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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귀환-155화 (155/430)

제155화

“건방지구나! 네놈들 정말 간이 크구나, 감히 동문 사형제를 공격하다니!”

마치 전송진에서 나타나듯, 한 노인이 이명의 앞을 막아서며 나타났다.

음침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콰르릉!

모습을 드러낸 노인이 손을 휘두르자마자, 장로들과 전수 제자의 연합 공격은 단번에 튕겨 나갔다.

펑펑펑……!

연거푸 공격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장로와 전수 제자들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며 피를 내뿜었다.

대체 이 노인이 누구이기에 단번에 일곱 명을 제압하고 이명을 감싸는 걸까?

“영단경 9단계!”

운청휘의 눈은 단번에 노인의 무위를 알아봤다.

“정학 영감!”

“정 노조!”

소도도와 이명도 거의 동시에 노인을 알아본 듯 외쳤다.

“정학 영감, 감히 이 몸이 혈살종의 첩자를 잡는 일을 방해하는가!”

별안간 소도도가 호통을 치며 정학을 쏘아보더니, 얼른 덧붙였다.

“종주 사부의 뜻이거늘,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하, 종주를 내세워 나를 압박하려는 건가?”

정학이 차디찬 웃음을 머금으며 소도도를 노려보았다.

“정 노조!”

정학에게 날아간 세 장로와 네 명의 전수 제자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이번에는 소도도를 당해낼 수 없었을 테니 우선 살려 두겠다. 하지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정학이 말을 잇지 않아도, 세 장로와 네 명의 전수 제자는 뼈가 시릴 듯한 냉기를 느꼈다.

“썩 꺼지거라!”

“노조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들은 즉각 허리를 숙여 보이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이봐, 정학 영감. 정말로 혈살종의 첩자를 잡는 일을 방해하겠다는 건가? 이 몸이 가만히 있지 않겠네!”

소도도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정학을 노려보았다.

그가 묵색 영패를 꺼내 손에 쥐었는데, 앞뒤 모두 ‘궁(宫)’ 자가 새겨져 있었다.

“종주의 영패……!”

묵색 영패를 알아본 정학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설마 궁우신이 영패를 소도도에게 줬을 줄이야. 저 영패를 쥐고 있다면 궁우신과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소 조카, 이명은 혈살종의 첩자가 아니네. 종주께서 방금 이명에게 비밀 임무를 내리셨다네. 믿지 못하겠다면 종주께 물어보시게!”

어느새 정학의 태도는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그는 방금 살기를 일으키고 소도도를 죽일 생각을 가졌으나, 영패를 보는 순간 바로 살기를 가라앉혔다.

“이명, 임무를 받들거라. 종주께서 네게 임무를 내리셨다.”

소도도의 앞에서 정학이 옥간을 꺼내 이명에게 건넸다.

옥간의 내용을 읽어 본 이명은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살아나갈 구멍이 생긴 셈이다!

“소 조카, 만약 다른 일이 없다면, 노부가 이명을 데리고 먼저 떠나겠네!”

정학은 영단경의 힘으로 이명을 직접 감싼 채 그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운청휘, 노부의 손자를 죽인 네놈을 잊지 않으마. 소도도의 보호가 평생가기를 기도하는 게 좋을 게다!

떠나기 전, 정학은 운청휘에게 음을 보냈다.

그러나 정학은 살기로만 가득해, 그를 바라보는 운청휘의 시선에 탐욕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굶주린 이가 잔칫상을 마주한 듯, 이글거리는 눈빛이었다.

‘영단경 9단계의 마종, 정학. 당신이 오지 않아도 내 친히 가 주마.’

* * *

소도도가 멋쩍은 듯 운청휘를 힐끔거렸다.

운청휘를 위해 이명을 죽일 생각으로 나섰는데, 정학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그의 신분으로 타인을 핍박할 순 있어도, 원로인 정학 앞에서는 말재주를 부리는 게 고작이었다.

운청휘는 소도도가 멋쩍어하는 기색을 눈치 채지 못한 듯, 입을 열었다.

“궁우신이 마종을 심고 천검종으로 끌고 가지 않았던가. 어찌 그의 제자가 되었지?”

“이것 때문이라네!”

소도도가 양팔을 걷어붙였다. 각각 ‘고(古)’와 ‘월(月)’이라는 글자가 그의 양팔에 새겨져 있었다.

“혈족의 문신이로군.”

운청휘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운 형제, 자네도 이 문신을 아는 겐가?”

소도도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운청휘를 바라보았다.

“궁우신도 이 두 글자를 봤을 때, 운 형제와 똑같은 말을 했다네.”

소도도가 지니고 있는 혈족의 문신은 평범한 문신이 아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에 글자가 새겨진 채 태어났다. 이는 조상 중에 위대한 인물이 있음을 암시했는데, 후대에 이르러 이러한 문신을 가진 자가 태어난다고들 한다.

“궁우신은 많은 걸 아는 듯했네. 내 조상도, 조상이 남긴 세력이 아직 세상에 남아있다는 것도……. 그자는 내 몸의 마종을 거두고 나를 제자로 거두었네.”

소도도가 잠시 회상에 빠져들었다.

