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선제귀환-149화 (149/430)

제149화

“하하하! 엽천, 자네도 이런 날이 오는군? 성공학관에서 지낼 때 이 몸을 그리도 핍박하더니 말일세! 하하하!”

소도도는 상쾌한 웃음과 함께 엽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아, 앞날은 창창하고 길지 않은가? 앞으로도 내 기대함세!”

소도도는 돌아가는 길에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며 멀어져 갔다.

성공학관의 성도였던 찬란한 과거는 이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엽천은 음침한 얼굴로 멀어지는 소도도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그러나 지금의 신분으로 그가 어찌할 수 있을까. 그는 곧 어깨를 늘어트리고 사효언의 숙소로 향했다.

“운청휘를 본 사람이 그렸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엽천이 품에서 먹물로 그린 초상화를 꺼내들었다.

그는 운청휘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초상화를 펼쳐 본 서효언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멍하니 서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운청휘, 역시 운청휘야. 그가 진짜로 천검종에 나타났어!”

그림 속의 사람은 먹물로 인해 검은 장포를 입은 걸 제외하면, 운청휘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장포와 빈 검집, 허리춤까지 늘어진 긴 머리칼이 운청휘의 특징과 똑같았다.

* * *

운청휘는 식사도 수면도 잊은 채 연화에 몰두했다.

무위는 전부 회복되었지만, 단숨에 선천생령까지 돌파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혈정을 연화시킬수록 운청휘의 안색은 차츰 어두워졌다.

‘남은 혈정은 3개. 그러나 이것으로도 선천생령에 도달하기에는 모자라는군.’

운청휘가 연화한 혈정은 보통 사람이 흡수해도 단번에 선천경에 이를 수 있는 힘이 담겨 있으나, 운청휘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운청휘는 돌파를 위해 필요한 힘이 많을수록 좋다고 여겼다. 바로 그 때문에 그가 동급의 다른 무인을 압도하지 않았는가?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무인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비록 반절 선천이지만, 영단경 2단계의 무인과도 견주었고 비장의 수를 써서 영단경 3단계의 빙백사도 제압한 터였다.

그러나 안심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운청휘의 머릿속이 바삐 돌아갔다.

“정지가를 상대하고 나서 천운왕조에 잠시 다녀와야겠군. 서북쪽 황무지에 남은 혈정을 가져와야겠구나.”

계획을 세운 운청휘가 작게 읊조렸다.

서북쪽 황무지의 흡혈 박쥐족, 김태연의 말에 따르면 50여 마리의 선천생령이 어혼성숙비전에 조종당했다.

운청휘가 지금 지니고 있는 혈정은 9개니, 적어도 40개 이상의 혈정이 서북쪽 황무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것만 있다면, 선천생령의 돌파는 물론이고 선천경 3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어느새 시간은 아침이 되었고, 운청휘가 약속한 생사결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가 방을 나서자, 강해 일행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운 사형, 마침내 나오셨군요. 처리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때, 운청휘의 신식이 삼십여 장 떨어진 방에 있는 진관해를 알아차렸다.

그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다음 순간 운청휘가 진관해가 있는 방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신식으로 진관해의 전신을 감싼 운청휘가 빠르게 상태를 살폈다.

‘독에 중독된 것도 아니고, 부상도 없다. 하지만 영혼에 문제가 생겼군.’

곧바로 원인을 발견한 운청휘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수가……. 영혼을 다쳤단 말인가!’

지금 진관해의 영혼을 과일로 비유하면, 누군가 한 입 베어 문 상태나 다름없다. 영혼에 상처가 났으니, 저절로 혼수상태에 빠진 것이다.

“진 장로께서는 어젯밤에 오셨어요. 이 천검종에서 운 사형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강해 등이 서둘러 달려와 말했다.

“다만 사형이 수련 중이신 걸 알고 사형이 나온 뒤에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참,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는 사흘 내에 구해도 늦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사흘?”

운청휘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 각만 늦었더라면,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나가서 호법을 서도록.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

“네!”

강해 등은 운청휘의 굳어진 안색을 보고 저도 모르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러났고 방문을 닫아 버렸다.

그들은 앞마당까지 나가서 대문을 지키고 섰다.

“진관해가 여유를 부린 걸 보니,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군. 서혼수가 그의 영혼을 물어뜯었거늘!”

중얼거리는 동시에, 이미 진관해를 치료하기 시작한 운청휘였다.

서혼수는 맹독 흉수의 하나로, 다른 맹독 흉수와 달리 서혼수는 영혼에 영향을 주는 독을 썼다.

다만 진관해는 서혼수를 몰랐을 테니, 영혼이 중독된 것을 모르고 강해 일행에게 느긋하게 전해 달라고 했을 터였다.

운청휘는 신식을 펼쳐 진관해의 영혼을 파고든 독소가 다른 곳으로 퍼지는 것을 막았다. 뒤이어, 그를 치료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무공을 떠올렸다.

‘수혼수의 맹독이라면 반드시 죽는다. 보통의 수법으로는 안 될 테니, 이독제독의 수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구나. 지금의 무위로는 대극독술(大剧毒术)을 쓸 수 없으니, 축소판 대극독숙을 만들어야겠어.’

운청휘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일 각도 지나지 않아, 그의 머릿속에서 축소판 대극독술이 정립되었다.

