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쉬이이……!”
빙백사가 미친 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뱀의 본능이었지만, 지금은 이런 행동만으로도 희열로 몸이 고조될 지경이었다. 드디어 몸의 통제력을 되찾지 않았는가!
희열을 감추지 못한 빙백사로 인해, 강해 일행은 진땀을 흘릴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빙백사의 행동은 위협적이기 짝이 없었다. 소름이 돋다 못해 머리털이 쭈뼛쭈뼛 설 지경이었다.
“역시 흉수라 이건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나 싶었는데, 이렇게 되는구나.”
영단경의 기세 앞에서, 그들이 어찌 섣부르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이때, 빙백사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거대한 몸뚱이가 운청휘 쪽을 향하더니, 빙백사가 주둥이를 벌리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었다.
“맙소사, 설마 운청휘까지 삼키려 드는 거야?”
경악하는 강해 일행을 가볍게 무시하며, 빙백사는 운청휘를 한입에 삼키는 대신 공손한 목소리를 내었다.
“대협이 베푸신 은혜,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말을 마친 빙백사의 전신에서 눈부신 광채가 번쩍였다.
다음 순간, 모두의 앞에 20대의 잘생긴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청년은 곧바로 운청휘에게 무릎을 꿇고 연이어 머리를 세 번 땅에 부딪히며 절을 올렸다.
강해 일행이 알 리가 없지만, 빙백사에게 있어 운청휘는 생명의 은인이자 대자연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물론 그의 무위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빙백사는 눈앞의 운청휘가 영신에 불과하다 생각하며, 공손한 태도를 이어갔다.
“이것은 저의 정혈입니다. 언제든 이 정혈을 태우기만 하면, 가장 먼저 달려와 대협을 돕겠습니다.”
절을 올린 청년이 곧바로 운청휘에게 한 방울의 정혈을 내밀었다.
어찌 그 마음을 모를까. 그의 아들처럼 운청휘와 좋은 인연을 맺고 싶으리라.
운청휘는 별말 없이 정혈을 받아들었다. 그로서도 지금 빙백사라는 조수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니.
“대협, 소인이 부디 아들을 만나러 가도 되겠습니까?”
빙백사는 허리를 굽힌 채 운청휘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가거라.”
운청휘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가 어찌 모를까!
“요괴 장소걸(张少杰), 은인께 작별을 고합니다!”
청년이 공손히 말한 후 몸을 돌렸다. 곧 청년의 몸이 다시 하얀 뱀으로 변하더니,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용처럼 높이 솟구쳐 올랐다.
“처세술이 좋은 영수로군.”
운청휘가 옅은 웃음을 보이며 중얼거렸다.
떠나기 전, 빙백사는 호칭을 바꾸고 자신의 이름을 알림으로써 운청휘에게 새로운 인상을 심은 셈이다.
성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빙백사는 황성으로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했다.
빙백사는 곧바로 흰 옷을 입은 청년에게 시선을 보냈다.
“영단경의 인족 무인!”
“영단경의 빙백사!”
청년과 빙백사는 거의 동시에 상대방의 경지를 알아차린 듯, 외쳤다.
“정(丁) 사형, 이 빙백사는 사해왕조의 황성에서 날아왔는데, 강해 일행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흰 우의를 입은 청년 뒤에서 사람들이 말했다.
“정 사형, 탈것이 필요하시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누군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탈것이라니, 감히!”
영단경의 빙백사가 그 말을 놓칠 리가 없었다. 빙백사는 온몸에 살기를 피워 올리며 영단의 기운을 쏘아냈다.
“건방지구나, 한낱 미물이 감히 천검종의 제자를 공격한다고?”
정 사형이라 불린 청년이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가 손가락을 뻗어 영단경의 기세를 막아냈다.
천검종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작은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빙백사는 곧바로 코웃음을 쳤다.
“본왕을 모욕했으니, 천검종에서 왔다고 한들 본왕이 살려 두겠느냐!”
빙백사가 꼬리를 세차게 휘두르자, 허공에는 눈부신 불빛이 번쩍였다.
“건방지군. 천검종의 이름을 듣고도 나선다고?”
정 사형이라 불린 청년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손을 내밀어 빙백사의 꼬리와 맞부딪쳤다.
펑!
손과 꼬리가 부딪친 직후, 청년은 곧바로 뒤로 밀려났다. 팔뚝까지 얼얼하게 저린 느낌에 청년이 미간을 좁혔다.
“젠장, 같은 영단경인데 경계가 나보다 높다니!”
정 사형이라 불린 청년이 침울한 눈빛으로 빙백사를 노려보았다. 방금의 공격은 전력을 다한 것이었으나, 빙백사에게 통하지 않았다.
역시나, 영단경 2단계인 자신보다 높은 무위를 지녔음이 틀림없었다.
