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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47화 (147/430)

제147화

갑작스러운 정지가의 분노에 다른 이들은 어리둥절했다.

곧 정지가의 수행원이 운청휘와 강해 일행의 차이를 알아차렸다. 정지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 이들과 달리, 운청휘는 정지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올곧았지만, 어떠한 존중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운이 나빴군.’

정지가의 수행원이 모두 마음속으로 말했다.

‘빙백사에게 들은 모욕으로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았던 거야. 마침 운청휘라는 녀석이 정 사형의 심기를 거슬러 줬으니, 잘된 일이지.’

상황을 깨닫자 정지가의 수행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정지가가 화를 운청휘에게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지가의 분노가 엉뚱하게 자신들에게 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간덩이가 부었다? 내게 한 말인가?”

운청휘는 오히려 냉정한 시선을 보내며 덤덤히 말할 뿐이었다.

“건방지구나, 정 사형은 전수 제자인데 네놈이 감히 대들 수 있겠느냐?”

정지가의 수행원 한 명이 호통을 쳤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는가? 정 사형은 전수 제자다. 응당 아랫사람으로서 예의를 갖춰야지!”

“호오. 내가 아랫사람이라는 게냐.”

운청휘는 화를 내기는커녕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비굴하게 허리를 숙이는 건 네놈들의 일인데, 어찌 내가 네놈들처럼 행동하겠느냐?”

운청휘의 성격이었다면 진즉에 일격을 날렸을 테지만, 지금의 그는 영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쓸데없는 싸움에 응하고 싶지 않았다.

‘큰일 났네, 이거!’

강해 일행만이 애끓는 속을 태울 뿐이었다.

‘좋지 않아. 운청휘의 상태도 나쁜데, 하필 지금 정지가를 건드리다니!’

천검종 내에서 정지가는 악명이 자자했다. 그는 걸핏하면 전수 제자라는 신분을 내세워 다른 제자를 괴롭혔고, 여제자들을 희롱하기 일쑤였다.

암암리에 떠도는 말로는, 정지가와 가까이 지내던 내문 제자가 임신을 한 후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고 한다. 마땅히 정지가와 내문 제자가 함께 처벌을 받아야 할 테지만, 정지가는 그의 배경을 이용해 내문 제자만을 없앴다.

그의 할아버지가 천검종의 원로이며, 종주와도 동등하게 교류한다는 말도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이놈이 여전히 세치 혀를 놀리는 걸 보니,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군!”

정지가의 음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놈과 강해 일행은 사해왕조에서 내문 제자 굴정준의 행방을 찾는 임무를 받았을 터. 그러나 운청휘, 네놈은 혈살종과 공모하여 굴정준을 죽이지 않았느냐! 이 오만한 태도는 둘째 치고, 네놈이 저지른 일은 절대 넘어갈 수 없다!”

그의 말에 강해 일행뿐만 아니라, 정지가를 따라온 이들도 어안이 벙벙했다.

단순히 운청휘의 태도를 걸고넘어진 게 아니라, 누명을 씌우고 있지 않는가!

“아닙니다, 정 사형! 굴정준은 혈살종의 사람에게 죽었습니다. 그리고 혈살종의 사람은 빙백사에게 당했습니다!”

강해 일행이 앞다투어 나섰다. 맹세가 걸려 있으니 운청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어딜 감히 나서느냐, 강해! 정 사형의 조사를 의심하는 게냐?”

정지가의 수행원 하나가 호통을 쳤다.

“굴정준이 운청휘에게 죽었다면, 그를 감싸는 강해 일행도 수상하군.”

“그럼 저들을 종문으로 데려가서 집법당의 판결을 받게 해야지!”

“집법당의 방북 장로라면 며칠 전 정 사형과 술을 마신 이였지? 공명정대한 판결이 기대되는군!”

“운청휘는 동문을 학살했으니,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지!”

정지가의 수행원들도 앞다투어 누명을 씌우자, 강해 일행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강해 일행도 결코 인성이 좋은 자들은 아니었다.

특히 강해는 무위가 약한 제자들을 괴롭히기를 즐겼지만 없는 일을 만들어서 누명을 씌우진 않았다.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는 없다!

“네게 답할 때 나는 다른 이들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지. 고작 그것만으로 내게 누명을 씌우겠단 말이냐?”

운청휘의 시선은 정지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때, 그는 은밀하게 빙백사의 정혈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가 정혈을 불태우면, 빙백사가 반경 만 리 내에 있을 시 곧바로 달려올 터였다.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누명을 씌웠다?”

정지가의 표정이 음침하게 가라앉았다. 운청휘는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도 모자라, 은연중에 도발하는 듯했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 일이 아니더냐. 정말로 나를 상대할 생각인가?”

운청휘는 언제든 빙백사의 정혈을 태울 준비를 하며, 차분히 물었다.

“운청휘,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정지가가 또 호통을 쳤다. 이번에는 운청휘가 자신에게 맞선다는 투였다.

“혈살종과 결탁해 굴정준을 죽이고, 몇 번이나 나를 무시했다. 전수 제자인 나와 신분을 내려놓고 싸울 생각이냐?”