“위력은 대극독술의 100분의 1이니까 소극독술이라 불러야겠군.”

운청휘가 신식을 이용해 소극독술을 펼쳤다.

그는 숨을 죽이며 온 정신을 집중했다. 이독제독의 방식이니, 당연히 소극독술에도 맹독이 존재한다.

조금만 정신이 흐트러져도 진관해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운청휘의 주도 아래, 두 가지 맹독이 진관해의 영혼 안에서 맹렬한 다툼을 벌였다.

토독. 톡.

어느새 운청휘의 이마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소극독술을 펼치는 일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서혼수의 맹독과 대항하는 데 심신의 소모가 너무나도 큰 탓이었다.

두 시진 후, 마침내 진관해의 영혼에서 육 할 이상의 맹독이 제거되었다.

그러자 곧 의식을 되찾은 진관해의 영혼이 운청휘를 알아보았다.

-역시 사부님께서 이 제자를 구해주셨습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가 영신과(婴身果)를 발견했습니다!

“영신과?”

그 말을 듣는 순간, 운청휘의 동공이 급격하게 수축했다.

* * *

지하 백오십 장 깊이에 있는 고리 모양의 광장, 천형대. 그 면적만 해도 10만 평이 넘는다.

사면의 벽은 뒤로 쭉 뻗어, 그 위에 전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좌석을 설치해 두었다.

이미 천형대의 주변은 구경꾼으로 가득했고, 이삼십만 명에 달하는 이들 중 전수 제자와 장로도 몇몇 섞여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지가는 이미 한 시진 전에 도착하며 천형대 중앙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모습은 절대고수의 차분한 모습을 대표하는 듯했다.

“역시 전수 제자로군. 이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구만!”

“당연하지, 잊지 말라구. 정 사형은 영단경의 고수인데 우리가 구경하러 왔다고 당황할 리가 있나!”

“쯧, 겨우 내문 제자인 운청휘는 아직도 보이지 않잖아! 정 사형도 한 시진이나 일찍 와 계시는데!”

“하하, 운청휘가 일찍 와서 뭐 하겠어. 일찍 죽기밖에 더하겠나? 어차피 정 사형의 수행원들이 운청휘를 찾아갔지만 말야!”

“운청휘도 꼴사납군. 먼저 생사결을 신청했으면서 정작 나타나지도 않아?”

“어차피 죽을 거라면 소탈하게 나와야지. 이래서는 죽은 후에도 이름이 더럽혀지겠군.”

“아, 저기 좀 봐.”

바로 이때 누군가 놀라며 외쳤다.

“누구지, 처음 보는 여자인데.”

그때, 청의소녀가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꼿꼿한 자세의 소녀는 피부가 유독 희고, 아리따웠다.

“효언 사매가 아닌가!”

뒷짐을 지고 천형대 중앙에 서 있던 정지가도 청의소녀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호기심의 시선과 달리, 그는 한눈에 소녀를 알아보며 반색했다.

“효언 사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건가, 응?”

정지가가 훌쩍 몸을 날려 사효언의 옆에서 신형을 드러내었다.

“정 사형의 소식을 들었어요. 마침 시간이 나서, 정 사형을 지켜보려 왔답니다.”

사효언이 살포시 웃으며 답했다.

“역시 정 사형과 아는 사이로군! 그녀를 효언 사매라고 부르잖아!”

“사매라니, 그녀도 전수 제자인가? 이상하네, 효언이라는 전수 제자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잠깐, 효언이라면. 설마, 사효언?!”

누군가가 뭔가를 떠올린 듯 미간을 찌푸리더니 즉시 내뱉었다.

“얼마 전에, 성성의 원로가 사효언이라는 제자를 받았다던데? 다만 평소에는 성성에만 있으니 외부인이 그녀를 모를 법도 해.”

“원로의 제자라고?”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지위로만 따져 보아도 원로의 제자는 전수 제자와 동등한 위치였다.

오죽하면 저 거만한 정지가가 그녀를 사매라 부를까.

“정 사형, 상대는 어디 있나요?”

사효언이 또 물어봤다.

“이미 사람을 보내두었지. 조금만 기다려 줘, 효언 사매!”

정지가가 사효언과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그가 보냈던 수행원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겸연쩍은 표정으로 상황을 알렸다.

“송구합니다, 정 사형, 내문을 다 뒤져보았지만 누구도 운청휘의 숙소를 모릅니다.”

“이 얼간이들아!”

정지가는 분노한 표정으로 수행원들을 노려보았다. 만약 이 자리에 사효언이 없었다면 그들을 두들겨 패고도 남았다.

그가 가까스로 화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간단하지 않은가! 강해 일행을 찾으면 운청휘가 어디 사는지 알 수 있는 것을!”

“역시 정 사형이야!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였어!”

“그들은 임무를 함께 수행했으니, 행방도 알겠지! 정 사형, 다시 다녀오겠습니다!”

수행원 몇 명이 아부를 하며 허둥지둥 떠났다.

“효언 사매, 아래쪽 최고의 자리로 안내할게.”

못마땅한지 혀를 차던 정지가는 곧 사효언을 향해 웃음 지었다. 그가 사효언을 데리고 정면에서 천형대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자리로 안내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