별안간 빙백사가 꼬리를 휙 치켜들어 내리쳤다.
그 순간, 청년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그가 느끼는 공포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닌, 죽음을 직면한 자의 공포였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뻗은 그는 뒤에 있던 청년 하나를 끌어당겨 앞에 내세웠다.
퍼억!
빙백사의 꼬리가 청년의 몸을 꿰뚫었다.
그 반동으로, 정 사형이라 불린 청년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정 사형! 이게 대체……!”
다른 이들이 기겁하며 청년을 돌아보았다.
“하하하! 죽음이 두려워 동족을 방패로 내세우느냐? 어리석고 가소롭구나.”
빙백사는 황당하다는 듯 웃어 보이곤 몸을 돌려 멀어졌다.
방금은 청년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적당한 부상을 입힐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청년이 동족을 방패삼아 희생하지 않았던가?
예전이었다면 거리낌 없이 인간을 죽일 터. 그러나 청년은 천검종의 소속이니 뒷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에서 물러나는 게 낫다.
빙백사는 꼬리를 휘둘러 세차게 멀어져갔다.
“빙백사……!”
멀어지는 빙백사를 노려보는 청년의 얼굴은 더없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기억해라, 황고(黄高)는 빙백사에게 당했다. 천검종에 돌아간 후에도 그리 기억해 두는 게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싸늘한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청년은 살인멸구를 불사하겠다는 듯 가라앉은 눈으로 일행을 바라보았다.
“아, 알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정 사형! 절대로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겠습니다!”
십여 명의 제자들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들의 마음에 경계와 두려움의 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죽은 황고라는 청년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정 사형이라 불리는 청년의 추종자였다.
그런 이가 설마 추종자를 희생양으로 삼을 줄이야.
“소환 옥석이 깨진 위치는 사해왕조 황성의 내부입니다. 지금 들어가 볼까요?”
한 청년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래.”
정 사형이라 불린 청년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금 황성으로 향했다. 반 각도 지나지 않아, 그들의 시야에 운청휘 일행이 보였다.
“강해 일행은 살아 있군.”
강해를 알아보자 그들은 곧바로 허공에서 내려왔다.
“전수 제자 정지가(丁志佳)와 그의 무리들이야.”
강해 일행도 흰옷을 입은 정지가를 비롯한 무리를 알아보고 외쳤다.
“강해. 이번 임무는 내문 제자 굴정준의 실종을 조사하는 게 아니더냐. 무엇을 알아냈지?”
지면에 발을 딛자마자, 정지가가 본론을 꺼냈다.
“정 사형께 아뢰옵니다. 굴정준은 이미 혈살종의 사람에게 죽었습니다!”
강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는데, 섭운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혈살종?”
그 한마디에 정지가가 미간을 찌푸렸다. 혈살종, 천검종의 대척점에 놓인 존재이자 시종일관 천검종을 대적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자는 어디 있느냐?”
정지가가 다시 물었다.
“혈살종의 사람들은 영단경의 빙백사에게 죽었습니다!”
강해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빙백사가 혈살종의 사람만 죽이고, 너희를 살려 두었다고?”
정지가가 눈을 가늘게 뜬 순간, 강해 일행은 거대한 산에 짓눌린 듯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영단경의 기세가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강해. 우선 전음으로 내게 답하거라.”
정지가가 차가운 눈빛으로 강해를 내려다보았다.
“모두에게 이 방식으로 묻겠다. 만일 서로의 대답이 엇갈리거든,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정지가의 주변이 폭발하며 가뜩이나 엉망이었던 대지는 더 많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기세 앞에서 누가 거짓을 고할까!
-정 사형. 빙백사는 혈살종의 사람들에게 갇혀 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빙백사가 탈출했고, 혈살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희는 혈살종의 인질이기 때문에 살려준 것 같습니다!
강해는 황급히 음을 전달하여 대답했고, 영단경의 기세에 눌려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희가 인질로 잡힌 후에 빙백사가 갇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별안간 빙백사가 감옥을 뚫고 나와 그들을 죽였습니다!
-정 사형, 빙백사는 저희보다 먼저 혈살종에 잡혀 있었습니다.
이어 다른 이들도 정지가에게 답했다.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그들의 의견은 한결같았다.
이들이 이토록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는 건 운청휘가 미리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정지가는 고개를 조아리며 답하는 이들을 음침한 눈으로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운청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운청휘 또한 천천히 전음을 보냈다.
-우리가 잡히고 나서 빙백사가 혈살종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혈살종의 사람을 죽였다. 우리는 혈살종의 인질이었으니, 죽일 필요를 못 느낀 게 아니겠느냐.
운청휘의 대답도 흠잡을 데가 없었으나, 정지가의 눈썹이 실룩이더니 돌연 그가 고함을 내질렀다.
“네가 운청휘라고? 간덩이가 부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