그 말을 듣는 순간, 운청휘는 피가 얼굴에 확 몰리는 듯했다.

정지가는 결국 그의 자존심까지 건드리고 말았다.

이제 순수하게,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니, 지금 정혈을 태울 필요가 없었다.

“정지가. 네놈은 영단경 2단계의 무위니, 전수 제자 중에서도 최하위로구나. 내문 제자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걸로 만족하느냐? 정녕 능력이 있다면, 사흘 후 천형대(天刑台) 앞으로 오너라!”

천검종의 규칙에 따르면, 제자들끼리 서로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을 땐 천형대에 올라가 생사결을 벌인다.

종문은 천형대를 대표하는 심판을 파견하며, 제자들 중 단 한 명만이 살아서 돌아갈 수 있었다.

만약 정지가가 승낙하면, 운청휘는 사흘 동안 영력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거절한다면, 망설임 없이 곧바로 빙백사의 정혈을 태워서라도 정지가를 죽일 작정이었다.

“처, 천형대?!”

운청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들에게 천형대가 가진 의미가 실로 큰 모양이다.

천검종의 외문, 내문, 전수 등 모든 제자를 합치면 수백만 명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천형대에서 이루어지는 결투는 1년에 10번을 넘지 않는다.

한 명이 죽기 전까지 쉬지 않고 이루어지는 결투인데, 누가 쉽게 천형대에 오르려고 할까.

그리하여 천형대에 오르는 이들은 서로 무위가 비슷했고, 깊은 원한을 품은 사이가 대부분이었다.

운청휘처럼 내문 제자가 전수 제자에게 도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지가는 상상도 못 했는지 잠시 얼이 빠져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호들갑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사흘이라도 더 살고 싶으냐? 좋다, 사흘의 시간을 주지! 그 뒤에 천검종의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친히 네놈을 죽여주겠다!”

오죽하면 정지가도 운청휘가 시간을 벌기 위해 천형대를 언급했다고 생각했을까.

단순히 제자의 신분을 떠나, 그는 자신과 운청휘의 무위를 알고 있었다.

선천생령의 무인이 영단경에 도전하는 건,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나 다름없었다.

“오만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제법 머리를 굴리는군. 천형대를 언급해서 사흘의 시간을 벌다니!”

“머리를 굴려? 멍청한 짓이지! 차라리 지금 죽었으면 존엄성이라도 지킬 수 있지만, 천형대라면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개죽음을 당할 거라고.”

“나도 운청휘가 어리석었다는 데 동의해. 무릎을 꿇고 얌전히 빌었으면 목숨이라도 건졌겠지.”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운청휘를 비웃는 가운데, 강해 일행은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이따금 정지가를 몰래 힐끔거렸는데, 그 시선에는 암묵적인 조의가 담겨 있었다.

강해 일행은 운청휘가 지금 나서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사흘이 지난 후라면, 정지가가 열 명이 있어도 운청휘의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

그들은 사흘 뒤의 정지가를 상상하며 내심 고소하게 생각했다.

“사흘 후, 천형대에서 기다리마!”

정지가는 호기롭게 외치며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가 운청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사흘 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네놈뿐만 아니라 네놈과 관련된 모든 이를 죽이겠다!”

“죽이겠다? 하하.”

운청휘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돌아가는 정지가 일행을 한참 지켜보았다.

“운 사형, 우리 천검종으로 돌아갈까요?”

강해가 다가와 물었다. 어느새 강해는 그를 사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러지.”

이곳에 있으면 언제 혈살종의 사람들이 올지 모른다. 천검종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운청휘는 강해 일행에게 몸을 의탁해 반나절 간을 비행한 끝에, 천검종으로 돌아가는 전송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운 사형, 당신의 임무는 검증당에서 받은 것이니 그곳에 먼저 모실까요?”

강해는 지시를 요청했다.

“그래, 안내하거라.”

운청휘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 일행은 운청휘를 데리고 검증당으로 향했다.

이번 임무는 굴정준의 실종을 조사하는 것이기에 그의 생사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모든 내막을 알리지 않았지만 검증에 통과한 운청휘는 정식으로 내문 제자로 인정받았다.

신분 영패를 받은 후, 그들은 보상을 받기 위해 임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운 사형,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보상을 받은 강해가 다시금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아직 거처를 정하지 않았으니, 너희의 숙소로 가야겠다.”

지금은 소실한 무위를 회복하는 게 최우선이다.

일단 강해 일행과 지내며 보호를 받을 생각이었지만, 운청휘는 한 가지 지시를 덧붙였다.

“진관해 장로에게 사람을 보내거라. 나를 보러 오라고 전하도록.”

운청휘는 숙소에 들어선 이후 두문불출했는데, 두세 시진도 지나지 않아 종내에 그의 소식이 죄다 퍼져나갔다.

“들었어? 내문 제자 운청휘가 전수 제자 정지가에게 도전했다는데!”

“뭐? 내문 제자라면 선천경의 경지가 아닌가. 영단경인 전수 제자에게 도전한다니, 죽고 싶은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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