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쿵!
맨 앞에 있는 흑의 청년이 무언가에 끌려오듯 날아오더니 이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운청휘가 몇 걸음 걸어 나가자, 허공에 영력화장이 생성되더니 단번에 세 사람을 쳤다.
“이럴 수가……!”
살아남은 6명의 수행원들은 기겁하며 공포에 휩싸였다.
그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운청휘가 정지가에게 도전한 건, 무위가 그보다 낮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도망쳐!”
“각자 알아서 도망쳐!”
재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여섯 명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들이 허공에서 흩어지는 방향은 모두 달랐고, 그들이 보기엔 운청휘는 이들을 모두 잡을 수 없을 듯했다.
그러나.
콰아아-
지면에 발을 딛고 선 운청휘가 손을 내뻗자, 그의 손에서 푸른 화염이 이글거렸다.
푸른 화염은 순식간에 여섯 갈래로 나뉘어, 정지가의 수행원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아아악!”
여섯 개의 비명이 동시에 울려 퍼졌다. 청연지심화가 만들어 낸 여섯 개의 불화살이 그들의 몸을 관통했고, 푸른 불길이 허공에 넘실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땅을 향해 한 줌의 잿더미만 떨어질 뿐이었다.
강해 일행은 순식간에 정리된 상황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한마디가 스쳤다.
-너희가 나를 지키다 다쳤으니, 내가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운청휘가 말한 책임은 단순한 명분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정지가의 수행원들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을 안전하게 만들었다. 눈에 보이는 가장 간결하고 명료한 책임이 아니던가.
“너희가 먹은 단약은 선천생령급의 흉수 내단으로 만들었다. 몸을 낫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무위도 올려줄 테니 기대하도록.”
운청휘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어조로 말하며, 영라반지에서 무공서 다섯 권을 꺼내들었다.
“이 다섯 가지 무공을 주마. 나는 신세진 이들을 절대 홀대하지 않으니.”
“규수진공(葵水真功)? 수 속성 오행의 힘이 담긴 무공이야! 내가 수 속성 오행의 힘을 깨우친 걸 어찌 알고……?”
“나는 목 속성 오행의 힘을 수련하는 청령공(青灵功)이야!”
“나 역시 수 속성 오행의 힘을 수련하는 무공이야. 내가 받은 건 수원장(水原掌)이군.”
“풍 속성 오행의 힘을 수련하는 무공, 배풍화영장(排风化灵掌)이라니!”
강해 일행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운청휘가 건넨 무공은 오직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무공처럼 보였다.
세상에 그런 무공이 몇 개나 존재할까!
얼핏 보기에도 진귀해 보이는 무공이었다. 단순히 등급만 따져도 천급은 족히 뛰어넘을 듯했다.
“무공은 언제든 수련할 수 있지 않던가. 진관해가 막 정신을 차려 기운이 없으니, 그를 돌봐주도록.”
운청휘가 말했다.
“운 사형,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반드시 진 장로를 지키고 보살피겠습니다!”
강해 일행이 비장한 표정을 보였다.
“운 사형, 천형대에 가시는 건가요?”
엽추월이 물었다.
“그렇다.”
운청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고 싶어 하는 자가 있으니, 배웅은 해야지.”
말을 마친 운청휘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흩어지더니, 이내 삼백 장 허공으로 떠올랐다.
운청휘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일다경도 걸리지 않아, 그의 모습이 천형대 상공에 나타났다.
“저기 봐, 누가 하늘에 떠 있군!”
“붉은 장포에 빈 검집……. 운청휘다!”
“참으로 기고만장하군. 전수 제자인 정 사형도 걸어서 왔건만, 감히 날아오다니!”
수십만 명이 운청휘를 주시하고 있었다.
천형대에는 불변의 규정이 있었는데, 누구든지 천형대에 오르는 이는 걸어서 와야 했다.
이는 천형대가 원한의 해결 장소인 동시에 신성한 전쟁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구든 천형대보다 몸을 높이 할 수 없었다.
“보아하니 운청휘는 정말로 자포자기하려는 건가!”
“어차피 죽을 텐데 천형대에 가질 경외심이 어디 있나. 죽을지언정 으스대고 싶은 모양이지.”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운청휘가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다.
이때까지도 정지가는 사소연의 옆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다.
건성으로 대답하던 사소연은 운청휘가 나타난 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다. 역시 운청휘가 틀림없어!’
운청휘를 발견한 사소연은 술렁이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왜 그러지, 소연 사매? 운청휘를 본 건가? 곧 죽을 녀석인데 뭘 그리 신경 쓰는 거야?”
사소연의 시선을 깨달은 정지가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지금 운청휘를 죽이러 갈 테니, 피비린내가 무서우면 눈을 감아. 소연 사매.”
말을 마친 정지가가 곧바로 천형대 위에 올랐다.
“날아서 천형대에 오르다니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그는 천형대에 오르자마자 운청휘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기껏 사람을 보냈건만, 그놈들은 내 체면만 구기는구나. 더욱이 네놈이 이렇게 오만하게 굴었으니, 네놈을 손봐준다고 하여 원망하지 말거라! 나도 내키지 않으니. 내 무위로 네놈과 상대하면 한 손가락으로 네놈을 찍어 죽이지 않겠느냐?”
