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육신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지만, 운청휘 덕분에 영혼이 깨어난 진관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사부님께서 임무를 맡으셨을 때, 제자도 혈문전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안양행성의 험지에서 영기가 극도로 풍부한 샘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샘물은 100방울이면 선천영액 1방울과 동일한 힘을 지녔다고 하더군요. 제자는 곧바로 험지로 조사를 하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청송과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는데, 푸른 열매가 하나 맺혀 있었지요. 제자가 살펴본 끝에, 샘에서 흘러나오는 영기는 사실 그 푸른 열매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열매는 전설 속의 영신과가 틀림없습니다, 사부님!
운청휘의 눈이 이채를 띠었다.
무인은 영변경에 도달하면 분신을 만들 수 있는데, 이를 영신이라 불렀다.
그러나 영신과만 있으면 선천경의 경지에서도 몸을 나눌 수 있었다.
운청휘는 자신이 아니라 채아를 떠올리고 있었다. 단숨에 숨이 가빠졌다.
‘영신과가 있다면 채아의 분신을 만들 수 있지 않은가! 분신에 마종을 옮기면 일이 더 쉬워지겠군.’
그때 진관해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자가 영신과를 딸 준비를 하는데 돌연 흉수가 나타났습니다. 모습을 살피기도 전에 영혼을 다쳐,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진관해는 말을 아꼈다.
그만큼 그의 영혼에 새겨진 공포가 컸으리라. 그나마 본신이 영변경이기에 흉수의 공격에도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터였다.
“수혼수가 네 영혼을 물었다. 내가 제때 온 걸 감사하게 여기도록. 이 각만 늦었어도 너를 살릴 방도가 없었다.”
운청휘가 말했다.
“일단 영혼에 남은 독을 마저 제거해 주마.”
운청휘가 소극독술을 펼쳐 남은 독을 제거해나갔다. 진관해는 자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보며 놀라운 듯 물었다.
“수혼수의 공격에 독이 포함되어 있었습니까? 저는 사흘은 더 버틸 줄 알고 의식을 놓았습니다.”
“사흘?”
운청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네가 영변경에 들어도 수혼수에게 물리면 사흘도 버틸 수 없다.”
소극독술을 펼친 지 이 각 후, 진관해의 영혼에 남은 독은 이 할도 되지 않았다. 이독제독의 방식이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그 순간, 누군가가 다투는 소리가 운청휘의 귓가를 울렸다.
“강해, 어서 운청휘를 데려와라! 함께 천형대로 가자꾸나!”
“쳇, 운청휘가 설마 네놈들의 숙소에 있을 줄이야!”
“흥, 운청휘가 나오면 우리가 조금 손봐준 후에 천형대로 끌고 가자고!”
“내문 절반을 뒤진 데다 정 사형에게 맞기까지 했으니, 그 정도는 해 줘야지!”
“뭐냐, 강해! 죽고 싶은 건가? 감히 우리를 막다니!”
바깥의 소란을 알아차린 운청휘가 신식을 내보냈다.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숙소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모습이 감지되었다.
“운 사형은 지금 용무가 있으시다. 조금 있으면 알아서 천형대로 가실 거다!”
강해가 단호하게 말했다.
“음? 강해, 네놈이 우리와 동등하게 말할 자격이 있었던가?”
수행원들의 안색이 일제히 음침한 빛을 띠었다.
“우리가 누구의 사람인지 잊었나! 보자마자 무릎을 꿇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하대를 해?”
“더는 말을 섞을 필요도 없어. 운청휘를 손봐주기 전에, 이 녀석들을 데리고 놀아 보자고!”
“하하하, 나도 그럴 생각이었어!”
“그럼 이 녀석들과 어울려 볼까!”
운청휘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강해 일행은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펑펑펑!
아니나 다를까, 눈 깜짝할 사이에 강해 일행은 저마다 공격을 받고 말았다. 일 다경도 되기 전에 다섯 명은 여기저기 시퍼런 멍이 들었고, 엽추월은 옷이 찢겨 상체가 드러난 채였다.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그들이 맡은 일이 있으니, 엽추월에게 한눈을 팔고만 있을 수는 없다.
“쯧, 형편없구나!”
“네놈들은 앞으로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엽추월이 아깝구만. 하필 강해와 어울리고 다니다니.”
“됐어. 우선 운청휘부터 데려가자고!”
강해 일행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진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들이 채 몇 걸음 떼기도 전에, 강해 일행이 덤벼들었다. 그들로서는 목숨을 걸고 운청휘를 지켜야 했다.
“운 사형은 지금 바쁘시다! 스스로 천형대에 가실 테니, 방해하지 말거라!”
“이자가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군!”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일제히 살기를 피워올렸다.
“네놈들을 죽이지 못해서 이러는 줄 아느냐?”
“어차피 이놈들쯤은 죽여도 문제가 안 돼! 정 사형께서 충분히 책임지실 텐데, 해치워 버리자고!”
“쯧, 그렇게 죽고 싶어 하니, 소원대로 해 주마!”
정지가의 수행원들은 매섭게 살초를 날렸다. 이번에야말로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 망설임이 없는 동작이었다.
퍼억!
강해의 왼쪽 어깨에서 섬뜩한 파열음이 들려왔다. 강해의 몸이 밀려나가기도 전에, 그의 어깨를 부순 자가 얼굴을 후려쳤다.
