 울컥 흩뿌리며 휘청거렸다.

“네놈, 내문 제자가 아니구나!”

굴정준은 피를 닦을 겨를도 없이 운청휘를 노려보고 있었다.

“선천경 9단계인 나를 한 방에 이렇게 만들다니……! 네놈은 최소 영단경 1단계의 무인이 아니더냐!”

“구, 굴정준이 선천경 9단계의 무위를 가졌다고?”

“마, 말도 안 돼. 그럼 운청휘는 정말 영단경의 무인인 거야?!”

한참을 밀려난 강해 일행은 제각기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은 운청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홀대했다.

심지어 강해는 운청휘를 몇 번이고 모욕하지 않았던가? 만약 운청휘가 벼르고 있는 거라면…….

몇몇의 등에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잠깐, 기다려라! 거래를 하자!”

굴정준은 황급히 심호흡을 하고 외쳤다. 운청휘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굴정준의 말이 줄줄 쏟아졌다.

“네놈을 놓아주마. 대신, 이곳의 일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거라!”

“하하하! 참으로 오만하고 어리석은 자로구나. 네놈을 아직도 살려 두는 이유를 모르겠느냐?”

운청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일격으로 굴정준을 죽일 수도 있건만, 감히 어디서 거래를 제안한단 말인가?

“일단은 네놈을 잡고 나서 말해야겠군.”

운청휘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자, 거대한 영력의 손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내며 흉흉한 기운을 뿌렸다.

굴정준이 죽음의 공포를 느낀 순간, 먼 하늘에서 홍색 비검이 쇄도해 영력화장을 꿰뚫었다.

“저, 저건 홍사검(红蛇剑)! 섭운(聂云) 장로님의 검이야!”

강해 일행이 웅성거렸다. 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검이었으므로!

“하하하, 이제 안전해진 거나 다름없어!”

강해 일행이 기쁨을 숨기지 못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무리 운청휘가 우세하다고 한들, 천검종의 장로가 주는 위안과는 격이 달랐다.

천검종의 장로는 기본적으로 영단경의 무위를 갖추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

“선천경 7~8단계의 내문 제자를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섭운 장로님이 오실 줄이야!”

기뻐하는 와중에도 누군가 다소 의외라는 듯 중얼거렸다.

곧 붉은 옷을 입은 자가 삼백 장 상공에서 쏘아져 내려왔다. 그대로 두면 다시 운청휘를 공격할 기세였다.

“섭운 장로님.”

강해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외쳤다.

“운 장로님, 그자가 아닙니다! 저자는 운청휘로, 저희와 같은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그런가.”

짤막하게 대꾸한 섭운의 눈초리는 더없이 서늘했다. 그가 강해 일행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해!”

운청휘가 곧바로 청연지심화를 일으켜 강해 일행을 감쌌다. 이들의 멍청함에 화가 날지언정, 목숨을 잃게 둘 수는 없었다.

콰아앙!

섭운이 만들어 낸 거대한 손과 청연지심화의 불꽃이 부딪친 순간, 운청휘가 강해의 목을 잡아채 뒤로 이끌었다.

“모르겠나? 저자도 혈살종의 사람이거늘.”

운청휘가 한심하다는 듯 강해를 바라보며 외쳤다.

“어, 어떻게 장로님께서……!”

그들이 얼떨떨하게 서 있는 와중에, 엽추월이 입을 열었다.

“그럼 서, 섭운 장로는 우리를 도우러 온 게 아니라……?”

“어리석구나. 종주라고 해도 이만한 시간에 여기까지 올 수는 없거늘. 천검종까지의 거리를 모르는가?”

운청휘는 답답하다 못해 짜증이 솟구칠 지경이었다.

이들은 태어나서 천검종 밖으로 나온 적도 없단 말인가? 어찌 이리 세상 물정도 모르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 그렇군. 종주님께서도 이렇게 빨리 오실 수는 없어!”

마침내 상황을 파악한 듯, 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죽은 거나 다름없잖아! 아직 해독도 안 되었는데……!”

그러나 사실을 알게 된들, 무공을 쓸 수 없는 그들이 무얼 하겠는가. 새하얗게 질린 채 섭운과 운청휘를 바라볼 뿐이었다.

“곧 있으면 천검종의 사람들이 올 테니, 그전에 혈정을 완성해야 합니다!”

굴정준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고, 황급히 입을 열었다.

“섭 신사께 청합니다. 저들을 전부 혈지로 넣어 주십시오.”

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즉시, 영단경의 힘이 폭발하며 실체화된 기운이 쇠사슬의 형태를 이루어 뻗어나갔다.

슈우우!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영단의 쇠사슬은 엽추월의 옆에 있던 청년을 휘감았고, 그대로 청년을 혈지 쪽으로 밀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운청휘가 청연지심화의 힘을 일으켜 푸르게 불타는 쇠사슬을 만들어 내었다. 두 개의 쇠사슬이 공중에서 교차하며 어지럽게 얽혀들었다.

카강! 캉!

맹렬하게 부딪힌 쇠사슬들이 팽팽하게 공세를 이어가자, 휘말린 청년은 공중에서 그대로 혈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오행의 힘? 고작 그런 것으로 내게 대적한다고?”

섭운이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가 손가락을 흔든 것만으로도, 영단경의 기세는 위협적으로 철그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오행의 힘? 네 눈에는 그리 보이던가?”

운청휘의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그 순간, 푸른 불꽃은 몸집을 부풀리며 섭운의 쇠사슬을 단번에 재로 태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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