정지가는 한껏 운청휘를 업신여기며 말을 이었다.
“내 무위를 선천의 경지로 억제하지. 그 뒤로 네놈이 10합을 견딜 수 있는지 보자꾸나!”
정지가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사방에 오행의 힘이 휘몰아쳤고, 곧바로 운청휘를 죽일 듯이 쏘아져 갔다.
“선천경 7~8단계의 고수도 한 번에 저리 많은 오행의 힘을 쓸 수는 없어! 보기만 해도 두렵군.”
“그런데, 정 사형은 영단경의 고수라서 영단의 힘을 쓸 수 있는데, 왜 오행의 힘을 쓰는 거지?”
“정 사형은 영단경의 무위잖아? 하지만 운청휘는 선천경이니까, 같은 무위로 억제해야지. 정 사형은 화근을 남기지 않으려는 거야.”
“지금 정 사형의 무위는 선천경 7~8단계쯤 되어 보이는데?”
천형대 주위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졌다.
그들이 어찌 알까. 오늘 죽게 되는 이가 운청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운청휘는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아 가볍게 손을 내저어 반격했다. 그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운청휘도 오행의 힘을 썼어! 화 속성이군!”
허공에서 넘실거리는 푸른 화염을 보며, 구경하던 이들이 무심코 내뱉었다.
“저 불이 오행의 힘이라고?”
몇몇 장로와 전수제자들만이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들은 운청휘가 내뿜은 푸른 화염이 보통의 오행과는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콰르릉!
곧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이 이어졌다. 청연지심화의 불꽃과 정지가의 오행의 힘이 맞부딪치며 산산이 흩어졌다.
“이럴 수가.”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그 순간, 정지가가 내뿜은 오행의 힘은 운청휘의 푸른 화염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허공에 흩어졌던 기운들마저 완전히 타오르며 소멸되자, 정지가가 눈을 부릅떴다.
“네놈이 오행을 이리 능숙히 다룰 수 있단 말이냐?”
놀란 것도 잠시, 정지가는 다시금 오행의 힘을 일으켜 수십만 개의 화살을 만들어 냈다.
하늘을 빼곡하게 뒤덮은 화살이 운청휘를 향해 비처럼 쏟아졌다.
운청휘는 경멸의 눈빛을 보이며 청연지심화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쿵!
그의 손에서 생명을 얻은 불꽃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거대한 불덩이가 바다를 이루기 시작했다.
수십만 개의 시선이 화살이 쏟아지는 불바다의 풍랑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불이 붙었어.”
“우, 운청휘가 이렇게 강하다니!”
“저만한 화살은 나도 받아칠 수 없는데, 다 불태울 줄이야!”
그 말을 내뱉은 이는 선천경 7단계의 내문 제자였다.
천형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던 사소연과 엽천도 그의 무위에 놀란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석 달 전에는 성공학관 기재반의 생도에 불과했지. 하지만 지금은 정지가와 필적하는구나! 이렇게나 성장할 줄이야.’
엽천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성공학관의 기재반 생도들은 보편적으로 월경의 무위를 지녔다.
당시 성도였던 엽천이 월경의 경지였고, 운청휘는 그보다 아래가 아니었던가.
지난 3개월 동안 엽천은 사소연에게 받은 단약으로 무위를 양경 7단계까지 끌어올렸다. 그로서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였지만, 지금 그를 더욱더 놀라게 하는 건 운청휘의 성장 속도였다.
운청휘는 엽천보다 빠르게 성장했고, 정지가와 대등하게 맞서고 있지 않은가.
한편, 사소연은 운청휘에게서 눈을 떼지 않다가 간신히 중얼거렸다.
“여전하구나. 매번 다른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 실력은.”
만약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운청휘는 여전히 그녀의 사내였을 터.
사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엽천을 힐끗 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증오로 번뜩였다.
3년 전, 황성 엽가의 후계자 엽천을 택하며 운청휘를 포기했던 사소연이다.
사소연은 만약 이 대결에서 운청휘가 패배하면, 그 즉시 운청휘를 구해낼 생각이었다.
‘운청휘, 나는 널 잘 알아. 예전의 일로 서운했겠지만, 내가 널 도와주면 용서해 줄 테지.’
비록 운청휘가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력을 보여 줬지만, 사소연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운청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정지가에게 이길 수 없을 터였다.
그녀가 믿는 이유는 단순했다. 정지가는 천검종의 전수 제자인 데다, 영단경 2단계의 무인이 아닌가.
잠재력으로 따져봐도 운청휘는 정지가를 상대할 수 없으리라. 사소연은 그렇게 생각을 굳히며 운청휘를 구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생각만큼 약하지 않군.”
정지가가 의외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 기술을 받아칠 수 있는지 보마!”
말을 마친 정지가의 뒤에서 폭풍이 솟구쳐 올랐다.
한 줄기 눈부신 불빛처럼 일어난 폭풍은 점점 몸집을 불려, 반경 삼백 장에 여파를 주고 있었다.
이윽고 폭풍은 사나운 흉수처럼 소름 끼치는 굉음을 내며 운청휘를 향해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