콰득!
코뼈가 주저앉은 강해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온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다른 이들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엽추월은 옷이 죄다 찢겨 몸의 대부분이 드러난 상태였다.
“비열한 놈, 네놈들과 끝까지 싸우겠다!”
쓰러진 강해를 제외한 세 사람은 엽추월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들 또한 살기를 피워 올리며 정지가의 수행원들에게 달려들었다.
추월, 우리가 이들을 막고 있을 테니 먼저 가!”
강해 일행 다섯 명이 비록 내문 제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좋지 않다고 하나, 서로의 유대감은 깊었다. 그렇지 않다면 임무 때마다 뭉쳐 다니지 않았으리라.
어느새 운청휘의 두 눈이 한껏 가늘어져 있었다.
진관해의 해독을 마무리하려면 이 각이 더 필요했지만, 운청휘는 일 다경만에 해독을 마치고 그의 몸에서 신식을 빼냈다.
쾅!
그가 방문을 걷어차 열자 만년빙산 같은 한기가 그의 주변에서 휘몰아쳤다. 순간 마당 전체가 한기로 뒤덮였다.
그때 강해 일행은 죄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고, 엽추월은 몸을 가린 채 웅크려 있었다.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엽추월을 둘러싸고 히죽거렸다.
“아니면 우리가 엽추월을 처리할까?”
“은밀하게만 한다면 종문에서도 조사할 일이 없겠지.”
“헤헤. 우리가 열한 명이니, 여섯 명이 운청휘를 끌고 가고 나머지 다섯은 남아서…….”
“하하하, 좋지, 좋아!”
“응? 갑자기 서늘해지지 않았나?”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거의 동시에 한기를 느끼고 몸서리를 쳤다. 이내 그들의 시선이 운청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 마침내 나왔구나!”
“운청휘, 건방지구나! 감히 정 사형을 이리 오래 기다리게 하다니!”
“당장 천형대로 가자. 아니, 남을 자를 결정한 후에 가면 되겠군. 하하하!”
운청휘가 즉시 신형을 날리자 그는 엽추월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곧바로 영라반지에서 의복 한 벌을 꺼내 그녀의 몸을 가려주었다.
엽추월에게 옷을 걸쳐 준 운청휘가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고초를 겪게 했으니, 미안하구나.”
“전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의 부상이 커요. 특히 강해 사형은 어깨와 코가 부러졌어요.”
엽추월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하거라. 치료해 주마.”
운청휘가 엽추월을 비롯한 다른 이들을 하나둘 일으켜 세웠다.
“이 단약을 먹도록.”
운청휘는 영라반지에서 꺼낸 단약을 강해 일행에게 먹여 두었다. 상태가 심각한 강해는 일단 영력을 불어넣은 후 단약을 복용하게끔 했다.
“너희가 나를 지키다 다쳤으니, 내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운청휘가 강해 일행을 살피며 말했다.
“책임진다고? 하하하.”
정지가의 수행원들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제 코가 석 자인 놈이 책임은 무슨 책임!”
“더는 말 섞을 필요도 없어. 당장 끌고 가자고!”
“응?”
정지가의 수행원들을 바라보는 운청휘의 시선은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네놈들이 나와 동등하게 대화할 자격이 있느냐?”
“뭐라고?”
강해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받자, 정지가의 수행원들이 일제히 분노를 터트렸다.
“감히 내 말투를 흉내 내다니, 제일 먼저 혼내주마!”
개중 눈빛이 음흉한 청년이 그대로 몸을 날려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을 운청휘가 아니기에, 운청휘 또한 그에게 반격해 들어갔다.
쿵!
청년의 신형이 폭풍에 휘말린 작은 새처럼 나부끼더니 그대로 돌담에 처박혔다.
콰르르…….
무너진 돌담 사이에 깔린 청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장우(张雨)!”
수행원 4명이 청년을 부르며 다급히 달려들었다.
“이럴 수가, 장우가 죽었어!”
또 한 번 비명이 터져 나오더니, 달려들던 이들 중 하나가 운청휘를 노려보았다.
“감히 장우를 죽이다니! 내가 널 죽여서 복수하겠다!”
운청휘를 노려본 청년은 죽은 장우와 친분이 있는 듯 잔뜩 분노했다.
운청휘는 그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한 손을 내저었다.
콰아앙!
순식간에 삼십여 장을 날아간 청년의 모습은 참혹했다.
더 이상 인간의 형상이라 부를 수 없는 형태로 변한 그의 모습에 나머지 수행원들이 눈을 부릅떴다.
“정빙(郑冰)도 일격에 죽었어!”
경악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정지가의 수행원들은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느꼈다.
장우가 죽었을 때는 분노했지만, 정빙의 죽음은 달랐다.
선천경 2단계인 장우와 달리 정빙은 선천경 5단계의 무인이 아니던가! 그런 그를 일격에 죽였다면, 그럼 운청휘의 무위는 대체…….
“제자끼리 죽이는 일은 종문의 금기다! 운청휘, 이 사실을 잊은 게냐!”
나머지 아홉 명은 자신들의 언행도 잊고 금기를 내세워 운청휘를 압박하려 했다.
그러나 고작 그런 금기 따위에 억눌릴 운청휘일까.
운청휘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