사실 그는 운청휘에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았다. 천검종에 왔을 당시, 궁우신은 더없이 단호하게 그가 소씨도 노소씨도 아니라고 단언했다.

어린 시절 양친을 여의고 조부의 손에 자라났건만, 이제 와서 또 혈혈단신의 몸이 될 줄이야.

물론 노소가와 혈연으로 이어지진 않았더라도, 소도도는 여전히 자신을 노소가의 일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젖어든 그의 눈을 보고 운청휘는 대강의 상황을 짐작했다.

일찍이 노소가의 가주를 구할 때, 가주와 소도도의 피가 융합되지 않아 두 사람이 남남인 사실을 눈치 챘던 운청휘다.

노소가의 가주가 회복되면 적당한 때에 연유를 묻고 소도도에게 알릴지 결정할 계획이었으나, 상황은 운청휘의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지금에 이르렀다.

“성녀 채아에게 접근할 수 있겠나?”

운청휘가 불쑥 물었다.

“어? 운 형제, 자네 설마……?”

소도도는 음흉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운 형제, 미안하지만 희망을 버리게. 이 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천검종에서 어떤 남자도 그녀와 세 마디 이상을 섞을 수 없다네. 약속을 잡아 달라는 건 무리일세.”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그저 심부름을 부탁하고자 함이다.”

소도도를 힐끔 본 운청휘가 영라반지에서 목각 인형을 하나 꺼냈다. 서툴게 깎은 목각 인형은 아무래도 땋은 머리를 한 소녀를 조각한 듯했다.

“이걸 성녀에게 전달을 부탁하지.”

운청휘가 목각 인형을 소도도에게 건네주었다.

“이 말도 부탁하지. 내가 돌아왔다. 내 모든 것이!”

“어……?”

다소 오래되고 투박한 목각 인형을 받아든 소도도는 어리둥절해하며 눈을 깜박였다.

“이런, 운 형제, 자…… 자네 설마 성녀 채아를 알고 있는 건가?”

주변의 눈을 의식한 소도도가 간신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가 돌아왔다. 내 모든 것이!

소도도의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말이었다. 이 얼마나 패기 넘치고 만물을 업신여기는 말인가.

더욱이 목각 인형을 준 걸 보니 운청휘와 성녀 채아는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했다.

“그래.”

운청휘가 솔직하고 간결하게 대꾸했다.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 하면, 알겠느냐?”

“알겠네. 내 즉시 성녀를 찾아감세!”

소도도는 천형대를 떠나는 즉시 홀로 성성으로 향했다.

그는 전송진을 이용해 성성에 돌아온 즉시, 성녀의 거처인 성전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멈추시오. 성녀께서 계신 곳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전 입구를 지키는 두 호위병이 소도도를 제지했다.

온 천검종을 뒤져도, 이들처럼 절반의 영단경 무위를 호위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은 둘뿐이다.

궁우신을 제외하면, 성녀 채아가 유일했다!

“소도도다. 내 종주 사부의 명을 받아 성녀께 중요한 일을 논의하러 왔다!”

소도도는 궁우신이 준 영패를 내밀며 당당하게 외쳤다.

영패에 새겨진 글자를 본 호위병들이 급히 부복하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성전 안으로 들어오자, 외부보다 열 배는 짙은 영기가 느껴졌다.

“자네는 성녀의 시종인가? 여기 종주의 영패가 있네. 속히 나를 성녀께 안내하게나. 매우 급한 일이 있어 당장 성녀를 뵈어야 한다네!”

소도도가 젊은 여인에게 영패를 내밀었다.

“성녀께서는 폐관 중이십니다. 다만 종주님의 영패를 가져오셨으니, 즉시 알리겠습니다!”

여종은 소도도를 남겨두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처음으로 성전에 온 소도도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거대하고 으리으리한 성전은 황궁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거주하는 이가 십여 명에 지나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문을 지키는 두 호위병을 제외하고 성전에서 지내는 이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팔자도 좋구나. 기회가 되면 나도 이처럼 영단경 무인을 문지기로 삼고, 예쁜 시종을 들여 달라고 해야겠어!’

소도도가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는 동안 일 다경이 흘렀다. 여종이 급히 돌아와 고했다.

“송구합니다. 소 공자님을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성녀께서는 형아각(馨雅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안내해 주게!”

소도도는 서둘러 여종의 뒤를 따랐다.

층층이 쌓인 누각과 정자들, 2개의 산과 인공호수 1개를 지나쳐 오자, 드디어 대나무로 만들어진 누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성녀께서는 누각에 계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지요.”

여종이 걸음을 멈추며 공손히 말했다.

“음? 들어가면 안 되는가?”

소도도가 어리둥절하게 눈을 굴렸다.

“안 됩니다. 성녀를 대할 때의 규칙이니, 부디 소 공자님께서도 지켜 주십시오.”

여종이 예의 바르게, 그러나 엄격하게 말했다.

“성녀, 당신을 아는 분에게 부탁을 받았습니다. 당신에게 어떤 물건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소도도는 누각 안으로 음을 전달했다. 옆에 서 있는 여종은 그가 침묵하는 줄 알고 멀뚱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무슨 물건인가요?”

누각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허한 동시에 그윽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달콤한 운율을 만들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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